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와 그의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는 1902년 10월 2일에 처음 조우합니다. 브로트의 강연인 <쇼펜하우어 철학의 운명과 미래>에서 였죠. 독일 대학생들의 독서 및 연설 모임에서의 강연이었습니다. 브로트는 쇼펜하우어에 이어 니체를 강연했는데, 니체를 몽상가로 매도했다고 합니다. 이에 카프카가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계기로 우정이 싹텄다고 하네요. 


이후 막스 브로트는 프란츠 카프카를 외부세계로 이어주는 유일하다시피한 다리 역할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같이 해외로 여행도 떠나고, 이곳 저곳 같이 다녔으며, 여러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즉 카프카가 내면으로만 파고 들어가 폐쇄적으로 치닫는 걸 막았던 것입니다. 



왼쪽: 막스 브로트, 오른쪽: 프란츠 카프카



다음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쓴 편지입니다. 너무 긴 관계로 중략과 후략을 하였습니다. 



프라하의 막스 브로트 앞

프라하, 1904년 8월 28일 이전으로 추정


친애하는 막스, 

특히 어제 수업을 빼먹었기 때문에, 자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싶네. 왜 내가 가면무도회의 밤에 자네들과 함께 가지 않았는가를 설명하려면 말이야. 더구나 어쩌면 내가 약속까지 해놓았으니. 


용서해주게, 나도 스스로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고, 자네와 P.와 함께 하룻밤 지내고 싶었던 게야. 왜냐하면 어떤 산뜻한 대위점이 생성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 자네가 가끔 여러 사람들이 있을 때 그러하듯 - 그러면 그는 반대로 이성적인 개관으로 결정적인 것을 들이댄다는 식이지. 그는 예술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그런 개관을 지녔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생각했을 때, 나는 자네의 동아리, 자네가 속한 그 작은 동아리를 잊고 있었어. 한 이방인의 첫눈에는 그것이 자네를 긍정적으로 보이게 하지 않을 게야. 왜냐하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자네에게 의존해 있고, 부분적으로는 자네와 무관하기 때문이야. 의존적인 한, 그것은 마치 준비된 메아리를 지닌 민감한 산처럼 자네를 에워싸고 있다네. 그것은 듣는 사람을 화나게 하지. 눈이 면전에 있는 한 사물을 조용히 다루고 싶은 반면에, 그의 등은 두들겨 맞는다네. 두 사람을 위한 향유력이 사라질밖에. 특히 만일 그가 특별히 노련하지 않다면 말이야. 


그러나 그 동아리가 독립적인 한, 그들은 심지어 자네에게 한층 더 해를 기칠 거야. 왜냐하면 그들은 자네를 왜곡시키고, 그러면 자네는 그들로 인해서 제자리가 아닌 곳으로 밀리지. 자네는 듣는 사람에게 바로 자네로 인해서 반박되는 게야. 만일 자네 친구들이 시종일관이라면 좋은 기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친구들 무리는 오직 혁명에서만 유용하지. 만일 탁자 주위의 흩어진 불빛 아래 정도의 봉기일 뿐이라면, 그들은 그것을 수포로 만들어버리지. (중략)


내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만일에 자네가 내가 자네와 더불어 그 저녁을 보내지 않았던 일로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더욱 슬퍼질 것이기 때문이라네, 이 편지에 대해서 나를 용서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후략)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발췌, 솔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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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35세가 되던 1917년, 각혈 후 폐결핵으로 진단 받게 됩니다. 그는 회복을 위해 쉬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해 프라하에서 취라우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그곳에서 누이동생 오틀라가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죠. 카프카는 자신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들에게 혐오스럽게 인식될까봐 걱정하며 언제나 외모적으로 깔끔하게, 태도적으로 멋지고 지적이게 유지했다고 합니다.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솔출판사



오스카 바움 앞

[취라우, 1917년 10월 초]


내 상태가 그전보다 더 좋은지 나쁜지 난 전혀 모르네. 그냥 전처럼 잘 지내고 있네. 지금까지는 그렇게 쉽게 견디고 그리고 그렇게 억제할 만한 통증이 없었고, 만약에 이 미심쩍은 것만 아니라면 말이네. 하긴 그게 아마 그것일걸세. 나는 어쨌거나 보기에 좋아서, 어머니가 일요일에 오셨는데, 역으로 마중을 나가니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더군.(그런데 말이지, 부모님은 결핵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시네. 그러니 조심해야 하네. 그렇지 않은가. 만약에 자네들이 그분들과 우연히 마주칠 경우 말일세.) 지난 2주 동안에 나는 체중이 1킬로그램 반이나 불었네(내일 세번째로 무게를 달아볼걸세). 잠은 매우 다양하게 자지만, 그러나 평균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네.



막스 브로트 앞

[취라우, 1917년 10월 초]


친애하는 막스, 내 병 말인가? 터놓고 하는 말인데 나는 그것을 거의 느끼지 않네. 열도 없고, 기침을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고, 통증도 없네. 숨은 짧아,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눕거나 앉아 있을 때는 괜찮아, 걷거나 어떤 일을 하는 동안 나타나지. 이전보다 두 배쯤 급히 숨을 쉬네.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고통은 아니라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어. 결핵이란, 내가 지니고 있는 그런 종류의 결핵이란, 특별한 질병이 아니고, 특별한 이름값을 하는 질병이 아니라, 다만 그 의미에 따르자면 보편적인 죽음의 싹이 잠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강화된다는 것이야. 3주 동안에 몸무게가 2킬로그램 반이 불었고, 그리고 이처럼 이동하기에는 상당히 무거워진 나 자신을 만들어버렸네.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발췌,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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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 동안 극심한 내면 고통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다음의 짧은 편지들에도 그런 상태가 절절히 나타나 있는데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그는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요. 20세기 초의 찬란한 유럽의 한복판에서 그는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요. 

(참고로 저는 여행에서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묘지와 동상.

막스 브로트 앞 

[그림 엽서(레호보트 식민지). 

빈, 우편 소인 : 1913년 9월 9일]


친애하는 막스, 무자비한 불면증, 감히 손을 이마에 대지 못하겠어, 그랬다간 열 때문에 놀랄 테니까. 도처에서, 문학 그리고 회의에서 도망치고 있어, 드디어 가장 흥미롭게 되어가는데 말이야. 

프란츠



펠릭스 벨취 앞

[그림 엽서. 빈, 우편소인 : 1913년 9월 10일]


즐거움은 별로, 많은 의무, 더욱 많은 권태, 더욱 많은 불면증, 더욱 많은 두통 - 이렇게 살아가오. 그러다 바로 지금 10분 동안 조용히 빗속을 바라보고 있어요, 호텔 마당에 내리는 비를

프란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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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제일 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 앞으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친구로 유명하지만, 그 자체로도 유명한 작가이자 평론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죽은 후 원고를 모조리 불태워버려 주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무시하고, 오늘날 유명한 카프카의 책들 원고를 태워버리지 않은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카프카의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카프카는 그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까요.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감상하시죠. 수많은 편지 중 한 개를 골랐습니다.


왼쪽이 '막스 브로트' 오른쪽이 '프란츠 카프카'



프라하의 막스 브로트 앞

프라하, 1910년 3월 12일 토요일


나의 친애하는 막스, 타르노브스카에 대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네, 그 대신 비글러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겠어. 그런데 비글러의 판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들의 판단이지. 왜냐하면 그에게서 이미 여론이 시작되거든. 나를 위해서 시 두 편이 준비되어 있다는 소식은 자네의 상상 이상으로 나를 기쁘게 하네. 그러나 나는 위안이 필요해. 이제 제때 위통과 자네가 원하는 것이 시작되었네, 너무 강해서 뮐러식 운동으로 다져진 사람에게나 맞을 정도의 통증이네. 오후 내내 얼마가 되든 소파에 누워 있었네. 위장 속에다 점심 식사 대신 차 몇 모금을 담은 채, 그러고는 한 15분쯤 잠들고 깨어나서 한 것이라곤 고작 날이 저물지 않음에 화내는 일이었네. 4시 15분경에도 밝은 기운이 떠돌더라니까, 그건 그냥 단순히 그치지 않으려들었지. 하지만 이어서 날이 어두워졌지만 그 또한 좋지 않았어. 막스, 처녀들에 대해 불평하는 일인랑 그만두세, 그네들이 자네를 괴롭히는 고통이야 좋은 고통이지. 아니라면 자넨 그것을 버텨서, 그 고통을 잊게, 힘을 얻고, 하지만 나는 뭔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를 겨냥하고 있어. 나를 겨냥하는 것이라면 더는 내 소유가 아니지. 예컨대 나를 - 이건 순전히 하나의 예인데 - 내게 고통을 주는 것이 내 위장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더는 내 위장이 아니라, 어떤 낯선 자의 소유물, 나를 몽둥이질함으로써 재미를 삼는 그런 자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 그러니 모든 것을 가지고서,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급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에 저항하고 힘을 소모하는데, 그것은 다만 급소들을 더 잘 누르는 것이 되지. 때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져, 하늘은 아시겠지, 대체 내가 어떻게 여전히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느냐 말이지, 그 고통이 내게 야기하는 그 절박함에 넘쳐서 도무지 수용할 수가 없게 되는데 말이야.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나도 그것을 알지, 난 정말이지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고. 난 정말이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을 모르는 인간이야. 그러니까 나는 소파 위에서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네, 제때 그쳤던 밝음에 대해서 화를 내지도 않았고, 어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네. 그러나 친애하는 막스, 믿고 싶지 않더라도 날 믿어야 하네. 이날 오후의 모든 것은 꼭 그런 식으로 나열되었기에, 그러니까 내가 만일 나라면, 그 모든 고통들을 꼭 그런 순서로 느낄 수밖에 없었노라고. 오늘부터는 중단 없이 더 많이 말할걸세. 한 발의 사격이면 최선의 것일 게야. 나는 자신을 내가 있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 쏘아 없애고 있네. 좋아, 그것은 비겁일 게야, 비겁은 물론 비겁으로 남겠지. 어떤 경우 다만 비겁만이 존재한다 해도 말이야. 한 경우가 여기 있네, 여기에 하나의 상황이 있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없애야만 할 상황이. 그러나 어느 누구도 비겁으로 그것을 없애지 않네, 용기는 비겁에서 다만 경련을 불러일으키지. 그리고 경련 중에 머무네, 걱정 말게나.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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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연인 '헤트비히 바일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역시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카프카답게 '편지쓰기'에 대한 내용을 실었네요. 

"편지 쓰기란 마치 해변의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감삼하시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솔


트리쉬의 헤트비히 바일러 앞

프라하, 1907년 9월 초


무엇보다도, 은애하는 이여, 그대 서신이 늦게 도착했소. 그대는 편지에 쓴 내용을 철저히 생각해봤군요. 나는 그것이 더 일찍 도착하도록 강요할 수가 없었소. 한밤중 침대에 앉아 있는 것으로도, 옷을 입은 채 소파에서 잠들거나 낮 동안에 평소보다 더 자주 집에 오는 것으로도 소용없었소. 내가 그 모든 것을 중지하고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던 오늘 저녁까지 말이오. 그런데 서류함 속에서 몇몇 서류들을 만지다가 그 안에서 그대의 서한을 발견했다오. 진즉 와 있었지만, 누군가가 먼지를 터는 동안 조심하느라 서류함 속에다 넣어둔 것이었소. 

편지 쓰기란 마치 해변의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러나 그 물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아니었소. 

그러니 이제부터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읽으며, 나의 문자 대신 나를 직접 그대 눈으로 바라보아주오.

A가 X에게서 편지를 받는다고 상상해보오. 그리고 매 편지마다 X는 A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다고. 그는 계속 점층법으로, 다가가기 힘든 논거, 어두운 색조로, 그 논거들을 끌어내어 어느 고도까지 이르는가, A가 거의 벽 안에 갇힌 느낌을 갖게 되고, 논거들의 결함은 그를 눈물나게 할 정도까지 만듭니다. X의 모든 의도는 처음에는 감추어져 있고, 그는 다만 자기로서는 A가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인상을 받지만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고 말할 뿐이오. 뿐만 아니라 A를 위로하지요. 무엇보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A는 불만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 사실은 Y도 Z도 안다. 결국에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불만의 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그를 보면, 그의 온갖 상태를 보면, 아무도 반박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자세히 관찰하면, 심지어 A가 충분히 불만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자기 처지를 X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검토하게 되면, 그는 더 살아갈 수도 없을 테니까. 여기에서 이제 X는 그를 더는 위로하지 않지요. 그리고 A는 봅니다. 열린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X가 최고의 인간이며 그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구나,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일을 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마지막 순간에조차 얼마나 선량한가,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다니. 그렇지만 한때 불 붙은 빛은 무차별로 비친다는 사실을 망각하다니. 

닐스 리네에서 인용한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리고 행복의 성이 없는 모래는 또. 물론 그 문장은 옳지만, 그러나 흐르는 모래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옳은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모래가 흐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성 안에 있지 않고, 모래는 또 어디로 흐르는가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겠소? 어떻게 나 자신을 응집시켜야겠소? 나 또한 트리쉬에 있으며, 그리고 그대와 함께 광장을 건너고 있소. 누군가가 나와 사랑에 빠졌고, 나는 이 서한을 받고, 그것을 읽는데, 이해하기가 어렵소.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어요. 그대 손을 잡고, 내달으며, 다리 쪽으로 사라지오. 오 제발, 그것으로 충분하오. 

나는 프라하에서 그대를 위해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소, 10월 1일 이후 나는 아마 빈에 있을 테니까요. 용서를 비오. 

그대의 프란츠 K.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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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지인 '오스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 답장입니다. 카프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 편지에서도 그런 성향이 반영된 듯 보이네요.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감상하시죠. 


프란츠 카프카의 김나지움 시절. 맨 위쪽 왼쪽에서 두 번째가 프란츠 카프카. 아래서 둘째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스카 폴락.


쥐레츠 근교의 오버슈투데네츠 성의 오스카 폴락 앞

프라하, 1904년 1월 27일 수요일

친애하는 오스카. 

자네가 소중한 편지를 써 보냈는데, 곧 답장을 쓸 수가, 아예 답장이라고는 쓸 수가 없었다네. 그래서 이제 자네에게 편지를 쓰지 못한 지 두 주가 지났네. 그 자체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이유가 있었네. 첫째는 오로지 심사숙고한 이후에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자 했는데, 이유인즉 이 편지에 대한 회신은 내가 자네에게 써 보냈던 이전의 어느 편지들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지). 그리고 두번째 이유라면, 헤벨의 일기를(약 1,800쪽) 단숨에 읽어냈지. 한편으로 예전에는 아주 몰취미한 것으로 여긴 그 일기를 아주 조금씩 뜯어 읽곤 했는데 그리 되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시작했지. 처음에는 아주 유희적 기분으로. 그러다 마침내 동굴에 사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어. 처음에는 장난삼아 한동안 동굴 입구 앞에 돌덩이를 굴려다 놓는 게야. 그러다 그 돌덩이가 동굴을 어둡게 하고 공기를 밀폐시킬 때 가서는, 그때서야 둔하게 놀라서 정말 열심히 그 바위를 밀어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 말이야. 그러나 바위는 이제 열 배나 무거워졌고, 그 사람은 다시 빛과 공기가 돌아오기까지 불안 속에서 온 힘을 긴장시켜야 하지. 나는 이즈음 손에 펜을 들 수조차 없었다네. 왜냐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빈틈없이 점점 드높게 탑을 쌓아간 그런 인생을, 너무 높아서 쌍안경으로도 거의 미칠 수 없을 그런 인생을 개관하다 보면, 양심이 안정을 찾을 수가 없지. 그러나 양심이 넓은 상처를 입으면 그것은 좋은 일이야.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양심은 물린 데마다 더 민감해질 테니까.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게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게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자네는 정말 행복하군. 자네 편지는 참으로 빛이 나네. 내 생각에, 자네는 예전에 오직 좋지 못한 교제의 결과로 불행했던 것 같아. 그거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늘 속에선 햇빛을 쬐지 못하는 법이니. 그렇지만 설마 내가 자네 행복에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기껏해야 이렇지, 한 현인이, 그 현명함이 자신에게도 숨겨진 채로 살았는데, 한 바보를 만나서 겉보기에 요원하게 아무 관련 없는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네. 이제 그 대화가 끝나고 그 바보가 집에 돌아가려고 했을 때 - 바보는 비둘기장처럼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 다른 사람이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울부짖는 것이야,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왜냐고? 바보의 바보스러움이 어찌나 컸는지, 현인에게 자신의 현명함이 보였던 것이지. -

마치 내가 자네에게 부당한 일을 저지른 느낌이야. 그래서 자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나는 그 잘못을 모르고 있네. 

자네의 프란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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