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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홀로코스트'에 해당되는 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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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노인 존 뎀얀유크 vs 잔혹한 학살자 <공포의 이반> 2019.11.25
  • 위대한 실화가 전하는 가족, 동물, 유대인을 향한 무한 애정의 의미 <주키퍼스 와이프> 2017.10.27
  • 마지막 한 줄이 선사하는 우정의 총량은 모든 걸 뛰어 넘는다 <동급생> 2017.03.27
  • <죽음의 수용소에서> 극도의 시련 끝에 찾아오는 또 다른 시련의 의미는? 2014.11.15
  • <쥐> 현존 최고의 그래픽 노블을 만나다(18) 2013.12.11

평범한 노인 존 뎀얀유크 vs 잔혹한 학살자 <공포의 이반>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1. 25. 08:0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공포의 이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11월 말경, 독일 검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에 설치한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있었던 '한스 H'를 기소했다. 유대인 학살을 도운 혐의다. 나치 독일 패망 70년이 지났음에도 홀로코스트 조력자를 추적해 처벌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몇 년 전에도 아우슈비츠 경비원 출신 2명에게 유죄를 판결한 바 있다. 


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존 뎀얀유크' 유죄 판결이 나온다. 본래, 나치 전범에게 유죄를 판결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확실한 조력 또는 행위의 증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판결을 계기로 홀로코스트 조력자 처벌 가능 범위가 넓어졌다. 물론 지금에선 살아 있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살아 있어도 90세를 전후한 노회한 몸이 되었을 테지만, 정의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게 중요하다 하겠다. 


존 뎀얀유크는 누구일까. 그는 2011년 5년 징역형의 유죄 판결을 받기 훨씬 전, 일찍이 1985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공포의 이반' 재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평범한 66세 노인이 돌연 기소된 것.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트리블링카 강제수용소에서 가스실 문지기로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는 엄청난 죄목이었다. 


'공포의 이반' 존 뎀얀유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은 1985년 존 뎀얀유크가 돌연 기소되어 재판을 치르는 일련의 과정과 후일담을 다룬다. 35년 전 당시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던 재판 과정을 거의 그대로 전해주며, 당시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관계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금에야 존 뎀얀유크가 2011년 유죄 판결을 받은 것만이 중요하게 전해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기소된 뎀얀유크는 1988년 미국 시민권이 박탈되어 이스라엘로 송환된다. 그곳에서 1962년 아이히만 재판 이후 홀로코스트 재판 최대의 화제를 뿌리며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그가 그동안 미국에서 지낸 삶이 너무 평화롭고 온화했기 때문이리라. 가정에선 한없이 인자한 가장으로, 일터에선 한없이 성실한 직원으로, 지역 사회에선 그보다 문제 없을 수 없는 일원으로 있었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한 입으로 말하길, 그는 절대 '공포의 이반'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단순히 명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 살인을 했을 뿐 아니라, 자의적으로 학살보다 더 잔인한 고문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뎀얀유크는 흔들림 없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재판에 임한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잔혹한 학살자와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아닌가. 최악의 홀로코스트 조력자와 한없이 인자하고 성실하고 문제 없는 평범한 노인의 대결 양상이 화제를 뿌렸을 테다. 


치열한 재판 공방


원고 측에서 내놓은 증거물은, 존 뎀얀유크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ID카드와 증명사진이다. 그리고 트리블링카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 전문가들은 증명사진이 존 뎀얀유크와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생존자들은 존 뎀얀유크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포의 이반은 존 뎀얀유크여야 하고, 존 뎀얀유크는 공포의 이반이어야 한다. 


하지만 피고 측 변호인단의 반박 또한 만만치 않다. 그들 역시 전문가들로 하여금 증명사진이 존 뎀얀유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ID카드 자체에 의심을 제기해 소련이 교묘히 만들어낸 것임을 밝히고, 생존자들의 신빙성 떨어지는 증언 과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몇몇은 치매 증세를 보이고, 몇몇은 공포의 이반을 향한 적대감과 복수심을 존 뎀얀유크에게 향하게 하고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존 뎀얀유크는 이스라엘 하급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정의는 살아 있었던 것인가. 반면, 뎀얀유크의 인척들은 쇼크에 빠진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재판으로 돈과 시간과 공력을 쏟아부은 것도 그렇지만, 한없이 다정다감했고 재판에선 더없이 여유롭고 당당했던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니 말이다. 믿기 힘든 결과였다. 그들은 곧바로 항소한다. 


진실은 당사자만 알고 있다


항소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러시아 KGB의 문서가 세상에 공개된다. 뎀얀유크 변호인단은 KGB 문서에 주목, 거기에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다. '진짜' 공포의 이반을 찾은 것. 그렇다는 건, 원고 측의 증거물과 증언들은 자의든 타의든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이다. 결국 1993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과 합리적 의심으로 존 뎀얀유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15여 년이 흐른 2009년, 존 뎀얀유크는 다시금 미국에서 추방되어 독일로 향한다. 2011년 묀헨 법정은 존 뎀얀유크가 소비보르 강제수용소 경비원으로홀로코스트 조력자로서의 혐의가 있음을 확신하고, 5년 징역형을 판결한다. 이듬해 2012년 존 뎀얀유크는 양로원에서 사망했다. 7년 후 201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이 되던 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자세히 그려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반박이 오고 간 재판의 일련 과정을 지켜보고 또 수십 년이 지난 후의 당시 관계자들의 생생한 말을 들어보면, 존 뎀얀유크를 향한 100% 확신에 찬 단죄를 내리기가 힘들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진실은 당사자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도 한 편에서만 뎀얀유크와 공포의 이반을 대하지 않는다.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주장 사이를 오가며 심도 있게 다룬다. 


작품에 교묘히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뎀얀유크를 위해 모든 걸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한 사위가 말하길, '그때 그 시절 아버님(존 뎀얀유크)처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어느 누가 아니할 수 있었겠느냐.'고 한다. 일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지만, 엄연히 틀린 말이다. 그런가 하면, 존 뎀얀유크의 유죄 판결이야말로 정의라고 말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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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공포의 이반, 나치 독일, 재판, 전범, 정의, 존 뎀얀유크, 진실,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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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실화가 전하는 가족, 동물, 유대인을 향한 무한 애정의 의미 <주키퍼스 와이프>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0. 27. 08:00



[리뷰] <주키퍼스 와이프>


제목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 엄중한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영화사 빅



흔한 소설의 구성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또는 '기-승-전-결'을 소설을 위시한 콘텐츠들에서 그대로 발현하는 건, 이제 식상하다 못해 능력의 부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롭고 참신한 걸 원하는 이 시대에 형식의 파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보수(변하지 않는 것)에 가깝고 보수가 편한 인간의 성향에 부합하는 건 오래전부터 내려온 구성과 형식이다. 주제와 소재가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경우엔 더욱 그러할 것이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최고의 화두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는 샛길로 새면 안 되는 성역이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열연한 <주키퍼스 와이프>는 동물을 향한 무한애정과 함께 홀로코스트를 비당사자이지만 가장 위험하게 관련된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전통적인 구성방식을 정확히 따른다. 평화-위기-위기 속 평화-파멸에 가까운 상황의 연속-모든 걸 되돌려 놓은 결말. 


홀로코스트 당시의 위대한 이야기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당시 300명의 유대인을 숨겨주고 탈출시킨 자빈스키 부분의 위대한 실화를 다룬다. ⓒ영화사 빅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전운이 조금씩 감돌며 전쟁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직전이다. 바르샤바 동물원을 운영하는 안토니나 자빈스키(제시카 차스테인 분)와 얀 자빈스키(요한 헬덴베르그 분) 부부, 정녕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동물을 향한 한없는 애정과 구성원들을 향해 불어넣는 활기와 자비가 함께 한다. 


어느 날, 감지는 하고 있었지만 무서운 현실로 다가온 전쟁. 동물원은 파괴되고 동물들이 도망가거나 죽는다. 가까스로 재건하지만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물학자 루츠 헤크 박사(다니엘 브륄 분)가 히틀러 수석 동물학자의 신분으로 바르샤바 동물원에 온다. 동물원을 무기고로 사용하려니 희귀동물들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루츠가 장기적 '적'이 될 것이 확실한 가운데 모든 유대인들을 게토로 강제이주시킨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 중에는 물론 자빈스키 부부와 마음을 나눈 친구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한 명만 지하실에 숨겨놓기로 하지만, 유대인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들은 돼지 사육장을 차린 후 게토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를 돼지에게 준다는 명목 하에 게토로 들어가 아이들을 몰래 빼돌려 탈출시키는 계획을 세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300여 명의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탈출시켜준 위대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빈스키 부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지난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진 '쉰들러'의 위대한 이야기가 단번에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에서는 동물을 향한 사랑과 가족을 향한 사랑, 그리고 불의에 저항하는 마음과 페미니즘이 함께 한다. 


그동안의 홀로코스트와는 다른 시선


유대인 이전에 동물을 향한 무한 애정을 바탕으로 나치의 참화를 이겨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사 빅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량 학살 '홀로코스트'는 우리가 수없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주제다. 그걸 영화로 치환하면, 안타깝게도 '클리셰'가 되기 일쑤이다. 어디서 본듯한... 그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적어도 일 년에 몇 번은 보고 듣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홀로코스트는 적어도 나에게 그때그때 다른 소회를 남긴다. 끔찍함, 분노, 슬픔, 안타까움, 공포 등. 분명 클리셰 '이상의' 진부함을 선사하지만, 클리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맥락에 서 있는 것도 분명하다. 우리가 세월호를 영원히 가슴속에 담아두고 상기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다. 


<주키퍼스 와이프>에서의 홀로코스트는 참으로 담담하다. 영화 전체의 잔잔함을 뛰어 넘는 담담함인데, 그저 유대인이 아닌 핍박받는 유대인을 향한 위로의 차원이다. 하지만 강제이주 당해 죽음에 가까운 곳으로 가는 유대인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줄 땐, 그 잔잔함과 담담함이 슬픔과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이는 곧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과 불의를 향한 저항 정신에 불을 지핀다. 


동물이 곧 가족이고, 가족이 곧 유대인이고, 유대인이 곧 핍박받는 모든 이들의 대변자라고까지 이 영화를 보면 생각이 미친다. 그 자비의 손길은 모든 것에 뻗치는데, 그 시작이 다름 아닌 동물이다. 이런 면에서 그동안 보아 왔던 홀로코스트와 상당히 다른 결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동물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이가 다른 무엇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동물을 향한 애정과 페미니즘까지


영화는 주인공 자빈스키 부인을 매개로 페미니즘의 영역까지 나아간다. ⓒ영화사 빅



영화는 이와 함께 동물을 향한 애정과 페미니즘의 영역까지 나아간다. 동물원이 주배경인 만큼 동물이 주된 소재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 그 자체로 그리 중요한 소재는 아니다. 루츠 박사가 자빈스키 부부, 특히 안토니나에게 접근하는 도구 정도로 사용될 뿐이다. 거기에 안토니나의 성격을 드러내는 도구 정도. 


심지어 동물은 페미니즘을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도구로까지 쓰인다. 희귀 물소의 암컷과 수컷을 강제로 교미를 시켜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루츠 박사의 우생학 발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는 당연한듯 버려지는데, 안토니나가 자신의 불안정한 안위에도 챙겨준다. 


'밖'에서 피말리는 작업을 하는 얀이, '안'에서 쉬운 일이나 하며 루츠와 놀아나기까지 하는 안토니나를 구박하는 모습에서도 페미니즘 목소리의 단 면을 찾을 수 있다. 이 시급한 시기에 안과 밖을 나누는 게 무슨 소용이며, 밖 못지 않게 안에서도 피말리는 작업이 계속 되거니와 안토니나가 루츠를 단번에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얀도 어쩌지 못하는 루츠의 강력한 뒷배가 있지 않은가. 


참으로 다양한 영역의 생각거리 또는 소재와 주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해 선보인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성공적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몇몇 것들은 보여주기 위한 보여줌으로 그칠 용의가 다분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에 부정적 시선을 던질 이유도 없고 빈틈도 없다. 최고와는 거리가 멀지만 최악과도 거리가 먼 한없이 보통에 가까운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그저 보고 그저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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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유대인, 제2차세계대전, 주키퍼스 와이프, 페미니즘,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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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줄이 선사하는 우정의 총량은 모든 걸 뛰어 넘는다 <동급생>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3. 27. 09:40



[서평] <동급생>


소설 <동급생> 표지 ⓒ열린책들



예술에 있어 '소품'과 일명 '작은 걸작'은 한 끗 차이다. 공통적으로 규모가 작거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면 범주 안에 들어갈 것이다. 제89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의 영예를 안으며 2016년 최고의 영화로 우뚝선 <문라이트>는 제작비가 불과 500만 달러에 불과한 작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소품이 아닌, 작은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려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1971년에 초판이 나오고 1977년에 재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프레드 울만의 작은 소설 <동급생>(열린책들)이 재출간 40년만에 한국에 상륙했다. 작은 판형임에도 130쪽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소설은 어떨까. 그 자리에서 완주가 가능하기에 바로 판단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품을 가장한 작은 걸작이다. 


한스와 콘라딘의 꿈 같은 우정, 최선의 행복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을 다니는 유대인 의사의 아들 한스 슈바르츠, 1932년 2월에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소년이 전학온다. 저명한 독일 귀족인 콘라딘 폰 호엔펠스. 뭔가 '다른' 그 소년에게 끌리지 않을 사람이 없었는데, 함부로 다가가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한스는 콘라딘이 친구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한스에게 콘라딘은 우정의 로맨틱한 이상형을 완벽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친구였다. 


한스는 콘라딘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 시작한다. 문학과 체육이라는 극점에 있는 것에서 말이다. 이내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 무엇도 그들의 우정을 방해할 순 없었다. 벽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표식이 나타났다든가 유대계 시민이 괴롭힘을 당했다든가 공산주의자들이 두들겨 맞았다든가 하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있었지만, 슈투트가르트는 평온하고 합리적인 곳으로 보였다. 


화가 출신 작가는 이들의 우정을 너무나도 황홀하게 표현해낸다. 암울했을 당시 독일과 대비되는 자연 풍경은 한스로 하여금 모든 것에 평화로움과 현재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슈바벤의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언덕들은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성채들로 왕관이 씌워졌다'와 같은 구절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가 생각나게 할 정도로 황홀함을 선사한다. 


한스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을 그 시절은 횔덜린의 아름다운 시로밖에 표현해낼 수 없을 정도다. 시에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 인생의 꿈이기도 한 한스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횔덜린이기도 한대, '이탈리아의 전령인 부드러운 미풍이여/그 모든 미루나무와 함께하는 사랑스러운 강이여'(<귀향>의 일부)와 같은 구절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최선의 행복을 표현한다.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이 이 정도였고, 한스의 가슴 속에 맺힌 행복의 이슬이 이 정도였다. 


마지막 한 줄로 위대한 소설이 되다


열여섯 살에 불과한 그들이 알 수 있었을까. 종말이 코앞에 와 있었다는 걸.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 종말의 전조들이었다는 걸. 1930년대 독일에서 독일 귀족과 유대인의 차이는 하늘과 땅 그 이상이었다. 독일을 당연히 조국이라 생각하고 그에 충성을 다하며 자연스레 '독일인'이어도, 히틀러의 광기 앞에서 유대인은 유대인이었다. 그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졸지에 '독일을 망치고 있는 유대인'이 된 한스, 콘라딘과의 불가항력적인 멀어짐도 비슷한 이유였다. 급기야 콘라딘을 피하기 시작한 한스, 다시 외톨이가 된다. 그리고 얼마 있어 미국으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성공을 거둔 한스, 어느 날 제2차 세계 대전 때 산화한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호소문이 도착한다. 산화한 동찰들 리스트를 읽어내리는 한스, 그곳에서 더없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다 읽고 나면, 마치 소설 전체가 마지막 한 줄을 향해 수렴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그 한 줄을 제외한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서 스르르 사라진다. 그러곤 지체없이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되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이 소설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태반을 차지하는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을 그렇게도 아름답게 그린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줄이 주는 충격은 여전하다. 


한 층위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하찮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우정 또는 사랑의 총량이 이리도 엄청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다른 층위를 '동성애'라는 코드로 풀어내 더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반면, 이 소설 <동급생>은 어떨까. 한 층위는 비슷한 수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층위가 주는 수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겠다. 자신과 가족과 시대까지도 뛰어 넘는, 즉 모든 걸 뛰어 넘는 우정의 총량을 보여준 게 아니겠는가. 이 한 줄로 그 어떤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 관련 콘텐츠를 가볍게 뛰어 넘거니와, 위대한 콘텐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 어떤 홀로코스트 작품보다 큰 울림


이 소설이 어줍잖게 홀로코스트를 끼워넣었다면, 명백한 소품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 <동급생>과 굉장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는, 비록 슬프고 아름답고 충분히 위대한 감동과 역설을 선사하지만 '작은 걸작'이 아닌 '소품'이라고해도 무방하다. 누구나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홀로코스트의 중심에서는, 생각보다 그 울림이 작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급생> 이상의 밀도를 가지고 충격을 주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작품을 찾기 힘들다. '홀로코스트' 하면 즉각적으로 영화 <쉰들러 리스트>, 그래픽노블 <쥐>,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의 위대한 작품들이 생각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의 파급력을 느끼진 못했다. 물론, 이 작품들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다 더 심도 있고 치열한 단면을 엿볼 수는 있다. <동급생>은 홀로코스트를 작품의 중심에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욱 끔찍히도 와 닿는다. 


조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더 깊은 우정을 통해 많은 황홀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해내고, 홀로코스트가 주는 절망감을 더 절절하게 전달하여, 더욱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랬다면 마지막 한 줄에서 받는 충격이 오히려 적었을 것이다. 그건 작품이 갖는 위치는 격하시키는 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였기에 이 작품이 위대할 수 있었다. 작가의 탁월한 솜씨와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덕분에 또 하나의 '사랑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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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동급생, 우정, 위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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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극도의 시련 끝에 찾아오는 또 다른 시련의 의미는?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4. 11. 15. 08:00




[지나간 책 다시읽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인류 최대·최악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 본래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행한 초유의 대학살을 말한다. 이는 역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수많은 콘텐츠의 원형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나치 독일이 왜 그런 짓을 행하였는가와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이 행한 짓을 차치 하고, 당시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극도의 '수용소 생활'이다. 홀로코스트 관련의 수용소 생활을 다룬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이 있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이 있을까? 의외로 소설은 찾기 힘들다. 반면 만화와 산문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소설 <쥐>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다. 그나마 시선을 조금 더 넓혀서 <안네의 일기>도 이에 포함 시킬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와 수용소 생활에 관련한 모든 콘텐츠들 중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최고로 뽑는다. 만화의 형식을 빌렸음에도 그 가치가 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전달이 잘 되고, 그 비극의 모습을 오롯이 눈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갖는 완전히 다른 의미


그렇지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갖는 의미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콘텐츠들이 그 당시의 모습을 극악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거나, 거시적으로 살펴보면서 화해를 청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반면 빅터 프랭클은 당시의 경험을 근거로 창조를 해냈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읽은 뒤에 라면 부정하지 못할 '인간 존엄성' 말이다. 


이 책은 책이 가지는 거대한 후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인 정신의학 의사로서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는 그곳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고, 그곳에서 있었던 체험을 그만의 독특한 정신요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안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이나 아드리안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권력과는 다르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바로 이 로고테라피 이론이 어떤 식으로 자신이 체험했던 지독한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더욱 개발하여 견고한 체계로 다듬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수감자들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것을 기록해 놓은 방대한 자료를 조사해 보고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첫 번째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의 '충격', 두 번째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의 '무감각', 세 번째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의 '불신, 비통, 환멸, 슬픔, 환희'이다.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 세 단계


수용소로 끌려 가는 사람들은 '집행유예 망상'을 겪는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과 같이, 그들도 실날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수용소에 들어가 선별의 관문을 통과하고 가축우리 같은 방에서 기다린 후 소독실에 들어 가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후 완전한 벌거숭이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 모두 무너지고 그들은 완전한 충격에 빠진다. 


그들은 이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그 심리적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인데, 이런 반응들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인 '무감각'으로의 이동이다. 


이 무감각을 제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바로 앞에서 보이는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 단계가 되면 그들은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모멸감' 앞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육체적인 학대나 고통은 조금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저자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어떤 삶은 저자에게 의사면 사람들로부터 돈푼깨나 긁어 모았겠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후 수용소에서의 세 번째 심리적 단계로의 이동은 기약이 없다. 수용소에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서는 메마를 대로 메말랐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전혀 못 느끼게 된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그 곳에 정치와 종교와 예술과 유머가 존재하고, 과거를 생각하며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 사랑의 감정은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곧 행복까지도 야기 시킨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은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할 것이다. 대신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럴 때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저자는 매일같이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에 역겨움을 느끼고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렸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지만, 그로 인해 그는 그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방법을 통해 그는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 즉 로고테라피가 말하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들은 갑자기 해방을 맞는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맞이한 해방. 그렇게 찾아온 자유는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토록 꿈꿔왔던 자유인데! 이후 그들은 도덕적 결함을 보인다. 그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일종의 보복 권리로서의 어이 없이 나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이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비통함과 환멸감, 슬픔을 느낀다. 


시련에는 끝이 없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시련을 보상해 줄 만한 행복을 얻었을까? 수용소에서의 극악의 고통을 보상 받을 만한 행복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느꼈을 것이다.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권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인간 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한 사람의 극적인 경험담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가치는 물론 철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정신의학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본문 '추천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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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 무감각, 빅터 프랭클, 수용소, 시련, 유대인, 의미, 의지, 자유, 죽음의 수용소에서, 쥐, 충격,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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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현존 최고의 그래픽 노블을 만나다

제9의 예술, 만화 2013. 12. 11. 07:10




[서평] 아트 슈피겔만의 <쥐>


아트 슈피겔만의 <쥐> ⓒ 아름드리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 그 콘텐츠를 접하고 난 후 받게 될 거대한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주제나 소재가 너무 방대하거나 나의 관심 밖 또는 나의 지식 너머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책을 사놓거나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놓고 차마 보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기만 한 것들이 30%에 육박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아름드리)도 그 중에 하나였다. 우리나라에는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올해로 20년째이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정보 하나만을 접한 채, 최고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남들에게 추천만 해줬을 뿐 직접본 적이 없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


사실 이 만화를 보기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년 작)를 본 뒤 여기저기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상물과 책을 찾아보곤 했다. 그래서 더 이상 홀로코스트에 대한 건 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래픽 노블에 부쩍 관심이 생겨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어김없이 <쥐>가 나오곤 했다. 애써 지나치려 했는데, 한 번 볼 용기가 생겼다. 과연 이 만화는 다를까? 1992년 만화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점,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


기존의 홀로코스트 관련 콘텐츠는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데, 하물며 이 작품도 역시 당사자가 직접 겪은 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가 아니던가? 증명된 콘텐츠에 대한 기대 반, 그만큼 분량의 불안 반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부모 세대가 겪었던 실제 이야기


두 번째 페이지부터 참으로 끔찍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며 아버지가 블라덱 슈피겔만이 아들 아트 슈피겔만에게 해주는 13년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본문 속에서)


이 만화는 저자와 그의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린다. 실제와 마찬가지로 아트 슈피겔만은 극 중에서 만화가이고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홀로코스트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위해 아버지에게 수시로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에 블라덱 슈피겔만은 돈이 되는 만화를 그리지 왜 이런 만화를 그리려 하냐고, 또 홀로코스트에 대한 만화를 그리려면 그때 당시의 상황만 물어볼 것이지 왜 관련도 없는 전쟁 전 이야기까지 물어보느냐고 말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렇게 답한다.


“이건 히틀러나, 대학살과는 관계도 없어요!... 이건 대단한 소재예요. 이게 다 이야기를 더 사실적으로 더 인간적으로 만들거든요. 전 아버지 얘길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어요,”(본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만화로 옮기는 극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앞뒤 사정 또한 빼놓지 않음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바(홀로코스트)를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만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 만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


<쥐>에는 아버지의 회상 스토리 말고 한 가지 스토리가 더 존재한다. 그건 바로 현재 이야기로, 주로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또는 그 전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이런 모습들인데, 블라덱 슈피겔만은 아내를 잃고 새로운 아내를 얻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사이가 좋지 못하다. 아트 슈피겔만 또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에게는 유대인 특유의 생존 방식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고, 극도로 예민하고,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하고, 그래서 너무나도 구두쇠인 점 등. 쉽게 말해 억척스러운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모순적이게도 흑인에 대한 선입관이 깊이 박혀 있다. 자신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으면서도 흑인은 모두 범죄자라는 생각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어찌 이처럼 인간적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끔 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런 그를 포용할 수 없지만, 그의 회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인터뷰를 따오곤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일 또한 마치 제3자 인양 너무나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은 아내의 모든 기록을 불태워 없애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에게 “당신은 살인자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며 심한 말을 하는 것도 그대로 그릴 정도이다.


한(限)이 없는 객관적 리얼리즘


이 만화의 객관성과 리얼리즘은 아버지의 회상에서 정점에 달한다. 지옥문을 해치고 살아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아버지가 회상하는 장면은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서 그에 대한 한(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듣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 눈물이 맺힐 정도로 지옥 같은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당사자는, 정작 아무 감정 없이 일상으로 되돌아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억울하지도 않을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을지라도 그 한을 씻어낼 길이 없어 보이는 데 말이다.


극도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 만화의 특성을 지키려고 일부러 그렇게 고쳤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리얼리즘이 파괴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아버지의 객관적인 회상이 이 만화의 원동력이 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객관성 있는 시선에 힘입어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인가? 저자는 이 만화 1권을 그리는데 자그마치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만화’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오히려 더 천착한 것이다.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을 동물로 표현해 내는 등의 표현기법(이 또한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에 관한 고민을 깊이 했을 수도 있겠다.


이 만화가 단지 홀로코스트만을 다루고 있었다면 여타 다른 콘텐츠와 하등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 만화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의 인간을 보여줌(오히려 이성적인 행동과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과 동시에, 일상에서 살아가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오히려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행동과 사고를 내비치곤 한다)을 보여준다.


이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그것도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성의가 없다거나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논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철저한 객관성과 리얼리즘은 마치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의 발견을 보는 것 같다. 이 만화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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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나치 독일, 리얼리즘, 아트 슈피겔만, 유대인, 제2차 세계대전, 쥐, 책으로 책하다, 홀로코스트
  • BlogIcon 귀여운걸
    2013.12.11 07:41 신고

    저두 최고의 그래픽 노블 아트 슈피겔만의 쥐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의 발견 보고 싶네요^^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27 신고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ㅋ

  • BlogIcon labyrint
    2013.12.11 08:53 신고

    저도 읽어 보고 싶은 호기심이 느껴지는군요.
    어린 시절 만화로 본 유태인 소녀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27 신고

      내용이 어렵더라도 만화책이니만큼 잘 읽이실 거예요.

    • BlogIcon mindman
      2013.12.12 13:39 신고

      헉!~~

      맞춤법이 틀린게 딱 한자가 있어서, 수정하다가 글을 날렸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 BlogIcon 알숑규
    2013.12.11 11:31 신고

    저야 오락만화에 주력하는 입장이지만 쥐는 아무래도 특별합니다. 우리가 가진 만화의 부정적 편견을 뛰어넘은 르포물의 상징이니까요.한편으로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우화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잔혹할 정도의 리얼리즘은 되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할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 만화가 그 명성만큼이나 나름대로 높은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듯 합니다. 당장 저만해도 여러 역사적 사실을 늘어놓는 리뷰글을 보곤 질려서 언감생심 몇년간 볼 생각도 않았거든요;;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29 신고

      분명 특별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화가 가지는 '재미'의 요소는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더군요. 다만 말씀하신 잔혹할 정도의 리얼리즘에서 오는 힘이 워낙 강해서요. 의무적으로 봐야겠다는 마음만으로 봤던 것 같아요.


  • 2013.12.11 12:0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짚시인생
    2013.12.11 13:57

    짚시는 피를 부르는 책은 읽혀지지가 않을 것 같네요.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실화로 그린 그런류의 장르들.....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31 신고

      그래도 이 세계와 인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죠ㅠ

  • BlogIcon 에스델 ♥
    2013.12.11 14:28 신고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이야기군요~
    저도 읽어보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다고
    하신점에 마음이끌립니다.
    오늘도 좋은시간 보내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31 신고

      예, 시간되시면 한 번 꼭 읽어보시길.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느끼실 거예요.

  • BlogIcon 미미르의 샘
    2013.12.11 21:25 신고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드는데 저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망설여지긴 하네요 ㅜ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32 신고

      마냥 잔혹하지만은 않아요.
      그 잔혹성을 미화하지도 않구요.
      한 번 보시길 ㅋ

  • BlogIcon mindman
    2013.12.12 13:38 신고

    그래요. 이것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위대한 한 심리학자의 책을 읽은적이 있어요.
    한 십년전이죠.

    그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기록했던......
    결국은 살아남아서 자기 자신만의 심리학을 완성한......
    프로이트 이후 제 3비인학파의 창시자가 된 인물!

    로고 테라피(logo therapy: 의미 심리치료학)를 정립했던 인물 '빅터 프랭클! 십년전 내 인생을 통째 흔들었던 책이었습니다. 인간에게 극한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을 아우슈비츠에서 결국은 살아남게 했는가?
    이 책은 전반부는 극한상황에서 겪었던 수필집, 후반부는 그것을 심리학으로 승화시킨 기록......

    이책을 읽으면서 세 번이나 눈물을 찔금 쏟아낼 수 밖에 없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추천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 BlogIcon singenv
      2013.12.12 13:27 신고

      아, <죽음의 수용소>...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감히 읽기에 엄두가 나질 않더라구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 2013.12.20 15:4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james1004
    2013.12.21 02:24 신고

    지나가다 들렀어요
    저도 만화책을 많이 모으는 매니아여서, 오다가다 이 작품을 많이 접했는데..
    왠지 다음에 '알라딘'에서 걸리면 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 +
    20년이나 된 작품인줄은 전혀 몰랐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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