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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기억은 사라질 거지만 기억하고 싶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리뷰]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아버지조차 말도 못 할 아기 시절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내가 기억할리는 없다. 그런 할머니가 나는 익숙하고 그런 할머니의 형상이 그려지는 건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었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아버지한테 전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모두 정확할리 만무하다. 머릿속 어딘가엔 정확한 기억이 있지만 능력 상 꺼내지 못하는 것이든, 애초에 걸러서 기억하거나 어느 한 순간 또는 마지막 순간만 기억하는 것이든, 원본의 기억이 아닌 편집본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마치 역사와 같지 않은가. 사실도출에의 노력을 추구하지만, 영원히 그렇게는 불가능하다. 영화 은 기억의 취사선택과 기억의 이어짐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주제를 가장 앞.. 더보기
SF로 풀어낸 소통, 시간, 사랑... 인류보편적 고전이 될 영화 <컨택트> [리뷰] 비극적으로 끝날 것만 같은 OST와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들의 부조화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듯한, 그런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의문의 물체, 친숙한 UFO라고 하기엔 뭔가 이질적인, 12개의 그것은 '쉘'이라 불린다.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고, 18시간마다 문이 열린다. 그때 비로소 그들과 접촉할 수 있다. 언어학자 루이스 박사(에이미 아담스 분)는 정부에서 파견된 콜로넬 대령(포레스트 휘태커 분)과 함께 쉘에 근접해 있는 기지로 간다. 이론물리학자 이안 박사(제레미 레너 분)도 합류한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등을 언어학적으로,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게 이들의 임무다... 더보기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인연과 기억이 준 선물 <너의 이름은> [리뷰] 2017년의 시작 '저팬'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인 '저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힘이 강하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일본 내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르키는 말이라니, 그 대단함이 새삼 엄청나 보인다. 저패니메이션은 1900년대 초에 최초로 생겼지만, 그 본격적인 전성기는 1960년대 그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서이다.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그는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을 만들었다. 이후 여러 명작들 덕분에 그 대상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확대된 저패니메이션이다. 1980년대에는 현대까지 저패니메이션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출현했다. 그는 극장을 점령하며 저패니메이션의 영향력을 그 어떤 문화보다 우위에 .. 더보기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부여하고 싶은 애니메이션 <쿠보와 전설의 악기> [리뷰] 작품 퀄리티와 흥행이 항상 비례하진 않는다. 외려 퀄리티가 좋은 만큼 흥행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대중적인 면모를 저멀리 두곤 하기 때문이다. 흥행으로 옳고 그름이 판가름나는 상업 시장에서 봤을 땐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다. 그 대표격이 여기에 있다. 2005년 미국에서 탄생한 '라이카 스튜디오'. 단 세 편의 영화로 '스톱모션'의 강자로 발돋움했다. 그중 첫 번째 작품인 은 작품 그 자체로서도 빛을 발해, 절대적인 지지와 찬사를 받았다. '스톱모션'은 프레임마다 촬영 대상의 움직임에 미세한 변화를 주어 촬영한 다음 그 이미지들을 연속으로 재생하는 방식으로, 사람이나 동물 또는 기계 등에 센서를 달아 대상의 움직임 정보를 인식해 영상에 재현하는 방식인 '모션캡쳐' 방.. 더보기
글을 시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기억한다> [서평] 글이란 게 시작과 끝이 가장 어렵고 그만큼 중요하다. 일단 어떻게든 시작하면 만들어지는 게 글이고, 어떻게든 끝을 맺으면 일단은 자리를 털 수 있는 게 글이다. 그 중에서도 더욱 어렵고 중요한 게 시작이다. 시작을 해야 끝을 맺을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수많은 글쓰기 교본들에서 글쓰기 시작 비결을 전한다. 글쓰기 책을 많이 접하지 않았거니와 글쓰기 시작 비결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데, 최근 읽은 책에서 괜찮은 비결을 얻었다. 이남희 소설가가 내놓은 (아시아)에서 글쓰기를 아주 쉽게 시작하는 방법 중 하나로 '나는 기억한다'를 제시했다. "'나는 기억한다'고 쓴 다음 마침표를 찍지 말고 잠시 기다려본다. 다음 말이 나오지 않으면 소리 내어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아마도 뒤따라 이어지는 말이.. 더보기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날을 기억하는 것, 이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 <소년이 온다> [지나간 책 다시 읽기] 5.18은 내게 결코 가깝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승복 기념관을 해마다 찾았고, 그 '투철한 반공정신' 때문에 희생된 이승복 어린이의 정신을 길이 새기며 치를 떨었다. 5.18은 저 멀리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승복 어린이와 일가족이 처참하게 죽어간 그 모습만 떠오를 뿐 그 이면의 정신과 사상이 떠오르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 폭력과 상처만 깊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5.18이 다가올 수 있었다. 5.18을 온전히 폭력과 상처의 입장으로 보아야 5.18은 상당 기간 논란거리였다.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에 정치적으로 다양하게 이용해먹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곳엔 폭력과 상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더보기
<스틸 앨리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도 연기는 남을 것이다 [리뷰] 알츠하이머병. 각종 콘텐츠의 단골 손님이다. 2004년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영화 , 같은 해 같은 달에 개봉해 진검 승부를 벌였던 영화 , 2013년 김영하 작가의 소설 , 그리고 작년 2014년 장예모와 공리의 재결합 까지. 이 밖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기억의 소멸'은 그 자체로도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알츠하이머병 못지 않게 루게릭병 또한 단골 손님인데, 알츠하이머병이 정신적으로 기억이 쇠퇴해 소멸되어 가는 거라면 루게릭병은 육체적으로 세포가 쇠퇴해 소멸해 가는 것이다. 20세기 공전의 베스트셀러 이 대표적이다. 이 병이 무서운 건 거의 무조건 사망에 이른 다는 점이다. '기억의 소멸'과 '육체의 소멸'. 우열을 가릴 수 없겠지만, 인간으로서 기억의 소멸이 더욱 치명적일 것.. 더보기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 그 섬뜩한 마지막은? [서평] 김영하의 신작 25년 전쯤 살인을 그만두고 개점휴업에 들어간 일흔의 늙은 살인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병수로 프로페셔널 살인자였다. 살인 충동이나 변태 성욕 따위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쾌감을 위해 살인을 해왔다. 그리고 뒤처리도 아주 깔끔해서 열여섯에 처음 살인을 한 후 수십 명을 죽였지만, 경찰은 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자꾸 넘어지고 실수하고 잊어먹는다. 딸 은희의 권유로 병원에 가 보았다. 검사를 하니 알츠하이머라고 한다. 치매란 말이다. 그렇게 점점 기억이 사라지고 혼란이 찾아온다. 그 혼란 속에서 동네에 여대생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제발 우리 은희에게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알고 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설가 김영하의 신작 (문학동네)은 알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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