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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과잉 시대, 무감정을 추구하는 대신 감정을 배워야 한다 <아몬드> 2017.04.17

감정과잉 시대, 무감정을 추구하는 대신 감정을 배워야 한다 <아몬드>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4. 17. 09:49



[서평] <아몬드>


소설 <아몬드> 표지 ⓒ창비



우리 뇌에는 '아몬드' 모양의 중요 기관이 있다고 한다.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편도체'. 그래서 아몬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사실 아몬드가 한자로 '편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아몬드. 


소설 <아몬드>는 작은 편도체와 각성 수준이 낮은 대뇌 피질을 타고난 아이 선윤재의 이야기다. 대신 그에겐 엄마와 할멈의 깊은 사랑이 있었다. 그런 한편, 선윤재와는 반대로 타고난 아이 곤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겐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둠의 기억들이 있다. 이 둘의 만남과 성장은 강렬한 한편 눈물겹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한 번 잡으니 손에서 놓치 못했다' 등의 식상한 감상평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있는데, 작가의 이력에 눈이 간다. 일찍이 영화평론으로 데뷔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계속 단편 영화를 연출해온 '영화통'이다. 


이창동, 유하 등의 작가 출신 영화감독이나 천명관처럼 영화감독으로의 궁극적 꿈을 꾸는 작가는 익히 봐왔지만, 영화감독 출신 작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소설 같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소설을 더 반기는 추세에 적잖은 이점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무관심으로 귀결될 무감정은, 안 된다


소설은 날카로운 아픔으로 시작한다. 유일한 혈육들이 피칠갑으로 살인당하는 장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나, 윤재. 그러곤 그 유일한 혈육들인 엄마와 할멈과 나의 끈끈하면서도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윤재는 태어나길 감정이 없이 태어났지만, 엄마와 할멈은 그에게 좋은 감정을 끝없이 불어넣어준다. 


시작부터 예고된, 홀로된 윤재. 어린 그지만, 역설적으로 감정이 없기에 잘 살아나갈 수 있다. 그의 곁으로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 다가온다. 엄마와 친하게 지냈다던 건물주 심박사를 비롯해, 풍부한 감정을 지녔지만 어둠의 기억들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곤이, 그리고 윤재로 하여금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본인 도라. 


우린 이들의 모습에서 무감정이 주는 '편리함'과 감정이 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어느새 윤재의 무감정과 무표정이 부럽고 따라하고 싶어 진다. 이면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넘겨 집으려 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윤재가 오히려 소통과 공감을 울부짖는 이 시대에 일종의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또 알고자 하고 느끼고자 하는 지금, 이 감정과다의 시대에 '무감정'과 '무관심'이 나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감정이 없는 게 편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일까. 결국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결될 무감정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일까. 거기에 함정이 있다. 한도 끝도 없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 결국 무감정과 무관심이 우리를 좀먹는다. 


'감정'을 배울 필요도 있다


소설은 다분히 '성장 소설'로서의 콘셉트다. 전체적 느낌은, 성장 소설의 대명사 <데미안>보다는 또 다른 대명사 <호밀밭의 파수꾼>에 가깝다. 세상의 표준과는 너무도 다른 주인공, 그는 혼자다. 하지만 그에겐 빛과 같은 존재가 있다. 그 존재 덕분에 세상의 표준과 가까워진다. 아니, 표준과 다른 것도 표준의 하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아몬드>는 또한 <호밀밭의 파수꾼>의 뜬금없다고 할 만한 마무리도 닮았다. 다름 아닌 빛과 같은 존재와의 해후, 그리고 변화. 한 단계 성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곁에 두고 가끔씩 다시 읽어도 하등 지루할 것 없는 전개와 읽는 이의 마음을 영원히 어루만져줄 것 같은 따스함은 조금 엹다. 


우린 아마 풍부한 감정을 가졌을 거다. 그래서 제대로 감정을 '배운' 적이 없을 거다. 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윤재가 감정을 배우는 모습이었는데, 굉장한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상당히 불쾌하기까지 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그런 마음은 거의 없어졌다. 감정을 배우진 않더라도,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인간은 머리가 온전히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 없지만, 가슴이 머리를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린 내 감정은 물론 남의 감정도 잘 다루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잘 못 다루기도 한다. 감정을 배울 필요도 있는 것이다. 윤재의 무감정이 부러웠다가, 감정을 배우는 윤재가 부러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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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감정, 성장소설, 아몬드, 편도체,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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