[한국 대표 소설 읽기]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


<회복하는 인간> 표지 ⓒ아시아



한 자매가 있다.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언니는 화려한 외모에, 건실하고 잘생긴 형부와 결혼해 누구라도 부러워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동생은 평범한 외모에,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고, 신통찮은 전공을 택해 불안정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언니를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언니가 동생을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매 사이는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지고 죽을 때까지 좁혀지지 않는다. 조만간 언니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언니를 보내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 아니, 일부러 고통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자 방식이라는 듯이. 


'고통'과 '아픔'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가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은, 역시 고통과 아픔이 소설을 관통한다. 주인공인 동생은 아프고 고통스럽고 동생의 언니도 아팠고 고통스러웠으며 그들의 가족 또한 그랬다.


초월적 아픔과 고통 앞에선, 그 어떤 아픔과 고통도 없다


동생이 현재 아픈 이유는 화상에 의한 괴사 때문이다. 괴사로 구멍이 난 그곳은 복숭아뼈 아래쪽인데, 닷새 전 왼쪽 발목을 접지른 후 찾아간 한의원에서 처방해준 직접구 때문이었다. 살갗이 탈 때까지 불붙은 쑥덩이를 얹어 두는 뜸인 직접구로 동생의 아픔과 고통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실제적 아픔과 고통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언니라는 존재,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언젠가부터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존재, 동생에게만 불치병의 사실을 알리곤 동생과는 멀어진 채 고통과 아픔 속에서 속절없이 떠난 존재 때문이었다. 그 존재 때문에 동생은 아파도 아픈 게 아니었고, 고통도 고통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걸 '이따위'로 치부해야 했다. 


그런 때가 있다. 초월적 아픔과 고통 앞에선, 그 어떤 아픔과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말이다. 그럴 때면 초월적 아픔과 고통이 아닌 '일반적' 아픔과 고통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곤 한다. 거기에서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로지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강해지는 것일까, 약해지는 것일까. 초월적 아픔과 고통에서 회복된다고 봐야 할까, 일반적 아픔과 고통이 가중된다고 봐야 할까. <회복하는 인간>은 그 무엇도 아니라고, 그러며 모두 맞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건 아픔과 고통 그 자체로 수렴된다.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소설은 아픔과 고통으로 시작해 또 다른 아픔과 고통으로 끝난다. 초월적 아픔과 고통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다른 아픔과 고통으로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며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기미가 보인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이 시작된다.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싫어진다. 더 이상 생을 살아가기 싫다는 암시일까?


하지만 초월적 아픔과 고통에도 생을 마감하지 않은 걸 보면, 그런 암시로 보이진 않는다. 결국 계속 버티고 살아갈 거라 생각된다. 다만, 온갖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회복하는 인간>은 그것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회복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치유는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병을 짊어진 채 버티며 살아가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한강 작가의 글쓰기와 일맥상통한다. 짧은 소설이기에 집대성했다고 보는 건 힘들지만,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하겠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지루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기까지 할 수 있겠지만, 보다 고민과 통찰을 원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소설에는, <회복하는 인간>에는 '인간'이 보인다. 



아시아 출판사가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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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일상의 인문학>


<일상의 인문학> ⓒ민음사

흔히들 IMF 이후 우리들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극단으로 치달아, 물질(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이 되어버렸죠. 그 결과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소외되었습니다. 이는 기업은 고사하고, 학문의 가치를 숭고히 해야 하는 대학에까지 침투하고 맙니다. 교수들은 어떻게든 취업률을 올려놓아야 하고, 학생들도 스펙 위주의 학습으로 눈을 돌립니다. 자연스럽게 문·사·철을 위주로 하는 인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은 나몰라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장기 불황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지금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들은 더 있습니다. 정치 불안, 각종 살인 사건,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세계 1위라는 자살 문제, 이혼, 부익부 빈익빈 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죠. 이 깊은 수렁에서 사람들은 찾으려고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을. 그래서 많은 서적들이 나오고 있죠. 치유서, 인문서들이. 


책으로 인문학을 말하다


여기 생애 전체를 독서에 몰두해, "밥을 먹듯, 또한 노동을 하듯" 책 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3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해마다 1000여 권의 책을 사들이고 그것들을 매일매일 읽는 것을 생의 큰 보람과 기쁨으로 여깁니다. <일상의 인문학>의 저자 장석주 시인입니다. 


이 책은 기다림, 망각, 사랑, 죽음, 소비, 여행, 일 등 50여 가지의 주제를 300여 권의 책 읽기를 통해 인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볍지 않은 책과 주제들이지만, 그 안에는 일상이 생활이 숨쉬고 있어 다가가기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살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죽지 않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내 사유는 책과 더불어 싹을 텄고 풍성해졌다. 그동안 내 사유의 주제는 기다림, 망각, 타인, 결혼, 사랑 (줄임) 같은 것들이었다. 삶과 세계 속에서 이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고, 다시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드높이고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궁리했다." (본문 중에서)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인문의 바다'에서 뛰놀던 저자가 이번엔 책을 통한 인문의 사유 방식을 택한 듯합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에는 수많은 사유의 주제로 약 300편의 책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지금 당신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 대신에 다만 기다림의 주체와 대상이 사라지고, 기다리는 시간들이 흘러가 부재에 이를 뿐이다." (본문 중에서)


"일요일 정오. "요일 중의 요일. 가장 늦게 탄생한 요일의 막내 자매. 모든 요일의 여왕이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날!"(서동욱 <차이와 타자>) 일요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먹고 마시며 즐길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줄고 있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


자칫 흔한 서평집이 될 수 있는 것을 저자는 서평과 사유와 문학적 글쓰기로, 독자로 하여금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같이 생각해보며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는 엄연한 '인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확장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일상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가치를 갖게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인문학과 책, 그리고 일상은 하나다


저자는 말하길, 현실이 던적스럽고 갈 길이 흐릿할 때 인문학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적이 아니었을 때가 있었나 싶지만, 요즘 들어 심화된 것 같네요. 인문학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이 힘들고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언젠가부터 필요의 학문이 되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많이 힘들어들 하고 있다는 반증 때문입니다. 


모든 학문의 요체는 '책'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문학의 정수는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책에만 있을까요? 심오한 글의 세계에서만 인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대한 이해와 애정을 근간으로 삼는 인문학이 모든 사람들에게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이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일상 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인문학과 책 읽기가 우리의 삶,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기반으로,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리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이 요즘들어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학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치유'도 인문학에 대한 깊은 천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행복이 사라진 것 같은 지금, 인문학을 알아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문학은 가까운 '일상'에도 있고, '책'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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