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 표지 ⓒ황금가지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출간된 때가 2012년이니까 4년 반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 있다. 일본의 일급 엔터테인먼트 소설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그 표지와 두께에 압도 당해, 무엇보다 '제노사이드'라는 단어에 압도 당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먼저 얼마 전 그의 데뷔작이자 역시 읽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로 압도 당해 읽지 못했던 <13계단>을 독파하고 이 작품으로 넘어 왔다. 명불허전. 


다카노 가즈아키는 '추리 소설가'로서 명성이 자자한대, <제노사이드>는 장르를 완전히 초월해 버리는 나아가 단일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지식의 한계까지 초월해 버린다. 치밀한 조사로 뒷받침되는 무궁무진한 자료들과 그에 뒤지지 않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지 않게 해주는 필력은 여전하다. 그의 팬이 되어버리기에 충분한 소설. 


'제노사이드'라고 하면 어떤 이유로 특정 종족이나 집단의 구성원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인류 사회가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를 뜻한다. 소설은 제목에 걸맞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명제를 다룬다. 그 한 가운데 있는 것인 '선과 악'이다. 여기서 악은 제노사이드가 아닐까 싶고, 선은 그에 맞서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인류에 위협되는 신인류 출현, 그를 둘러싼 믿기 힘든 이야기


소설은 서로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두 주인공, 특수부대 출신의 사설 경호업체 피고용인 미국인 '예거'와 약학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평범한 일본인 '겐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미국 대통령 '번즈'를 비롯한 미국 정부 수뇌부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들 사이엔 다름 아닌 '신인류'가 있다. 


아프리카의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즉 신인류가 출현해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됨은 물론 전 인류 멸망의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번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하며 재빨리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일에 착수한다. 예거를 비롯한 특집 정예 요원 4명을 훈련시켜 현장에 급파한 것. 극비리에, 돈은 두둑히. 아들이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예거는 앞뒤 볼 것 없이 뛰어든다. 


한편, 석연치 않게 급작스레 아버지를 잃은 겐토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알 수 없는, 알기도 힘든 연구에 착수한다. 미심쩍고 어이 없지만 모든 걸 알고 예견한 듯한 유언이 마음에 걸려 진행하게 된다. 먼저 이 연구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살아생전 연구와 연결해보니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검색된 건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질환. 예상 밖의 결과에 앞날이 까마득하다. 


아프리카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되는 신인류, 미국 및 인류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는 신인류를 제거하려는 미국 정부,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에 걸려 투병하는 아들을 둔 예거의 신인류 제거 임무,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유언에 따라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 치료약 개발하게 된 겐토. 이어질듯 엇갈리는 이들을 스무스하게 이어주는 건 작가의 몫일 것이다. 그걸 감탄하면서 재미있게 읽어주는 건 독자의 몫이고. 


엔터테인먼트+사회고발성 메시지+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조사


데뷔작 <13계단>에서 보여주었던 '엔터테인먼트+사회고발성 메시지+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조사에 의한 전문적 식견'의 장점이 <제노사이드>에서 폭발한 느낌이다. 소설은 첫장을 열고 나서 '본격적 월드와이드 블록버스터'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 해도 정말 재밌는 오락 한 판 내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본문 415쪽)


정곡을 찌르다 못해 진리에 가까운 이 대사 하나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단순히 사회고발성 메시지를 훨씬 넘어서는 세상을 향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과 대답들이 등장인물들을 거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작가가 끼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이 흐름에 방해는 할지언정 소설 자체를 훼손하진 못한다. 이 방대함에 모든 걸 끌어안고 가는 것 같다. 


방대함에는 자료와 조사에 따른 전문적 식견이 큰 몫을 차지한다. 작가는 약학, 밀리터리, 국제정세, 정치, 인류, 역사, 철학, 추격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항들을 거침 없이 풀어놓는다.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 그걸 상쇄시킬 만한 필력과 시나리오를 위해 자료 조사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하튼 그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사실 이해하지 않아도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은 겐토의 연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연구는 이 소설을 지탱하는 '선과 악'에서 '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연구 자체가 아닌 연구를 하는 마음가짐. 반면 15년 전의 미국 부시 정부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번즈 정부의 파렴치한 짓은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걸 말하고 전하고자 하는 모든 걸 전한 작가, 다양한 재료들을 재고 재단하고 붙이고 합치는 능력은 신이 내린듯. 개인적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걸 보고 싶지만, 영화로는 절대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할 것 같다. 그나마 소설이기에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걸 이만큼이나 뽑아서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은 '선'에 있지 않고, '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게 아닐까.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일찍이 지구상에 있던 다른 종류의 인류, 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네." (본문 472쪽)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보여질 수도 있는 발언. 하지만 충분히 타당한 생각이자 가설이다. 최소한 그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인 '제노사이드'는 인간만이 저지르는 행위가 아닌가. 인간이 악마의 탈을 쓰고 하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노사이드'이겠지만, 또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행위가 '제노사이드'이기도 하다. 인간은 악한 존재인가. 번즈가 하려는 행위, 즉 신인류를 싹부터 제거해버리려는 행위는, 비록 그 대상이 '1'에 불과하지만 종족 자체를 말살해버리려는 것이기에 '제노사이드'이다. 어찌 이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의 정의일 수 있을까. 소름이 끼치지만 부정하기도 힘들다.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소수, 그들은 극비리에 벌이려는 이 제노사이드를 저지할 수 있을까? 무슨 힘으로?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선'에 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노사이드'를 일으키는 이가 정치적인 것과는 다르게, 그걸 저지하려는 이들은 비록 고민은 할지언정 순수한 마음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게 맞는 것 같아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선'은 '선'에 있지 않고, '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로 절대 재단할 수 없다. 다만 어디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제노사이드'라는 행위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선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행위 이면에 무수히 많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요소들이 뒤엉켜 있음은 물론이겠다. 그 길로 계속 나가야함도 물론이다. 선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길로 계속 가려고 하되 숙고와 질문과 돌아봄을 멈추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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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나는 전설이다> 표지 ⓒ황금가지



지난 2012년 수많은 키워드들 중에서도, 전 세계를 휩쓴 것은 '종말'이었다. 고대 마야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서 끝나는 것을 보고, 종말론자들이 지구의 종말을 주장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2015년이고 지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종말이 실현되었다면? 그래서 모두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면? 


이런 상상력을 두고 펼쳐지는 소설은 많이 나와 있다. 그 중에서도 원조 격이 있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 1954년에 출간되어 60년 여의 역사를 가진 이 소설은, 아직까지도 SF 공포 소설의 전설로 추앙 받고 있다. 그런데 SF 공포라니? 


거기엔 이유가 있다. 이 소설은 흡혈 좀비 소설인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오락 소설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소설은 정상과 비정상, 신화와 현실, 존재가치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나 혼자 살아남았지만, 나 아닌 다른 '종족'이 존재한다. 그게 흡혈 좀비인데, 어쨌건 소설 속 주인공이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정상'적인 존재는 나 하나 뿐이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소설 <나는 전설이다>


2007년 12월에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영화 <지상최후의 남자>(1964), <오메가맨>(1971)에 이어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원작으로 했다. 극 중 주인공은 로버트 네빌로, 원작과 같았다. 과학자라는 설정은 달랐지만. 핵전쟁으로 전 인류가 멸망하고, 어쩌다보니 네빌 혼자만 살아남는다. 아마도 특수한 면역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추측하면서.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있다. 흡혈 좀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개'라고 생각한다. 극 중에서는 애초에 개도 같이 살아남는다. 나중에 그 개가 자신을 위해 흡혈 좀비에게 물려 좀비화되어 가는데, 네빌은 어쩔 수 없이 개를 죽인다.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어진 네빌은 막무가내로 흡혈 좀비에게 덤비고, 죽을 고비에서 알 수 없는 이에게 구출이 된다는 전개이다. 


반면에 소설에서는 네빌 혼자이다. 미칠 듯한 고독과 외로움, 분노와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의 모습을 절절히 그려내며, 영화와 완전히 다른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히키코모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러던 중 '정상'적이라고 생각이 되는 개를 만나게 되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뿜어낸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감동의 쓰나미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만나게 되는 '정상'적인 인간 여자의 설정은 비슷하다. 단지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의 고리가 완전히 다를 뿐. 영화에서 네빌은 '정상'적인 인간을 만났다는 기쁨을 만끽하고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토리 라인으로 끌고 가면서, 그가 만들고 있던 백신을 흡혈 좀비가 코앞까지 쳐들어오는 기막힌 타이밍에 완성한다. 그는 백신을 그 여자에게 주어 탈출시키고 자신은 흡혈 좀비와 폭사한다. 그 여자에게는 아이가 있었는데, 같이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로 간다. 네빌은 그들에게 백신을 주고 앞날을 준 '영웅'이자 '전설'이 된 것이다. 


반면 소설은 어떤가? 인간 여자로 인해 충격적인 반전에 점점 다가간다. 인간 여자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주인공 로버트 네빌의 내적 갈등은 반전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그동안 그만의 공간이었던 집안에 이질적인 존재가 침입해 평화를 깨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느낀다. 이에 네빌은 그녀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그녀를 검사하려 하는데... 그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종말과 시작 사이에서 전설이 되다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어쨌든 전설이 된다. 하지만 결코 영화에서처럼 '영웅'의 이미지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구시대 '신화'와 '전설'에서의 전설을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그녀의 정체이다. 그녀는 일종의 '신인류'였던 것이다. 그 종족은 변종 흡혈귀로, 갑자기 등장해 흡혈 좀비를 죽이고 이 세상 '유일'의 생존자였던 로버트 네빌도 죽여 버린다. 


소설에서 '전설'의 의미는 여기서 보여 진다. 로버트 네빌이 낮에 돌아다니며 흡혈 좀비 때문에 밤에는 집구석에 박혀 있을 때 그는, 많은 연구를 통해 흡혈 좀비가 결코 '전설'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며 극도의 고독과 외로움으로, 차라리 저 '더럽고' '무식하고' '괴물 같은' 흡혈 좀비의 무리에 끼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고귀한 존재가 어떻게 저 더러운 괴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결코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네빌이 여자에 계략에 의해 잡혀간 '신인류'의 도시. 그곳에서는 어떨까? 네빌은 과연 '고귀한 존재'일까? 아니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깨닫는다. 자신이 속했던 '인류'의 종말과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신인류'의 시작을 보면서. 자신이야말로 이들에게 '이방인'이자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신화에나 나올 법한 '전설'적인 존재라는 것을. 


수백만 년 전, 기후 변화나 운석 충돌로 한 인류가 종말을 기하고 새로운 인류가 나왔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가 아니고 말이다. 그때 종말을 기했던 인류의 마지막 남은 한 존재가, 수많은 신인류의 모습을 보고 느꼈을 감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본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그러한 깨달음은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과 오버랩 되었다. 경외, 두려움, 형언할 수 없는 공포. 그렇다. 그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천벌이고 천형이었다. 자신들이 끼고 살아가야 하는 질병보다도 더 흉측한 존재였던 것이다.


로버트 네빌은 이 땅의 신인류를 내다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파괴돼야 할 아나테마(가톨릭에서의 저주)이자 검은 공포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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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갈라파고스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되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자 문자서비스는 무료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어 스마트폰이 출시되어 이 역시 일반화되자 이번에는 인터넷이 무료화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신조어와 함께 신인류(?)가 탄생한다. 이른바 '엄지족'이다. 한 개 혹은 두 개의 엄지손가락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대를 총칭하는 이 단어는, 사실상 거의 전 세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현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구가 약 3700만 명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2013년 12월 기준, 미래창조과학부)

 

그렇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인구 중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은 제대로된 사고를 할 수 있을 때부터 '인터넷'을 수족처럼 여긴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전의 세대들은 인터넷을 따로 배우고 익혀야 했다. 익히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로 인해 변화한 세상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전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엄지세대'


프랑스의 노 철학자 미셸 세르가 지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갈라파고스)는 바로 이런 엄지세대들을 파헤치며 그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에 따르면, 이들 세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이전까지와의 세상과 '다를'뿐이지 결코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 세대는 그들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요컨대 우리의 아이들, 즉 신인류는 가상 세계에서 산다. 인지과학에 따르면 우리가 웹상에서 서핑할 때, 엄지를 사용해서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위키피디아나 페이스북을 훑어볼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는 책, 칠판 또는 공책 같은 것을 사용할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와는 다르다고 한다... 이들은 그들의 조상인 우리 기성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인식하지 않을뿐더러, 이들이 정보를 취합하고 종합하는 방식도 우리가 늘 사용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이들의 머리는 우리의 머리와 다르다." (본문 중에서)

 

요즘 곳곳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스마트폰 때문에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건강을 해친다"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등등. 이런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가 하면 반대되는 시선도 있다. "스마트폰 덕분에 편리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 "스마트폰을 잘만 사용하면 부정적인 게 한 개도 없다" 등등.

 

이런 긍정과 부정적인 시선은 극단적이라고 하기보다 서로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쪽에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더욱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려 하고, 또 스마트폰을 이용해 건강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도움을 주려 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적당히 잘 사용하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당사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저자는 이 엄지세대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정보수집에 뛰어나며, 상상력에 한계가 없고, 열린 사고를 지니고 있다. 또한 굉장히 능동적이며, 민주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인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반대로 신인류가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하겠다. 그들은 굉장히 능동적인 존재들이니까.

 

흔히 작금의 IT혁명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제3의 혁명이라 칭한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피상적이고 더욱이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진행형 혁명'의 시작에 불과한 단계를 설정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IT혁명보다 지식혁명이 맞는 말이고 이는 지식계에서 문자의 발명 그리고 인쇄의 발명과 버금가는 사건이다. 아니, 그런 혁명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이제는 지식을 암기하여 머리를 꽉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또 다른 종류의 머리를 가지고 다니니까 말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독특한 일화 하나를 들려준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로마제국 시대 때 지금의 파리 지역인 루테니아의 초대 주교 성 드니는 참수형을 받게 된다. 그는 본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참수형을 받게 될 예정이었지만 그에 못미쳐 참수를 당한다. 이에 드니 주교는 잘려나간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 들고 언덕 위로 올라가 샘물에서 머리를 씻은 다음 현재 생 드니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곳까지 걸어 올라갔다.

 

"머리가 잘려나간 엄지세대는 가득차기보다 제대로 구조화되었다는 과거의 머리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지식, 그러니까 바로 여기, 눈앞에 놓인 이 상자 속에 결집되어 물체화된 지식은 부팅되기만을 기다린다.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몇 번이고 수정되어 나름대로 정확성을 확보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없으니 떨어져나간 목이 남긴 빈자리를 슬며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본문 중에서)


엄청난 속도로 변화는 이 세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저자는 성 드니 주교가 집어 들고 올라간 머리를 두고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PC에 대조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언제든지 그 지식을 수렴할 수 있다. 이는 너무나도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를 만든 사람도 이를 정말 잘 사용하는 사람도 그 엄청난 무엇을 온전히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대는 이를 점점 잘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이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변화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이 소용돌이를 주도한 젊은 엄지세대를 서포트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사실 노 철학자가 비슷한 세대의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경고이자 부탁의 메시지들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기존의 세대론 관련 책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것은, 신인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조롱없는 이해 그리고 정감어린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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