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표지 ⓒ천년의상상



'삼국지'는 나에게 특별하다. '책'이라는 존재를, 나아가 '이야기'라는 존재를 각인시켜 준 장본인이니까. 책이 나에게 특별해졌기에 삼국지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잊지 않고자 주기적으로 삼국지 콘텐츠를 접하려 한다. 장편으로, 축약본으로, 게임으로, 만화로, 영화로, 드라마로, 그리고 고사로. 이는 실제로 내가 삼국지를 접한 순서다. 고사가 가장 마지막인 이유는 이런저런 고사들이 삼국지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을 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시작이었다. 1988년 출간되어 20여 년 간 2000여 만 권이 팔린 한국 출판 역사상 초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바로 그 책이다. 다름 아닌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나에게 책 읽는 재미와 함께 중국 역사의 재미를 선사했다. 중국의 역사가, 나아가 역사가 이리도 재미있는 것이구나. 이 책을 읽었던 당시 내 장래 희망이 '역사학자'였던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지금의 나를 만들고 사로잡고 뒤흔든 책이 아닐까. 


문제는 한참 나중에 발생했다. 문제라기보단 실망이랄까, 불신이랄까.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실제 역사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수많은 삼국지 콘텐츠를 접하며 달달 외우다시피 한 그 이야기들, 당연히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 속에서 중국의 다른 시대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런데, 그게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란다. 그것도 '나본'을 한 차례 각색한 '모본'을 다시 평역했다고 하니,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헷갈리는데 당시에는 어땠을까. 


삼국지 '외' 이야기를 다루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역사적 사실과 상당히 다르고 오류도 많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이문열이 다시 쓴 소설이지, 삼국지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나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끼친 만큼 '삼국지'를 사랑하지만,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삼국지'하면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떠올릴 것 같기에. 그렇다고 굳이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읽고 싶진 않다. 너무 재미 없을 게 불보듯 뻔하다. 오래된 딜레마다. 


삼국지에 대해선 할 말이 참 많다. 은근 알고 있는 것도 많다. 다만, 그건 삼국지 '내'이고 삼국지 '외'는 전혀 모르다시피 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삼국지'라는 책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읽혀왔고 어떻게 변해왔냐는 모른다는 것이다. 솔직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삼국지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오래된 딜레마는 절대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이상 '중국, 일본, 조선 책>은 삼국지 '외'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렇기에 '와~ 삼국지 책이네'하고 덤벼들었다가는 '삼국지 책인데, 뭐 이리 재미없냐'하고 중도에 포기할 수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삼국지를 사랑하는 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들이 꽉꽉 채워진 책이라는 것도 미리 말해둔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삼국지가 중국, 일본, 조선(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쓰이고 읽혔는지 알려준다. 공통적으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쓰이고 읽혔다. 거기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두 대립 요소가 있는데, 유비와 조조 즉, '촉한정통론'과 '조위정통론'이 그것이다. 전한 시대 경제의 후손 유비가 한나라의 정통이라는 이론과 시대가 낳은 간웅이자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능력자 조조야말로 중국의 새로운 중화 정통이라는 이론의 대립이다. 누가 맞을까. 


삼국지는 중국, 일본, 조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쓰이고 읽혔을까


'촉한정통론'과 '조위정통론'은 중국, 일본, 조선이 다 다르게 받아 들였다. 나라보다는 시대마다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당연히 중국에서 만들어진 '삼국지'는 오히려 중국을 만들었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부터 시작해 삼국지연의의 최종개정판인 '모종강평본삼국지연의'까지 계속해서 바뀐 삼국지다. 


진수는 위나라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진나라(서진) 사람이기에 위나라를 정통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북방 오랑캐에 쫓겨 내려간 진나라(동진)에 이르러 자신들이 유비의 촉나라와 같다고 생각해 촉한 정통론을 내세운다. 송나라 때 이르러 더욱 대조되었는데, 평화로운 송나라(북송) 시대 때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내세우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하지만 금나라에 의해 쫓겨 내려간 송나라(남송)에 이르러 다시금 자신들이 촉나라와 같다고 생각해 촉한 정통론을 내세운다. 


이번엔 '주희'라는 희대의 인물이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비판한 <통감강목>까지 지어 촉한 정통론을 확고히 정립시킨다. 다름 아닌 모종강이 바로 이 <통감강목>에 맞추어 기존의 삼국지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이때에 와서 '삼국지'는 더 이상 소설이 아니었다.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중국인의 염원을 담은, 중국을 만든 영원한 텍스트가 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에도 시대 초기에 유입되어 '역사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연의'가 말이다. 그러던 것이 남북조 시대 흥망성쇠를 그린 군기 소설 <다이헤이키>의 유행과 맞물려 향락적 소설로 변해갔다. 거기에 지극히 일본풍의 삽화까지 더해 더 이상 삼국지라 부를 수 없는 새로운 소설로 되어 갔다.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로 공연되면서 일본풍이 한껏 고조된 것이 결정타였다. 일본에서 삼국지는 일본 것이나 다름 없었다. '기무치'가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일본판 삼국지는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일제 시대 삼국지는 전쟁을 독려하는 도구로 쓰였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드높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다. 그의 삼국지는 중일전쟁 당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들어가는데, 촉한 정통론보다 조조를 긍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조조가 혼란한 시대를 평정한 인물이라고 인식하게 하였고, 자신들의 침략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이전 시대부터 이어진 무사적 충의를 전시에 맞게 고쳐 더욱 부각시키기도 했다. 무사적 충의가 애국이 되고 애국은 군국주의로 이어졌다. 


조선은 삼국지를 괴탄하고 잡스럽고 경박한 책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처럼 역사서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후 양란을 거치면서 삼국지는 유행하기 시작한다. 관우를 군신으로 모시며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판본이 만들어졌고, 대청복수론이 대세를 이루며 극에 달했다. 조선 후기의 소설 유행에 '소설' 삼국지도 함께했다. 필사하고 낭독하고 빌려 읽었고, 내용을 바꾸거나 새롭게 창작하기도 했다. 일본과는 다른, 중국에 가까운 반응이다. 


일제 시대 일본이 전쟁을 독려하는 도구로 삼국지를 이용하려 했다면, 조선은 식민지 조선인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로 삼국지를 이용하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한용운의 삼국지다. 그는 '삼국지를 한 번씩 읽도록 한다는 것은 다만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소개한다는 좁은 범위가 아니라 실로 귀중한 한 개의 사업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사업'은 식민지 조선인의 염원과 민족주의를 결합해 조선인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었을 테다. 그래서 한용운은 <조선일보>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당했을 때 울본을 토한 한시를 쓰기도 했다. 


비로소 '삼국지'를 알게 되다


위에서 말한 걸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재미 없어서 중도에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말. 삼국지 내에 흐르는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과 나라들의 역사 못지 않게, 삼국지라는 텍스트의 삶과 역사도 흥미롭다. 재밌다고 할 순 없을지라도. 어찌 그리 각기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신기하고,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할진데 어찌 그리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지 정녕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나라마다 변용되어 읽힌 삼국지를 통해 한중일 문화사를 보여주고자 했다지만, 필자는 덕분에 비로소 삼국지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런 삼국지를 통해 무엇을 얻는 건 조금 더 훗날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이지만 이제는 당당히 '삼국지가 나를 만들고 사로잡고 뒤흔든 최초이자 최고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 줄 안다. 또한 삼국지뿐만 아니라 많은 텍스트가 그럴 줄 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진짜로 사랑하는 콘텐츠라면 그럴 때 비로소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삼국지가 그러하다. 내 인생에 이런 콘텐츠가 또 있을까, 한중일 역사상 이런 콘텐츠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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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 읽기] <난중일기>



이순신의 <난중일기> ⓒ서해문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존재입니다. 한국의 반 만년 역사에서 이만큼 유명한 위인이 없죠. 그는 한국 역사에서 제일의 위기이자 치욕인 임진왜란’(1592~1597)이라는 국란(國亂)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구국(救國)의 영웅이죠. 더불어 그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에 지극하였고, 지아비로서의 의미를 다하며 유교 사상의 기본 강령을 완벽히 수행한 시대의 모범인(模範人)이었습니다. 또한 완벽에 가까운 전략·전술로 2323승 무패의 승리 신화를 이룩한 군신(軍神)의 칭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순신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을 초월한 신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는 이순신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가 지은 귀중한 책,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일기와 전쟁보고서인 <난중일기>를 들여다보면 그런 이순신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쟁 중의 일기인 만큼 전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엿볼 수 있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난중일기>에는 구국(救國)의 영웅도, 시대의 모범인(模範人), 군신(軍神)도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평범하다 못해 나약한 인간(人間) 이순신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겠는데, 엄연한 사실이거니와 진짜 이순신을 만난 것 같아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하등 나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그 압박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갖가지 어려움을 넘어 오직 나라를 구할 일념 하나로 나아가는 모습은 눈물 짓게 했습니다.

 

인간 이순신을 만나다


<난중일기>에서 인간 이순신을 만나는 건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그는 어떤 일에라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일 것 같지만,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했습니다. ‘분하고 분한마음을 여지없이 표현하기도 했고, 심지어 남의 흉을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감정은 특별했는데, 시종일관 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너무도 음흉하여 말로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고, ‘그 흉악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도 합니다. ‘원균이 망발을 부려수군 여러 장수와 경상도의 장수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다고도 했죠. 이 밖에도 유독 자주 원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이순신, 원균이 수많은 수군과 함께 죽임을 당했을 때도 그에 대한 애도의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죠.

 

취하도록 술을 마신적은 셀 수 없이 많고, 온갖 걱정에 날을 새우기가 일쑤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주 아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하고 점검하고 훈련하고 처벌하고 보고하는 데에 철저했습니다. 이런 철저한 면에서 이순신을 완벽한 인간형의 대표적 인물로 보는 데 주저함이 없을 줄 압니다.

 

한편 이순신은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전쟁 기간 중에도 어머니와 아들을 비롯한 가족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습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시다는 걸 알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 받고는 평안하시다고 하면 다행스럽다는 말을, 불편하시다고 하면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죠.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마는데, 밤새워 울지 않는 날을 손에 꼽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건 아들 면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라에 매인 몸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나라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터인데, 그렇게도 사사(私事)로운 일로 몸과 마음을 망치다시피 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인간 이순신의 본 모습이 아닐까요.

 

만약 사사로운 일로 몸과 마음을 망쳐 나라의 일을 소홀히 했다면 이순신은 추앙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로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이었죠. 아쉽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난중일기>에는 전투에 관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죠. 급박했을지는 몰라도 한 번도 패퇴한 적이 없으니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고,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순간을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일기는 단순한 기록일 뿐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순신의 삶과 성격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의 삶과 성격을 보여주는 단초들이 보입니다. 이순신은 31세에 무과에 합격했는데요. 22세 때부터 무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10여 년 동안 문인으로서의 꿈을 키웠다죠. 그래서인지 <난중일기> 곳곳에서 그의 문인다운 기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15937월 초9일의 마지막 구절을 그런 기질을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밤 달빛이 맑고 밝아서 티끌 하나 일지 않네. 물과 하늘이 한 빛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선 듯 불어 온다. 뱃머리에 홀로 앉아 있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는구나.”

 

1595914일 선 수사와 작별하며 짧은 시 한 수를 써 주기도 했습니다.

 

북쪽에 갔을 때도 고락을 같이 하고 [北去同動苦]

남쪽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하는구나 [南來共死生]

오늘 밤 달빛 아래 한 잔 술을 나누고 나면 [一杯今夜月]

내일은 이별을 아쉬워하겠구나 [明日別離情]

 

<난중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이순신의 성격은 고지식입니다. 외곬으로 곧고 융통성이 없다는 건데, 그는 일기를 통해 입 바른 소리를 여과 없이 내지르곤 합니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다는 쓰디쓴 비판을 서슴없이 하고, ‘나랏일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평정될 리가 없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합니다. ‘조정의 계책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체찰사로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렇게 무작정 할 수 있는가. 나라의 일이 이렇고 보니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울부짖기도 합니다. 그의 이런 올곧은 성격은 사내정치에서는 독으로 돌아와 2번의 백의종군을 하게 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실력은 독보적이었기에 전쟁이 계속되는 한 복직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중일기> 하나로 이순신의 모든 걸 알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그와 관련된, 그리고 임진왜란에 관련된 수많은 저작물들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난중일기>가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저작물인 건 사실입니다. 개인의 기록이기에 주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만인이 아는 공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의 시선보다 내부의 시선이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도 영웅이니, 모범인이니, 군신이니 하는 것보다 평범한 인간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를 떠받드는 건 좋지만 그의 삶과 생각과 성격을 제대로 알고 나서라면 더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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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표지 ⓒ메디치



임진왜란. 1592년(임진년)에 왜나라에서 난을 일으켜 조선을 쳐들어온 사건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자그마치 이후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명나라까지 출전한 국제적 전쟁인데, 왜 전쟁이 아니라 '난(란)' 이라 하는지? 일각에서는 7년 전쟁, 조일전쟁, 임진전쟁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임진왜란이라 한다. 이는 그 당시 조선의 왜에 대한 생각에 다름 아니다. 


16세기 말 조선은 왜가 침략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성일이 어쩌고 황윤길이 어쩌고 해도, 국가적으로 왜 쪽의 해양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는 비단 당시의 상황 만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왜는 한반도 세력에게 한 단계 낮은 세력이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삼국 시대 때 백제에서 문화를 전파해준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편 북 쪽의 대륙 세력은 언제나 한반도를 위협했다.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나라가 만주를 지배했지만 영원할 수는 없었고, 언제나 한반도의 나라는 북쪽을 최전방으로 생각하고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고려 때는 서희가 외교력으로 강동 6주를 차지하고, 조선 때는 세종 대왕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4군 6진을 설치했다. 그럼에도 원나라, 청나라 등에게 유린 당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의 침략은 조선에게 있어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덕분에(?) 한반도가 비로소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었다고 한다면? 괜찮은 건가? 


임진왜란으로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요충지가 되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메디치)의 저자 김시덕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해양의 일본이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를 정복하려 했으며, 대륙의 중국이 해양의 일본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완충 지대로 이용하려 했다고 말한다. 즉,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반도는 결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가 아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비로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양 세력이 득세하기 전까지 대륙 세력에게 한반도는 견제의 대상이었을 뿐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임진왜란의 의미는 달라진다. 일면으로만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이 엄청나게 피해를 보았다.' 정도 이상의 의미, 일본에게 2번이나 역사적인 침략을 당함으로써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준 고난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그 의미를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말에서 찾는다. 한반도 세력, 즉 조선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비로소 대륙 세력과 '협상'을 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간의 힘겨루기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이득을 얻어야 할 때다


현대에 들어서는 해양 세력에 일본과 미국이, 대륙 세력에 중국과 러시아가 포진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처럼 대륙 세력은 한반도를 해양 세력의 세력 팽창 저지를 위한 '완충 지대'로 생각해 보호하려 하고 해양 세력은 대륙으로 세력을 팽창하기 위한 '교두보'로 생각해 진출하려 한다. 이 힘겨루기는 몇 백 년 간이나 계속 되었고, 한반도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때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그만 터지고, 황새와 조개 싸움에 어부가 이득을 얻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임진왜란 때부터 현재까지의 400년 역사를, 아니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도 알아야 하니 대략 500년의 동아시아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500년 동아시아 역사 일별은, 그것도 해양(일본, 미국)과 대륙(중국, 러시아)의 대결과 그 사이의 한반도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분석한 일은 진실로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저자의 역사 분석은 그야말로 재밌기까지 하다.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는 듯한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 나열은 신빙성 있게 전개된다. 한 예로, 임진왜란 이후 연쇄적으로 일어난 200년의 동아시아 역사이다. 먼저 임진왜란인데, 임진왜란을 단순히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 사람에게 맞춰 생각하면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그가 왜 조선을 침략했는지 신빙성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한 200년의 연쇄반응


대륙 세력이 되고자 한 일본의 대륙을 향한 세 번의 시도가 있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삼국시대 때 백제 부흥군을 지원해 수당 연합군과 한반도에서 싸웠다. 결과는 패배. 그리고 13~14세기에 왜구로써 한반도를 침략하기도 했다. 그리고 100년 간의 전국시대 분열을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그는 세계 정복을 꿈꾸며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서 조선을 침략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난 임진왜란. 이 임진왜란은 '누르하치'에게 기회를 주었고, 기어코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한 데 이어 그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명나라까지 멸망 시키기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와 조선이 관심을 한반도로 완전히 돌린 사이에, 그 틈을 타 누르하치가 힘을 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 나라, 세 나라의 역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꾼 임진왜란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렇게 청나라에게 멸망 당한 명나라. 그 와중에 정성공이라는 사람이 장기전을 대비한 진지를 마련하기 위해 타이완으로 넘어갔는데, 명나라가 멸망당하자 정성공 일족은 타이완에서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 네덜란드 세력을 쫓아낸다. 하지만 20년 만에 바다를 건너온 청나라군에 항복하고 멸망한다. 이때가 1683년이었다. 


이렇게 1500년대 일본의 전국시대, 1592년의 임진왜란, 1616년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1636년 홍타이지의 청나라 건국,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 1683년의 타이완의 정성공 세력 멸망, 그리고 강희제의 중국 완전 통일까지. 200년 간 이어진 임진왜란의 연쇄반응이 끝난 것이다. 


역사를 단면적으로 보지 말고 미래를 대비해야


저자의 역사 분석은 이 사례 하나라도 충분히 신빙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말한다. 동북아시아의 위기 상황이 지구의 여타 위험 지역의 위기 상황보다 더 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동북아시아의 상황이 100여 년 전과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그런 해석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말이다. 


역사를 살펴 미래를 대비하되, 역사를 단면적으로 직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통사적으로 길게, 얽히고 설킨 여러 국가의 역사들을 자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역할을 다시 한 번 통감할 수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의미를 알고,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지 알 수 있다. 


한반도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까지 불리는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 개정'으로 한반도 주위 세력들 간의 알력이 심화되는 가운데, 언제까지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한 싸움만 계속할 것인가? 그 배후에 있는 국제적인 상황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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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조선, 1894년 여름>


<조선, 1894년 여름> 표지 ⓒ책과함께

19세기 중반,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마디로 말해 세상물정 모르는 청맹과니에 지나지 않았다. 개방이든 패쇄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마 당시의 기득권층들은 이와 같은 세상물정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고 싶었을 뿐. 


<조선, 1894년 여름>(책과함께)를 통해 120년 전 조선으로 가보자. 우리나라의 시선이 아닌 외부인, 서양의 시선이다. 책의 저자는 오스트리아인이다. 부제도 그에 걸맞게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의 여행기'이다. 저자는 위대하거나 유명한 사람이라도 될까? 글쎄, 작가이자 여행가라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가 조선을 다녀가서 이 책을 내기 전까지는 조선에 관한 책들은 직접 방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보고를 읽고 책을 썼기 때문에, 조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조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먼저 1894년에 조선의 상황부터 간략히 집고 넘어가야겠다. 저자가 조선 땅을 밟은 1894년에는 공교롭게도 새해 벽두부터 거대한 사건이 터진다. 1월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12월까지 계속된 것이다. 민비와 흥선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삼각관계가 한창 무르익어가고 외세의 손길은 국내 깊숙이 들어와 있을 때였다.


그 뿐인가? 6월에는 제1차 갑오개혁이 실시되고, 앞의 두 사건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제 전쟁인 청일전쟁이 8월에 터지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격랑의 1894년이었던 것이다. 역시나 저자의 조선 국토 남북 종단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개인적인 관찰이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 대해서는 조선 주재 외교관과 관료, 상인, 선교사는 물론이고 조선인에게서도 정보를 얻어들었다. 조선의 왕과 대신들의 정책과 사법 진행, 그리고 궁궐과 백성들의 생활과 풍속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조선 정부의 연도별 신문 간행본은 새롭고 유익한 정보의 보고 였다."(본문 중에서)


실제 관찰과 현지 자료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조선의 문서를 번역한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되니, 번역자와 감수자께서 많은 수고를 하셨음이 자명하다. 


저자는 세계 일주를 하던 중이었다. 1894년 여름까지 일본에 있던 저자는 위험을 무릎 쓰고 조선으로의 여행을 시도한다. 부산으로 들어온 저자에게 "항구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괜찮고 더 예쁘며 친근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한국 사람이 나에게 실망으로 다가왔다. 저자도 겉모습을 보고 괜찮고 예쁘다고 했을 뿐, 그 속사정을 아는 사람에겐 실망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한마디 해주는 걸 잊지 않는다. 


"여행자가 보게 되는 부산은 조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일본의 항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웃 쓰시마와 규슈에서 건너온 5천 명 가량의 갸름한 눈을 가진 작은 키의 남자와 여자들이 거주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조선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기 위해 이 나라를 찾은 여행자에게 부산은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과 아무런 연관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일본 도시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당시의 부산은 거의 일본의 소유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부산을 떠나 수도 서울을 방문한 저자. 그는 서울의 모습에 엄청난 실망을 했는지,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와 감탄, 실망을 하고 있다. 한 번 들여다보자. 


"수도라! 나는 그곳에서 15분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중략) 도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략) 내 눈에는 시나이 반도의 호렙 산처럼 보이는, 황량하게 하늘로 솟은 바위들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닐 텐데?"(본문 중에서)


실망한 만큼 구석구석 돌아보고 각종 자료와 함께 요목조목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중에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에 이처럼 옛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며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 여행가답게 기본적인 지리에 관한 서술을 정확하게 함과 더불어, 거의 취재에 가까운 조선 문화 답사를 한다. 걔 중에 흥미로운 몇몇 파트를 뽑아보자면, '조선인의 오락', '(조선) 여성들의 삶', '조선의 독특한 점들' 등이다. 이를 간략히 살펴보자. 


"조선인들은 음악과 카드놀이, 야외 놀이, 권투, 씨름, 연날리기, 활쏘기 등을 열정적으로 좋아한다. (중략)음악적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인은 중국인보다 훨씬 앞서 있고, 20년 전 일본인의 상황보다 나은 것처럼 보인다."(본문 중에서)


비록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는 양국에 밀릴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많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문화의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었기에, 조선은 후진국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에, 지금 우리는 문화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위에서 언급한 파트에 속하지 않는, 아마도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소개해본다. 책에는 '조선의 세계 지도'라는 제목으로 둥그런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약간 웃기고 기괴한 명칭을 뽑아 보았다. '날개 달린' 혹은 '깃털 달린'(남아프리카), '뻣뻣한 털이 난 회색의'(아메리카의 회색 곰이 사는 지역), '검은 발'(북아메리카 인디언), '커다란 북쪽'(러시아), '중화'(중국) 등이다. '중화'라고 표시한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죄다 이런 식이다. 이 지도를 실제로 백성들이 즐겨 썼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당시 조선의 세계를 보는 눈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옮긴다.


"위에서 언급한 교역 상황은 이 나라의 규모로 볼 때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전혀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교역이 단 10년간의 결과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조선은 최근의 전쟁을 통해 이제 잠에서 깨어났다. 동아시아 열강들 사이의 경쟁심이 이 아름답고 부유한 나라가 앞으로 발전해나가는 데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본문 중에서)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니, 아마도 우리나라의 위치가 이곳이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국의 반열에 올랐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다녀간 후로 더욱더 가열찬 열강들의 방해가 있었던 조선. 보잘 것 없었던 조선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조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저자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조선땅을 저자가 다시 밟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자신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지 않을까.


같이 읽으면 좋은 책[책의 뒷날개에 언급]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2005년 1월)

·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2006년 2월)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지그프리트 겐테 지음, 권영경 옮김,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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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조선책략>


<조선책략> 황준헌 지음 ⓒ 네이버

1880년 5월 제2차 수신사로 김홍집은 일본에 파견된다. 약 1개월간 머무는 동안 청국 공관을 자주 왕래하면서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 참사관 황준헌(黃遵憲) 등과 외교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귀국하는 길에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얻어와 고종에게 바친다. 


이 책은 조선이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얼핏 보면 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며 지은 책인 듯하다. 하지만 기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이) 속국으로 여기는 조선에 미국과 일본 등을 끌어들여 앞날을 도모하자는 계산이었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책략을 의미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이 아닌 중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을 끌어들이고, 조선을 다리로 일본과 미국을 엮어 대항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속사정은 이러했은즉 겉모양은 조선의 조선에 의한 국제전략이었으니, 조선이 러시아를 막아야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과 친해야 할 까닭으로, 

'중국은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하며, 그 형국이 아시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천하는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조선만한 나라가 없다...오늘날 조선은 중국 섬기기를 마땅히 예전보다 힘써서...러시아 사람은 그 형세가 외롭지 않음을 알고, 조금은 머뭇거리고 기피함이 있을 것이다.'


일본과 맺어야 할 까닭으로,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뿐이다...일본이 땅을 잃으면 조선 팔도가 스스로 보전할 수 없게 되고, 조선에 한번 변고가 생기면 구주·사국이 또한 일본의 차지하는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이어져야 할 까닭으로, 

'남의 토지를 탐내지 않고,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굳이 남의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다...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여, 유럽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였다...조선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만리대양에 사절을 보내서 그들과 더불어 수호해야 할 것이다...미국을 끌어 들여 우방으로 하면 도움을 얻고 화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며 조선이 무사할 때에 외국사람과 교섭하여 조약을 맺으면 저들이 절로 많은 절제를 가하지는 못할 것이며, 모두 조선을 위태롭게 여기는데 정작 조선은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급히 일어나서 도모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작은 <조선책략>이 맵다


<조선책략>은 30쪽 정도에 불과한 소책자이다. 그런데 그것이 필사되어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영남 유생들이 벌떼처럼 들고 있어난다. 그 결과 김홍집을 탄핵하는 만인소(1만 명의 상소)가 지어 올려지고, 거국적인 위정척사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른바 신사(辛巳) 척사상소운동이다. 이후 경기·충청·호남 등지에서도 상소가 빗발치게 되고, 그 중 몇몇이 유배와 참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개화상소도 만만치 않게 올라와 양측 사이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언론전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집권층에서 큰 영향을 주어 개방정책 및 서구문물 수용정책 추진의 계기가 된다. 내용은 분명 당시의 조선인의 생각보다 한걸음 앞선 이론이자 생각이었고 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또한 청나라의 주선으로 미국과의 수교(수호통상조약)를 맺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내재적 역량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방과 청나라의 간섭, 일본의 침략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바 그 한계성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내용이 청나라의 관점에서 쓰였다는 점으로 볼 때, 당시의 국제 정세를 완벽히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한계이다. 


130년 전으로 회귀한 동아시아


지금 동아시아는 쉴새없는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일 독도 분쟁과 위안부 문제, 중·일 센카쿠 분쟁, 중국과 필리핀 난사군도 분쟁, 한국 탄도미사일 연장 조치,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미국의 간섭. 130년 전,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벌였던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각축이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책략>이 쓰인 당시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은 책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본이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5위권의 군사력의 우리나라 한국이지만 여전히 내재적 역량이 선진국에 비할 바 못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이런 때 또 다른 <조선책략>이 나와 우리나라를 뒤흔들어 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책략을 세우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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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보면, 극 중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곧 나라의 주인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이고, 백성을 주인으로 모시는 정치가 진짜 정치라고 말하는 정도전의 <조선경국전>과 일맥상통한다. 이른바 '민본정치(民本政治)'이다. '민본정치'는 사랑과 도덕과 예의를 상위 개념에 두고, 힘과 이득과 수치는 하위 개념으로 두고 있다. 인간의 도덕적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힘과 이득을 균등하게 분배하자는 것이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치는 사람을 바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바르게 만들려면,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연의 이치를 바탕으로 해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또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뜻을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백성을 가르쳐서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를 능력주의로 선발하여 정치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임금이 백성의 뜻을 어기면 백성이 임금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교서(敎書)


<서경(書經)>에 "위대하도다. 왕의 말씀이여!"라고 하였고, 또 "순수하도다. 왕의 말씀이여!"라고도 하였다. 마음이 안으로부터 순수하기 때문에 그것이 밖으로 말로써 표현되면 자연히 그 말이 위대하기 마련인 것이다. 반대로 밖으로 표현된 말의 위대함을 보면 그 마음이 순수한 것을 알 수 있다. 전(典)·모(謨)·훈(訓)·고(誥)가 <서경>에 실린 이래로 '정일(精一)'·'집중(執中)'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성학(聖學)의 연원이 되었으니, 이 말의 위대함을 알겠다. 한(漢)·당(唐) 이래로 천자의 말은 혹은 '제조(制詔)'라고도 칭하고, 혹은 '고칙(誥勅)'이라고도 하였으며, 제후의 말은 '교서(敎書)'라고 하였다. 양자 사이에는 비록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뜻은 한 가지인 것이다. 이른바 '제고' 또는 '교서'는 본인이 스스로 짓는 경우도 있으나, 문신이 대신하여 짓는 경우도 있다. '제고'와 '교서'는 정치 수준의 높고 낮음에 따라 순수한 것도 있고 잡박한 것도 있어서 한결같지는 않으나, 이것을 통하여 그 시대의 언행을 살필 수가 있다. 

우리 전하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유사(儒士)와 더불어 경서(經書)와 사서(史書), 그리고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서(書)를 읽어서 의리를 토론하여 밝히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정치의 성공한 일과 실패한 일을 토론하기를 좋아하여 이에 능통하였다. 문장은 본업이 아니요, 여사(餘事)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이렇듯 지극한 것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 많은 까닭이었다. 이제 유신(維新)의 시대를 맞이하여 기강을 확립하고 백성들과 더불어 새로이 정치를 시작하여 여러 차례 교서(敎書)를 내리어 서울과 지방 교시하였다. 이 교서는 비록 문신이 지어 바친 것이지만 교서에 들어 있는 명령의 뜻은 모두 전하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며, 이를 토론하고 다듬어서 의리에 맞게 한 것이다. 그 수준은 문필을 잡은 사람이 능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이니 이를 마땅히 편으로 적어서 일대의 법전(法典)으로 갖추어 놓고자 한다. 


 - 올재 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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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처 부인의 막내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이방원의 심기를 건드린 정도전은, 결정적으로 '사병혁파' 때문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정도전은 요동정벌에 필요한 공병을 차출한다는 명분 하에 왕자들이 거느리고 있던 다수의 사병을 혁파하려 합니다. 이에 이방원은 자신의 권력기반인 사병을 한 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죠. 정도전이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이죠. 


 그리하여 태조 7년(1398)에 이방원은 사병을 거느리고 당시 남은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정도전을 급습합니다. 정도전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죠. 이방원의 명분은 그날 정도전이 이성계의 본처인 한씨 소생 왕자들을 경복궁으로 불러 차례로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그들(정도전, 이방원)의 정치적 야망의 간극이 불러온 참극이었죠. 


왕실의 세계


신은 일찍이 <주아(周雅)>를 읽어 보았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덕을 말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후직(后稷)과 공류(公劉)의 공을 쌓은 일과 인(仁)을 행한 일을 추구하여 그 유래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문왕과 무왕의 복을 이야기하는 자는 반드시 자손들의 무던한 인후와 무리 지은 번성을 노래하여 그 미친 데가 넓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나라 왕조의 세계(世系)도 번성하여 모(某) 이래로 대대로 덕을 쌓아 오다가 목왕(穆王)에 이르러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전하에 이르러 대명(大命)이 모이게 된 것이다. 더욱이 하늘이 자손을 내려 주시어 이미 번성을 이루었고, 그 가운데 현명하고 덕이 있는 이를 골라 동궁의 자리에 올바르게 앉혔다. 나머지 자손에게는 모두 작위를 주고 영지(領地)를 나누어 주어 왕실의 울타리로 삼았으니, 이 또한 국가의 장구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봉작(封爵)의 이름을 적어서 <세계편(世系篇)>을 짓는다. 



 -올재 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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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은 어떤 책일까요? 태조 3년(1395)에 편찬하여 임금(태조)에게 바쳐졌다고 합니다. 주로 중국의 이상 시대로 알려진 주나라의 법전인 <주례>를 참고하였고, 여기에 조선 현실에 맞는 제도를 참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례>에 담긴 육전(六典)에서 치전, 예전, 정전은 그대로 조선에 받아들이고, 교전을 부전으로, 형전을 현전으로, 사전을 공전으로 바꿔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조선으로 풀어쓰자면

치전->이조(인사행정), 예전->예조(교화), 정전->병조(군사), 부전->호조(재정), 현전->형조(법륙), 공전->공조(공영)입니다. 그렇다면, 정도전은 조선의 국호를 어떻게 짓게 되었을까요?




국호


해동(海東)의 나라들은 국호가 일정하지 않아서 '조선(朝鮮)'이라고 부른 것이 셋이 있었다.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衛滿)이 그것이다. 박씨, 석씨, 김씨가 서로 계승하여 '신라(新螺)'로 불렀고, 온조(溫祚)는 '백제(百濟)'불렀고, 견훤(甄萱)은 '후백제(後百濟)'로 불렀다. 또한 고주몽(高朱蒙)은 '고구려(高句麗)'로 불렀으며, 궁예(弓裔)는 '후고구려(後高句麗)'로 불렀다. 왕씨는 궁예를 대신한 뒤에 전히 고려의 국호를 답습하였다. 이들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칙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서로 침략하고 빼앗았으니 비록 국호를 칭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만 기자만이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候)가 되었다. 지금 중국(명)의 천자는 고명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조선'이라는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매우 오래다. 이 이름을 근본으로 하여 받들고 하늘을 좆아서 백성들을 기르면, 길이 후손들이 번창할 것이다."


주 무왕이 기자에게 명한 것처럼, 명(明) 천자가 전하에게 명하였으니 이름이 바로잡히고 말도 적당해진 것이다.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洪範)을 가르쳤고,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팔조(八條)의 교(敎)>를 지어서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니 정치의 교화가 크게 이루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워졌다. 조선이라는 이름이 천하 후세에 알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답습하였으니 기자의 선정(善政)도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오호라! 명 천자의 덕도 주 무왕에 비교하여 부끄럽지 않거니와 전화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 비하여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장차 <홍범(洪範)의 학(學)>과 <팔조의 교>가 오늘날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공자(孔子)는 말하였다. "내가 그 나라를 동쪽의 주(周)나라로 만들겠노라"고. 공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올재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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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새해가 되면서 KBS 1TV에서 '정도전'을 시작했는데요. 일명 고품격 사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오랜 기간동안 준비해 완벽에 가까운 고증과 입장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전개에 있습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역사 왜곡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MBC '기황후'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도전이라고 하면, 오랜 세월 동안 역적이라는 이름 하에 그 진면목을 애써 감추려 해왔었습니다. 비록 이성계와 함께 조선 창건의 핵심 중 핵심이었지만, 이후 이성계의 후처 소생들을 봐주다가 본처 소생 이방원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죽은 것이죠. 하지만 그가 조선에 끼친 영향을 그 어느 누구보다 위에 있습니다. 심지어 이방원조차도 왕권중심 권력구조로 바꾼 것 빼고는 거의그가 만든 틀을 답습하다시피 했죠.


정도전은 정치, 경제, 군사, 철학, 종교 등 모든 것을 바꾸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것이 조선이었죠. 그리고 그 핵심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저서가 바로 헌법적 이론서 <조선경국전>입니다. 

과연 그 <조선경국전>은 어떤 내용일까요. 그 처음을 살펴보시죠. 



보위를 바르게 함


《역(易)》에 이런 말이 있다. "성인의 큰 보배를 '위(位)'라고 한다. 천지의 큰 덕을 '생(生)'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위'를 지킬 수 있을까? '인(仁)'으로써 해야 한다. 천자(天子)는 천하 백성의 공봉(供奉)을 받고 제후는 경내 백성의 공봉을 받으니 천자나 제후는 부귀가 지극한 사람들이다. 어질고 유능한 사람들이 자기의 지혜를 바치고, 무용이 뛰어난 인물들이 자기의 힘을 바치며, 백성들이 분주하게 자기가 맡은 역(役)에 복무하고, 오직 인군(人君)의 명령에만 복종하니 '위'를 얻는다는 것이 큰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자는 만물을 생육하는 데 있어서 순수하고 평등하다. 근원이 되는 '기(氣)'가 빈틈없이 유포되어 만물이 생성될 때에는 모두 이 '기'를 받아서 된다. 만물은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고, 제각각의 형태를 지니고 제각가의 본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기'의 작용에 의한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을 생성시키는 것을 본심으로 삼는 것, 이른바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은 천지의 큰 '덕(德)'이다. 


인군의 '위'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일 인군이 천하 만만의 인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약한 존재이지만 힘으로써 위협해서는 안 된다. 하민은 지극히 어리석지만 꾀로써 속여서도 안 된다. 인심을 얻으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백성이 인군을 버리고 따르는 데에 있어서는 털끝만 한 여지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심을 얻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며, 도(道)에 어긋나고 명예를 손상시키며니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방법은 오직 '인'일 따름이다. 인군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시키는 마음가짐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서,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천하 사람들이 모두 기뻐서 인군을 자기 부모처럼 우러러볼 수 있게 되면, 오래도록 안녕과 부귀와 존경과 영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요, 나라가 위태롭고 멸망하여 쓰러지는 근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인(仁)'으로써 '위(位)'를 지키는 것이 어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삼가 생각해 보면, 주상(主上) 전하는 하늘과 인민의 뜻에 순응하여 보배로운 '위'를 신속히 바르게 하였고, '인'이 착만 마음을 완전하게 만들고, 사랑이 '인'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인'을 체득하고 사랑을 인민에게 미루어 베풀었으니, '인'의 본체가 세워지고 '인'의 작용이 실행되었다. 아! '위'를 보유하여 천만세에 길이 전하여질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랴. 



-올재 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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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조선 왕조의 기원>역사, 그 중에서도 한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저작물을 내왔던 너머북스 출판사에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이 출판사는 작년,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를 한 <광해군>이라는 책을 필두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광해군>은 출간 당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개봉과 맞물려 많은 화제를 낳았었다. 기존의 재평가된 광해군에 대해 호기로운 시각을 보내는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책은 상당히 몰매를 맞았었다. 

출판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올해 초에는 과거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각인된 바 있는, 일본인 한국사 대가 미야지마 히로시의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사 통설로 인식되어 있는 내재적 발전론을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비판하였다. 그러며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가 아닌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라고 주장한다. 즉, 기존의 한국사 통설의 기준은 서구에서 고스란히 베껴온 것이니, 새롭게 정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통설을 뒤집다

<조선 왕조의 기원> 표지 ⓒ 너머북스

<조선왕조의 기원>(너머북스)는 출판사가 추구하는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의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부제는 '고려-조선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실증적으로 탐구한 역작'이라고 붙였는데, 부제만으로도 저자가 기존의 한국사 통설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한국사 통설에서는 고려-조선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실증적으로 탐구하지 않았다는 걸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 존 B. 던컨은 어떤 시각으로 고려-조선 교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실증적 탐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고려-조선 교체에 대한 비판까지 하고 있는 것이라면, 기존의 통설인 '신흥사대부에 의해 완전히 새 시대를 연 왕조 교체이자 사회 혁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설을 따라가 보자. 

먼저 저자 존 B. 던컨은 미국인이며 한국학의 대가라는 점을 밝혀둔다. 또한 이 책은 2000년에 출간되었지만, 13년 만에 번역이 되어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사에 대한 담론, 즉 새로운 시각에 대한 포용이 부족했다는 점과 이제야 비로소 그 사슬이 조금은 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동반한다. 

책의 뒤표지를 보면, 눈에 확 띄는 문구가 있다.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 신흥 사대부 조선 건국론에 도전한다."

이 한 마디가 이 책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 신흥 사대부 조선 건국론이란 무엇인가?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단순한 반란에 의한 건국론에 반하여 주장되고 통설로 굳어진 이론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 그 뿌리를 단순한 반란으로 규정지었던 것이다. 이에 현재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은, 타락한 고려 중앙문벌귀족 즉, 권문세가를 지방의 개혁적인 신흥 사대부가 등장해 토벌하였다는 것이다. 반란이 아닌 혁명을 이룩한 것이기에, 고려-조선 교체를 엄연한 새 시대 창조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그리고 지금 학계의 정설로 여겨지는 역사적 사실은, 고려 말기에 중앙의 권문세족('몽골과의 친선 관계를 통해 새로 등장한 가문으로, 권력을 앞세워 고려 말기 사회 모순을 격화시켰다'라고 알려져 있다)에 반발해 지방의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공민왕은 개혁을 실시해 대외적으로 반원, 대내적으로 반권문세가 정책을 실시하였다. 비록 그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자연스레 신진 사대부가 중앙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후 권문세가 출신의 최영, 신흥 사대부의 대표격인 이성계 등이 힘을 더해 권문세력을 축출한다.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신흥 사대부들은 최영을 몰아내고, 완전한 새 시대 즉 조선을 열었다는 것이다. 

신흥 사대부와 성리학에 대해

이에 저자는 먼저 '신흥 사대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 후기 지배층과 조선 전기의 지배층이 단절되었는지 알기 위해 고려 때부터 조선전기까지 약 5천명에 이르는 관료들을 분석했고, 나름의 답을 얻어냈다. 조선이 창업되면서 제거된 고려말 주요 가문은 3개에 불과했고, 오히려 대부분의 주요 가문이 조선 초기에도 그대로 주요 가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양반'이나 '사대부'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 사대부' 세력을 뜻하는 단어가 아닌, 고려 때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단어라는 것이다. 실제로 찾아보면 양반이나 사대부는 고려・조선 시대의 지배신분층을 뜻한다. 이미 존재했던 그리고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계층에 반발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심리로 '신흥'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즉 조선-고려 교체기에 지배층의 교체는 없었고, '신흥 사대부'라는 뜻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성리학'이 조선 창업의 이념이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완전한 새 시대를 여는 데에 차용된 이념이라는 것이, 어째서 그 전에도 계속 발전해왔냐는 것이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성리학은 송나라에서 발흥된 무렵인 고려 초・중기에 이미 수용이 되었고, 계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고려-조선 교체기의 사상의 복잡성을 말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맞는 새로운 사상'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는 고려를 지배했던 사상인 '불교'가 아닌 당시 급속도로 그 세를 불리고 있던 '성리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며 저자는 고려-조선의 교체에 있어서, 지배세력의 완전한 교체에 의한 새 시대와 새 질서 확립은 어불성설 격이라고 말한다. 고려-조선의 지배세력은 그 구성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식민사학이 '조선은 궁중반란에 의해서 건국되었다. 이 민족은 내재적 발전 없이 정체되었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에 동조하는 듯이 보인다. 이에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학의 주장과 맞선 민족주의적 당위성이 짙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식민사학이 주장하고 있는 바도 이치에 맞지 않다. 비록 내재적 발전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역사 담론의 장을 여는 새로운 이론?

저자는 '내재적 발전론'과 '정체론'으로 양분되어 있는 한국사에 새로운 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특히 지금 한국사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며, 한국이 내재적으로 발전해 지금의 자본주의가 등장했다는 논리에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외부에서 자본주의 사상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조선후기 때부터 자본주의 사상이 싹트고 있었다고 말이다. 내재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결과 사실상 한국의 근대화는 이때 이룩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에 '발전'도 '정체'도 아닌, '지속'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애매한 이 말 속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는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칫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저자의 주장이, 그 자체로 정체되어 있던 역사 담론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하고 싶다. 그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센세이션한 주장이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우리나라 역사 속 발전에서의 정체도 무섭지만, 정히 두려운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생각이 닫혀 하나의 정설에만 매몰되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담론의 장에 오셔서 생산적인 토론을 만끽해보심이 어떠할지.


"오마이뉴스" 2013.4.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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