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야옹~ 캬흥! 흠냐흠냐. 그녀는 고양이 같다. 기본적으로 너무 귀엽고 또 얌전한데 가끔은 엄청 무섭다. 아무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인간처럼 길러졌다지만 야생성이 살아 있는 고양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고양이가 매력이 있듯이 그녀도 매력이 충만하다. 


야옹야옹 하면서 꼼지락 거리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생겼는지 캬흥! 하며 꽥 소리를 지르고는, 민망했는지 미안했는지 흠냐흠냐 하며 조용해지곤 하는 것이다. 재밌다.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와. 


고양이 하면 또 생각나는 게 '사부작사부작' 아니겠나. 뭔가 하려고 할 때는 티나지 않게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한다. 그래도 완전히 소리를 내지 않을 순 없는지, '부시럭부시럭' 한다. 뭔가 소소한 의성어나 의태어가 잘 어울리는 그녀다. 또 '시무룩'해지기 일쑤인 그녀다. 다 괜찮으니 '엉엉' 울지만 마렴~


그녀는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다. 호기심도 많고. 반면 그만큼 멍~ 하니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생각이 많고 관심이 많은 만큼 머리를 식혀야 한다나~ 그런 모습은 진득하니 무표정으로 앉아 있다가도 장난감 거리를 주면 도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촐싹거리는 고양이와 판박이이다.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는 난 주인? 아니, 집사인가?


그럼에도 그녀는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한없이 약하고 여린 듯하지만, 그보다 더 똑부러지고 강한 사람이 없다. 이제 보니 이건 뭐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정말 피곤하 게 산다는 거... 조금만 힘 빼고 살자~ 그럼 좋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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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읽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인류 최대·최악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 본래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행한 초유의 대학살을 말한다. 이는 역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수많은 콘텐츠의 원형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나치 독일이 왜 그런 짓을 행하였는가와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이 행한 짓을 차치 하고, 당시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극도의 '수용소 생활'이다. 홀로코스트 관련의 수용소 생활을 다룬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이 있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이 있을까? 의외로 소설은 찾기 힘들다. 반면 만화와 산문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소설 <쥐>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다. 그나마 시선을 조금 더 넓혀서 <안네의 일기>도 이에 포함 시킬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와 수용소 생활에 관련한 모든 콘텐츠들 중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최고로 뽑는다. 만화의 형식을 빌렸음에도 그 가치가 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전달이 잘 되고, 그 비극의 모습을 오롯이 눈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갖는 완전히 다른 의미


그렇지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갖는 의미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콘텐츠들이 그 당시의 모습을 극악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거나, 거시적으로 살펴보면서 화해를 청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반면 빅터 프랭클은 당시의 경험을 근거로 창조를 해냈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읽은 뒤에 라면 부정하지 못할 '인간 존엄성' 말이다. 


이 책은 책이 가지는 거대한 후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인 정신의학 의사로서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는 그곳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고, 그곳에서 있었던 체험을 그만의 독특한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안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이나 아드리안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권력과는 다르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바로 이 로고테라피 이론이 어떤 식으로 자신이 체험했던 지독한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더욱 개발하여 견고한 체계로 다듬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수감자들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것을 기록해 놓은 방대한 자료를 조사해 보고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첫 번째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의 '충격', 두 번째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의 '무감각', 세 번째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의 '불신, 비통, 환멸, 슬픔, 환희'이다.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 세 단계


수용소로 끌려 가는 사람들은 '집행유예 망상'을 겪는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과 같이, 그들도 실날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수용소에 들어가 선별의 관문을 통과하고 가축우리 같은 방에서 기다린 후 소독실에 들어 가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후 완전한 벌거숭이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 모두 무너지고 그들은 완전한 충격에 빠진다. 


그들은 이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그 심리적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인데, 이런 반응들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인 '무감각'으로의 이동이다. 


이 무감각을 제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바로 앞에서 보이는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 단계가 되면 그들은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모멸감' 앞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육체적인 학대나 고통은 조금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저자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어떤 삶은 저자에게 의사면 사람들로부터 돈푼깨나 긁어 모았겠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후 수용소에서의 세 번째 심리적 단계로의 이동은 기약이 없다. 수용소에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서는 메마를 대로 메말랐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전혀 못 느끼게 된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그 곳에 정치와 종교와 예술과 유머가 존재하고, 과거를 생각하며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 사랑의 감정은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곧 행복까지도 야기 시킨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은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할 것이다. 대신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럴 때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저자는 매일같이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에 역겨움을 느끼고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렸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지만, 그로 인해 그는 그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방법을 통해 그는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 즉 로고테라피가 말하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들은 갑자기 해방을 맞는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맞이한 해방. 그렇게 찾아온 자유는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토록 꿈꿔왔던 자유인데! 이후 그들은 도덕적 결함을 보인다. 그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일종의 보복 권리로서의 어이 없이 나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이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비통함과 환멸감, 슬픔을 느낀다. 


시련에는 끝이 없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시련을 보상해 줄 만한 행복을 얻었을까? 수용소에서의 극악의 고통을 보상 받을 만한 행복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느꼈을 것이다.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권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인간 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한 사람의 극적인 경험담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가치는 물론 철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정신의학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본문 '추천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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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광고에 나왔던 유명한 카피입니다. 남성분들에게서 자주 언급되는 이 문구는, 뭇 여성분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문구이기도 하지요. 어떻게 말하지 않아도 아느냐? 표현을 해야지 알지! 


하지만 오랜 세월 같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말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옵니다.(그럴거라 생각됩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가타부타 말씀 없이 걸음을 옮기십니다. 다시 보면, 젊은 남성이 주장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무조건 오랜 세월 함께 한다고 무언의 대화가 실현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사랑과 존경, 신뢰와 의지가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비로소 서로를 한없이 감동시킵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들 만의 속삭임이죠. 


어느덧 한 겨울이 찾아왔고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충만한 시간들을 보낼 것입니다. 반면 그만큼의 사람들이 어느때보다도 사랑에 목말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분들께 제가 느꼈던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오늘 일기는 일기가 아닌 메모이지만, 꼭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있어 행복한 연말연시가 되시길. 



그들의 무언의 대화. http://www.flickr.com/photos/36595903@N00/1267269122/




2012년 7월 24일

지하철 6호선 안이다. 

내 옆에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할아버지께서 맞은 편을 보며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인사를 하신거겠지 생각하며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계속 고개를 끄덕끄덕. 뭔지 모를 행동들을 하신다. 

그래도 그러려니. 할아버지들이 가끔 하시는 그런 동작인 듯. 

문뜩 맞은 편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선하게 생기신 할머니시다. 

할머니께서도 고개를 끄덕끄덕. 

아,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와 부부셨구나.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끄덕거림은 할머니와의 무언의 대화였구나. 

"나 여기있어, 할멈"

"응, 나도 여기 있어, 할아범"

할아버지께서 내리려고 일어나신다. 그 눈빛과 행동을 읽고 같이 일어서는 할머니. 

할머니가 일어서는 할어버지를 자못 사랑스런 눈빛으로 올려다 보신다. 

어떤 존경의 마음이 거기에 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그들의 지난 세월이 읽힌다. 저런 삶을 살고 싶다. 

잘 모르지만, 알 수 있을 듯하다. 

남편이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부인이 남편을 얼마나 존경하는 지를.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신뢰하는 지를. 

그 짧은 순간에 전해진 사랑의 대화가 나를 가슴벅차게 했다. 

전해주고 싶다, 그 감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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