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명실공히 유아인의 한 해라고 부를 만합니다.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분야인 정치, 스포츠,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 책 등에서 단적으로 제일 막강한 파워를 보이는 것이 현재로선 영화라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름값으로만 본다면 손흥민이 그를 넘어설 수도 있겠지만, 수치상으로는 유아인이 우위에 설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2015년 내로만 본다면요. 





그렇게 볼 때(영화에 한정해서 볼 때, 그렇지만 영화의 파워를 생각하면 사실상 전 분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2013년은 단연코 송강호의 한 해였습니다. 그해 8월, 9월, 12월에 개봉했던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이 900만 이상을 동원했죠. 그 중에 <변호인>은 1100만 명을 돌파했죠. 그 전으로 올라가 볼까요? 2012년은 류승룡의 한 해였죠. 2011년 <최종병기 활>을 시작으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그리고 2013년 <7번방의 선물>까지 홈런을 날립니다. 2014년에도 활약은 계속되었고요. 2009년은 이병헌의 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지 아이 조>와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로 충분해 보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오달수는 매 해마다 그의 한 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2015년부터 역순으로 <베테랑> <암살> <조선명탐정 2> <국제시장> <슬로우 비디오> <해적> <변호인> <파파로티> <7번방의 선물>까지 2013년과 2014년 그리고 2015년 영화계를 지배했습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영화에서 주연 또는 주연에 준하는 조연으로 열연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도둑들> <조선명탐정> <괴물>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에서 10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 15편 중 그가 7편에 출연했죠. 괴물입니다. 


유아인은 2003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합니다. 그 드라마 참 오래했죠. 2005년까지요. 그리고 2007년에 영화 2 작품을 찍으며 얼굴을 많이 알립니다. 이후 그저 그런 행보를 보이다가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2011년 영화 <완득이>로 전성기급 시절을 보내죠. 하지만 2012년 드라마 <패션왕>의 폭망과 2013년의 영화 <깡철이>의 그저 그런 평가로 다시 평범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2014년 드라마 <밀회>로 다시금 눈도장을 확실히 찍더니, 2015년을 드디어 완전히 그의 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유아인은 전성기급 시절을 보낸 직후 2012년 경에 김수현, 이승기, 송중기와 함께 4대 천왕이라 불린 적이 있습니다. 20대 꽃미남 중에서도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이들을 일컬어 그렇게 불렀죠. 지금은 단연 원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그동안 스타성은 이미 충분했지만 스타들에게 결여 되어 있는 연기력에서는 합격점을 받기 힘들었었죠. 그걸 2015년에 완벽히 상쇄 시킨 것이죠. 





도대체 2015년에 유아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시작은 영화 <베테랑>입니다. 이 영화에서 '조태호'라는 그야말로 금수저 양아치를 제대로 연기했습니다. 일종의 금수저 신드롬까지 다시 양산하게 했죠. 사실 먼저 개봉했던 <암살>에게 더 많은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는데, <베테랑>이 영화적 재미를 한껏 내세우며 관객수에서 앞질러 버렸습니다. 거기에 <베테랑>은 13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급 행보를 보였죠. 유아인은 거기에 크게 한 몫 했습니다. 함께 한 황정민 등에 뒤지지 않죠. 


<베테랑>의 인기가 아직 식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유아인의 영화가 개봉합니다. 1000만 영화 두 개를 가지고 있는 송강호와 함께 한 <사도>.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사도세자를 연기합니다. 작년 이맘때 SBS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드라마 <비밀의 문>이 폭망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을 텐데, 영화의 행보는 괜찮아 보입니다. 1000만 동원은 조금 어려울 듯하지만, 최근 사극의 연속 폭망의 모습을 비춰볼 때 가히 좋은 행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또한 유아인은 송강호에 뒤지지 않는 믿고 보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황정민, 송강호 등의 대배우와 함께 하면, 자연스레 꽃미남 출신 배우들은 들러리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투입된 이미지이죠. 유아인도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 되어 있었죠. 하지만 정녕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베테랑> <사도>에서 전혀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을 지배하고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 그치면 조금 섭하겠죠? 그는 내친김에 마침표를 찍을 작정인 것 같습니다. 10월 5일 시작되는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 역을 맡았죠. 함께 한 이들은 김명민, 신세경, 변요한, 윤균상, 천호진 등입니다. 2011년에 대박을 쳤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라고 하는데, 작년 대 참패 했던 <비밀의 문>의 치욕을 씻고자 벼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김명민 정말 좋아하는데 반갑기도 하고요.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MBC <화려한 유혹>, SBS <발칙하게 고고>가 시작되는데요. 이 중에서 <화려한 유혹>이 <육룡이 나르샤>와 같이 50부작이라니 진검 승부네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육룡이 나르샤>가 기본만 해줘도 상대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육룡이 나르샤>에 믿음이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극본에 있는데요. 김영현 작가는 <뿌리깊은 나무> <선덕여왕> <대장금> 등의 작가로 사극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같이 하는 박상연 작가는 <뿌리깊은 나무> <선덕여왕>을 김영현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이 두 작가는 이 밖에도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하며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 바 있죠. 





올해로 우리나라 나이 30세가 된 유아인. 남자는 30세부터 라는 속설을 정확히 그리고 완벽히 실행에 옮겼네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로 내년 중반까지 계속 할 것 같은데, 그 이후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그의 진가는 그 이후가 되겠죠. 반짝 스타로 지나가느냐, 꾸준한 모습을 보이느냐. 당연히 꾸준한 모습을 기대합니다. 그게 그를 위해서 이기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니까요. 잘해보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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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JYJ 공화국> 


ⓒ엑스오북스

고백하건데, 군대 시절 난 동방신기의 팬이었다. 지금 군인들이 들으면 구역질을 내며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하필이면 군복무 중이었던 2005~2006년 당시는 걸그룹의 공백기였던 것이다. SES는 2002년에 이미 해체되었고, 핑클 역시 2002년 이후 공식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베이비복스는 해체수순에 있다가 2006년에 해체된다. 그리고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2007년에야 데뷔를 했다. 확실히 저주받은 군번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TV에 나오는 건 죄다 남자들 뿐이었고, 불쌍한 우리 군인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걸그룹을 바라보는 대신에 보이그룹을 자신과 동일시 했었다. 또 한 번 고백하건데 나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였다. 그리고 어느 선임은 최강 창민이었으며, 또 다른 어느 선임은 믹키 유천이었다...


최고에 자리에 있던 동방신기에게 무슨 일이?


동방신기는 2004년 SM 소속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단번에 최강 아이돌 반열에 올라섰다. 그동안 어수선했던 아이돌계를 싹 정리하면서, 제2막을 열었던 것이다. 2005~2006년 당시에는 연말 시상식에서 각각 대상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데뷔 2, 3년차(정규 앨범 2, 3집)에 이미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인기는 이미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5년을 넘게 달려온 동방신기는 2009년 7월 31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부터 금이 가고 있었고 그때 완전히 조각나 버렸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김재중(영웅 재중), 박유천(믹키 유천), 김준수(시아 준수)가 SM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즉,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당시 이는 연예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정도의 대형 스타의 사건이라면, 더욱 오랫동안 그리고 자세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거의 듣거나 보지 못했다. 다만 몇 년이 흐른 뒤에 보니, 잘 마무리 되어 김재중과 박유천과 김준수는 JYJ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다른 두 명인 정윤호(유노윤호)와 심창민(최강창민)은 2인 체제의 동방신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2인 체제 동방신기는 TV 가요프로그램에 계속 나오는데 반해, JYJ는 보지 못했다. 대신 드라마, 영화, 뮤지컬, 콘서트 등으로 개인적 활동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속시원하게 들려주는 JYJ와 팬들 이야기


<JYJ 공화국>(엑스오북스)은 이런 궁금증을 팬의 입장에서 아주 속시원하게 들려주고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JYJ 팬의 입장에서 말이다. 과연 2009년 7월 31일 이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제목의 '공화국'은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 두 질문을 두 축으로 이끌어 가면서 JYJ와 팬덤 문화(나아가 대중 문화)를 잘 엮어간다. 


2009년 이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는 매우 명백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JYJ는 지금까지도 TV에서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각각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한동안 활동을 했었는데, 그마저도 일본 유통사 에이벡스의 석연찮은 결정으로 방송 출연을 못하게 되었다. 결국 JYJ는 미국으로 진출했고, 월드 투어를 감행하며 5인 체제의 동방신기 때보다 더욱 확고한 팬덤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실 중요한 건 '팬'이다. 그리고 저자가 집중하고 있는 면도 '팬'이다. 흔히 아이돌의 팬이라고 하면 굉장히 차갑고 싸늘한 시선으로 보곤 한다. 그들은 매우 광적이며 맹목적이고 악착같으며 할 일 없이 연예인이나 쫓아다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가 본 JYJ의 팬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생팬이나 악질적인 팬들과 건전한 대중 문화를 선도하는 팬층은 서로 구분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JYJ 팬들은 JYJ가 SM과의 법적소송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수많은 도움을 주었다. 탄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하고, 손수 고소고발을 하며 직접 진술을 하기까지 했다. 이뿐이랴? 재능기부와 금액 모음을 통해 신문, 버스, 지하철 등에 광고를 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 모습이 진정한 시민의 모습이라고 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를 볼 권리를 빼앗긴 소비자로써 합당한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선 당시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단다. 당시 박원순 시장도 이에 동참했다. 기부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의 이름을 빌어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그들의 모습은, 기존의 '팬'들과는 엄연히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팬의 모습이 아닐까. 


이들은 또한 팬카페, 모임 등이 통합된 팬덤 내에서 매우 합리적이고 자생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든 사항을 철두철미한 토론과 투표로 결정하고, 모두의 이름으로 행동을 한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JYJ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자유로운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위계질서 없는 평등한 활동을 하며, 다양한 활동으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JYJ 팬들의 모습, 그러나 기획사는?


이 책은 JYJ의 사건으로 시작해, 팬덤의 속사정을 보여주고,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비판하며, 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대중문화의 한 축이 '팬'은 이미 충분히 성숙했다. '스타'도 보여지는 그 성숙미는 편차가 있지만 충분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다. 


JYJ 사태에서 팬들이 보여준 행동은, 대중문화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기획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스타에 일방적으로 이끌려다니는 지금까지의 행태와는 엄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는 JYJ도 마찬가지이다. 힘든 여정이 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들이지만, 되풀이되는 관행을 끊어야 된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기획제작자 내지 배급사는 여전히 돈과 기득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문화는 오래가지도 못할 뿐더러,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저급하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함께 미래를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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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축구]


ⓒ연합뉴스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 참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겼다. 매일같이 축구를 하며, 어떻게하면 더 잘할 수 있을 연구하곤 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가족이 둘러앉아 응원했다. 축구를 못하게 되면 울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리라. 그렇게 어린 시절을 축구와 함께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도 축구는 계속 했다. 다만 예전같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어릴 때의 '재미'를 위한 축구가 점차 퇴색되어 갔기 때문이리라. 머리가 커지다보니, 축구를 함에 있어 어떤 위계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축구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과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 내지 박탈감이었다. 즉,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축구를 마지막으로 하게 된 군대에서까지 계속된다. 


이후 나의 축구를 향한 관심은 다르게 표출된다. play(경기)에서 watch(TV)가 되고 다시 play(게임)가 되고 지금은 그냥 watch(방관)이 되었다. 직접 경기에 출전해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축구를 하다가,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직접하는 건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는 것마져 지쳐서, 축구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몸은 굳어져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어디 가서 축구 좀 아는 사람 정도의 지식만을 가진 채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단적인 예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을 할 때마다 전 세계 누적 시청수가 몇 백억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뿐이랴? 유럽선수권대회와 유럽 4대 리그 경기들도 이와 버금가는 인기를 구사한다. 당연히 그곳에서 오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축구는 더이상 '사람들에 의해서' 굴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축구'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름 추측, 연구, 조사를 해보았다. 이 가운데 추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자세하고 학문적인 해석을 원하신다면 따로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게 좋은 듯.)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영국은 또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가? 그렇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와 축구가 시작된 시기는 엇비슷하다. 본래 옛날부터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나 경기가 있어왔지만, 거기에 정형화된 규칙이 적용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에 하릴 없이 노닐다가 공을 발견한다. 그렇게 공놀이를 하게 된다. 이를 본 관리자는 자신이 나서서 규칙을 만들기도 하고, 심판을 보기도 한다. 분별없이 쉬는 시간을 허비하는 노동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여하튼, 걔 중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잘하진 못해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그들은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다. 초창기에 이들은 노동자 생활과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 전역의 산업혁명 중심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지금의 맨체스터, 리버풀 등은 산업혁명 당시의 중심지였다. 


산업혁명의 열기는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축구의 열기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점차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어가자, 돈이 몰리고 전업 축구 선수가 출현하고 스타가 탄생한다. 동호회 모임 대회는 도시 대항전이 되고 전국 대회가 되고 급기야는 전 세계 선수권 대회가 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2명의 몸좋은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한다. 그 크기에 압도되고,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감동한다. 그리고 압도되고 감동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덩달아 신난다. 비로소 축구는 축제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축구의 본질은 사라진다. 


축구는 사람들 손에서 시작했지만, 곧 그 손을 떠나 세상을 횡행한다. 소설가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 캐릭터는 이미 소설가의 손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지만 대중에게 내놓는 순간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축구는 그렇게 사람들 손에서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제 축구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돈으로 지배하고, 축구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로 지배하고, 결국은 축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적 지배. 


사실 축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축구를 피해갈 수 없다.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물질적 이득을 주겠고,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이득을 준다. 그리고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은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90% 이상 추측에 의한 해석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올바른 해석을 알고 계신 분께서는, 가차없는 해체와 비판, 비난, 비평을 해주세요. 


언젠가는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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