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말죽거리 잔혹사>


검증이 안 된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유하 감독의 차기작은 어땠을까?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도 대부분 신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감독의 의도일까? ⓒ싸이더스



2004년 당시 데뷔 3년이 채 안 된 두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영화가 개봉한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권상우, 여고 시절 KBS 도전 골든벨 출연 후 단번에 CF를 찍고 드라마 주연을 꿰차며 스타 반열에 오른 한가인이 그들이었다. 거기에 90년대 후반 패션모델로 데뷔한 후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으며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얼굴을 보인 이정진이 주연의 중심을 잡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캐스팅이라 하겠다. 


조연의 면면도 비슷했다. 나름 잔뼈가 굵은 김인권을 제외하고는 이종혁, 박효준 등 경력은 물론 인지도에서도 거의 신인과 다름 없었다. 지금은 충무로 대세 배우 중 한 명인 조진웅은 이 영화에서 대사 한마디를 날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감독의 의도였을까, 제작비 등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화려하기 그지 없는 현재의 영화 캐스팅 수준과 비교를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경력을 떠나 인기나 연기 면에서 이 영화처럼 확실한 인지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독립영화라면 모를까 엄연한 상업영화에서 말이다. 


곤혹스러울 정도의 연기가 아쉽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영화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당시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싸이더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랜만에 충무로에 돌아와 괜찮은 흥행과 비평에 성공한 유하 감독은 차기작으로 학교, 추억, 폭력의 앙상블 영화를 기획한다. 거리 3부작의 시작이기도 한 <말죽거리 잔혹사>다. 유하 감독은 학창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는데, '남자'라면 누구나 꿈꿔봤음직한 그때 그 시절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전남 보성에서 강남 말죽거리로 이사온 모범생 현수(권상우 분), 태권도장을 하는 아버지의 폭압적인 가르침 덕분에 공부도 곧잘하고 달리기나 농구도 곧잘하는 평범하지만 여러 모로 평균 이상의 학생이다. 그 덕분인지 학년 전체를 주름잡는 싸움꾼 우식(이정진 분)의 눈에 띄어 친구가 된다. 


그는 오지랍이 넓은 건지 태권도 정신에서 비롯된 정의감이 투철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나서지 말았으면 하는 데에 나서서 일을 자초하곤 한다. 그 와중에 천눈에 반한 은주(한가인 분)를 구해주려다가 일 아닌 일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현수뿐만 아니라 우식이에게도 있었다. 결국 사귀게 된 건 우식과 은주, 소심하기만 한 현수는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고, 신인들을 내세웠다지만, 아무리 봐도 형편 없는 연기는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그 중심에는 현수와 은주, 즉 권상우와 한가인이 있다. 현수는 후반에서의 싸움 시작과 끝에서만 톤이 올라갈 뿐 시종일관 힘 없고 우울한 톤을 한 음으로 유지하고, 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힘 없고 우울한 톤을 한 음으로 유지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의도된 연기인가?


7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만큼 목소리에 있어서 당시의 느낌을 살리려 했을 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연극톤이지 않은가. 그런 걸 의도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다른 이들의 연기는 너무 다르다.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 두 주연배우의 연기, 특히 연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발성이 터무니 없이 형편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에는 이 둘만 등장하는 장면이 꽤 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눈과 귀를 둘 곳이 없다. 그들도 곤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왜 그런 연기를 그 정도로 넘어갔을까. 의문이다. 


이런 식의 교육은 폭력 이상의 악질이다


교육이 아닌 교화를 하는 학교. 모든 학생이 똑같을 순 없는데, 똑같으라고 강요하는 학교. 지금도 여전할까? 그때는 참으로 잔혹했다. ⓒ싸이더스



영화는 현수의 성장 스토리로 읽힐 수 있다. 평범한 학생이 일진을 모조리 깨부수고 퇴학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니까 말이다. 이게 도대체 왜 성장이냐고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학교폭력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고 되받아칠 만하다. 하지만 당시 시대를 본다면, 당시 국가상을 들여다본다면, 그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통제했는지 듣는다면, 현수의 그와 같은 행동을 성장으로 해석할 수 있음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때는 1978년, 박정희의 친위 쿠데타 이후의 유신 시대 한복판이다. 학생들은 등교하면서 선도부에게 '충성'을 외치고, 학교에는 학생 교화를 이유로 군인이 상주했다. 학생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며, 국가가, 학교가 원하는 인간이 되길 바랐다. 그렇지 않을 때엔 가차 없는 폭력이 날아왔다. 


그 폭력에는 육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 성적 폭력, 언어 폭력, 인권 유린 폭력 등 모든 종류가 망라되어 있었다. 차라리 단순무식한 육체적 폭력이 가장 낮은 수위의 폭력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해보고 싶음직한 행동을, 학교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력으로 교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엇나가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현수의 성장 스토리는 더 이상 성장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엇나감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런 폭력을 당하는데 당연히 움츠려들며 더욱더 국가가, 학교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인간이 되어 갔다. 어떤 인간으로 되어 갔든 그들의 잘못도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도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반면 현수는 최소한 자발적인 선택을 했다. 반항심과 함께 체력을 키워 가며 반발했다. 그렇다고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싸움에 휘말렸고 약간의 다툼을 했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졌다. 학교는 그를 잡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악질'이라고 몰아세울 뿐이었다. 그가 퇴학을 당하는 대형 사건을 저지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학교의 책임이 아닌가. 최소한 '너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제스추어는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이거 악질이네. 안 되겠어. 혼 좀 나야겠다' 하고 끝나면 그게 무슨 교육인가. 


잔혹의 시대를 살아간 청춘을 위로하다


한 시대가 저무는 1978~9년. 그들이 헤쳐온 잔혹의 시대도 저무는가.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청춘을 위로해준다. 하지만 그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을 듯하다. ⓒ싸이더스



영화는 이소룡으로 시작해 이소룡 대 성룡으로 끝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영화의 시작이 이소룡 영화를 좋아해 빠져들듯 보는 현수의 어린 시절이었고, 영화의 끝이 영화관에 이소룡 영화와 성룡 영화가 동시에 걸렸을 때 현수의 이소룡 옹호와 흉내, 그리고 친구 햄버거의 성룡 옹호와 흉내가 대결하는 장면이었다. 


성룡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게 영화 <취권>이었는데 1978년에 나와 우리나라에는 1979년에 들어 왔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이 되는 1978~9년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그때까지도 아직 이소룡의 인기가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렇지만 곧 성룡의 전성 시대가 열리는 바,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른다는 말이겠다. 


박정희 유신시대도 1979년에 비극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그건 곧 현수와 친구들의 '말죽거리 잔혹사'도 비로소 끝났다는 게 아닐까.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열리는 건 시원섭섭하고 슬프고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건 그렇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을 테다. 


이소룡의 시대가 저물고 성룡의 시대가 오는 건 그럴 테지만, 그들의 잔혹의 시대가 가는 건 조금은 다른 차원이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사랑과 우정과 청춘의 학창 시절을 자기 손으로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찢어진 마음을 보상해줄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을 이해조차 하지 않을 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영화는 그런 시대를 살아간 모든 청춘들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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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유하 감독의 <강남 1970>



<강남 1970> 포스터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거리는 극히 양면적인 면모가 있다. 연인들에게는 팔짱을 끼고 함께 같은 곳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앞이 탁 뜨인 거리는 걷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갈 곳을 정해두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거리는 낭만적이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 쬐는 주말 오후의 거리를 느낌이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준다. 


과연 그러기만 할까? 거리에는 무표정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가 쫓아오는 양 빠른 걸음으로. 그럴 때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불과하다. 한편 거리는 '무법', '야생'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으슥한 뒷골목 거리는 누구의 손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이들에게 거리는 집임과 동시에 생존을 위해 끝없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링이다.


그런 거리에는 필연적으로 욕망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끝 간 데 모를 욕망이어야만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또 다른 욕망에 의해 파멸 될 운명이지만, 그 또한 누군가의 욕망을 밟고 그 자리에 있을 터였다. 폭력은 그들을 그들 이게 한다. 폭력으로만 그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이성의 시대에 이런 욕망과 폭력의 인간들은 가장 밑바닥 취급을 받고 가장 멀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러나 지금은 가장 이성적이고 고결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강남이다. 


폭력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 강남


유하 감독은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 2006년 <비열한 거리>로 '거리'와 '폭력'의 다양하지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엔 '강남'이 있었고, 2015년 <강남 1970>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 안에 '거리', '폭력', '강남'을 비롯해 '욕망', '잔혹' 등 일명 '거리(폭력) 3부작'의 모든 것이 들었다. 거리 안에 폭력은 있다 지만, 폭력 안에 거리가 있다 고는 할 수 없기에 '거리 3부작'이 더 정확하다 하겠다. 


<강남 1970>은 제목 안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전부 들어 있다. 지금의 강남이 만들어진 때가 1970년이다. 영화는 이 시대의 강남 개발이 당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대선 자금 확보의 일환으로 핵심 중의 핵심 권력인 중앙정보부가 하달한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명령을 이루기 위해 큰 두 세력이 맞붙는데 이들은 국회의원들이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일명 조직폭력배 깡패들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넝마주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고아 종대(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 분)는 자신들의 집을 부수려는 정부 용역 깡패들에게 저항하다가 붙잡힌다. 그런 와중에 쪽수(?)가 모자란 깡패들이 데려가 그야말로 지극히 우연한 계기로 깡패들의 세계에 입문하는데, 이 둘은 헤어지고 만다. 이후 그들은 실력을 뽐내며 자리를 잡아가고, 또다시 우연히 이들은 조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서로 다른 세력에 있었다. 강남 개발의 큰 두 세력 말이다. 종대는 용기에게 자신 쪽으로 넘어오라고 하지만, 용기는 중간에 큰 사고를 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처지다. 대신 스파이 노릇을 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종대를 돕고, 이는 종대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인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있다. 종대를 거두고 키우다시피 해준 길수(정진영 분)의 딸 선혜. 종대는 선혜를 사랑하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상 친동생과 마찬가지인 존재이기에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다.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에게 맞고 도움을 청하면 그 남편을 찾아가 죽도록 패버리는 뭐 그런 거다. 


그리고 종대와 강남 개발 사업을 하게 되는 민마담(김지수 분). 그녀는 정재계 거물들과 상대하며 엄청난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강남 개발 중심에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벌인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강남 개발의 비열한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핵심 장면들이 여기서 나온다. 정부의 강남 개발 시책에 맞춰 집값이 폭등할 것을 예측하고, 그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과 시골자락의 집과 땅을 미리 사들이는 전략. 불법 독점과 투기 협잡 등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등골을 파 먹는 파렴치한 이들의 전형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또 한 명은 용기의 부인 소정(이연두 분)이다. 그녀는 애당초 보스의 여자친구였지만, 용기와 비밀리에 연인 관계였다. 이 둘 간의 사랑은 방식은 달라도 종대와 선혜처럼 자못 애처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건 선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이 둘의 비밀 연애를 선배 깡패가 봤고 용기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인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를 죽인 것이 큰 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렇지만 용기의 성격 상 언젠가 죽일 것이었기에, 사실 소정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영화의 결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감독의 의도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이 영화의 결점이 있다. 여자 캐릭터들은 말할 나위 없고 주연 급의 캐릭터들도 모두 다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영화의 스토리 상에 필요한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와중에는 캐릭터가 보이는 데, 끝나고 나면 아무 기억이 없다. 비단 등장인물들이 많이 죽기 때문 만은 아니다. 배우들을 가져다 쓰고 버린 듯한 느낌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스토리가 훌륭한가? 등장 인물들의 헌신적인 죽음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그런데 바로 이게 감독이 의도한 바인 것 같다. 결국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스토리를 봤을 때, 그 느낌을 더 잘 살려주었다. 즉, 배우들을 가져다 쓰고 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 연출한 의도는, 권력의 비열하고 간악한 유지를 위해 가차 없이 이용했다가는 어김없이 처리하고 마는 그 진짜 모습을 피부에 와 닿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강남 개발조차 그 권력이 이용한 것이다.


이 폭력과 욕망의 무간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죽어서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만약 살아남았다고 해도 더욱 더 고통스러운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지옥을 만들고 관장하는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 치고 박고 죽고 죽이면서 발생된 그 욕망의 덩어리가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를 통해서 말이다. 그것이 지금의 강남이고, 지금의 권력자들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상했다가 추락하고 죽고 죽일까


얼마 전에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놓고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일대 혈전을 벌였다. 예의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대기업 둘 간의 결투였다. 그 결과 예상 값의 3배가 넘는 돈인 10조 원 이상을 투자한 현대차그룹이 매입했다. 이후 주위의 땅값이 4년 전보다 6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뻥튀기도 이런 뻥튀기가 없다. 강남 1970에 이은 강남 2015라고 할 만 하다. 


여기엔 어떤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을까? 일차적으로는 대기업의 투자 대결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강남 부자를 위해 땅값을 올리려는 수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이상도 가능하리라. <강남 1970>에서 강남 개발 그 위에 진짜 목적이 대선 자금 확보에 있었듯이 말이다. 그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상했다가 추락하고 죽고 죽일까. 그 정점에선 누가 모든 수혜를 업고 그들만의 세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어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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