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래에서 철학을 찾았을 것이며, 고래 기름에서 시를 찾았겠는가..." 『런던 매거진』, 1851년
1851년 영국 런던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에 의해《고래》라는 이름으로 세 권짜리 삭제판 소설이 출간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같은 해 11월 14일 미국 뉴욕의 하퍼 앤드 브라더스
(Harper&Brothers) 출판사에 의해《모비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다. 인류가 낳은 또 하나의 위대한 콘텐츠 탄생의 순간이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마로니에북스)라는 책에서 소개될 정도이다.
허먼 멜빌의《모비딕》
이 소설은 19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는 허먼 멜빌의《모비딕》이다. 허먼 멜빌은 단순한 소설가이자 작가의 위치에서, 사상가로써의 위치까지 도달해 있다. 이처럼 지금에 와서는 소설을 논할 때, 나아가 인류 역사를 논할 때 절대적으로《모비딕》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허먼 멜빌의 살아 생전, 그 빛을 보지 못했다. 빛을 보지 못하기는 커녕, 평단과 대중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허먼 멜빌은《모비딕》을 발표하기 전 이미 5편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였고《모비딕》은 당시 미국소설의 중요한 주제였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묘사했다는 측면에서, 이토록 철저하게 외면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소설계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는 허먼 멜빌의《모비딕》이 왜 당시에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어떻게 재조명되었을까? 뒤늦게 빛을 본 대표적인 케이스. 한 번 천천히 따라가 보자.
허먼 멜빌의 삶
허먼 멜빌은 181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멜빌가는 수입 관련 일을 하고 있었는데, 1830년에 파산하게 된다. 이후 허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를 중단하고 일을 해야 했다. 20세에는 선원이 되어 영국의 리버풀까지 다녀왔고, 22세에는 포경선의 선원이 되어 남태평양까지 나아갔다.
허먼 멜빌
그는 1840년 포경선원으로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의 한 조그만 항구인 '뉴베드퍼드항'(보스톤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거리)을 찾은 적이 있다. 이곳은 19세기 포경산업의 전진기였고, 포경산업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에 속했다. 또한 25세에는 군함의 수병이 되어 귀국하였다.
이 때의 경험이 이후 그의 작품들의 주 소재와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허먼은 뉴베드퍼드항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모비딕》에서 차용한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모비딕》에서 상세하게 묘사한 정경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허먼은《모비딕》때문에, 초기 해양소설로 얻은 평판을 깎아먹고 만다. 위에서 언급한 책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에 의하면 "대중적 취향에 비추어 보았을 때, 멜빌은 작살질이 오가는 모험 소설 속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기 보다 줄거리에 억지로 삽입한 인상을 주었던 듯하다." 한 마디로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철학적인 상징들이 엄청나게 포진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할 것이다.
《모비딕》이 출간 당시 외면당한 이유
《모비딕》이 출간 당시 외면당한 이유는 생각 외로 많다. 첫 번째, 국내 최초로《모비딕》무삭제판을 완역 출판한 '작가정신'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면 "출간 당시에는 어렵고 낯설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라고 하였다. 아주 간단하지만 그 이유를 제일 집약적으로 말해 놓았다. 평균적으로 독자(대중)들은 어려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 150년전 미국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낯선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이야 사전 마케팅으로 낯섬에 대한 인식을 새로움으로 바꿀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허먼 멜빌의《모비딕》ⓒ작가정신
두 번째,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형식이었다. 이 소설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영국의 도서관에 가서 이 소설을 '19세기 미국 소설' 파트에서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당시 영국의 도서관에서 '소설' 파트가 아닌 '고래학' 파트에 비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소설답지 않은 부분들 때문이다.《모비딕》은 분명 엄연한 소설이지만, 고래백과사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래관련 지식으로 가득차 있다.
세 번째, 19세기 미국의 동향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후발 열강으로 19세기에 비로소 세계시장으로 진출한다. 또한 1861~1865년까지는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이어 미국은 내부정비와 대륙개척에 힘쓴다. 이후 1898년에 일어난 스페인과의 전쟁에 승리하여, 본격적으로 세계 질서 조정 역할론을 들고 진출한다.
이 와중에《모비딕》은 1800년대 중반에 출간되었다. 당시에 미국 국민들은 개국된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나라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토록 심오한 상징과 철학적 개념들로 빡빡하고,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모비딕》이 재조명된 이유
이토록 철저하게 외면당한《모비딕》은 허먼 멜빌 사후 30여년 후에 재조명된다. 뒤늦게 그의 책과 사상에 경도된 평론가 위고가 그를 재조명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명한 일화는 평론가 위고의 일화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1993년 8월 19일자를 보면,
"《모비딕》이 보여주는 상징적 비유, 인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색이 위고에 의해 세상에 전달되면서 비로소 그(허먼 멜빌)은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평론가 게이 윌슨 앨런은 "오늘날 멜빌은 단순한 해양모험 소설가가 아닌 인간의 새로운 통찰력을 천착한 작가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에이협 선장의 끈질긴 복수심의 발로인 자연과의 싸움보다는 이슈마헬의 자연에의 경외감이 오늘날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20세기 초반에《모비딕》이 재조명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이 또한 20세기 미국의 동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허먼 멜빌이 1891년에 죽었으니, 그의 사후 30여년 후면 1920년대가 되겠다. 그 시대, 미국은 유례없는 최고의 활황기였다. 이후 1930년대가 되면서 유례없는 최악의 대공황이 찾아왔다.
최고의 활황기였을 때나 반대로 최고의 대공황 시기였을 때나, 통찰력 있는 무엇을 찾게 되어 있다.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는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최악의 위치에 있을 때는 어떻게 활로를 개척해 나가야 하는 막연함에.
또한《모비딕》에는 철학적 상징의 나열 뿐만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에이협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괴물과도 같은 모비딕(백경)과 맞서 싸우는 혈투가 그려져 있다. 통찰력을 넘어서, 활로 개척에의 힘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모비딕》은 소설 역사에 남을 비극 중에 비극에 속한다. 선장을 포함해, 화자인 이슈마헬을 제외한 모든 선원이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당시 '로스트 제네레이션' 작가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완벽한 소설로써 부각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야말로 수십년을 앞서서 태어난 불운한 작가이자, 불운한 작품이었다. 반면 사후에는 최고의 소설로 추앙받게 되었으니, 허먼 멜빌은 어떤 기분일까?
*'뒤늦게 빛을 보다'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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