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양익준 감독·각본·주연 <똥파리>


똥파리 같은 삶을 사는 이가 있다. 모두가 다 피하는 그. 그는 어쩌다가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주)영화사 진진



용역 깡패 상훈(양익준 분)은 닥치는 대로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돈을 받아와야 할 대상은 물론, 같이 일하는 후배들도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팬다. 그런 그도 이복 누나와 그 아들인 이복 조카한테는 그나마 대해주는 편이다. 상훈은 사람을 패서 번 돈을 조카 손에 쥐어주며 그 표현을 한다. 


한편 상훈은 길을 가다 우연히 여고생 연희(김꽃비 분)와 시비가 붙는다. 안하무인 상훈에게 대적할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하는데, 연희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상훈에게 대들며 욕을 날리고 침을 뱉고 때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에 상훈도 주먹을 날리고는 곧 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가까워진다.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상훈은 15년 만에 출소한 아버지를 찾아가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한다. 그는 왜 아버지에게 폭력을 날리는 것인가? 곧 기가 막힌 사연이 밝혀진다. 상훈이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어느 날 급기야 식칼로 위협을 하려 하는데, 여동생이 사이에 끼어들어 대신 칼에 맞고 죽는다. 상훈이 여동생을 들쳐엎고 병원으로 향하고 뒤따라 오던 어머니는 차에 치여 유명을 달리한다. 그리고 이미 아버지는 새살림을 차렸던 것이다. 


연희에게도 사연이 있다. 엄마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다 용역 깡패에 맞아 죽고 없다. 아빠는 정신 이상으로 집에서 놀고 먹는데, 허구헌날 죽고 없는 엄마 타령이다. 오빠라고 있는 영재는 하는 일 없이 연희에게 돈을 뜯어가며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여고생에 불과한 연희는 공부는 물론 알바를 해서 돈을 벌고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양익준 원맨쇼의 수작 <똥파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독립영화 르네상스 한 가운데에 <똥파리>가 있다. ⓒ(주)영화사 진진



2009년작 독립영화 <똥파리>는 양익준 감독·각본·주연의 원맨쇼에 가까운, 그럼에도 수작 중 수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악마의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와 그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피해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살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거니와, 그 해결 방도를 나름대로 제시하고 또 피해자였던 가해자의 흔하디 흔한 자기 변명을 정면으로 응시한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2010년을 좌우한 독립영화의 르네상스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독립영화 3대 작품으로 2005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 2009년작 <똥파리>, 2011년작 <파수꾼>을 뽑는데 <똥파리>가 그중 가장 덜 어렵고 가장 직선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성공한 독립영화 중 하나이다. 


사실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그리 폭력적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육체적 폭력의 수위 자체가 그리 높진 않은 것이다. 다만, 폭력의 주 상대가 다름 아닌 가족이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영화 내내 쉬지 않고 나오는 쌍욕도 거북하게 다가온다. 욕은 육체적 폭력의 전조처럼 느껴지기에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 영화의 폭력 수위 자체가 아닌 폭력의 주 상대와 그 연유에 집중해야 한다. 혹여 거기서 폭력의 미학이라든지 폭력의 정당함 따위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폭력의 되물림이 결코 정당방위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나는 상훈의 폭력성이 아닌 상훈의 자상함과 따뜻함, 착함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똥파리>가 남겨둔 기회의 희극 가능성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나락 같은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인 폭력에 관한 영화들 와중에 기회의 희극 가능성을 남겨둔 <똥파리>. ⓒ(주)영화사 진진



위에서 언급한 <용서받지 못한 자>나 <파수꾼> 또한 다분히 폭력에 관한 영화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인지 정도는 하고 있는 사이에 '폭력의 되물림'의 희생자가 된 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그 사슬을 끊고 과거의 나와 단절하고자 도움을 청하고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대상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의 되물림과 연관된 자들이다. 결국 주인공은 자살을 택한다. 


<똥파리> 주인공 상훈 역시  '폭력의 되물림'의 희생자다. 그 역시 그 사슬을 끊고자 다짐하고 자신을 바꾸고자 하려는데, 어이없게도 그는 죽임을 당한다. 그 대상은 예상했듯이 폭력의 되물림과 연관된 자이다. 누군가가 시작했을 이 폭력들은 결론적으로 가해자 없이 피해자만 속출시킨다. 


하지만 <똥파리>는 다른 작품과 달리 여지를 남겨둔다. 비극적 요소는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기회의 희극 가능성, 그 씨앗을 완전히 거두어들이진 않는다. 상훈이 죽고 나서, 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모습이 보인다. 상훈의 아버지, 상훈의 이복누나와 남편, 그 어린 아들, 그리고 연희까지. 여기서 다른 누구도 아닌 상훈의 아버지가 눈에 띈다. 아이러니하지만, 어떤 '희망'과 '기회'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다분히 비극적 요소도 있다. 그 연결고리는 제2의 상훈이라고 할 수 있는, 연희의 오빠인 영재. 그는 비록 불우하기 짝이 없는 가정환경이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연희와는 달리 상훈처럼 용역깡패의 길을 간다. 다름 아닌 그가 상훈을 죽이는데, 상훈의 아버지조차 희망과 기회의 공동체 안에 속하지만 그만은 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안엔 연희와 영재의 엄마를 죽게 한 이가 상훈이라는 비극의 선대(先代)가 있었으니...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는, 최소한의 해결 또는 방편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폭력의 사슬을 끊어낼 방법이 있는가? 이 영화는 그걸 몸소 보여준다. ⓒ(주)영화사 진진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그것이 잉태된 이후에는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악질적인 폭력인 '가족에의 폭력'은 누가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거기엔 과연 길이 존재할까. 오직 비극으로의 길밖에 없지 않은가. 영화에서처럼 당사자들 중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사슬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데, 그 사이에 퍼진 암세포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이쪽이 해결되는 저쪽이, 저쪽이 해결되면 그쪽이 문제다. 


양익준 감독은 이런 거시적인 관점까지 완벽하리만치 균형있게 그려냈다. 이 세상에 완벽한 해결이라는 건 없다는 진리 위에, 비극의 계속되는 잉태와 희망을 꿈꾸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양면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는 불안하지 않은 상태를 불안해 하는 현대인의 모순적인 정상을 이런 식으로 포착해낸 듯하다. 


나 또한, 우리 또한 어떤 식으로든 폭력의 사슬 위에 서 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무수히 많은 종류의 폭력들이 지난 세월 나를 괴롭혀 왔다. 그건 즉, 나 또한 누군가를 괴롭혀 왔다는 뜻이다. 내가 알기론, 사람은 받은 것을 최소한은 돌려주려는 습성이 있다. 문제는, 그걸 당사자한테 돌려주긴 쉽지 않으니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해지는 것이다. 그건 설사 내가 의식하고 있어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거기엔 당사자 또는 당사자가 포함된 집단에 어떤 큰 결단 내지 큰 사건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알 수 없음에도 말이다. 심지어 그 결과가 대부분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영화는 그 잔인하기 짝이 없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최소한의 해결 또는 나아감을 위한 방편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다르다. 제3의 인물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비록 애초에 다가가기 힘들겠지만 훨씬 더 가깝고 이해 가능한 도움을 줄 수 있을 테지만, 그저 그(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불행한 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게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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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컴, 투게더>


최소 2017년 상반기 최고의 독립영화 <컴, 투게더>. ⓒ비아신픽처스



오랜만에 한국 독립영화를 본다. 세상을 보는 온전한 하나의 눈, 상대적으로나마 누군가의 입맛에 종속되거나 손질되지 않은 날것의 묘미, 그 안에서 일관된 무엇을 발견할 때의 희열, 모두들 거기가 문제라고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자 하지만 결국 보여지는 건 다르게 손질되고 마는구나 생각할 때의 씁쓸함. 나는 그런 독립영화를 사랑한다. 


일찍이 그 맛을 알아 독립영화의 맥을 짚어 보려 노력했고 그중에서 괜찮은 작품을 골라 소개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는 이전보다 저조했다. 독립영화 자체가 저조했던 건지, 나의 관심과 반응이 저조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2월에 <장기왕> 정도를 소개했을 뿐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최악의 하루> <여고생> <혼자> 신작 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저조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문으로 위로해본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에 독립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소개도 하지 않았음에도 <컴, 투게더>는 올해 상반기에 발견한 최고의 독립영화로 평할 만하다. 6개월이 지나 올해가 끝나도 여전히 최고의 독립영화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쪽에선 잔뼈가 굵은 신동일 감독이 8년 만에 연출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가족 개개인의 말 못할 고군분투


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사회 문제의 연장선을 이 영화는 탈피한다. ⓒ비아신픽처스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 범구(임형국 분)는 18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잘려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집에서 쉬다가 윗층의 층간소음 때문에 인연을 맺게된 호준, 그가 쿵쿵대는 건 천장에 머리를 닿고자 하는 행위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닿았는데 언젠가부터 닿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그 차이가 아주 조금이란다. 


어머니 미영(이혜은 분)은 각종 편법을 써 가며 힘들게 실적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창립 8주년을 기념해 실적 1위에게 주어지는 태국 가족 여행 티켓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고객이 변심해 취소하고 동료가 가로채가고 편법이 상부에 걸린다. 그래도 계속 해야지 어쩌겠는가. 


딸 한나(채빈 분)는 재수로 고려대학교를 들어가고자 하지만 예비번호 18번에 머물러 있다. 최종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래도 한 명씩 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더 피를 말리게 한다. 그런 와중에 예비번호 8번 후배 소식을 듣게 되고 만난다. 그러고는 은연중 진심을 내비친다. "내 앞 예비번호 누구라도 죽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영화는 한나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가족 한 명 한 명의 현 상황을 보여주고는 식사 자리에 둘러 앉은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예비번호 18번에 머물러 있는 한나로 인해 큰소리가 오가는 식사 자리,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말 못할 일들을 겪는다. 그래서 가족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개인의 고군분투 이야기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 문제는 하나다


영화는 개인, 가족, 사회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비아신픽처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가족을 돌아본다. 결혼하고 분가한 후로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듯 연락도 거의 하지 않지만, 문제는 한 지붕 아래 살았을 때조차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화목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거나 했던 건 아니다. 그런 모습에서 유추하는 문제의식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는 척 위하는 척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게 문제가 아닌가. 


여하튼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유기적인 인과 관계에서 유추하는 문제를 향한 비판 형식을 취하는 여타 영화와는 다른 결을 보인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문제가 한 눈에 보인다. 한 쪽에서 촉발한 문제가 다른 문제로 번지거나 원인이 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통합적인 문제다.


범구가 실업자가 된 건 이 사회의 가장 극심한 문제 중 하나이자 한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자 개인적으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유발의 문제이다. 미영이 신용불량자임에도 아둥바둥 신용카드를 파는 것도, 한나가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알아주는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한 곳에서만 촉발한 문제도 아니고, 어느 한 곳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어느 한 곳에서만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감독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그 시작을 가족으로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들 세 명은 각자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방식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연을 맺는다. 그런데 연을 이어가기가 너무 어렵고, 그들과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너무 힘들다. 그들이 없어졌으면 하기도 하지만, 막상 없어지면 울부짖으며 찾기도 한다. 반대로 함께 하고 싶지만,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다시 모여 다시 시작하자


극단적 비극으로 문제의식을 극단적으로 전달해 파급력을 실현시키려는 여타 독립영화와는 다른 희망적인 결이다. ⓒ비아신픽처스



적어도 내가 봐 왔던 독립영화의 결은 두 가지였다. 젋은 세대이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거나, 사회에 만연한 가해불가역성을 피해자에게 투영하여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내는 사회를 묵직하고 날카롭고 아프게 그려내거나.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도 완연히 다른 결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텐데' 또는 자신이 자신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괴롭히는 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내가 아는 독립영화의 결이라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러고는 속죄하고 도망가고 괴롭힘 당하고 피폐해지고 결국 자신 또한 죽고 만다. 이 사회가 만든 거대한 덫이자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자 끝없이 되풀이되는 굴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빈 손으로 다시 모인다. 


그 아래에는 감독이 촘촘히 구성해 놓은 구조가 있다. 비록 아프고 힘들고 비참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을 만한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컴팩트하게 시작한다. 그러곤 지뢰를 하나씩 심어놓는다. 더 큰 무엇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자 복선이고, 하이라이트를 향한 전개 방식이다. 그러곤 각자 겪게 되는 극치의 경험과 한 데 뭉쳐 겪게 되는 최악의 경험을 동반한다. 이 지점에서 끝낼 것인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하는 건 감독의 몫일 것이다. 영화는 후자를 선택했다. 일장일단이 있을 텐데, 영화의 구조적인 면에서는 올바른 선택이지만 영화의 파급력 면에선 조금 아쉬울 수 있다. 


<컴, 투게더>는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힘이 느껴졌다. 각본의 힘이자, 연출의 힘이자, 연기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역설적으로 이 사회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을 하게 만든, 주인공들의 모습을 봐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 말이다. 밝디 밝은 영화를 봐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볼 맛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날은 언제일까. 그럼에도 그런 사회가 오고 있다는 걸 믿는다. 함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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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


<족구왕>의 히트로 <걷기왕>이 개봉했는데, 이젠 <장기왕>까지 나왔다. 독립영화계의 한 지류를 담당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과연? ⓒ하준사


2014년 <족구왕>의 성공으로 2016년 <걷기왕>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그리고 2017년 초 급기야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이상 '장기왕')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독립영화계의 한 축을 이루는 듯하다. 비단 제목뿐만 아니라,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코미디 요소를 듬뿍 품은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은 우중충하고 직설적으로 사회 고발을 하는 기존의 독립 영화와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장기'와 '가락시장'과 '레볼루션'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이 이 영화의 제목을 이루는데, 아마 그대로 영화를 구성할 듯하다. 아마 주인공은 장기를 엄청나게 잘 둘 것이고, 배경은 가락시장일 것이며, 일상의 소소한 혁명을 이루며 끝날 것이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엔 일단 성공, 끝까지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인듯


가락시장에서 장기왕을 꿈꾸는 한 젊은이로부터 시작해 여러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각자의 피곤한 이야기들이 있다. 잘 만든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좋은 영화인듯? ⓒ하준사



내년이면 서른인 두수는 가락시장에서 일한다. 밤 12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10시에 출근하는 고된 일이지만, 이 시대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하는 고마움과 왠만한 중소기업보다 많은 급여를 받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명언을 간직하고 있다. 


두수가 일하는 청과물 가게의 사장이 어느 날 가게에서 내기 장기를 두고 있었다. 훈수를 두는 두수, 이를 고깝게 본 사장은 두수와 장기 한 판을 둔다. 손쉽게 사장을 이겨버린 두수, 이때부터 두수의 장기왕 레이스가 시작된다. 가락동 일대를 제압, 탑골공원에 진출한다. 그는 불가능한 꿈을 장기로 이룰 수 있을까.


한편 그에겐 누나가 한 명 있다. 힘들게 일하고 매일 같이 성추행을 당하지만 이도저도 할 수 없는... 그에겐 친한 친구도 한 명 있다. 배우지망생으로 열심히 데뷔를 준비하지만 여의치 않아 중국집 배달을 하고 있는... 그에겐 짝사랑하던 첫사랑 친구도 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휴가로 한국에 와서 노숙자들을 돕고 있다는... 이 불완전한 청춘들은 한데 뭉쳐 꿈을 이루려 한다. 


두서가 없는듯 이야기들이 파편화되어 여기저기 흩어진듯, 그렇지만 '장기'라는 소재를 끝까지 밀고나가며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들추려는 노력이 예쁘다. 엄밀히 말해서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인 것 맞다. 잘 만들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영화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흩어져 있는 작은 힘들이 모여 소소한 혁명을 일으킨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티끌 모아 태산?' 다만, 극을 잘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것뿐. 그래도 가능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준사



'장기'는 바둑이나 체스, 하다 못해 오목보다도 더 비주류의 보드게임이다. 당연히 더 비활성화가 되어 있고, 손쉽게 다가가기도 힘들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장기'를 주요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창 잘 나가는 바둑을 소재로 차용해 '바둑왕'이라 했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을 텐데 말이다. 


장기가 가진 비주류적이고 소외된 이미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락시장이라는, 젊은이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곳에서 일하는 주인공 두수. 회사에서의 상사에 의한 추행이라는, 어디 가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는 짓을 당하지만 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누나 두희. 언젠가 반드시 영화에 출현해 배우로 성공하고자 하지만, 현실은 중국집 배달원인 주인공의 친구 낙훈. 소외당하고 보호받지도 못할 노숙자들을 데리고 연극을 준비하려는 주인공의 여자친구 민주. 그리고 그들이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돕고자 하는 노숙자들까지. 


공통적으로 '소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이들끼리 뭉쳐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주인공이 '장기'로 여는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적 메타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적절하게 쓰인 것 같진 않다. 영화 초반에 흥미로운 소재로 등장해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장기는, 후반부엔 그 빛을 급격히 잃는다. 대신 주인공의 여자친구 민주의 급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역시 급작스러운 등장인물들의 결합이 장기를 대신해 '레볼루션'을 향해 간다. 장기보단 연극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해 보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은 힘들이 모여 소소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것이다. 그 구심점이자 소재로 장기를 택한 것이고.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다. 영화 <족구왕>이 준 스토리적 감동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러닝타임이 90분이 채 되지 않는데, 연결고리에 시간을 더 할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니면 등장인물들의 흩어진 이야기들을 조금 더 빨리 주워담았으면 어땠을까. 


감동 대신 재미, 감동 대신 씁쓸함


분명 감동을 추구했을 텐데, 감동이 없다. 아니 애초에 감동이 없을 수도 있었겠다. 대신 재미가 있고, 씁쓸함이 있다. 매력도 있고. ⓒ하준사



감동을 받을 만한 주제임에도 감동을 받을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흩뿌려 놓았을 뿐이기 때문인데, 대신 적정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순 있었다. 그건 순수하게 연기에서 비롯된 바, 특히 주인공 두수와 주인공의 친구 낙훈의 천연덕스러움은 발군이었다. 이 시대가 낳은 불행한 청춘들의 상징과도 같은 그들이지만, 주눅들지 않고 한껏 유쾌함을 발산하는 모습에 슬픈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애드리브가 상당했을 것 같다. 


얼핏 어설퍼 보이지만 능력껏 발휘한 영화적 스킬도 재미의 한 요소였다. 기본적으로 장기두는 모습이 상당히 나오기 때문에 그 모습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만화 <고스트 바둑왕>의 장면들이 연상케 했다. 오마주이자 패러디인듯, 귀엽게까지 느껴져 영화를 매력있게 보이는 데 한몫했다. 


어쩌면 애초에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영화였을지 모른다. 그들의 소소한 혁명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꾸기는커녕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처절한 좌절을 겪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래서, 두수는 가락시장을 벗어났을까? 두희는 회사를 잘 다니고 있을까? 낙훈은 영화배우가 되었을까? 민주와 노숙자들은?


과연 바뀐 게 있을지? 그들의 소소한 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었을지? 물론 최소한의 변화는 있을 것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에서 감동을 받는다. 내 인생에서 결코 오지 않을 크나큰 변화를 말이다.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소소한 변화조차 꿈꾸기 힘든 세상이라고, 그 정도로도 위대한 진척이라고. 그들의 코믹한 모습을 보니 왠지 더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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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고생>


한국 영화 교육의 요람,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2016년 기획전의 한 작품인 <여고생>. 어떤 영화일까? 그동안 선보였던 영화들을 보자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CGV아트하우스



한국영화아카데미, 일명 'KAFA'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교육기관으로 2009년을 시작으로 매년 기획전을 연다. 장편영화제작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로, 일종의 졸업 작품 전시회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린 은근히 이 기획전에 선보인 영화들을 많이 봐왔다. 


작년에는 홍석재 감독이 SNS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 <소셜포비아>를 선보였다. 한국 다양성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안국진 감독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기며, 흥행과 비평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주연배우 이정현은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11년에는 윤성현 감독이 <파수꾼>이라는 한국영화계에 길이남을 명작을 남기며 그해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2014년의 <들개>라는 작품도 생각난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KAFA 기획전', 2016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와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4작품 중 <양치기들>은 얼마 전에 보았다. 흥미로운 소재와 알찬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딱히 좋다 나쁘다 할 만한 게 없었고 끄집어낼 요소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보게 된 작품이 <여고생>이다. 어떤 매력을 선보였을까?


신선하고 패기 넘치는 감독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 작품에도 잘 드러났을지 기대된다. 신인 감독의 작품인 만큼 신선함과 패기를 앞세우고 발전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 중엔 완벽에 가까운 솜씨를 뽐내는 이도 있겠지만, 어설프게 기존의 영화 공식을 답습하며 '완벽'을 꿈꾸려 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고생>은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아주 괜찮은 영화였다. 


여고생 둘, 없어진 엄마 찾아 가다


'여고생 둘의 좌충우돌 엄마 찾기' 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영화는 '좌충우돌 엄마 찾기'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다.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혼자 사는 여고생 진숙이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단 궁금하다.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왜 혼자 사는 걸까? 여하튼 그녀는 학교에 등교한다. 듣고 보니 전학을 온 거였고, 알고 보니 전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강제로 전학을 오게 된 거였다. 그녀는 대형 문제아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같은 반 은영이 스윽 나타난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엔 뜬금없이 엄마하고 같이 며칠 집에서 지내고 싶단다. 이유는 모르지만 차마 거절은 할 수 없는 진숙은 허락한다. 


한편 낮에는 학교, 밤 늦게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는 진숙은 열심히 돈을 모은다.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는 꿈.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학교 선생은 그녀를 불러내 훈계하고, 돈문제로 얽힌 패거리들은 그녀를 계속 찾으러 다닌다. 급기야 며칠 기거를 허락해준 은영의 엄마가 어느 날 모아둔 돈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진숙과 은영은 함께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다닌다. 무뚝뚝하고 쌀쌀 맞지만 터프하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진숙과, 소심하고 울보에 진저리치게 쑥맥 같지만 잘 웃고 친절하고 엔돌핀이 돌게 만드는 은영의 콤비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알아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님이 안 계시는 진숙, 부모님의 이혼 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힘겹게 살아가는 은영. 그들은 은영의 엄마를 찾아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들이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나서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다. 추적하다 보니 은영의 엄마에 연관된, 나아가 은영에 연관된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사건의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 그들의 운명은 어떤 식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그 뒤에 숨겨진 사건이 궁금하다. 


조금 떨어지지만,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


영화 <여고생>은 그동안 봐왔던 수작 독립영화보다 객관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발전 가능성은 훨씬 농후하다. 실험적인 정신과 패기가 돋보이기 때문. ⓒCGV아트하우스



좋게 생각할 수도 한없이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여고생>은 그런 영화다. 짜임새가 형편없을 정도의 수준을 자랑(?)하는데, 또 그게 굉장히 실험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90여 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상당한 장르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그렇지만 OST 등으로 끌고 가는 전체적 분위기 자체는 샤랄라 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장면과 사건들 간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설명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KAFA 기획전'이라는 타이틀이 추구하는, 추구해야 하는 '신선함'과 '패기'엔 어떤 작품보다 걸맞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장르와 메시지가 공존한다. 진숙이가 은영과 은영의 엄마에게서 스리슬쩍 느낀 '가족의 마음', 드라마 장르다. 진숙과 은영이 패거리들과 대치하며 도망가는 장면, 액션 장르다. 진숙과 은영이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가는 과정, 추적 액션 스릴러 장르다. 그 와중에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휘말리기도 하니, 스릴러 장르다. 은영의 엄마와 연관된 사건의 전말, 사회 고발 장르와 더불어 블랙 코미디 장르다. 더 대라면 댈 수 있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겠다. 


정녕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나열인데,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려다 보니 짤막할 수밖에 없었다. 짤막하다고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을 거다. 오히려 촌철살인의 묘미를 던져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다. 흥미롭고 실험적인 도전에 머물렀다고 말하고 싶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장'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더더욱 실험적이면서 대놓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 반대에 위치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개체, 진숙과 은영의 '연대'는 소중하다. 더불어 진숙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여성'의 모습도 소중하다. 또한 비록 어설프고 투박하지만 돈에 대한 기가 막힐 정도의 '욕망'과, 이미 돈에 눈을 떴지만서도 단칼에 '거부'하는 그들의 모습도 소중하다. 이 영화는 이처럼 소중한 것들을 상당히 보여주었다. 


그동안 봐왔던 수없이 많은 '좋은' 독립영화들보다는 전체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통해 보여준 여러 모습들을 봤을 때 발전의 가능성은 농후하다. 오히려 여러 수작 독립영화의 감독들보다도 훨씬 더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작품 <여고생>이야말로 독립영화다운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독립영화에서 일종의 정석처럼 여겨지게 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힘을 통해 보여지는 한국사회의 속살 고발' 형식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정해진 형식은 계속 파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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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낮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 여러 모로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때론 너무 웃겨서, 때론 너무 답답해서, 때론 너무 불쌍해서, 때론 너무 나 같아서. ⓒ영화사 진진



실연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혁진을 위로 하기 위해 친구들이 뭉쳤다. 의미 없는 말이 오가고 혁진은 여전히 실의에 빠져 있다. 기상이가 제안을 하나 한다. 내일 당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 아는 형이 폔션을 하고 있으니 몸만 가면 된다는 것. 마침 장날이기도 하단다. 폔션 잡고 놀다가 강릉 해수욕장에 가서 겨울바다를 마주하며 컵라면에 소주 한잔 들이키자는 것. 술김에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승낙한다. 


혁진은 홀로 정선에 도착한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장은 어제 끝났다고 한다. 혁진은 점심을 먹는다. 기상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울이란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모레나 갈 수 있다고 한다. 혁진은 기상을 욕하며 반주를 한다. 기상이가 계속 전화를 건다. 이왕 거기까지 간 거 폔션에 가서 쉬라고, 내일 모레 가겠다고. 혁진의 모험 아닌 모험이 시작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은 <조난자들>의 노영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두 작품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상도 많이 탔다. 비록 두 작품이지만 그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본격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이다 보니 흥행하기가 쉽지 않고 영화를 계속 만들기도 쉽지 않다. 


주인공 혁진은 술을 엄청 좋아하는, 그런 이는 아니다. 다만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으니, '술 잘 마시네~'. 그럴 때마다 혁진은 좋아하며 더 마신다. 우리 모든 남자의 자화상. ⓒ영화사 진진



영화는 내가 보아 온 여타 '주류' 독립영화와는 다르다. 독립영화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이 주를 이루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건드리곤 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가시꽃> <마돈나> <4등>이 그랬다. <낮술>은 장르부터가 '코미디'이고 '술'이 주요 소재인 만큼 이들과는 멀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에서 술 마시는 장면만 열 장면 이상이다. 장면당 5분씩만 해도 영화의 절반에 해당한다. 거기엔 어김 없이 주인공 혁진이 있는데, 술을 향한 폭주는 아니다. 그는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가, 누군가가 무슨 이유를 대서 술을 권하면 때론 즐겁게 때론 억지로 술을 마신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으니 "이야, 술 잘 마시네~" 


정말 찌질하지 않나.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데 혁진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다. 나 뿐만이랴? 여러 남자들이 보인다. 대다수이지 않나 싶다. 딱 저 한마디면 된다. 그러면 아마 대다수 남자들은 술을 거절하지 못할 거다. 술 마시는 장면만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 들면서, 웃기고 슬프다가, 우울해지고, 술 진탕 마신 것처럼 허탈해진다. 그걸 의도한 거라면 정녕 잘 해냈다. 


홍상수표와는 또 다른 '진리'


남자 입장에서 술이 있는 자리에 여자가 빠질 수 없다. 혁진은 술이라면 거절을 못하는데, 또 여자도 거절 못한다. 혁진은 며칠의 여행 아닌 여행 동안 온갖 처참한 꼴을 당하는데, 온전히 술과 여자 때문이다. 애초에 실연을 당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정선에 가게 된 거 아닌가. 또 폔션에서 옆방 여자에게 들이대려다가, 옆방 여자의 유혹에 못 이겨 그리 된 게 아닌가. 


홍상수표 영화인듯 아닌듯, 가장 먼저 홍상수표 영화가 생각나지만 또 다르다. 또 다른 '찌질'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사 진진



술과 여자, 술자리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홍상수표 영화'. 그의 영화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에, 특히 술자리에서 꼭 등장하는 게 있으니, 허세 가득한 술자리 비평들이다. 다 상대방을 꼬시려는 수작이다. 그게 너무 눈에 드러나는데, 그래서 너무 찌질해 온몸이 가려울 정도인데, 너무 나와 똑같아서 무섭기까지 하다. 


반면 <낮술>에는 술자리 비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고작 하는 얘기가 술에 관한 거다. '술 한잔 하러 가실까요' '술 한잔 쭈욱 들이키시죠' '술 잘 마시네' '주량이 어느 정도세요?' '거국적으로 건배' '원샷입니다' 등. 정녕 아무 의미 없는 말이 오간다. 홍상수표 술자리와는 또 다른, '진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미'의 향연, 그 뒤엔 여지없이 '술'로 인한 씁쓸함


한편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어른 남자의 로드 무비로도 읽힌다.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최고의 성장소설 중 하나로, 아이지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자부하는 홀든 콜필드가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흘 동안 겪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다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는 한편 천사 같은 이들도 만난다. 진정한 천사인 여동생 피비를 만나며 콜필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저 혁진의 여정에 포커스를 맞춰도 좋다. 일종의 폭소 로드 무비랄까. 그저 재밌고 재밌다. 또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 단, 남자한테만 그럴듯? ⓒ영화사 진진



혁진은 어땠을까. 변태도 만나 당할 뻔하고 호의를 갖은 척 접근한 이들에게 제대로 털리기도 한다. 이상한 말을 해대는 못생긴 여자에게 명확한 거절의 뜻을 내비치니 쌍욕을 해대지 않나, 알고 보니 그 여자가 기상이의 아는 형의 사촌 여동생이라지 않나... 정말 되는 게 하나 없는, 콜필드의 여정 못지 않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콜필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콜필드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여정을 택한 거고 혁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다.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너무 재밌고 생각하며 봐도 역시 너무 재밌다. 박장대소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몇몇 등장한다. 조금은 예상이 되지만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앞에 여지 없이 '술'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 년에 한 번은 꼭 술 때문에 인생에 남을 만한 사고를 치곤 한다. 차마 말 할 수 없는 그런 정도로 말이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을 진탕 먹고 사고를 치곤 하는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 혁진이도, 아니 술을 마시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컵라면에 소주 한 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환상적이다. 춥긴 너무 추울 텐데, 뜨거운 컵라면에, 속 깊이 지져주는 소주까지. 혁진이 직접 해보고 친구한테 말해줬다. "야, 너무 춥기만 하더라. (너무 추워서 컵라면하고 소주를 먹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다. 술은 항상 핑계가 있다. 핑계는 핑계로만 끝나지 않고 술도 술로만 끝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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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돈의 팔촌>


영화 <사돈의 팔촌> 포스터 ⓒ서울독립영화제



영화는 종종 금기시된 사랑을 건드린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랑, 이성이 아닌 동성 간의 사랑, (알고 보니) 이복형제 간의 사랑, 결혼한 이들 간의 사랑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들 간의 사랑, 친구 엄마 또는 아빠와의 사랑, 죽은 이와의 사랑까지. 이밖에도 수많은 금기된 사랑들이 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이니, 사랑은 참 하기 힘든 것 같다. 


영화 <사돈의 팔촌>은 금기시된, 아니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 친척이지만 남이나 다름 없는 관계를 뜻하는 '사돈의 팔촌'은, 주인공들이 원하는 그들 간의 관계이다. 그들은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사촌 사이이기 때문이다. '사촌 간의 사랑', 많은 금지된 사랑이 조금씩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랑이다. 


서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청춘 멜로 드라마


<사돈의 팔촌>은 다분히 에로틱한 제목을 뒤로 하고 다분히 서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청춘 멜로 드라마다. 농밀하고 숨겨둔 욕망을 자극할 수 있기에 에로영화에나 쓰일 만한 소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래서 더욱더 이 영화가 주는 감성이 좋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짙은 사회성을 띄게 마련이다. 투철한 작가정신이 투입되어 이 시대와 사회가 갖고 있는 온갖 추함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본으로 독립한 영화가 갖는 유일하다시피 한 존재가치처럼 되었다. 오랫동안 독립영화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로서, 독립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키는 한국사회의 치부와 아픔을 천착해왔다. 그래서 이 영화 또한 그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 


영화 <사돈의 팔촌>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예상해보면 이렇다. 사촌 간에 특별한 감정이 싹튼다. 곧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쪽은 그 사실을 모른다. 한 쪽만 알고 있다. 알고보니 한 쪽의 음모였다. 한 쪽의 윗세대가 다른 한 쪽의 윗세대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교묘히. 깊이 사랑한 끝에 그들이 사촌 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고, 그것이 곧 이 사회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돈의 팔촌>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는 사촌 간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특별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복잡한 게 인생이고 사랑이지만, 또 간단하다면 간단한 게 인생이고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복잡하지만 간단하잖아. 사랑하고, 사랑받고. 끝."


보편적인 사랑조차 포기해야 하는 청춘을 위해


만약 영화가 그들의 금지된 사랑을 애뜻하고 특별하고 농밀하게 그려냈다면, 자칫 '역겹다'고 느낄 수도 있었으리라.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코 좋은 의미로 다가갈 수 없는 종류이니까 말이다. 영화가 청춘 멜로의 스타일로 그들의 금지된 사랑을 풀어낸 건 가히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전혀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상당 부분 '금지'를 희석시켰다. 그냥 보편적인 사랑을 본 것 같다. 가슴 애이고, 아프고, 설레고, 초조하고, 기분 좋고, 즐겁고, 비로소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여느 사랑과 다를 바 없다. 


영화 <사돈의 팔촌>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이 영화가 주는 감성의 대부분은 특유의 색채 그리고 카메라 워킹이 큰 몫을 차지했다. 봄이 생각나게 하는 색채는, 영화 <어바웃 타임>이나 <캐롤>을 연상시킨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소소하지도 않은, 파스텔 계열의 색이 흩뿌려진 듯했다. 주인공의 시선을 쫓으며 주인공의 모습을 포착해낸 카메라 워킹은, 주인공이 갖는 복잡한 사랑의 감정을 잘 드러낼 수 있게 했다. 


독립영화는 시종 일관 불편하게 진행되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끝맺곤 한다. 최근 들어 그러지 않은 독립영화를 봤는데, <족구왕>이었다. 많이 회자되고 어지간한 성공을 거둔 그 영화 역시 풋풋한 감성의 청춘 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도 그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청춘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 같다. 사회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사회를 이끌어야 할 청춘들이 사랑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하는 이 시대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게 아닐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라, 이 시대의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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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돈나>



영화 <마돈나>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2002년 <해안선>으로 나의 독립 영화 사랑이 시작되었다. 2005년엔 <용서 받지 못한 자>이,  2008년엔 <똥파리>가, 2011년엔 <파수꾼>이, 2013년엔 <가시꽃> <명왕성>이, 2014년엔 <셔틀콕> <거인>이 즐거움을 주었다.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라는 채널을 이용함에도,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감독들이 있어 매년이 행복했다. 


2015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돈나>라는 작품이다. 기존에 보았던 독립 영화들과 결을 같이 하는, 잘 된 작품들의 전철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작품이다. 단단한 내공이 엿보인다. 독립 영화를 거론할 때 빠짐 없이 리스트에 오를 영화이다. 


위에서 거론한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좋은 독립 영화들만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통점들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다. 끝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예견되어 있다. 먼저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 위의 모든 영화가 그렇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 또는 주인공 중 한 명이 죽는다. 그러면 당연히 세드 엔딩이다. 해피 엔딩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독립 영화를 보며 알아낸 것인데,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우리 모두가 이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헤어 나오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아마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굴레는.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영화 제목이 세 글자이다. 영화계의 징스크인지, 아니면 세 글자가 풍기는 서늘한 이미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명백한 공통점인 건 확실하다. 


병원 VIP실에서 벌어지는 구역질나는 계략, 그러나...


이렇게 구구절절 독립 영화에 대해 말한 건 또 하나의 좋은 독립 영화 <마돈나>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다. 선배 독립 영화의 기를 받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다. 민주주의가 별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그렇다고 독립 영화가 진리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독립 영화'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 <마돈나>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병원 내 VIP실에 해림(서영희 분)이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곳엔 재벌 회장이 뇌사 상태로 10년 째 누워 있다. 그 옆에는 아들 상우가 10년 째 지키고 있다. 꼬락서니를 보면 효자 같지는 않은데,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돈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담당 간호사로부터 들려온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누워 있는 재벌 회장 앞으로 한 달에 10억이 들어온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모든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을 남겼기에 아들이 한사코 그의 죽음을 연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혹은 자연스럽게 해림은 이 치졸하고 구역질 나는 계략에 말려 들어간다. 


어느 날,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 미나(권소현 분)가 실려온다. 상우는 그 환자를 이용해 아버지를 살리려 한다. 그는 해림에게 시켜 그 환자의 장기 기증 동의서를 받아오게 한다. 병원의 실소유자 상우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해림은 받아오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환자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영화는 해림이 환자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뒷이야기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요동친다. 그 전까지는 모든 등장 인물들이 일정 정도의 톤을 유지한다. 병원이라는, 그것도 VIP실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유난히 조용하다. 다들 삶에 대한 특별한 목적이 없거나, 이미 충격적인 일을 겪어 미련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해림도 상우도 마찬가지이고, 병원의 간부도, 이제 막 레지던트를 끝낸 담당 의사도, 상우에게 잘 보여 한 몫 챙길 속셈밖에 없는 담당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재벌 회장의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그의 죽음을 한사코 막으려는 그 알 수 없는 싸움이 내부에서만 요동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재벌 회장에게 또 한 차례 심장 정지가 찾아 오고 다시 한 번 장기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서 영화는 요동친다. 이어 정체 모를 뇌사 상태 환자가 들어오고 그 환자가 임신 상태에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점점 더 심해진다. 고요했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웃던 낯짝이 일그러지고, 항상 저음을 유지하던 톤은 한없이 높아 간다. 그래도 해림은 끄덕 없이 그 정체 모를 환자, '마돈나'라 불렸던 이의 뒤를 추적한다.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기필코 찾아야 했다. 그러면 상우의 계략을 어느 정도 무마 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이보다 불편한 영화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완벽하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충격에 충격을 더한다. 특히 마돈나의 뒷이야기는 분노와 슬픔, 안타까움과 공감이 이상하게 뒤틀린 카오스적 충격의 연속이다. 그녀가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는 누군가는 반드시 겪었을 것이기 때문에 공감이 되면서도, 터무니 없는 분노와 슬픔이 있기 때문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곤 해림의 숨겨진 이야기가 정점을 찍는다. 기묘하게 카타르시스까지 일게 하는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다. 영화적으로만 말하자면, 완벽한 시나리오의 승리다. 



영화 <마돈나>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손이 떨려올 정도의 연속되는 충격은 급격히 끝을 맺는다. 슬픈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보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크레센도'만 계속된다. 아주 정교하게 설정되었기에 장면의 전환에 이질감이 없어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편안함은 시나리오의, 이야기의 흐름이고 내용으로는 이보다 불편한 영화를 찾기 힘들었다. 


이 영화에도 어김 없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직 피해만 당했던 이도 결국에는 가해를 저지르고 만다. 정말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계속되는 충격 속에 숙연함과 함께 미안함이 들게 하는 인물이다. 이 국가는, 이 사회는 그들을 구제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왜 누구를 위해 누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한편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힘이 없어 피해를 보는 걸 구제할 수 없다면, 최소한 가해자가 되지는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가해자가 된다면 구제를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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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거인>





독립영화란 상업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 본인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를 뜻한다. 개 중에는 의도적으로 상업 자본을 배척한 경우도 있지만, 소재나 주제 때문에 상업 자본으로부터 배척 당한 경우도 있다. 상업 자본이 꺼려 하는 소재나 주제는 무엇일까?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힘든 기상천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주제와 소재를 채택한 영화도 있고, 대중으로 하여금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도 있다. 


여기서 대중으로 하여금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메시지는, 여지없이 대중을 불편하게 한다.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들춰내는 이런 영화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엔 힘들고 자연스레 상업 자본으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이다. 그 사회의 성숙도를 이런 영화들이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는 가로 측정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기준을 1만 명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최고의 발견이라 칭할만한 영화 <거인>은 2만 명을 돌파했다. 독립영화임에도 대중으로부터 평균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지없이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대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스토리? 메시지? 연기? 미리 말하자면 모든 점이다. 


도둑질 하며 신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아이


영화의 주인공은 18세 영재(최우식 분)이다. 그는 집을 나와 '이삭의 집'이라는 그룹홈 보호시설에서 지내면서 신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싹싹하고 착하고 말 잘 듣는 그런 아이다. 반면 남몰래 후원물품인 신발을 훔쳐 학교에 파는 비도덕적인 모습도 있다. 그럴 때면 그야말로 장사꾼 기질 아니,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 영재는 과연 누구인가? 그의 본 모습은? 


18살이 되는 영재에게는 단 하나의 고민이 있다. 그 고민에서 모든 것들이 파생되는 것이다. 나이가 찼기 때문에 그룹홈 보호시설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 돈은 벌어오지 않고 동생 민재를 떠 넘기려고 하는 아버지,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이모집에 가서 요양을 하고 있는 어머니(어머니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동생 민재를 '이삭의 집'에 떠넘겨 사실상 영재에게 책임을 지게 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민재. 영재는 이런 집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정말 '미치겠고' '죽겠다'. 





그렇지만 '이삭의 집' 원장은 계속해서 영재를 압박한다. 어서 이 집을 나가 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영재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 성당 측에서 말을 잘해 주는 것 뿐이다. 영재가 실업계를 다니고 성적도 그리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각 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신부의 꿈을 키우며 계속 지낼 수 있다. 영재에게 이건 실존과 연결된 문제이다. 


'집도 있고 부모님도 있는 아이가 뭐가 부족하다고 집을 나와서 그 고생을 자처해서 하고 있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 영재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부모님이 있다. 작지 않은 집도 있다. 그런데 무능력하고 못난 부모님이 있다. 그 부모님은 장남 영재로 하여금 집을 나갈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말 그래도 집에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차남 민재도 영재에게로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영재와 민재가 '이삭의 집'을 나갈 때 갈 곳이 없어질 것이다.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 그 원인에는 어른들의 '무책임'도 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폭발하는 아이, 그 끝은?


영화는 영재로 하여금 '이삭의 집'을 나가 집으로 돌아가게끔 이야기를 치밀하게 펼쳐나간다. 18세가 되었으니 집을 나가라고 하는 원장, 영재가 후원물품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협박하는 전 룸메이트 범태, 민재를 '이삭의 집'으로 데리고 가 같이 지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아빠(만약 민재를 데리고 가면 영재의 활동 범위는 굉장히 축소될 것이고, 자리를 보존하기가 더 힘들 것이다.)까지. 


어느 날 급기야 영재의 아빠는 민재를 데리고 직접 '이삭의 집'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영재를 통해서 민재를 보내기 힘들다고 판단해 직접 원장에게 말하려고 온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영재는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분출하고 결국 폭발하고 만다. 눈이 뒤집힌 채로 부엌에 가 칼을 가져온 것이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것인가? 어찌 되었든 영재의 거취는 불분명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 시대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영화의 또 다른 키워드는 '연기'이다. 주인공 영재를 연기한 최우식의 연기. 그는 주로 TV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동하다 영화 연기를 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거인>처럼 단독 주연은 처음인 듯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신부의 꿈을 꾸는 착한 아이와 남몰래 후원물품을 훔쳐 파는 나쁜 아이의 이중 생활 그 이상의 삼중, 사중 연기를 펼친다. 그를 생각해주고 그를 옭매이는 그와 관련된 사람 모두와의 관계에서 각각 다른 표정과 목소리톤,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25살이 보여주는 연기라고 믿을 수 없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크다. 


그렇다는 건 영화 속 영재가 그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오로지 '생존'을 위함이다. 아무도 자신을 책임져주지 않는 다는 걸 알고 그야말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평소 원장 부부나 신부에게 잘 보여온 영재. 하지만 그는 나이가 꽉 차서 집을 나가야 하는 상태이다. 죽어도 나갈 수 없는 영재는, 신부에게 신부가 꿈이라는 걸 강하게 어필한다. 신부는 영재의 강렬한 부탁을 듣고 공부 잘하는 대학생 누나를 데려와 영재에게 공부를 시킨다. 친자매처럼 지내는 이들, 하지만 영재는 그런 누나조차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싼 장갑을 사서 누나에게 선물하는 영재의 모습이, 순수한 의미의 고마움이나 호의가 아닌 뇌물로 비춰지는 것이다. 


어떤 파괴적인 메시지나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온 한숨이 나오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없는 연민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거인이 되고 싶어 되는 게 아닌, 살기 위해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거인이 되어 버린 영재. 그에게서 이 시대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투영해본다.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문제의 단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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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수꾼>


영화 <파수꾼>.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표지에는 두 명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필라멘트 픽쳐스

좁혀지는 미간, 꿈틀대는 눈썹, 뿜어져 나오는 한숨, 쯥쯥거리는 입술, 바싹 당겨지는 뒷목. 영화 <파수꾼>을 보고 난 후 남겨진 것들이다. 10대 친구들을 그린 이 '성장영화'를 보며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서 나의 오욕의 학창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일까. 영화 자체가 소름끼치게 하였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은 독립영화에 속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눈을 속이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가슴을 뻥뚫리게 하는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시적 심리묘사와 짜임새있는 스토리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독립영화를 처음 본 기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케이블 TV에서 보내줬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휴가나와서 하필이면 군대 영화를 보다니.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계속해서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그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2008년에 <똥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2011년, <파수꾼>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인데,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거기에 3년마다 찾아오는 명작 독립영화라는 일종의 징크스가 작용했을지도.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학생 3명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였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접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바로 제목이었다. 한글 제목은 <파수꾼>이지만, 영어 제목은 <Bleak Night>였던 것이다. 풀이하면,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음산하고 황량한 밤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누군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 그려졌다.


영화는 역순으로 진행된다. 자살한 기태(이제훈 분)의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을 쫓아 기태의 생전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찾아낸 기태의 친구 희준(박정민 분). 그는 기태가 자살하기 몇 주전에 전학을 갔지만, 그 전까지는 기태와 가장 친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동윤(서준영 분). 그는 중학교때부터 기태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희준이 전학간 사이 기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세 친구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철로가 끝날 때까지 같은 걸어갈 수 있을까. ⓒ 필라멘트 픽쳐스



주지한대로 주인공은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등학교때 알게된 친구이다. 이들 셋은 언제나 붙어다닌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윤과 희준이 좋아하는 세정과 보경이와 함께, 남자 셋 여자 셋 월미도 여행을 떠난다. 기태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사랑이 성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경이는 희준이 아닌 기태를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보경은 기태에서 고백하고 이 장면을 본 희준은 기태에게 따지고 든다. 이에 기태는 언짢음을 느낀다.


이어서 학교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기태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지 말자는 동윤과 다른 친구의 눈짓을 본 기태가 또 다른 의미의 언짢음을 느낀다. 또한 기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일명 '짱'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때부터 단짝인 동윤을 제외하고, 희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역시나 언짢음을 느끼는 희준이지만, 기태는 그런 희준에게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서툰 감정 표현을 하고 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툰 표현들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들의 관계는 점철되고 만다.


결국 기태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희준은 전학을 가버리고, 동윤은 그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를 하지 못한 채 희준의 편만을 든다. 이에 기태는 동윤에게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과거에 안 거쳐간 남자가 없었다는 것. 이어서 기태는 세정에게 말한다. 동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서 대판 싸운 끝에 절교를 선언한다. 이 도중에 기태의 불량친구들 또한 기태를 떠나간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살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미성숙한 방어 기제'와 '성숙한 방어 기제'로 나누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로는 부정, 투사, 행동화, 건강 염려증, 퇴행, 수동 공격적 행동, 신체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기태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미니가 안 계시는 상황,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극 중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관련하여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태가 말한다.


"난 집에 가면 내가 밥 해먹어. 가끔 아버지 얼굴 보면 인사하고 아침에 눈 떠보면 지각이라서, 왜 안 깨웠냐고 막 화내거든.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됐냐고?"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기태의 자살이 결국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보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기태는 계속해서 희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그의 표현 방법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만 희준이 받아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희준은 시종일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태는 계속해서 엇나가고 만다. 급기야 희준을 향한 분노가 극단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희준이 말한다.


"너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내가 언제까지 네 앞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 되는데? 내가 네 앞에서 그렇게 맞고도 오기로 버텨온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저 친구들도 네 옆에 있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너랑 학교 다니면 편하니까 붙어있는 거지.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준을 향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인간 관계란 것이 칼로 무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죽고 못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단번에 그 친구와 절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매일같이 사과를 했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를 오기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지금의 내가, 미성숙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불안한 관계, 그 끝은...


우리가 믿고 있는 깊숙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진정한 친구와의 깊숙한 관계는 불안정한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영화는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불안은 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려 끝까지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고 상대를 대하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기태는 겉으론 한없이 강한 척 하며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면서도 나약했다. 그는 희준에게 거듭 사과를 하며 불안을 감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희준은 자신의 불안을 완전히 굳혀서 기태를 대한다. 희준의 입장에서는 기태야말로 자신의 불안을 극도로 내보이며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또한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미성숙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동윤. 그야말로 제일 미성숙한 인물일 것이다. 시종일관 기태와 희준의 갈등 속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일방적으로 희준의 편만을 들었을 뿐. 또한 기태의 마지막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일 성숙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꽤나 반전이었다. 동윤의 말이다.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있잖아 가식적인 인간 싫다고. 근데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네가 역겨우니까 다 너 떠나는 거야...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혼자 남게된 동윤.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는 없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빛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관계'에 있어 그 시작과 끝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파수꾼>은 10대 친구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bleak night에 던져진 이들은 비단 미성숙한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규명하고 있는 거대한 bleak night에 던져진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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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영화는 토끼 사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이 토끼 사냥하듯 한 친구를 몰아서 쓰러뜨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음 날 그 친구는 시체로 발견되고 학교에서 다른 한 친구가 용의자로 심문을 받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용의자 친구 준(이다윗 분). 


그는 학교 지하의 숨겨진 곳으로 가 죽은 친구 유진(성준 분)을 입에 올리며 졸업 축하 파티를 하려는 몇몇 친구들에게 비아냥 댄다. 그 친구들 또한 맞받아친다. 이들은 서로에게 죽은 친구를 죽인 놈은 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준은 가져온 수제 폭탄으로 그들을 위협하며 솔직히 말하라고 한다. 그러며 영화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 잘 살려내


영화 <명왕성>은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을 잘 살려 충실히 계보를 이어나간 듯 보인다. 독립영화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공간 뒤틀기이다. 먼저 현재를 보여주고, 이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 말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고, 관심 밖의 소외된 일들이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경우에도 눈을 돌리곤 한다. <명왕성>은 사회 부조리와 함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끝모를 경쟁에 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그리는 동시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군대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청소년기의 미성숙한 소통에 의한 파멸을 예리하게 집어낸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결정적으로 이들 독립영화가 추구했던 시공간 뒤틀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


준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명문사립고로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는 1% 안에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성적이 형편 없다. 룸메이트 유진은 전교 1등인데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과학 시간에 그와 반대되는 명왕성 이론을 주장하고 만다. 선생님이 질문한 명왕성의 퇴출 이유를 두고 유진은 당연한 듯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제일 멀리 있고,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으며,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준은 작고 소심한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던진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명왕성은 퇴출일거야... 하지만 그 기준이 뭐지? 당연한듯 태양계를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옳지 않아."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그렇지만 준은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반대한 태양계 중심 사상에 찬성하는 자기 모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전교 톱 10의 스터디 그룹 오답 노트. 준은 룸메이트이자 전교 1등, 그리고 스터디 그룹의 수장격인 유진에게 찾아가 오답노트를 구걸한다. 


이에 스터디 그룹 아이들은 준에게 아주 악질적인 미션을 부여한다. 행인 퍽치기와 성추행격 행위, 그리고 선생님에게 복수하려는 이유에서의 수제 폭탄 제조까지.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유진은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데...


영화는 기존의 여러 학원물 콘텐츠에서 차용한 듯한 분위기와 캐릭터, 그리고 문제의식을 여기저기 잘 버무려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자칫 판타지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죄책감 없이 이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19살 고3에 불과한 학생들이 피말리는 경쟁 시스템에 내몰려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명왕성을 퇴출시키듯, 톱 10 안에 올라온 학생을 아주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살인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난 19살 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 고발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는 형식을 띤다. 비록 무한 경쟁에 내몰렸다고 하지만, 거기에 어떠한 편법이 존재하지 않고 정당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방법임과 동시에, 획일성과 절대성을 띄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이 꿈틀댄다. 한 번 높이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남들의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 너무나 싫고 두렵고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는 횡포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리라. 


영화 <명왕성>은 그 방법으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인 살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실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명왕성>은 단순히 학원 부조리 비판 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부조리 비판으로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7등인 준을 보고 유진이 말한다) 1등 하는 거 어렵지 않아. 너 위로 66명만 죽이면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이 영화의 감독은 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큰 그림을 잘 그렸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직하게 끝까지 끌고 나갔다. 비록 예측이 가능하지만 문제의식 또한 잘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로써 가지는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왕성 퇴출 이론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단지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래서 준이 천체과학에 특기가 있는 부분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그리고 준이 갑자기 그리고 악질적인 미션을 수행하면서까지 오답노트를 가지려 하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준이 아이들을 찾아가 함께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다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유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게 된 이유도 충분치 않다. 이 또한 준과 마찬가지로, 유진이 죽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장치 없이, 인기 절정의 출연진 없이 이 정도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앞날이 밝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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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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