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멜 깁슨의 <핵소 고지>


10년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멜 깁슨. <핵소 고지>는 상타려고 만든 영화이자, 그의 영화관이 집약되어 있는 영화다. ⓒ판씨네마



멜 깁슨이 10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손꼽으며 기다리는 정도는 아니나 일정 정도 이상의 기대는 하는 감독이다. 특히 이번 작품 <핵소 고지>는 그의 전작들이 가졌던 장점들만 모아놨다는 평을 듣는 전쟁영화인 바, 기대가 더 높아졌다는 걸 인정한다. 더불어 주연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가 스파이더맨 이미지가 굳혀질 것 같을 때 선택한 두 영화(<사일런스> <핵소 고지>) 중 하나이기에 더 관심이 갔다. 


멜 깁슨의 행보는 특이하고 영리하다. 1980~90년대 <매드 맥스> <리썰 웨폰> 시리즈 등으로 명성을 떨치고 많은 돈을 모으더니 돌연 연출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했다. 1993년에 데뷔해 25년 가까이 5편을 연출한 된 베테랑 감독이기도 한데, 그동안 많은 논란을 뿌리면서도 탁월한 리얼리즘 액션과 고민하는 개인 심리 그리고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메시지 전달은 변치 않았다. 


어렸을 때 멜 깁슨이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당시에는 멜 깁슨이 연출과 감독 모두를 맡은 사실을 알 수 없었다)를 보고 상당히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특히 장활한 연설 끝에 '프리덤!'을 외치며 엄청난 포스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달려가는 모습 말이다. 이번에도 이성을 잠식시키는 감성적인 명장면을 마음을 흐트러놓을까?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의 종지부


멜 깁슨이 그동안 만든 영화들에는 공통적으로 신념, 종교, 리얼리즘이 깔려 있었다. 이번 영화에 모조리 때려부었다. ⓒ판씨네마



어린 시절 있었던 일련의 일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종교적인 이유로(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데스몬드 토마스 도스(앤드류 가필드 분)는 비폭력주의자가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도스는 또래들도 다 입대하고 할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자원입대 한다. 누구보다 체력이 좋은 그, 하지만 군인이라면 절대적인 '집총'을 '거부'한다. 개인의 절대적인 신념에 의한 것. 종교가 전부는 아닌 듯하다. 


미군은 이 초유의 명령볼복종인 집총거부를 인정할까? 징병제이니까 군에서 쫓아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군대에 남아서 사람을 살리는 의무병이 되어야겠다는 또 다른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는 도스다. 그렇게 전쟁에 출전하게 된 도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일본 오키나와 핵소 고지가 주전장이다. 


그는 절대 굽히지 않았던 집총거부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비폭력과 활인(活人)을 견지할 수 있을까? 영화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도스 개인의 신념 형성과 고민과 견지를 다룬다. 남은 절반에는 신념의 실천을 다루니, 이 영화는 전쟁영화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영화이자 종교영화라고 보는 게 맞겠다. 


비단 도스의 신념뿐 아니라, 도스가 속한 중대의 중대장 클로버(샘 워싱턴 분)의 신념과 간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나오는 '악마' 일제의 대장의 신념도 살짝이지만 강렬하게 비춰준다. 멜 깁슨은 아무래도 이 영화로 자신이 만들어낸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을 버무린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을 모양인 것 같다. 


보통 수준의 전쟁신, 전쟁영화들이 생각난다


전쟁이 주된 테마 중 하나인만큼, 전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여러 전쟁영화가 생각나는 보통 수준. ⓒ판씨네마



영화는 잔인하다는 평이 은근 많은 것 같다. 폭력의 수위가 다소 높다는 의견과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다는 의견이다. 아무래도 전쟁영화라서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 사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 또는 보통의 수준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족히 20년은 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해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수준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인간성 상실의 상황에, 오로지 살리고자 하는 신념 하나로 뛰어든 한 인간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대비가 극명하면 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겠다. 모두가 살인을 할 때 홀로 활인을 외치고 실제에 옮기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나왔던 전쟁영화들에서 각종 장면을 차용한 것 같다. 초중반을 할애하는 전쟁 이전의 이야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전쟁에 출전하기 전의 훈련병 내무반 생활 장면은 <풀 메탈 자켓>을,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벙커 탈환의 소소한 작전은 <신 레드 라인>을, 심지어 포탄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모습은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게끔도 했다. 


그러니 전쟁영화를 섬렵하다시피 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이 이를 모를리 없으니, 길지 않은 전투 장면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30분, 도스가 신념을 실현하는 모습에 있겠다. 


무리 없는 수작, 정이 가진 않는다


여러 논란거리가 있지만, 영화 자체로는 딱히 욕할 게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멜 깁슨이 다음에 또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보지 않을 것이다. ⓒ판씨네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전체적인 내용을 일별하는 건 의미가 없다. 대신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도스라는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그의 신념은 뒤로 하고 전쟁영화에서 비춰지는 영웅은 굉장한 위험이 뒤따른다.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에서 이긴 것 뿐인 역사의 승리자를 미화하며, 무엇보다 폭력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성격이 다르다. 전쟁 영웅을 다루지만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의 한 가운데에서도 절대적인 비폭력을 실행하니,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엄연히 실화이니 도식적이니 가식적이니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뒤로 한 신념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을 미화한다는 논란을 빚겨갈 순 없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미국은 한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었고 또 그 신념의 처절한 실천에 합당한 대우를 주었다. 그건 사실이지만, 영화는 그 부분들에 지극한 드라마를 가미했다. 각종 논란거리를 일삼는 트럼프 정부를 향한 '미국은 이래야 한다!'는 일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 수차례 인종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멜 깁슨이니만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조금 무리가 있겠다. 


전체적으로 무리 없는 수작으로 볼 수 있는 <핵소 고지>, 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다. 멜 깁슨이 또다시 이런 류의 영화를 내놓는다면 보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가진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과 능력을 최대한 살린 영화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거기에 어떤 논란거리를 얹혀놓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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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초록물고기>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시작 <초록물고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지금으로선 기가 막힌 한석규, 송강호의 동반 출현을 볼 수 있다. ⓒ시네마 서비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7년 2월 초에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한 영화감독의 데뷔작, 심상치 않다. 이런 영화가 이전에 있어나 싶다. 흥행 미풍, 호평 일색이다. 제목은 <초록물고기>, 감독은 이창동. 거장의 출현을 알린다. 당시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1983년에 데뷔한 중견 소설가였다. 이 작품 이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 조연출을 성공리에 마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니 초짜가 아닌 중고 신인의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의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중심엔 이창동 감독이 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단 5편의 연출작을 남기는데,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초록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까지, 앞의 세 편으로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박하사탕>인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설경구일 때가 있었다. 거장의 눈썰미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배우에게도 가 닿아 있는 것 같다. 설경구를 비롯해 송강호, 문소리, 정진영 등은 오로지 그의 눈썰미에 의해 뽑혀 함께 한 배우들이고 하나 같이 대배우가 되었다. 우린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와 송강호와 문성근이 함께 하는 마법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외형은 느와르, 내형은 누구나의 이야기


소시민적 이야기에서, 느와르로, 누구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리얼리즘 진한 작품. 소설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네마 서비스



시작은 제대 귀향 기차. 막동(한석규 분)은 우연히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 미애(심혜진 분)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듯, 하지만 그녀의 스카프만 얻었을 뿐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일산의 옛날 집으로 돌아온 막동,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술도 없다. 큰형, 작은형, 막내여동생을 찾아 다니며 회포나 풀 뿐이다. 계란장사를 하는 작은형과의 한바탕은 그에게 참으로 귀한 재산이다.


와중에 걸려온 여인의 전화, 수소문해보니 귀향 기차에서 만난 미애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이트클럽 전속 가수이자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보스 배태곤(문성근 분)의 여인이다. 배태곤의 눈에 띈 막동, 곧 그의 아래로 들어가 승승장구한다. 보스 몰래 하는 미애와의 사랑도 꽃피운다. 


그런데, 소싯적 배태곤의 보스였던 김양길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사태는 일변한다. 일대를 주름잡던 배태곤의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든 것. 급기야 배태곤은 김양길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배태곤이 아니다. 그는 막동에게 극비리에 중요한 임무를 떠앉기는데... 막동의 앞날은 어떨까. 


리얼리즘의 대가 이창동, 그는 소시민을 잘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또는 중심에 서지 못한 이를 내세워, 그로 하여금 대표성을 띨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물고기>는 외형은 느와르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이야기, 드라마이다. 막둥이가 살아가는 동향, 그의 가족들 모습, 그를 둘러싼 환경들이 모두 그렇다. 


조폭 영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명작


흔한 조폭 영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삶의 지독한 아이러니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다. 소시민과 재개발과 조폭. ⓒ시네마 서비스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도 하다. 기억 속 <초록물고기>는 같은 해 개봉해 숱한 화제를 뿌린 문제작 <넘버 3>와 비슷하다. 한석규와 송강호가 나오는 조폭 영화라서 그런지, <넘버 3>가 뇌리에 더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초록물고기>를 보기 전에, 현재 한국 배우 빅3인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을 한 영화에서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건 <넘버 3>인데. 


그런 기대, 조폭 영화를 볼 때면 으레 가지게 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면 이게 무슨 <전원일기>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날것의 소시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막동이와 작은 형이 함께 계란차를 타고 경찰차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한창훈 소설가의 <오늘의 운세> 한 장면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은데, 장면으로 보니 정말 많이 웃겼다. 한편 한창훈 소설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도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소외'이니 만큼, 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회사 사정 상 파주와 일산 쪽을 자주 가는데, 오래전에 신도시가 들어선 그곳이지만 아직도 허허벌판이 눈에 많이 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 나오는 배경과 완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개발이 한창인 당시, 배태곤이 추진하는 게 다름 아닌 재개발 관련 사업. 신도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아니 피해를 볼 여지가 있는 소시민인 막둥이가 배태곤을 도와 신도 개발 사업을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한 삶이 아닌, 삶이란 아이러니하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


'좋은 영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초록물고기>는 단연코 좋은 영화인 바, 이 기회에 한 번 보심이 어떨지. 당당하게 추천한다. ⓒ시네마 서비스



재개발과 소시민, 그리고 소외를 다루는 한편 정통적인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가 갖는 위대함이라 하겠다. 잘 빠진 느와를 한 편을 보는 것도 힘든데,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생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니 말이다. 와중에 제대로 된 한국형 느와르인 <달콤한 인생>이나 <비열한 거리>의 만들어진 듯한, 적어도 '내'게 피부로 와닿는 공감은 선사하지 못하는 부분을 <초록물고기>는 채워준다. 


그 중심엔 막동이라는 캐릭터가 있겠다. 배태곤이 그에게 꿈을 묻는다. 그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단다.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가족들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점에선 요원할 수도 있겠다. 그 꿈이 소박할수록 그가 가고 있는 길은 험난해진다. 그리고 비극은 점점 다가온다. 


영화는 말한다.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느와르, 절절한 배신이 난무하는 느와르와 소박하기 그지 없는 꿈을 꾸는 소시민의 생각, 행동,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먹고 사는 삶에서 파생된 여러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이 영화가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기도 한다. 당대의 생생한 모습을 우린 스크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리얼리즘 작품에서 절절히 확인할 수 있는 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우린 알 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이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라는 걸.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우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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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트 슈피겔만의 <쥐>


아트 슈피겔만의 <쥐> ⓒ 아름드리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 그 콘텐츠를 접하고 난 후 받게 될 거대한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주제나 소재가 너무 방대하거나 나의 관심 밖 또는 나의 지식 너머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책을 사놓거나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놓고 차마 보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기만 한 것들이 30%에 육박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아름드리)도 그 중에 하나였다. 우리나라에는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올해로 20년째이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정보 하나만을 접한 채, 최고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남들에게 추천만 해줬을 뿐 직접본 적이 없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


사실 이 만화를 보기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년 작)를 본 뒤 여기저기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상물과 책을 찾아보곤 했다. 그래서 더 이상 홀로코스트에 대한 건 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래픽 노블에 부쩍 관심이 생겨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어김없이 <쥐>가 나오곤 했다. 애써 지나치려 했는데, 한 번 볼 용기가 생겼다. 과연 이 만화는 다를까? 1992년 만화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점,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


기존의 홀로코스트 관련 콘텐츠는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데, 하물며 이 작품도 역시 당사자가 직접 겪은 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가 아니던가? 증명된 콘텐츠에 대한 기대 반, 그만큼 분량의 불안 반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부모 세대가 겪었던 실제 이야기


두 번째 페이지부터 참으로 끔찍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며 아버지가 블라덱 슈피겔만이 아들 아트 슈피겔만에게 해주는 13년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본문 속에서)


이 만화는 저자와 그의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린다. 실제와 마찬가지로 아트 슈피겔만은 극 중에서 만화가이고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홀로코스트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위해 아버지에게 수시로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에 블라덱 슈피겔만은 돈이 되는 만화를 그리지 왜 이런 만화를 그리려 하냐고, 또 홀로코스트에 대한 만화를 그리려면 그때 당시의 상황만 물어볼 것이지 왜 관련도 없는 전쟁 전 이야기까지 물어보느냐고 말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렇게 답한다.


“이건 히틀러나, 대학살과는 관계도 없어요!... 이건 대단한 소재예요. 이게 다 이야기를 더 사실적으로 더 인간적으로 만들거든요. 전 아버지 얘길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어요,”(본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만화로 옮기는 극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앞뒤 사정 또한 빼놓지 않음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바(홀로코스트)를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만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 만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


<쥐>에는 아버지의 회상 스토리 말고 한 가지 스토리가 더 존재한다. 그건 바로 현재 이야기로, 주로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또는 그 전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이런 모습들인데, 블라덱 슈피겔만은 아내를 잃고 새로운 아내를 얻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사이가 좋지 못하다. 아트 슈피겔만 또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에게는 유대인 특유의 생존 방식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고, 극도로 예민하고,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하고, 그래서 너무나도 구두쇠인 점 등. 쉽게 말해 억척스러운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모순적이게도 흑인에 대한 선입관이 깊이 박혀 있다. 자신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으면서도 흑인은 모두 범죄자라는 생각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어찌 이처럼 인간적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끔 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런 그를 포용할 수 없지만, 그의 회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인터뷰를 따오곤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일 또한 마치 제3자 인양 너무나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은 아내의 모든 기록을 불태워 없애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에게 “당신은 살인자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며 심한 말을 하는 것도 그대로 그릴 정도이다.


한(限)이 없는 객관적 리얼리즘


이 만화의 객관성과 리얼리즘은 아버지의 회상에서 정점에 달한다. 지옥문을 해치고 살아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아버지가 회상하는 장면은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서 그에 대한 한(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듣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 눈물이 맺힐 정도로 지옥 같은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당사자는, 정작 아무 감정 없이 일상으로 되돌아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억울하지도 않을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을지라도 그 한을 씻어낼 길이 없어 보이는 데 말이다.


극도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 만화의 특성을 지키려고 일부러 그렇게 고쳤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리얼리즘이 파괴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아버지의 객관적인 회상이 이 만화의 원동력이 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객관성 있는 시선에 힘입어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인가? 저자는 이 만화 1권을 그리는데 자그마치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만화’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오히려 더 천착한 것이다.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을 동물로 표현해 내는 등의 표현기법(이 또한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에 관한 고민을 깊이 했을 수도 있겠다.


이 만화가 단지 홀로코스트만을 다루고 있었다면 여타 다른 콘텐츠와 하등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 만화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의 인간을 보여줌(오히려 이성적인 행동과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과 동시에, 일상에서 살아가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오히려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행동과 사고를 내비치곤 한다)을 보여준다.


이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그것도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성의가 없다거나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논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철저한 객관성과 리얼리즘은 마치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의 발견을 보는 것 같다. 이 만화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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