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번지점프를 하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포스터. ⓒ눈엔터테인먼트



1983년 여름의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서인우(이병헌 분)의 우산 속으로 젊은 여인이 달려 들어온다. 첫눈에 반한 게 분명한 인우는 왼쪽 어깨가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멍한 표정이다. 그렇게 헤어지고는 매일 같이 그 자리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인우다. 


다시 한 번 어느 날, 학교 교정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국문학과 서인우와 조소과 안태희(이은주 분)의 만남이 시작된다. 급속도로 친해져 사귀게 된 그들, 여타 커플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우가 군대를 가게 되었을 때 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17년이 지나 인우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딸까지 있는 그인데, 태희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담임으로 있는 반의 임현빈(여현수 분)이라는 학생이 자꾸 태희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는 정도로 넘어 갔지만, 너무나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계속 보임에 인우는 현빈이 태희임을 알아보는데... 17년 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빈이 태희일까? 


판타지적 장르가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엔터테인먼트



2000년대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 <접속> <약속>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연풍연가>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주옥같은 멜로/로맨스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 기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는데, 와중에 정통이 아닌 판타지 장르가 조금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감> <시월애>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사랑합니다> <인어 공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0년대 초반의 판타지적 장르가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 판도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영화에서 판타지적 장르는 지극히 수단일 뿐이다. 


영화는 1/3을 정말 소소하고 평범한 사랑의 시작을 보여준다. 분명 거기에는 일부러 보여주지 않고 감춘 절절함이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17년 후를 다룬 후반부에서 하나하나 회상하며 강도를 높여가는 특별하고 본질적인 사랑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본질'에 관한 영화이다. 거기에 '사랑' 정도를 덧붙일 수 있겠다. 사랑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인간 대 인간'까지 나아간다.


사랑의 외연 그리고 본질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처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초반 1/3 보다 후반 2/3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판타지적 장르를 수단으로 썼듯이, 동성애적 코드도 수단으로 써버리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 메시지가 2001년 당시에는 꽤 파격적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여러 사랑의 정의 중 한 방면의 정석이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외연 상 인우가 남학생 현빈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히 동성애적 끌림이라 볼 수 있다. 그가 태희를 연상시키는 것도 모자라 태희 그 자체라는 확신이 선다 해도 말이다. 다분히 판타지적 설정임에 분명하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정의가 드러난다. 사랑은 외연이 아닌 본질이라는 것 말이다. 


인우에게 현빈은 현빈이 아닌 태희다.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그녀 태희 말이다. '남학생' 현빈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등식이 성립됨과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졌을 거라는 등식도 성립된다. 아주아주 오랜 후에도 계속될 거라는 등식도 역시. 


절벽에서 바다에 떨어지면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죽고 말지만, 같은 절벽에서 번지점프를 하면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난다. '본질'이라는 사랑의 정의에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불교 색체가 덧붙여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말하는 '본질'의 사랑의 정의는 태희의 현빈화가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차원까지 나아갈 수 있는데, 남자를 사랑한다는 외연과 여자를 사랑한다는 본질적 외연을 넘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본질까지 내다본 것이리라. 인우가 남학생의 모습을 한 태희를 사랑한다는 건, 여자 태희가 아닌 인간 태희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반증이다.


굳이 등식화 하자면 남자 현빈->여자 태희->인간 태희인데, 그 스스로도 남자 인우, 가장 인우, 동성애자 인우 등의 정체성을 넘어선 인간 인우가 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정의를 이 정도까지 진척시켰고 이 정도에서 멈췄다. 현빈이 그저 남학생 정도로 나왔으니 망정이지, 동물이나 벌레로 나왔으면 어쨌겠는가. 


결혼하기도 한참 전 지금의 아내랑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자주 물어봤었다. "나 사실 남자야. 나이도 엄청 많아. 그런데도 나랑 사귈 거야?" 나는 그때마다 "그래.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그땐 반은 장난이고 반은 진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나서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아내가 '나라는 인간을 사랑하는 건지' 시험해본 거라고 말했다. 


흔히 "다음 생애에도 지금의 남편 혹은 배우자와 다시 만날 거나?"라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 장난 반 진담으로 "훨씬 예쁘거나 멋있고 훨씬 돈 많은 사람과 만날 거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며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운명의 상대가 다름 아닌 아주 오래 전부터 만나왔던 단 한 사람이고, 그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도 그 역시 그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 그 인연의 끈, 그 형용할 수 없이 길고 끝과 끝이 만날 수 있는 비현실적인 확률을 되새기며, 극 중 서인우의 대사를 읊어본다.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꽃일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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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소니픽쳐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남쪽의 어느 별장에 한 가족이 기거한다. 열일곱 살 청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는 책읽기와 악기 연주, 작곡 등으로 여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화사한 햇살 아래에서 하릴 없이 누워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그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누구일까. 


어느 날 아버지 필먼 교수의 인턴으로 스물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분)이 찾아온 것이다. 다름 아닌 엘리오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 여기저기를 안내한다. 올리버는 잘생기고 키 큰 외모에 자유분방함과 박식함으로 무장한 매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엘리오도 그런 올리버에게 빠져든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올리버, 그럴수록 떨쳐내기는커녕 더욱더 빠져드는 엘리오.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다 솔직해지기로 하고 욕망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짧았고, 올리버는 떠나야 했으며, 엘리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첫사랑의 아픔을 삭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범 통과의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07년 출간 당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으며 화제를 뿌린 바 있는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했다. 정확히 10년 만에 영화로 재탄생되었는데, 원작보다 더 한 찬사를 받았다. 소설에서 영화로의 재탄생에 대한 찬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4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6년의 <캐롤>, 2017년의 <문라이트>, 그리고 2018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우리는 매년 감각적이고 사려깊으며 사랑스러운 동성애 이야기를 만나는 축복을 누려왔다. 이제 더 이상 동성애는 '특별한' 사랑의 한 종류가 아니다. 


영화는 여타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과 명백한 차별점을 두었다. 그동안 동성애는 상당히 조심스레 다뤄졌다. 시대와 조우하는 동성애의 아픔이 가장 많이 다뤄졌고, 동성애가 극의 중심이 되지 않게 잘 포장하는 영화도 많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과 조우하는 한 청년의 아픔으로 승화시켰다. 동성애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고, 동성애의 아픔을 동성애에 국한하는 게 아닌 사랑의 범 통과의례로 확대한 것이다.  


첫사랑 성장 이야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다분히 엘리오의 입장에서 서술되어지는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을 통해 성장해가는 엘리오의 이야기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농담, 그만큼 첫사랑은 여러 모로 강렬하다는 통념, 강렬함은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진다는 정설까지 아우른다. 그저 그 대상이 남자였을 뿐. 


이탈리아 남부의 찌는듯한 더위와 나른한 분위기는 첫사랑의 강렬함을 수반하는 상당히 노골적인 에로틱 판타지와 굉장한 조화를 이룬다. 어느 누구라도 사랑에 빠져 강렬하게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엘리오의 첫사랑은 남부 이탈리아의 날씨와 분위기에 큰 빛을 지고 있다. 


한편 역사고고학을 연구하는 필먼 교수와 올리버, 고대 조각상들에게서 보이는 관능적인 젊음과 모호성의 곡선이 엘리오에 투영되어 올리버로 하여금 엘리오를 열망하게 한다. 엘리오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는 올리버의 행위는 다분히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일 테다. 그저 아름다움을 쫓는 순수 인간이랄까. 


무엇이 어쨋든, 자연의 섭이리건 인간의 본성이건,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오와 올리버였다.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서로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나아가 우정 그 이상의 특별한 사랑을 나누었다. 동성애는 특별한 게 아니지만, 우정과 사랑은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가. 


자유로움과 다양함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특별한 건 엘리오의 부모님이다. 시대가 개인을 완전히 규정할 순 없지만 최대한의 통제는 가능한 바, 1980년대 미국의 '절제와 통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은 진솔하고 너른 품과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엘리오는 시대를 거스르는, 아니 시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움은 부모님 덕분이다. 


여기서 우린 사랑의 의미, 마음의 의미를 조우할 수 있다. 환경에 영향을 받고, 본성을 따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사랑이고 마음이다. 그건 때론 불같이 빠르고 강렬하게 달려들고, 때론 물처럼 느리고 안정적으로 스며든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그해 여름도 불과 물이 함께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다양한가. 다양함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을 진솔하고 너른가. 그런 크기의 그릇을 지니고 있는가. 엘리오에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아버지 필먼 교수의 진지한 격려와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옮긴다. 경청할 만하다. 


너희 둘은 아주 멋진 우정을 나눴어. 넌 너희가 가진 게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드문 건지를 알기엔 너무 똑똑하단다. 너희 둘이 나눈 그건 말이야... 그 모든 것은 지적인 거와는 상관이 없단다. 그는 그냥 좋은 사람이었던 거야. 너와 올리버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어 굉장히 운이 좋은 거란다. 너도 굉장히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지.


세상은 교활한 방법으로 네 약점을 찾는단다. 그러면 내가 옆에 있다는 걸 명심하렴.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단다. 아마 넌 어떠한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그리고, 네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그렇지만 분명 무언가를 느꼈을 거야.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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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디 아워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연관된 시공간을 달리하는 세 여인의 하루를 보여준다. ⓒ시네마 서비스


1923년 영국의 리치몬드 교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쓰며 주인공에 대한 생각에 광적으로 가득 차 있다. 런던에서 언니네 가족이 놀러 왔다가 오래지 않아 돌아간다. 얼마 후 울프는 집을 뛰쳐나가 런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서 기다린다. 곧 남편이 그녀를 뒤따라 설득한다. 사실 그들은 울프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런던에서 리치몬드 교외로 왔던 것이다. 


1951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분)은 첫째 아들 리차드와 함께 남편 생일 파티를 준비하며 케이크를 만든다. 그녀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즐겨 읽는 와중에, 친하게 진하는 친구가 놀러온다. 얼마 후 브라운은 리차드를 보모에 맡기고 자살하고자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결국 자살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살하려 한 것도 못 한 것도 <댈러웨이 부인> 때문이다. 


2001년 미국의 뉴욕, '댈러웨이 부인'으로 불리는 편집자 클라리사(메릴 스트립 분)는 죽어가는 옛애인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 파티 준비를 하고자 한다. 리차드는 다름 아닌 1951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브라운의 첫째 아들 리차드이다. 그는 엄마에게 버림 받은 기억을 앉은 채 힘겹게 살아가다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파티 준비를 마치고 리차드를 찾아간 클라리사, 그녀의 눈앞에서 리차드는 자살한다. 


자살, 동성애 그리고 여성


세 여인 앞에 놓인 것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시네마 서비스



영화 <디 아워스>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세 명의 여성을 차례대로가 아닌 교차로 보여준다. 단 하루를 보여줄 뿐이지만 여성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쓸 때 고심했던 부분인데, 로라 브라운이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삶을 다시 생각하고 클라리사가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것처럼 이 영화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세 여인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은 이밖에도 '자살'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말대로 라면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 영화 <디 아워스>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브라운은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자살을 하고자 했다가 철회한다. 그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애인 리차드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 '자살', 그리고 남은 한 가지는 '동성애'다. 사실 동성애 코드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가장 근접한, 또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소재이다. 세 여인의 각각의 키스 장면에서 그 코드를 유추할 수 있는데, 그게 문제를 해소하는 기폭제가 아닌 문제를 키워버리는 기폭제가 될 때가 있어 안타깝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다. 이 세 여성이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점이다. 왜 하필 여성이었는지, 1923년부터 2001년까지 80여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의 여성 삶이 무엇인지, 그 행간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고 짓눌려 있어 느낄 수 없는 무게를 우리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


이들이 힘들어 하는 건 사실 자살도 동성애도 아니다.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시네마 서비스


실존인물 버지니아 울프는 적어도 영황에서만큼은 <댈러웨이 부인>을 쓸 당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런던에서의 비극적인 삶을 뒤로 하고 한적한 교외로 요양을 와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소설쓰기에 전념한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투쟁을 원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녀의 투쟁이 정신병으로 보이고 속절없이 삶을 놓으려는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여자라면 응당 울프의 언니처럼 가정에 충실한 채 아이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 따위나 쓰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로라 브라운은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건실한 남편에 좋은 집, 그리고 아들도 있다. 거기에 둘째까지 가졌으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이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아들을 내팽겨치고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등지려 하는 것인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녀인데...


클라리사는 영화에서 앞의 둘보다는 덜 입체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녀보다 그녀가 챙기는 옛 애인 리차드의 모습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찾아온 리차드의 옛 '남자친구'와 대면한 후 대화를 하는 도중에 터진 눈물과 하소연, 그리고 그녀의 딸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린 현대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거기에서 어떤 '문제점'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여성에게 당연히 부과된 수많은 의무들이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다. 


이들이 힘들어 하는 건 두 층위에서 볼 수 있겠다. 둘 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일 텐데, 하나는 여성으로서 부과되는 의무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엄청난 무게다. 이 의무와 무게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다만 본인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헤어나기가 힘들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인 동성애자를 감춘 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1923년 영국이든 1951년, 2001년 미국이든, 여성의 동성애는 감춰져야 한다. 일례로 남자 리차드의 '남자친구'는 자신을 버젓이 밝히지 않는가? 울프와 브라운이 자살을 시도한 건 여기에서 연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의 전부,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혼자서도 영화 한 편을 온전히 이끌 수 있는 이들이 한 데 뭉쳤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시네마 서비스


<디 아워스>는 세 여성인 버지니아 울프, 로라 브라운, 클라리사가 전부다. 즉, 이들을 연기한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이 전부란 얘기다. 가장 먼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버지니아 울프 역의 니콜 키드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를 지금의 그녀가 되게한 가장 중요한 영화는 단연 <물랑루즈>일 것이다. 가장 완벽한 뮤지컬 영화로 통하는 그 영화로 니콜 키드먼은 정점에 올라섰다. 


<디 아워스>는 그 다다다음 영화로, 같은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을 시종일관 할 수밖에 없는 연기를 펼쳤다. 그에 앞서 겉모습이 버지니아 울프 그 자체인데, 가발은 물론 얼굴에도 특수분장을 한 것 같다. 또, 항상 어눌하고 불안한 채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 안으로 침참해 들어가면서도 자기 자신과 싸우는 울프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완벽히.


그에 반해 로라 브라운과 클라리사 연기는 덜 튀고 덜 입체적이고 덜 눈에 띌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이 보여준 연기, 그중에서도 한두 장면들은 사실상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브라운이 자살을 하지 못하고 돌아와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 남편과 대화하는 장면이 그렇고 클라리사가 리차드의 옛 남자친구와 대화하는 장면, 리차드가 자살하기 직전 대화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 짧은 대화 속엔 그녀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이 영화를 오랫동안 보지 않다가 두 번을 연속으로 쉬지 않고 보았는데, 교차 편집으로 인해 이해가 조금 힘들었던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던 점이 크다. 그런데 쉽진 않았다. 왜 그녀들은 불안해 하고 주저앉아 울고 자살하려 하고 그러다가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거지? 처음 볼 때는 이해하고자 했고 두 번째 볼 때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당분간 또 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또 보게 된다면 그땐 행간의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볼 것이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맨앞에 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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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 여름>


소설 <그 여름> 표지 ⓒ아시아



'동성애' 이슈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지만, 지난 4월 25일 4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확고한 대답에 대선 주요 이슈를 넘어 사회 전체 이슈가 되었다.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고,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하지만, 동성애 차별은 반대한다는 대답. 


감히 말하지만, 위 세 말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어찌 동성애를,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좋아하거나 하지 않거나 반대하거나 반대하지 않거나 하는 범주 내에서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동성애 차별 또한 동성애를 특별 취급한 말이다. 동성애건 이성애건 어떤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대답이 맞지 않은가, 싶다. 동성애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동성애 코드 콘텐츠를 봐왔다. 특히 영화와 소설로.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부분 동성애 반대나 혐오를 반대하는 뉘앙스였다. 이제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동성애가 이슈화되지 않는, 동성애를 그저 사랑으로 대하는 그런 콘텐츠를 봤으면 했다.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작년에 첫 책을 낸, 데뷔 4년차 신인 소설가 최은영의 단편 소설 <그 여름>. 


소설은 두 주인공 김이경, 이수이의 신(新)고전적 서사의 사랑과 연애 이야기다. 이들은 분명 남자와 여자가 아닌 여자와 여자이지만, 우린 어느새 이들이 그런 관계라는 걸 잊고 만다. 그리곤 그저 이들의 사랑을, 청춘을, 서사를 따라갈 뿐이다. 그 기점은 이들의 사랑이 확고해지는 시점이다. 


"사랑을 하면서 이경은 많은 일들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수이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나니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에 대한 판단이 예전만큼 겁나지 않았다." (본문 28, 30쪽)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우연한 사고로 처음 만난다.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의 얼굴이 맞아 안경테가 부러지고 코피까지 났고, 그들은 함께 양호실과 안경점에 갔다.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이경은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던 반면 수이는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둘은 서로 강렬한 끌림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그저 어지러운 기분이었고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계속 시선이 갔고 몸이 반응했다. 


스무 살이 되며 둘은 서울로 갔다. 이경은 서울 중심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수이는 서울 외곽에 있는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변함 없을 것 같은 그들의 단단한 사랑은 이경의 예감으로 조금씩 흔들린다. 언젠가 수이와 함께 하지 않을 것 같은 '당연한' 예감. 그 기저에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수이에 대한 이경의 깨달음이 있었다. 


수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이경에게 은지가 다가온다. 아니, 이경이 은지에게 강렬하게 끌린다. 이경이 생전처음 사랑을 해본 이는 다름 아닌 수이, 하지만 생전처음 강렬한 끌림을 경험한 당사자는 은지다. 이경과 수이의 사랑이 당연하듯 다가왔듯이, 이경과 은지의 끌림도 당연하게 다가온다. 이들의 삼각관계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소설이 도달한 곳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이다. 다만 소설에서 남자를 찾아볼 수 없을 뿐이다. 여자와 여자의 사랑.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성인이 되어선 자동차 정비 일을 하는 수이가 남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쨌든 그녀도 사랑의 당사자일 뿐이다. 


갈 길 먼 인식의 변화, 이 소설로 시작


단편에 메시지가 있기는 쉬운 반면, 서사와 분위기가 존재하긴 힘들다. 구현해 내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그 여름>은 서른넷의 이경이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옛날의 '그' 여름을 시작으로 십삼 년 전까지의 일을 회고하는 후일담 문학의 형식을 띄기에 서사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서사 덕분에 이들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다. 집중하다 보면 이들의 '특별한 동성애'적 사랑이 '평범한' 사랑으로 치환되는 걸 발견한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랑과 평범한 사랑의 만남이 있다. 이경이 느끼는 사랑, 거기엔 누구나의 사랑도 있고 이경 만의 사랑도 있다. 


"수이를 만나기 전,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외로운 곳이었는지 이경은 기억했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무리를 이뤄 다니는 아이들과 좀체 어울릴 수 없었던 기억을. 아무리 아이들을 따라 하려고, 비슷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를 애써 바꿔보려 했지만 불가능했으며 그렇다고 바뀌지 않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본문 106쪽)


급기야 '내'가 겪었던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 싸우고 화해하고, 환희를 느끼고 아프고, 만나고 헤어지고... 나를 포함한, 이경과 수이와 은지를 포함한, 누구나의 사랑 이야기다. 이 소설이 동성애적 요소로 동성애가 아닌 '애(愛)'를 말한 건 탁월한 선택이고, 나아가 그 선택을 문학적 실력으로 잘 살려나갔다는 점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신인다운 패기가 아닌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번뜩였다. 


그럼에도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나라의 인식은, 시대의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논쟁 거리가 될 이유가 될 수 없는 게 동성애인데, 첨예한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게 한심하고 슬프고 안타깝다. 앞으로도 논쟁 거리가 될 수 없는 동성애적 요소가 점철된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란다. 어쩔 수 없이, 우선 인식이 변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여름>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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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이다. ⓒ(주)서우영화사



벌써 20년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가 나온지 말이다. 1988년 <열혈남아>로 연출 데뷔를 한 왕가위 감독의 6번째 작품이자 <아비정전>으로 시작된 '왕가위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갔다. 왕가위 감독의 수많은 명작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해피 투게더>를 골라야 할 것이다. 


<해피 투게더>를 말함에 있어 또 한 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이다. 1978년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영웅본색>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1990년 <아비정전>, 1991년 <종횡사해>로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 1993년에는 <패왕별희>로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앞서 <아비정전>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로 왕가위 감독과 함께 했다. 


<해피 투게더>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맡은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자타공인 페르소나(왕가위와 양조위는 자그마치 7편을 함께 했다)라지만, 장국영이야말로 왕가위의 진정한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1983년에 데뷔한 양조위는 홍콩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해피 투게더>가 크게 일조한 건 당연하다. <와호장룡> <적벽대전> <일대종사> 등으로 친숙한 장첸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영화팬들에겐 잔치나 마찬가지다. 


간결한 스토리, 비로소 발휘되는 감독의 능력


누구나 예측할 만한 간결하고 단편적인 스토리다. 왕가위 감독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 일까? ⓒ(주)서우영화사



야휘(양조위 분)와 보영(장국영 분)은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아간다. 내성적이지만 책임감 강하게 삶을 영위하려는 야휘에 반해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기만 한 보영, 헤어졌다가 만나기 일쑤이다. 떠나간 사람은 당연히 보영일 테니, 돌아오는 사람도 보영일 테다. 그렇지만 야휘는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괘씸하지 않은가. 어느 날, 양손에 피를 흘리며 찾아온 보영을 야휘는 받아들여 극진히 보살핀다. 보영도 평소완 달리 얌전히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손이 낳은 보영은 다시 예전의 보영으로 돌아간다. 바깥으로 싸돌며 야휘를 가슴 아프게 한다. 어김없이 파국을 치닫는 모양새다. 한편, 힘들어 하는 야휘 곁에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 창(장첸 분)이 살며시 다가온다. 그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며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곧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한다. 각자의 길로 말이다. 야휘와 보영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이구아수폭포를 함께 갈 수 있을까.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힘들어하고 위로받는 절대보편의 간결한 스토리다.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감독의 능력이 발휘된다. 왕가위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간결한 스토리에 투영되는 당시 사회 상황,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동성애, 그리고 제목과 연결되는 영화의 주제까지.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황홀하다. 만사를 제쳐두고 그저 왕가위가 구축해놓은 미장센만 감상해도 충분할 텐데, 그 수면 아래에서 편안하게 헤엄치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만끽하다니. 정녕 '해피 투게더'다. 


동성애, 시대상, 그리고 '해피 투게더'


간결한 스토리 안에 동성애, 시대상, 관계의 메시지까지 횡행한다. 하나하나 잘 짚고 지나가자. ⓒ(주)서우영화사



가장 먼저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는 남자들의 사랑. 영화는 시종일관 세 남자 야휘, 보영, 창만 비춘다. 여자는 단 한 명이 단 한 컷에 등장할 뿐이다. 시작과 동시에 러브신과 섹스신에 돌입하는 야휘와 보영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것도 잠시, 곧 그 기시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신 흔하디 흔한 사랑 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들의 동성애는 인류보편의 연애인 것이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많이도 봐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아 본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런 느낌을 받을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심지어 '호모 포비아'도 이 영화를 보고 기시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그건 다분히 배우들의 연기에 기댄 바가 크겠다. 특히 왕가위 감독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설득시킨 양조위는 실제 동성애자인 장국영보다 더 동성애자처럼 보였다. 


더불어 당시 시대상을 엿봐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영화의 상당수가 1997년 '홍콩 반환'을 주제에 덧입힌다. 1985년작 <영웅본색>도 그러하니, 예견된 큰 사건에 홍콩 사람들의 심정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1997년에 제작된 <해피 투게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야휘와 보영의 끝이 헤어짐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바, '홍콩'이라는 단일 개체의 사라짐에 대한 불안이 투영된 것일 테다. 반면 창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따듯할 것 같다고 예상되는 바, 중국으로 합병되는 불안 속 희망이 엿보인다. 


'해피 투게더'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과 더불어 원제인 '춘광사설’(春光乍洩)이 뜻하는 ‘구름 사이로 비추는 봄 햇살'이 주는 희망까지, 중국과 홍콩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시기에 멀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내는 왕가위 감독의 메시지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 도시와 자연, 국가와 국가까지 어이진다. 우리는 이 작고 짧은 영화에서 대서사와 맞먹는 깊고 넓은 관계의 파노라마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다!


정녕 <해피 투게더>는 영화팬들의 잔치다. 감독, 배우, 영상, 장면, 메시지, 파격, 해석 등 즐길 게 너무나도 많다. ⓒ(주)서우영화사



왕가위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름 아닌 '미장센'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돋보적인 비쥬얼리스트다. 색감과 카메라 구도만으로 장면이 보여주려는 이면까지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도 단연 압권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건 색의 대비, 흑백과 컬러다. 의도적으로 야휘와 보영의 관계를 색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이가 좋을 때는 컬러로 좋지 않을 때는 흑백으로 처리하며 영화적 기법 사용에 있어 최상의 것을 보여준다. 덕분에 더욱 풍성하게 다각도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슬로우 모션 또는 스톱 모션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한몫 한다. 정확히는 카메라 구도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라고 해야 하겠다. 구도만 바꾼다고 해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색의 대비가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카메라 구도와 연기 앙상블은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하겠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보이는 걸로 상태를 설명하기란 정말 힘들 텐데 말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택시 장면 두 컷이다. 영화 초반, 헤어지고 난 후 보영을 본 야휘, 반면 보영은 야휘를 못 본 듯하다. 택시를 타고 떠나버리는 보영,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슬쩍 뒤를 돌아 야휘를 본다. 그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반면, 보영이 두 손을 다쳐 야휘를 찾아가고 함께 살아갈 때다. 택시릍 타는 둘, 보영은 살며시 야휘에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이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했던 듯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당대 최고의 감독 위치에 올라선 왕가위 감독에, 당대 최고의 스타 '장국영'과 '양조위'까지. 거기에 아르헨티나 현지 로케와 동성애 소재, 홍콩 반환 정서. 잔치도 이런 잔치가 있을까 싶다. 반면 스토리 자체는 솔직히 볼 게 없으니, 자연스레 속담이 생각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해피 투게더>로 황홀경을 맛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면, 아니 한 프레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오글거리기 짝이 없는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들었다'는 어구를 다름아닌 이 영화에 쓰고 싶다. 앞뒤 장면과의 연계를 무시하면서도 오직 최고의 한 장면을 추구하는 '왕가위 스타일'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그렇지만 왕가위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왕가위 스타일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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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브로크백 마운틴>


'이 세상에 둘밖에 없으면 어떨까' 하는 질문은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었으면 좋았겠다'로 바뀐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위대함과 길고긴 여운은 그 지점의 연장선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약관 20세의 두 청년 잭(제이크 질렌할 분)과 에니스(히스 레져 분), 함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몬다. 광활한 대지에 두 사람뿐이라 어색하다. 그것도 잠시, 어느새 친해져 브로맨스를 선보이는 두 사람. 어느 날 잭은 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자는 에니스에게 텐트에 들어 오라고 한다. 새벽녘 그들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없었던 일로 하자는 에니스, 받아들이는 잭.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신은 게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그들의 친밀감은 전에 없이 높아져 있었다. 갑작스레 철수하게 되는 그들,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혼란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들은 헤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위대함


에니스는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가끔 만나서 몰래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광활한 대자연에 던져진 두 청년의 혼란에서 시작한다. '이 세상에 둘밖에 없으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날 무렵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었으면 좋았겠다'로 바뀐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위대함은 그 지점에서 발현되고, 이 영화의 길고긴 여운은 그 지점의 연장선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주요 소재와 주제는 남성 간의 로맨스, 즉 동성애다. 그런데 그들은 격정적인 로맨스를 한 차례 겪은 후 이성과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기른다. 그들의 인생에서 거의 처음 겪어보는 사랑의 감정이 남성을 향했을 뿐이니, 젊은 날의 경험이라고 치부하며 넘어갔을 수 있겠다. 기나긴 인생에서 스쳐지나간 금지된 사랑을 그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그들의 사랑은 헤어진 지 4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고 있은 지도 한참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4년 만에 만난 그들은 그 자리에서 격한 키스를 나누고 가족에겐 거짓말을 한 후엔 사랑도 나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을 재확인 했으니만큼 이제라도 같이 살며 모든 걸 초월한 진정한 사랑의 앞날을 도모할 것인가? 에니스는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가끔 만나서 몰래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어느 사랑보다 절절한 사랑, 잔잔하게


그들의 삶은 평범하게 흘러간다. 겉으로 보기엔 남과 다르지 않다. 다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보니 아내와 가족들에게선 멀리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주 배경은 1960~70년도이다. 더구나 그들은 서부 사나이들이고. 잭은 가장 사나이다운 직업인 로데오 카우보이가 되고자 한다. 에니스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동성애자를 죽여서 버린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태생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성과 결혼을 한 거고. 그 와중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걸 숨기지 않은 것만해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들의 삶은 평범하게 흘러간다. 겉으로 보기엔 남과 다르지 않다. 다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보니 아내와 가족들에게선 멀리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욕을 먹더라도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고 가시밭길이었다. 


영화는 어느 사랑보다 절절한 그들의 사랑을 얼핏 전혀 절절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담담해 지루하다 싶을 만큼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니까 가능한 거지, 영화잖아.'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은 결코 로맨틱하지 못했으니까, 로맨틱한 연출은 그들의 사랑에 방해가 되지 않는가. 


상황에 맞는 OST가 거의 깔리지 않는 게 한 몫 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시의적절한 OST가 큰 몫을 차지하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러지 않았기에 분위기를 살릴 수 있었다. 그들의 감정선을 오롯이 따라가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고, 보는 이 또한 그러했다. 그 덕분에 치기 어리고 혼란스러운 첫 경험에서 시작해 20년 간 지속되는 사랑의 절절함이 폭발하는 감정의 선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터진 울음은 영화가 끝나고서도 한참을 간다.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끝나는 여타 영화에서는 느끼기 힘든 바다. 


그저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동성애를 옹호하고 울부짖지 않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들의 사랑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금지된 사랑을 하는 이들은 누구나 '우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잭과 에니스는 이미 그런 곳에서 주기적으로 만난다. 다름 아닌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그곳, 그들에겐 이상향과도 같은 그곳, 그들의 도피처이자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그곳이다. 


참으로 슬프고 쓸쓸한 곳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이 오직 그들만 있어 자유롭지만 극도로 폐쇄적이고 고독한 곳이 아닌가. 그들은 도대체 왜 그곳에서만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이 잘못한 게 있어서? 그들이 죄를 지어서? 반면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곳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인가. 


영화는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옹호하고 울부짖지 않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들의 사랑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어떤 게 필요할까. 그저 사랑, 사랑, 사랑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거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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