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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김대중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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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길위에 김대중>

 

영화 <길위에 김대중> 포스터. ⓒ명필름

 

2024년 1월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은 지금 오히려 사회적인 소구점이 더 큰 것 같다. 아무래도 정치 정국이 어느 때보다 요동치고 있기 때문일 텐데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주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김대중은 일제강점기 때 전남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로 나가 해운회사에 취직한다. 광복 후 배를 여러 척 보유할 만큼 사업가로 두각을 보였다. 그야말로 돈을 엄청 벌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졌고 조선인민군에게 붙잡혀 자본가라는 이유로 처형 선고를 받았으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철수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목포로 피난길에 올라 사업을 재개해 다시금 큰돈을 만진다. 와중에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연임을 위해 헌법을 개정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업가 김대중은 정치에 투신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제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연달아 출마해 연달아 낙선한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출마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제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극적으로 당선되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대권 주자부터 반유신 투쟁까지

 

지난 2022년에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를 보면 김대중과 엄창록을 모티브로 삼은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엄창록은 김대중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 나타나 대권에 도전할 때도 곁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 <길위에 김대중>에는 엄창록은커녕 김대중의 오래된 최측근들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김대중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국 현대사 또는 한국 현대사 속 김대중을 보여주는 데 진력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제6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달아 당선되었다. 이후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이미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해먹은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을 하고자 헌법을 개정한다. 이를 막지 못한 야당은 실의에 빠지고 그 사이를 틈 타 40대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이 대권을 시사한다. 그때 김대중 측은 지방을 돌며 전국의 대의원과 접촉했다. 우여곡절 끝에 야당 대권 주자로 꼽혀 대선을 치렀지만 박정희에게 석패한다. 그렇게 김대중은 험난한 정치 인생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3선에 성공했지만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을 필두로 한 야당의 파란을 저지하지 못했다. 신민당이 강력한 제1야당에 되어 박정희가 더 이상 정국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총선 1년 후 1972년 10월,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선언한다. 그렇게 종신 집권으로 나아갔다. 교통사고 치료를 위해 일본에 머물던 김대중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반유신 투쟁을 벌인다.

 

연이어 터지는 인생 최대 위기들

 

김대중은 실리를 추구했고 의회를 중시했다. 한일국교정상화 때 야당의 강경파가 정권 타도의 목적으로 무조건적인 반대를 내세울 때 김대중은 국익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협상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논쟁과 대화, 타협으로 국민의 이익을 지켜나가는 의회 전술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리 추구는 같은편에서 받아주지 않았고 의회 중시는 반대편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일본에 있던 김대중은 1973년 납치당해 죽다 살아난다. 사상초유의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귀국해 바로 기약 없는 가택 연금에 들어간다. 나갈 수 없는 건 물론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어코 나와 1976년 명동성당에서 민주 구국 선언을 한다. 여지없이 바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전국에서 구명 운동이 벌어진다. 

2년 뒤 가석방되어 풀려났으나 이미 박정희는 제9대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오래지 않아 최측근에게 피살당한다. 소용돌이치는 정국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은 세를 제때 또 제대로 규합하지 못하고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다. 그리고 1980년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한편 김대중을 내란음모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전 세계에서 구명 운동이 벌어져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아파갔다. 결국 전두환 정권의 협박 어린 권유에 따라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김대중이 만든 길 위에서

 

김대중은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네 번,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 낙선했으며 71개월 동안 감옥에 있었고 37개월 동안 망명 생활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가지만으로도 고꾸라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을 두고 지역분열주의자이자 빨갱이로 묘사하곤 하는데 어떻게 날조되었는지 이 작품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귀국한 김대중,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미국 저명인사들이 동행까지 하며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의 귀국은 한국을 뒤흔들었다. 정치에 나설 순 없었으나 그의 존재만으로 신민당은 돌풍을 일으키며 강력한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이후 김영삼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에 취임하며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찾아온 1987년 6월 항쟁, 전두환은 두손두발 다 들고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그해 말 치러질 제13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은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한다. 수많은 논란과 함께 한국 현대사 정치 지형을 또 한 번 요동치게 할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십수 년 만에 광주와 목포, 하의도를 방문한다.

<길위에 김대중>은 김대중 다큐멘터리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다룬 2부가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기다려지는 한편 개봉하면 찾아보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다. 김대중과 같은 길 위에 서긴 힘들겠으나 김대중이 만든 길 위에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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