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트럼보>



영화 <트럼보> 포스터 ⓒ그린나래미디


진정 멋진 삶이란 무엇일까. 명예로운 직업에 돈 많은 부자까지 겸하고 있는 삶이나, 자신이 믿는 신념을 죽는 한이 있어도 부러뜨리지 않는 삶이 멋진 삶이라는 진부한 생각은 접어 두자. 단조롭기까지 하다. 최소한 이 둘을 합친 삶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적이 많을 것이기에 무엇 하나는 잃을 게 뻔 하다. 그럼에도 그런 삶을 산다면, 더욱이 많은 걸 가졌었고 많은 걸 잃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정녕 위대하다고 하겠다. 역사상 수많은 위인들에게서도 그와 같은 삶을 많이 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올바르지만 힘겨운 삶을 살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런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고전으로 뽑히는 <로마의 휴일>의 각본가 '돌턴 트럼보'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제일 몸값 높은 작가로 부자였다가, 자신이 믿는 신념을 부러뜨리지 않아 힘든 삶을 살게 되지만, 흔들리지 않고 힘든 삶을 연명해가면서도 신념을 끌고 나가, 결국은 위대한 삶의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위대한 인물, 트럼보의 매력적인 인생 역전


영화 <트럼보>는 이런 그의 인생 역전을 아주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매력적인 실화와 인물과 스토리를, 영화가 더욱 매력적으로 풀어내어 '완벽하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트럼보 같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오른다. 그 재능, 그 유머, 그 신념, 그 뚝심, 그 아량, 적어도 영화로는 그 어떤 단점도 찾을 수 없다. 


때는 1940년대 후반 미국, 냉전이 막 시작될 때다. 트럼보는 공산주의자로, 그를 위시한 영화계 종사자들은 모임을 결성해 스텝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감독과 작가와 주연배우 몇몇에 비해 터무니 없는 임금을 받는 영화계 종사자들이 지극히 합당한 요구를 해왔고 그에 지극히 합당한 지지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불어닥친 반미활동조사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 



영화 <트럼보>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



1947년 미 의회 반미활동조사위원회로부터 소환을 받고 출두하는 트럼보. 그는 진보적 판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대법원의 판결을 믿고, 출두하여 '공산주의적인 발언'을 한다. 그건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었다. '사상의 자유는 의회도 빼앗을 수 없다.'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사람은 바보나 노예일 뿐이다.' 하지만 진보적 판사가 사망하는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지고, 아니나 다를까 트럼보를 위시한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할리우드 텐'은 감옥에 가게 된다. 


이 감옥행은 당연하게도 트럼보와 트럼보 가족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그는 이제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그의 가족 괴로운 삶을 살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하게 될까. 더욱더 자신을 불사르며 공산주의자로서의 적의를 불태울까, 백기투항해 다시 예전처럼 부자로서 살게 될까. 그것도 아니면 실의에 빠져 술로 날을 지새울까. 


그의 선택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며, 자신의 꿈만을 좆으며, 자신의 신념만을 우선시 하며, 가족을 온전히 부양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트럼보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대신, 자신을 버렸다. 그렇지만 자신을 버린 이상, 굽히지 않은 신념이 펴지지도 않았다. 


바로 가족들이 그에게 신념을 되찾아 준다. 오욕의 세월을 함께 견뎌내준 가족들이 말이다. 그가 자신을 버리고 모든 시간을 바쳐 부양하고자 했고 어찌 부양할 수 있었던 가족들이 말이다. 



영화 <트럼보>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



악당도 영웅도 없다. 인간이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그를 다시금 지지하고 믿음을 건넨 건 여러 가지로 읽힌다. 무엇보다 자신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뒤를 든든히 받혀주는 가족이 있기에, 자신의 신념을 영화에 투영시키고도 두려울 게 없었다. 자신을 되찾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는 신념과 가족을 전면 배치하면서도 자신으로 하여금 항상 뒤를 받히게 하여, 무엇보다 자신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시종일관 던지고 있다. 


가족들을 부양한다는 일념 하에 오직 일에 파묻혀 오히려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 가장을 받아들이고 가장 또한 가족을 위한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건, 가족 해체의 위기를 훌륭하게 해쳐나가는 일면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트럼보가 지향하는 바가 모든 이의 행복이라고 했을 때, 그 저반에는 가족이 있다. 


더 큰 의미로, 살인자, 배신자, 동조자, 피해자들 모두 '희생자'라는 한 그룹이라고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이들 간의 대승적인 결합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이들 모두를 같은 '희생자'이자 한 '가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보는 세월이 흘러 어느 수상식에서 이와 비슷한 논조의 연설을 한다. 


"악당도 영웅도 없어요. 희생자만이 있을 뿐이지요."



영화 <트럼보>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고 하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절대 트럼보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고난의 날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자신 없으니까. 다만, 그런 삶이 '올바르다'라는 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건 꼭 말하고 싶다. 


나, 가족, 우리.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삶. 거기엔 트럼보의 말처럼 악당도 없고 영웅도 없다. 그렇다고 그의 말처럼 희생자만 있지도 않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알기 위해 조금의 노력이라도 기울일 수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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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 읽기] 님 웨일즈, 김산의 <아리랑>


<아리랑> 표지 ⓒ 동녘

역사의 주인공은 언제나 승리자들이다. 그들은 그 대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패배자들을 완전히 말살해 버림은 물론이고 역사적 사실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물론 위대한 승리자들도 많다. 인류 역사에 크나큰 공헌을 한 인물들 말이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군사 독재 시절. 그 당시 세계는 여전히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주의 진형과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진형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었고 공산주의라면 치를 떨고 적대시하도록 세뇌 당했던 시대였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독립 운동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발자취가 지워져 버렸고 변질되어 알려졌다(필자도 어렸을 땐 그런 사람들이 독립 운동을 했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 중에 한사람인 김산. 나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아리랑>(동녘)의 주인공이다. 


이 책은 본래 1941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84년에 최초로 비밀리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군부 독재 시절로, '공산주의자'의 생애를 아주 긍정적으로 그린 이 책은 바로 '용공서적'으로 분류되었다. 출판사 사장은 기관에 불려갔고, 번역자는 가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1990년에야 비로소 고 리영희 선생을 통해 책의 원저자인 '님 웨일즈'와 연락이 닿았고, 정식 출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산의 불꽃 같은 삶에 못지 않은, 책의 불꽃 같은 출간기이다. 


김산의 어린 시절과 일본 유학 그리고 만주


그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평양 교외에서 태어났다. 앞으로의 그의 인생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언제나 성격이 격렬했고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셌는데, 그런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어떤 일로 인해 아버지께 대들고 어린 나이에 집을 나온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또한 기독교를 믿었는데 일생 안 기독교 사상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김산이 15세 되던 1919년. 그의 인생에 크나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 사건인 3·1 운동이 일어난다. 그는 그의 정치 경력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회상한다. 김산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준 3·1 운동.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전국 규모의 운동으로 파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선언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일으켰다. 김산은 그 당시 기독교계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 기독교는 천도교와 함께 3·1 운동의 중요한 대중적 조직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조선은 빠졌고 결국 일본의 총칼에 의해 무산되었다. 


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총독까지 바뀌게 된다. 김산은 그 이후 일본의 정책을 '발톱을 숨긴 제국주의'라고 표현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3·1 운동은 식민지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바뀐 정책에 의해 수많은 친일파들이 생겨나고 조선 국내에서는 더 이상의 전국 규모 독립 운동은 이뤄질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대신에 망명자들의 손에 의해 해외에서 운동이 일어나고 김산도 후에 합류한다. 


김산은 3·1 운동의 실패 후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정한다. 공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는 직접 돈을 벌면서 공부를 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고학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들의 조국을 식민지 삼은 나라에서 말이다. 온갖 수모와 멸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사상'의 원천인 모스크바를 향해 일본을 떠날 것을 결심한 김산. 일단 조선으로 건너와 작은 형의 돈을 훔쳐 압록강을 건넌다. 오랜 여정 끝에 목적지에 도달하고 군사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아마도 배움은 김산의 인생을 관통하는 또 다른 무엇이었을 것이다. 


이후의 인생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항상 무엇을 배우고 가르친다. 이에 반해 필자는 아직까지 '인생의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은 많이 봐왔지만 말이다. 비록 책으로 밖에 볼 수 없지만 김산이 나의 인생의 스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자, 그럼 지금부터 펼쳐질 중국 대륙에서의 드라마 같은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김산의 선택, 상하이


당시 중국의 상하이는 망명자들의 도시라고 불렸다. 상하이에는 프랑스 조계가 있어 일본 경찰로부터 어느 정도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래 국제적인 도시였기 때문에 이미 많은 망명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이다. 김산은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상하이에 도착해서 베이징으로 떠날 때까지도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다. 상하이에 도착해서는 민족주의자였고 이후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수많은 사상들을 접하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유명한 군인인 이동휘 장군. 민족주의자들의 두 거성인 안창호와 이광수. 걸출한 테러리스트들인 김약산(김원봉), 오성륜.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김충창. 1921년에 베이징으로 간 김산은 그곳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공부한 후에 상하이로 다시 돌아오고 공산주의자가 되기를 결심한다. 


죽을 때까지 공산주의자였던 김산.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떠나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한국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예전 군사 독재 시절에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의 삶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공산주의가 역사의 패배자가 되었는데 과연 김산은 패배자일까 하는 생각도 함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죽어간 그를 단지 공산주의자라는 시각에서만 보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김산의 삶과 한국 근현대사


김산은 근대적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렸을 때 집을 나와서 일본, 만주를 거쳐 상하이, 베이징 등지에서 공부를 하였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전근대적인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라 배움이 한계가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앎을 공유할 수 없었다. 


그의 결혼과 여자에 대한 생각 또한 굉장히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남자와 여자를 평등한 시선에서 바라보았는데 이는 안창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틀에 박힌 생각을 버리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경제적, 생물학적 측면에서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사람들도 배워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김산이 공산주의자가 되고 처음으로 한 혁명 활동은 중국 대혁명에 참가한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전근대적 산물인 봉건군벌을 타도하기 위해 북벌을 행하였는데 여기에 김산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 혁명가들이 참가하였다. 이렇게 김산의 삶을 지배한 생각들은 전근대적인 관념에서 벗어난 근현대적인 사상의 한 전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혁명가였던 그는 중국혁명만이 조선의 독립혁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한평생 중국혁명을 위해 힘썼다. 그가 추구한 진정한 혁명은 중국, 조선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의 인민 혁명이었다. 중국 대혁명에서 알 수 있듯이 봉건지주들에 의해 착취 당한 사람들과 계급적으로 하위 층에 속해 있었던 상인들 그리고 노동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한편으로 김산은 당시 동아시아를 삼키려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해 동아시아 인민 해방에 힘쓴 김산. 자연스레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체 게바라 또한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항해 라틴 아메리카 인민 해방을 위해 죽어갔다. 더구나 그는 쿠바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인 이었다. 김산과 상당히 겹쳐진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쿠바 역사에서도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 받는 반면, 김산은 동아시아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김산은 그래도 이 책 님 웨일스(<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거 스노'의 부인)의 <아리랑>으로 재조명되었지만, 그러지 못한 독립 투사들이 너무나 많다. 


김산은 진정한 혁명가였다. 일찍이 한국 근현대사에 이런 인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살아서 조선 독립을 봤으면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독립 후 좌와 우를 아우르려고 했었던 여운형이나 김규식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그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선혁명을 위해서는 중국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중국의 힘을 빌려 독립을 쟁취하려는 행동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한계, 그리고 그 시대에 있어서 조선의 한계였다고도 생각된다. 


비록 한계가 있었고, 실패를 맛보았지만 그가 생각하고 노력했었던 건 분명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또한 그는 단순히 생각만 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였다. 가르쳤고 연설하였고 글도 썼던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몰되고 왜곡된 일제시대 36년. 그 한복판에서 김산과 또 다른 수많은 김산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 인민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투쟁의 시대를 살다간 김산. 그의 삶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남과 북으로 분단 되어진 60년이 된 지금. 일본의 제국주의는 패망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패권주의가 한국을 짓누르고 있는 지금.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김산의 사상과 한국 현대 사회


김산은 공산주의자가 되기 전 많은 사상들과 사람들한테서 영향을 받는다. 어린 시절 믿었던 기독교의 윤리사상, 그의 영원한 마음 속 스승이었던 톨스토이의 인본주의 사상,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상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런 다양한 사상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그가 인민 해방을 위해 혁명 활동을 했지만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 활동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수많은 지도자들은 국민을 1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사상과 체제를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는 게 아닐까. 반면 김산은 오직 인민을 위한 혁명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친일로 전향을 하는 와중에서도 그는 배신하지 않았다. 오직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배신을 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일진대. 


그의 이러한 이념을 초월한 인민을 위한 활동들. 현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전 동아시아 혁명을 통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중요하다. 지난 정권에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되었는데 그 모든 책임을 북한에게만 돌리고 노력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정권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점점 뻗쳐오는 중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앞장서서 남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현재는 중단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 북한 인민을 위한 대북 원조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핏줄이 아닌가. 말로만 다자주의를 외치지 말고 실제 외교에서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었으면 한다. 이건 꼭 알아야 한다. 현재 시대는 김산이 살았던 그 당시의 시대와는 다르다. 지금은 대항하기보다는 동반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산이라면 서슴없이 이런 주장을 하고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의 가감 없는 모습이 그리워진다. 


김산의 혁명 활동


한편 중국 대혁명에서 시작된 김산의 혁명 활동은 광둥코뮌, 하이루펑 등지로 옮겨진다. 책에서 그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그걸 읽으면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생각났다. 필자가 대학교 입학하기 전 겨울에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비록 소설이지만 사실에 입각하였고 따로 조사를 해보니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었다. 또한 왜곡된 사실들도 많은 걸 알고 나서 상당히 허무하였던 기억이 든다. 


김산은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혁명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침과 동시에 단체를 조직해 활동하였다. 글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고 대중들 앞에서 연설함으로써 대중운동을 선봉에 서서 이끌었다. 대부분의 혁명 활동이 글, 말,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그는 활동과 실천을 병행하였던 것이다. 


그의 혁명 활동의 밑바탕에는 기독교 윤리 사상과 톨스토이의 인본주의 사상이 깔려져 있었기 때문에 폭력을 지극히 혐오하였다. 장제스 정부의 무차별적인 백색테러에 대해 치를 떨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재판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어 반혁명적인 분자들을 재판하게 되었을 때 처형판결에 대해 참기 힘든 불쾌함을 느끼곤 한다. 또한 무장봉기에 바탕을 둔 혁명에 대해서도 반대를 한다. 이처럼 그는 투쟁의 시대에 태어나 충실하게 혁명에 힘을 쏟았지만 평화를 사랑하였다. 모순적인 생각이지만, 아니꼬운 시선으로 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랑 고개를 넘다


김산은 1930년과 1933년에 일본 경찰과 남의사에게 체포당한다. 그 당시에 일본의 정책은 친일파 육성을 기본골자로 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친일파로 전향하거나 중국에서는 장제스 정부의 앞잡이가 되기도 했다. 김산도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전향을 하여서라도 출소하여 인민을 위한 혁명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 배신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고 말이다. 


결국 그는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그러며 혁명 활동이 실패로 끝나는 일이 있더라도 차라리 정직하게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는 우리 편이며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p.425~426 참고). 


김산은 시대가 요구하는 걸 잘 알고 거기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지금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노력에 의해 이룩한 땅 위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투쟁과 노력은 그 사람들이 하고 있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단지 자신의 광명을 위해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삶을 따라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가 걸어간 길을 우리도 바라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생각을 하고 글로 쓰고 있지만 행동에 옮겨 실천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산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들이 행했던 실천의 길이 떠오른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제는 수면 위로 올려, 모든 사람의 눈에 띄어야 할 필요가 있다. 수십, 수백 년 뒤에야 재조명되길 바란다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해여-승리했을 뿐이다.'(p.464) 


김산은 <아리랑>에서의 마지막을 이렇게 시작한다. 또한 그는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 역사가 알아준다고 하였다. 패배와 좌절이 무엇이 다른가. 패배는 좌절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또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고. 그는 수많은 혁명 활동에서 실패하고 두 번이나 체포 당했으며 부인과의 결혼생활까지도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실패해본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역사 속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또한 하위계층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핍박과 설움을 참아내고 지금까지 왔다. 아직도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실패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겨낸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알아봐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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