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표지 ⓒ더숲



리처드 파인만, 아인슈타인의 뒤를 이은 20세기 최고의 스타 물리학자이자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사람. 1986년 우주왕복선위원회 위원으로 일할 때 그 유명한 미국 우주왕복선 첼린저 호의 폭발 사고 원인을 풀어내며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바로 그 파인만이다. 일찍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원자 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고, 1965년엔 노벨물리학상을 타기도 했다.  


서른도 되기 전에 코넬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파인만은 1950년부터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일명 '칼텍'에서 계속 재직한다. 1981년 가을, 한 젊은 과학도가 연구원으로 부임해 파인만 연구실 근처로 온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더숲)를 비롯해 많은 베스트셀러 과학 교양서를 낸 칼텍 교수 레너드 믈로디노프였다. 다시 젊디 젊었을 그가 명성이 자자한 박사 논문으로 칼텍에 스카웃된 것이었다. 


우린 믈로디노프의 젊은 시절 회상을 기반으로 한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를 통해 리처드 파인만의 특별한 말년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196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과 리처드 파인만의 은근한 경쟁과 서로를 향한 존경의 모습, '모든 것의 이론' 후보 중 하나이자 현재 가장 중요한 이론인 끈 이론의 초기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길 잃은 젊은 물리학도의 모습을 통해 보편적 삶과 길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겠다. 저자는 파인만에게 길을 묻고 부단한 고민 끝에 그 길을 간다. 


'과연 내가 이곳에 맞는 사람일까' 하는 고민은 모든 이들이 한다. 누군가는 '이런 누추한 곳'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고, 누군가는 '이런 대단한 곳'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다. 나는 지극히 후자의 입장인데, 가끔은 전자처럼 생각할 때도 있다. 정답은 끊임없이 양자를 옮겨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박사논문이 몇몇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눈길을 끈 '덕분에' 칼텍이라는 위대한 곳에 특별연구원 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입장이다. '내가 이런 대단한 곳에 맞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 했고, 그때마다 파인만을 찾아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나의 아이디어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과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창조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는 파인만으로부터 과학과 과학자의 본질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고, 그 중요한 것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파인만 덕분에 새로운 각도로 삶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의 길을 찾았다는 뜻일 테다. 우리가 이 책을 보며 얻게 될 것도, 얻어야 하는 것도 과학과 과학자의 본질보다는 그것이겠다.


대단하지 않은 말들, 거기서 얻는 대단한 깨달음


전설적인 인물인 파인만의 전설과 부합하지 못하는 첫인상처럼, 저자 못지 않게 우리 또한 파인만의 말들에서 어떤 크나큰 깨달음을 얻으려 해선 안 되겠다. 배울 게 많을 것 같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나 자신 말고는 다른 사람들한테 뭐가 좋은지 잘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파인만이다. 더불어 그는 지극히 당연하고 누구나 인지할 만한 이야기만을 건네준다. 물론 그 속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깨달음들이 떠다닌다. 


상대방의 진심을 얻기 위해선 자신부터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저자는 파인만에게 그 어떤 사심이 아닌 오직 길만을 찾기 위해 다가간다. 전설적인 존재와 어떻게든 친해져 그 유명세로 사익을 추구하려는 꼼수를 가졌다면 오래지 않아 더 이상 파인만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파인만은 저자를 가장 괴롭혔던 문제인 과학자의 자질에 대해 답한다. '보통 사람이 하는 일과 과학자가 하는 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파인만의 일련의 생각들은 길잃은 젊은 시절의 저자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을 보고 있는 모든 이에게 깊숙히 전달될 게 분명하다. 


파인만은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도 전해준다. '문제 푸는 건 간단한 거야. 모두 상상력과 끈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 라고 말이다. 저자는 이 생각을 받아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가정에 가정을 되풀이하고 어림에 어림을 되풀이해야 한다. 여기에 앞으로 나가는 능력, 직관을 따르는 능력,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믿어야 한다.' 


당연한 말들이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이런 당연한 말을 스스로를 돌아봐도 부끄럼 없이 하기까지 어떠한 역경을 뚫었을까 생각하면, 마냥 당연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재미 있는 일'과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는 다분히 자기계발적이고 그래서 오글거리기까지 한 파인만의 조언도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파인만에게 당연하게도 과학적으로 대답하는 저자, 거기에 다시 답하는 파인만 대답이 압권이다. 이는 저자가 가려하는 '파인만의 길'이고 파인만의 과학이다. 


"자네는 이 현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놓치고 있군.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일세."(본문 159쪽)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


저자는 어떤 삶을 살기로 결심했을까. 그가 걸어가기로 한 파인만의 길은 어떤 것일까.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인물인 리처드 파인만의 길은, 누가 보아도 성공한 길이었을 테니 일반적으로 유추하긴 쉽다. 성취를 하고, 남에게 감명을 주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리더가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길은 파인만의 길이 아니라 겔만의 길이라고 말한다. 


파인만의 길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계없이 나를 감동시킨 목표를 추구하며 내 인생의 한정된 시간을 쓰고, 삶에서 '아름다움'을 절대 놓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이다. 파인만의 길을 저자의 길로 치환하니, '하나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지 않고, 한 가지 직업에만 매달리지도 않는, 내부에 초첨을 맞춰 관습적인 또는 물질적인 맥락에서의 성공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는 삶'이 되었다. 


저자가 묻는 것 같다. 너는 어떤 길을 가고 싶으냐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면 나를 따라 파인만의 길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무시, 경멸감 어린 시선을 받을지 모르지만, 행복은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스승' 리처드 파인만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위대한 위인보다 '스승'에 힘을 실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거다. 그만큼 우리는 스승에 목 말라 있다. 시대의 진정한 스승은 점점 사라지고 스승을 자처하는 '짝퉁 스승'이 판친다. 


평생 애제자 한 명 남기지 않은, 일반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스승과는 가장 거리가 먼 파인만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을 엿볼 때, 스승은 제자가 만드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한편 진정한 스승은 진심어린 마음만을 전할 뿐 진심따윈 없는 기술을 전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으며, 파인만이라는 새로운 스승을 발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시대의 스승들은 많이 세상을 떠났다. 마음 둘 곳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이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는 내가 또는 내 또래의 누군가가 시대의 스승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해본다. 한 없이 부끄럽고 저어되지만, 누군가는 시대를 이끌며 다음 세대를 끌어올려야 하는 게 인간 사는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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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우리 안의 우주>초등학교 때까지 내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 당시 모든 초등학교에는 일주일에 두 시간씩 CA시간(특별활동 또는 클럽활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나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과학부에서 활동하였다. 굳이 정답을 도출하려고 하지 않았고, 틀에 짜인 관찰이나 실험을 하지 않았다. 

먼저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이고, 학생들은 일단 똑같이 따라 하며 같은 결과를 도출한다. 그런 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관찰과 실험이 시작되었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런 과학 활동은 더이상 확대될 수 없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나는 과학 활동을 일상생활에까지 확대해 뭔가 실용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과학이 좋아서 시작했던 과학부 클럽 활동은 "과학은 과학실에서"라는 명제만 확고히 심어준 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과학은 완전히 논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실험과 관찰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암기해야만 하는, 아주 아주 지루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내 머리에서 과학은 잊혔지만, 과학의 역사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열역학 법칙을 달달 외우는 대신, 역사적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알게 되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고, 뉴턴이 지구의 중력을 발견했고,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고...

저자의 독특한 서술

<우리 안의 우주> 표지 ⓒ 시공사

세계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 닉 투록이 쓴 <우리 안의 우주>(시공사)는 오랜만에 과학의 흥미를 되살려 주었다. 물리학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개괄하면서,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을 버무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저자가 글을 풀어가는 서술 방식이다. 저자는 단순 명료하게 물리학의 역사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기본적인 물리 이야기 위에 자신의 이야기와 예술, 문학, 영화 등의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버무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뉴턴의 물리법칙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들의 얘기를 꺼낸다. 이후 학교에 들어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각종 과학 활동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 점점 수학과 물리학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달 착륙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그 순간에 매료되었다. 그를 더욱 매료시킨 장면을 옮겨본다. 조금 길다. 

"달 착륙만큼이나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로부터 불과 1년 후에 있었던 아폴로 13호의 드라마였다. 집에서 32만 킬로미터 떨어진 깊은 우주공간에서 커다란 폭발음을 듣는 상상을 한 번 해보라.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두 개의 주요 산소탱크 중 하나가 폭발하여 소중한 산소가 두 시간 동안 우주공간으로 흘러나갔다. 세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하나밖에 없는 구명정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지구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전혀 없는 작은 달 탐사 캡슐이었다. 놀라운 드라마였다. 매일 상황이 TV에 방송되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저 비행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사의 기술진들은 환상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달의 중력을 이용하여 그들을 끌어당긴 다음 작은 구명정을 달의 반대편으로 보냈다가 다시 지구를 향해 던지는 슬링 샷을 사용한 것이다. 며칠 후 우주비행사들이 탄 작고 뜨거운 깡통이 태평양으로 쏜살같이 떨어졌다. 그곳에서 건져진 우주비행사들은 놀랍게도 TV 속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척하고, 면도도 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다. 모두 살아 있었다. 완벽한 마법이었다."(본문 속에서)

이 비행경로는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방정식을 이용하여 계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며 뉴턴의 물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며 뉴턴의 이야기는 현실과 이어지고, 또 다른 과학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겠지만, 요즘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 '빅 히스토리'의 물리학 부분인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저자의 서술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서술은 나를 매료시켰다. 

과학과 사회, 그리고 인간

저자는 과학이 순전히 인간에 대한 것이고, 과학은 사람이 하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이 이루고 있는 사회는 과학이 이루어 낸 성과에 고마워해야 하고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과학도 자신들이 왜 과학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과학은 인간과 사회를 위해 과학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모든 인간이 인지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은 과학실에서"라는 명제는 "과학은 우주에서"라고 바뀌어야 마땅하다. 

저자는 신 르네상스를 설파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 따르면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열쇠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에 있어서 국지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한 발자국 떨어져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려 할 때, 비로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의 근원인 우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우리 인간은 고대부터 그런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과학사에서 혁명의 의미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미신과 교조적인 믿음, 그리고 높은 권위를 밀어내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전자와 광자에 대한 제5차 솔베이 국제 콘퍼런스를 통해 우주를 거대한 기계로 보던 고전 물리학자들의 관점은 완전히 뒤집혔고 훨씬 더 직관적이고 덜 익숙한 모습으로 바뀐다. 이것은 아마도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불편한 콘퍼런스였을 거라고 말한다. 기존의 부정과 새로운 출발 사이에 있었기 때문일까. 모든 시선은 그들에게로 쏠릴 것이고, 그들은 완전한 타깃이 되어 그들 또한 언젠가 반드시 부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류학적인 혁명들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단절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대의 발견은 후대의 발견에 의해 부정되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제5차 솔베이 국제 콘퍼런스가 있은 지 어언 85여 년이 흘렀고, 언젠가는 그들의 발견은 확인되고 부정될 것이 분명하다. 아니, 부정되어야 마땅하다. 

과학사에서 혁명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면서 일어나지만,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벽돌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그 위에 벽돌을 얹는 것이지, 벽돌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벽돌을 놓지 않는다. 다만 시멘트를 바름으로써 기존의 흔적은 지우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품은 우주

저자는 고향이 아프리카라고 한다. 그는 물리학의 이론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을 어떻게 과학의 세계로 안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그는 아프리카에 연구소를 만들고 아프리카의 수재들을 교육시켰다. 선입관과 차별을 극복하는 것 또한 우리가 품은 우주의 한 방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이었는데, 본래 그들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선입관과 차별을 극복하였다. 저자는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같은 일종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많은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우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우리는 우주를 품고 있다. 하늘에 있는 우주를 비롯해, 다른 의미로의 우주들도 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굳이 인지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과학자들도 굳이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의 소통 없이 과학은 일방적으로 우리 생활 속으로 흘러들어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사회가 도래했다. 우리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과학기술의 성장은 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우리가 우주를 품었다는 사실을 빨리 인지하고 지금이라도 우주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학과 사회(인간)는 서로 연결해 더욱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국지적이고 단기적인 시선을 뜻함)을 보지 말고 우주(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선을 뜻함)를 보라는 것이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만 세계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현재야말로 최고의 기회다. 


"오마이뉴스" 2013.6.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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