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쯤, 일명 '글쓰기 열풍'이 불었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스마트폰 열풍'이 전국, 아니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인데 사람들이 글쓰기처럼 아날로그적인 행동을 하니 신기하면서 한편 이해가 되고 한편 이해가 도무지 안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 모습이 반대급부적 성질의 것이라기보다 필요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한없이 스마트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도 스마트해진다고 생각들 하지만 편해질 뿐 스마트해지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인간이 진정 스마트해지기 위해선 직접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쓰기야말로 가장 적합한 활동이다. 더불어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글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글쓰기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필요성.
이런 글쓰기의 필요성은 일면 책쓰기까지 뻗어나갔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어 책을 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엘리트화되지는 못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순 있지만 누구나 이름을 날리진 못한다. 즉,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그들과 계속 가야할 이유는 없다. 자비출판 이미지만 배가되어 하등 좋을 게 없다. 그래서인지 당시 활개를 치던, 글쓰기가 아닌 책쓰기와 작가되기 책을 쏟아내던 이들이 언젠가 단번에 사라졌다. 시대에 편승했던 이들은 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독립출판 시대를 열다
여기, 시대에 편승하는 이들이 아닌 시대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비출판은 거의 출판사를 통해 진행되었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게 아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가 출판사에 돈을 지불하던가 책을 일정 정도 산다는 전제 하에 책을 내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이러진 않았고 대부분의 출판사의 경우 종종 그랬고 몇몇 출판사가 전문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다가 출판사를 끼지 않고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방식이 전자책에서 본격 시행되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지나 누구나 출판사 사장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자책 시장 자체가 죽어버렸고 어쩔 수 없이 출판사 사장이 되는 건 종이책이어야 하게 되었다.
자비출판 아닌 독립출판, 사실 우린 누구나 독립출판을 해본 기억이 있다. '문학 소녀' '문학 소년'이 아니더라도 끄적거린 것들을 모아 간단히 제본해 하다 못해 가족들에게라도 보여준 적이 있지 않은가? 독립출판은 그런, 출판사는커녕 중앙도서관을 통해 정식으로 ISBN을 받지도 않은 정식 '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중에는 작정하고 작가로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작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뒤로 하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말 아닌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사람이 많다. 전자보다 후자가 출판계의 현실에서도 훨씬 많을 것이다.
이기주 작가와 백세희 작가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전자에 속한다. 얼마전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이 책의 출판사 사장이 이기주이고, 지은이가 이기주이다. 즉, 독립출판이라는 얘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자 출신의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인 그는 이 책의 성공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출간 후 몇 개월 동안 전국의 서점을 순회하며 서점 직원과 잠재적 독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어필했다고.
사실, 지금 불고 있는 독립출판 열풍에 이기주 작가는 들어 있지 않다. 그는 독립출판 열풍의 일환이 아닌 해마다 한 권 정도는 신이 선택하는 케이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최근 절대적인 인기의 유시민 <역사의 역사>를 밀어내고 종합 1위에 올라섰다는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현재 독립출판 열풍의 선두주자이자 지난 10년 독립출판계가 낳은 가장 기록적 흥행의 결과물이다.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텀블벅을 통해 자비로 책을 냈다는 그녀, 많은 인기를 끌자 1인 출판사 사장이 빠르게 컨택했고 정식 출판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1인 출판이 독립출판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시작은 완벽한 독립출판의 모습을 띄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왜 이 책을 선택한 것일까. 수없이 많은 보증된 출판사의 보증된 작가들의 책들이 아니고. 바로 그 점 때문이 아닐까. 5년 전에 불었던 글쓰기 열풍이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듯이 말이다. 백세희 작가가 쓴 자전적 에세이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백세희 작가가 선택한 독립출판 방식 자체가 신선함과 함께 보편적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여기에서 주체는 단연코 '나'이다.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
독립출판 축제가 있다고 한다. 2009년에 온라인, 2010년에 오프라인으로 서점을 열고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을 위주로 판매하는 1세대 독립서점의 상징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가 그것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최소 1만 명 넘게 찾아오는 인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야말로 독립출판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 축제에 열광하는가. 거기에 독립출판의 현재와 미래가 있고,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생각해본다. 독립영화와 비교해보자. 독립영화는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감독, 스텝, 배우가 자체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만들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 장벽이 높다. 그 장벽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아닌 영상 정도에서 비벼볼 수 있겠다.
반면 독립출판은 글 좀 쓰고 돈 좀 있으면 된다. 글이야 어떤 식으로든 평생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그저 소소하게 주위에 돌리는 식이라면 그 어떤 글이든 가능하다. 출판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해외여행 한두 번 갈 돈이면 될 듯하다. 누구나 작가가 되는 걸 넘어서 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인 것이다. 거기엔 이 시대가 낳은 성향이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채널 '책'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개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조회수, 광고 등의 일차적 수익과 책, 방송 등의 이차적 수익으로 먹고 산다. 대다수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남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걸로 만족한다.
개방되어질대로 개방되어져 포화 상태에 있는 SNS 채널은 더 이상 이전까지의 메리트를 선사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소회되었던 '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개념이 독립출판이라는 양식과 만나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즉, 그들에게 책은 또 하나의 채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품질 좋은 채널인 것이다.
아무리 '누구나'가 앞에 붙지만 여전히 책에는 엘리트적인 면모가 있다.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다. 이는 채널로서 아주 크나큰 메리트를 지닌다. 출판사 관계자들이나 책 관련 종사자들은 그저 추상적으로 이 열풍을 바라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이들이 많아졌고(독립출판의 작가), 적게 벌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독립출판의 사장)는 정도로.
나도 출판사 관계자이거니와 책 관련 종사자이기도 한 바, 이 정도의 시각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책은 완전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앞에 '누구나' '나도' '한 번쯤'이 붙는다. 더 이상 책은 출판계와 작가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아니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폐쇄 아닌 개방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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