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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전쟁의 한가운데 내던져진 민간인 선원 이야기 <전쟁과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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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전쟁과 선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전쟁과 선원> 포스터.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기 7개월 전 1939년, 노르웨이 베르겐 부두에서 일을 하며 먹고사는 프레디와 시그뵨은 최근 들어 걱정이다. 마땅한 일을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지난 3주 동안 딱 하루만 일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기로 한 그들, 18개월 동안 집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기로 한다. 큰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킬 기회. 시그뵨은 혼자라서 급박하진 않았지만 프레디에겐 처와 세 자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1940년,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노르웨이 상선 수십 수백 척이 소실되고 있는 와중 프레디와 시그뵨이 타고 있는 MS 프로스테닉의 상선도 풍전등화다. 그런 그들에게 노르웨이 국왕의 명령이 하달된다. 영국의 승전을 위해 노르웨이 상선 모두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 선원들은 돈을 벌고자 육지로의 여정을 떠나왔지만 졸지에 참전하게 되었고 육지로 가면 반역자가 될 판이었다.

프레디와 시그뵨 일행은 미성년자 악셀과 여자 한나를 배에서 내리게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돌아와 함께 여정을 계속한다. 그러는 사이 몇몇 동료들은 몰래 도망가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바다로의 항해, 그동안 살아남았던 MS 프로스테닉 상선은 독일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침몰한다. 와중에 살아남은 프레디와 시그뵨, 돌아온 한나도 죽고 악셀은 다행히 구했지만 곧 죽고 만다. 그들은 과연 끝내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지하고 단백한 북유럽 작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전쟁 영화가 매년 빠지지 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 중 하나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필두로 <폭격> <더 포가튼 배틀> <나르비크>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오퍼레이션 피날레> <사서함 1142> <샌드캐슬> <자도빌 포위작전> <워머신> 등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대전까지 가지각색이다. 와중에 <전쟁과 선원>이라는 노르웨이 작품이 공개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전쟁과 선원>은 노르웨이 현지에선 영화로 개봉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넷플릭스에선 3개의 에피소드로 쪼개졌다.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주인공의 여정이 시간 순으로 공간이 계속 바뀌며 계속 되기에 보다 편안하게 볼 순 있겠다. 작품은 기록에 남아 있는 큰 틀의 실화를 바탕으로 디테일의 전부를 창작한 듯하다. 즉 ‘전쟁’ 내내 수십 수백 척의 노르웨이 상선이 소실된 건 맞지만 그중 한 척의 두 ‘선원’의 파란만장 고군분투는 만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매우 쫀쫀하다. 북유럽 영화 특유의 메마른 듯 진지하고 서늘한 듯 단백한 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데 웃음기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고 전쟁 영화답지 않게 액션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긴장감 어린 연출과 시간과 공간을 옮겨 다니는 서사로 중간중간의 긴 여백을 오히려 필수불가결한 개념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믿음직한 영화다.

 

'전쟁'의 거시적 관점과 시선

 

기족을 건사하고자 먼 항해에 나섰다가 전쟁이 터져 타국(영국)의 승전을 위해 강제징용된 선원의 이야기, 얼핏 고고하고 또 멋져 보인다. 악마 같은 나치가 일으킨 세계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일개 개인의 삶을 오롯이 바친다니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고고하고 멋지기는커녕 이윽고 살아내고자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투쟁을 할 뿐이다. 강제로 징용을 당했으니 전쟁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한 몸 바쳤다고 하기도 힘들다.

<전쟁과 선원>은 제목의 두 단어 ‘전쟁’과 ‘선원’을 따로 또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의 거시적 관점과 시선, 그리고 선원의 미시적 관점과 시선.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독일 잠수함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어 매년 수십 수백 척이 침몰된 노르웨이 상선,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전쟁 때문에 죽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 속에 그들도 있다.

한편 프레디와 시그뵨 그리고 악셀과 한나 등 선원들은 전쟁을 몸소 체험하며 사지를 넘나들고 있지만, 전쟁의 양상이 어떤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도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 배경의 <1917>과 맞닿아 있다. 전쟁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것보다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던져진 개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선원'의 미시적 관점과 시선

 

<전쟁과 선원>은 전쟁 영화(드라마)라 할 만하지만 전쟁 하면 으레 떠올릴 이른바 ‘전쟁 액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바다가 배경이니 만큼 블록버스터급 제작비가 투입되지 않는 이상 보여 줄 수 있는 것에서 한계가 있을 텐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쟁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지루함을 느끼기 힘든 건 순수하게 연출의 힘 덕분이다.

전쟁의 변두리라도 할 만한 바다의 배 위에서 선원들이 오롯이 느끼는 바가 총알과 포탄이 빛발 치는 전투 현장의 긴장감 못지않다. 주지했듯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공백들을 긴장감의 재료로 활용하는데, 전쟁의 한가운데인 만큼 그 사이 어떤 일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망망대해의 배 위이니 혹여나(천운이 따라야 하니 ‘혹여나’가 맞는지 모르겠다) 침몰하면 도망갈 데가 없다. 육지와 달리 뒤가 없는 것이다.

전쟁보다 선원에 포인트가 맞춰진다. 전쟁의 참혹함이나 폐해를 직간접적으로 보여 주려는 여느 영화보다 더 와닿는 부분도 있겠다. 잘못된 명령으로 아군을 공격해 큰 피해를 낸 실화 바탕의 영화 <폭격>과 결이 같다. 전쟁에서 가해자, 피해자가 있을 테고 승리자, 패배자가 있을 텐데 전쟁의 시작과 끝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여느 민간인들이야말로 진짜 피해자이자 패배자가 아닌가.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는 전쟁 발발 시 무고하게 죽어 나가는 민간인일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폐해를 굳이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아주 잘 알고 있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부추기는 게 아니라 억제해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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