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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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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018.10.01
  • 행복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스티븐 킹'의 글쓰기 2014.06.30
  • <번역 예찬> 문학만큼 중요한 번역, 작가와 같은 번역가(9) 2014.02.24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생각하다 2018. 10. 1. 08:00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ixbay



저는 책을 읽습니다. 매일매일 읽으려고 하고 일주일에 한 권 이상은 읽으려고 합니다. 주로 이동 시간에, 그러니까 출퇴근 시간에 읽습니다. 수원과 서울을 오가서 시간이 많죠. 집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독서실에서 각 잡고 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짬이 나는 대로, 되는 대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만듭니다. 작은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단행본 파트를 도맡아 매일매일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매달 평균 2권 이상을 만듭니다. 기획과 편집은 물론 디자인과 홍보까지 관여하고 있어 정신이 없는 편이니 만큼, 내가 책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집자의 일, 교정교열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력을 들이기 힘들어 스스로 글을 만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영화를 보는데, 읽은 책과 본 영화 그리고 만든 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오마이뉴스'에 투고합니다.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지는 6년이 지났으니, 나름 제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게 6년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책을 지금처럼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이고 영화를 지금처럼 보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한 지는 7년이 되었고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


나름 글이라는 걸 많이 써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는 리뷰를 말이지요. 800편 넘게 썼는데, 1편 당 평균 A4 1.5장 정도이니 총 A4 1200장 이상 될 것입니다. 원고지로는 A4 1장 당 10매 정도이니 총 원고지 12000매 이상이 되는 것이죠. 단편소설이 A4 10매 내외, 장편소설이 A4 80매 내외일 터이니 단순하게 양으로만 따지면 단편소설 120편 분량, 장편소설 15편 분량입니다. 양으로 따지면 이런 소설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어 합니다. 꺼려하기도 합니다. 절대적 양에 비해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글에 등급을 매긴다고 했을 때 저는 리뷰를 가장 아래라고 매기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창작'이 없고, 대신 소소한 생각과 정보만이 두서 없이 흐르고 후과 없는 비난이 막무가내로 나갈 수 있습니다. 


창작은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반면 리뷰는 창작된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래 고착되어진 글쓰기는 나에게로 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영원히 나에게 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쩐지 부끄럽고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두렵습니다.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창작에의 욕심과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요즘엔 리뷰도 아닌 것이 창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나의 이야기도 아닌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행이도 재밌습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게 될지 모르지만, 본연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건 쓰는 사람일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쓰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평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저 옮기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말로 옮기지만 저는 말로 옮기는 게 어렵습니다. 대신 글로 옮길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글보다 말이 더 어렵고 또 두렵지 않을까요.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치고 지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말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어려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 보입니다. 


반면 쓰는 것에는 정반대의 입장에 처합니다. 고치고 지우고를 수십 수백 번 해도 시원찮은가 봅니다. 그 기저에는 말보다 글을 훨씬 더 우위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도 글처럼 남길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글은 남기는 걸 기본 전제로 하며 영원히 눈에 보인 채로 존재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저는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편입니다. 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상대적 반목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쓰는 것에 대한 재미 때문입니다. 점점 쓰는 게 재밌습니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창구로 이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글을 숭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글은 그저 창구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저 쓰고자 합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낡은 문구가 있습니다. 비록 오래되고 낡은 문구이지만, 이 문구가 진실하다면 창작을 하기 위해선 남의 글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겠죠. 책을 읽고 만들고 또한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콘텐츠가 된 영화를 보면 이젠 나만의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평론가로 이름 높은 김형수 작가는 '작가수업' 시리즈로 글쓰는 순서(?)를 소개합니다. 우선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저는 선생의 말씀을 계속 쓰다 보면, 계속 쓰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 창작의 순간이 온다는 걸로 알아들었습니다. 


이어 선생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글쓰기를 내보입니다.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이제는 본격적인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에 천착할 듯합니다. 저는 아직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열망하고 있고 꾸준히 무언가를 쓰다 보면 그 순간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저는 그저 쓰고자 합니다. 위에서 글에 급이 있다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쓰는 사람은 그저 계속 쓸 뿐이지요.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남긴 작가도 써야 하고, 누구 하나 읽지 않는 소품도 남기지 못한 작가도 써야 합니다. 저는 우선 그 깨달음부터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 깨달음이야말로 모든 쓰는 사람의 본류이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진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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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스티븐 킹'의 글쓰기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4. 6. 30. 07:01




[지나간 책 다시 읽기]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무수한 밀리언셀러 발표, 세계 35여 개국 번역, 전세계 3억 5천만여 부 판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화려한 기록과 함께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소설가는 누구일까? 그 이름에서 이미 '최고'를 느낄 수 있을 법한데, 그는 '스티븐 킹'이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를 고르라고 하면 <해리포터 시리즈> 또는 <다빈치 코드>를 말하는 게 맞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시리즈 자체로만 5억여 부가 팔렸고, <다빈치 코드>는 1억 부 가까이 팔렸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또는 '성경의 판매량을 뛰어 넘은 책'이라는 비정상적인 수식어는 이 책들의 출현 이후 생긴 것이다. 


그런데 <해리포터 시리즈>나 <다빈치 코드>의 '소설가'는 소설보다 유명세가 한참 떨어진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후속으로 낸 소설들인 <캐주얼 베이컨시>, <쿠쿠스 콜링>이 전작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와 설정 등으로 만들어낸 소설들이 그의 이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이름이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비록 한국에서는 그 명성에 비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영미권에서는 그를 따라잡을 소설가는 단연코 없다 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그의 소설 대신 그의 글쓰기 책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가 제일 큰 히트를 쳤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자서전, 작가 수업, 글쓰기 비법서를 겸하면서 굉장히 실용적이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뉜다. 이력서(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를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 연장통(글쓰기에 필요한 자세와 도구들), 창작론(작가가 되고자 할 때 필요한 구체적 방법), 인생론(생명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한 체험과 그에 따른 창작에의 깨달음)이다. 


이 중에서 이 책이 여타 글쓰기 책과 구별되는 파트는 '이력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2/5에 해당하는 분량의 이 파트는 작가가 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왔는지 서술하며 그 안에서 글쓰기와 작가에 대해 은근하게 말하고 있다. 그의 체험이 자체로 작가 수업으로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작가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며 어떤 글을 쓰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이 환경에 의하여, 또는 자기 의지에 의하여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작가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자질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조금씩은 문필가나 소설가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그 재능은 더욱 갈고 닦아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밖의 '연장통' 파트나 '창작론' 파트는 말 그대로 글쓰기의 실전에 해당한다. 글쓰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또는 들어가서 어떤 도구를 써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다만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소설가답게 스토리를 뼈대로 삼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한 눈에 확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 


그의 설명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 놓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주 쓰는 연장들 순서대로 배치를 해야 한다고 한다. 맨 위부터 차례로 '낱말', '문법', '문장', '문단', '형식', '문체'의 순이다. 그러며 웬만해서 수동태, 부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근심과 허위 의식을 벗어던지라고 강력하게 '부탁'한다. 지극히 그의 주관적인 생각들이지만, 그가 기준점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글쓰기는 창조적인 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침실처럼 집필실도 자기만의 공간이고 꿈을 꿀 수 있는 곳이다. 글쓰기에서든 잠에서든 우리는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낮 동안의 논리적이고 따분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정신과 육체가 매일 밤 일정량의 잠을 자듯이, 깨어 있는 정신도 훈련을 통하여 창조적인 잠을 자면서 생생한 상상의 백일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훌륭한 소설이다."


그가 말하는 창작론의 기본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동의하고 동의하며 또 동의한다. 그러나 이 명제만 믿고 무작정 읽고 쓰기만 해서는 좋은 작가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스티븐 킹은 작가가 되고자 하지 않아도 누구나 학생 때 한 번 들어봤을 만한 말을 하고 있다. 소설의 삼 요소인 '서술', '묘사', '대화'. 창작론의 태반을 이 삼 요소의 설명에 할애한다. 이는 정말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자세한 설명이다. 


한편 그의 소설은 웬만큼 읽은 팬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이 설명의 거의 모든 예가 자신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즉, 스티븐 킹 소설 출간의 뒷 이야기를  하며 작가 수업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베스트셀러' 소설가 다운 발상인가? 그러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요약은 놓치지 않는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모든 내용은 결국 두 가지로 귀결된다.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1999년 산책 중에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다. 무릎 아래에서 적어도 아홉 군데가 부러져 자칫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었지만 다섯 번의 마라톤 수술로 다리를 고치게 되었다. 이후 그는 글쓰기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사정이 점점 좋아졌다. 다리 수술을 두 번 더 받았고 심각한 후유증을 넘기며 글을 계속 쓰고 있다. 어떤 날은 글쓰기가 한없이 어렵지만, 또 어떤 날은 글쓰기를 하며 행복해진다. 태어난 이유가 글쓰기 때문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글쓰기가 스티븐 킹의 삶을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곧 삶이다. 이것이 그의 작가 수업, 마지막 한마디이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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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베스트셀러, 소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자서전, 작가 수업, 창작,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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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예찬> 문학만큼 중요한 번역, 작가와 같은 번역가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2. 24. 07:07




[서평] <번역 예찬>


<번역 예찬> ⓒ현암사

2년 전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 발생했었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강신주' 철학자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천년의상상)의 표지때문이었다. 표지에 버젓이 편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지만, 사실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본래 편집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저자의 뒤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통이 있다. 그런데 저자 강신주가 반드시 편집자를 저자와 동일하게 위치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이었다. 편집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책 출간에 있어 편집자의 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책 출간에 있어서 편집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번역가이다. (디자이너나 영업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책 출간에 있어서 저자를 제외하고는 편집자와 번역자만큼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특히 국외서를 번역할 시 번역가가 기획은 물론이고 편집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편집자와 버금갈 정도로 책 출간에 있어 번역가가 차지하는 위상은 형편없다. 물론 번역가의 이름은 항상 저자와 동일한 위치에서 소개되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번역자가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능력과 영향력에 비해 형편없다는 것이다. 


번역가는 엄연한 '작가'


현역 최고의 번역가로 칭송받는 '이디스 그로스먼'은 <번역 예찬>(현암사)을 통해 이런 번역가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하며 나아가 번역을 옹호하며 예찬하고 있다. 먼저 번역가에 대한 옹호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번역가는 단순히 다른 나라 말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작가'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창작'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번역을 창작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저자는 시원하게 대답한다. 번역가가 하는 번역은 작가가 하는 창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이다.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번역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다. 


"언어란, 그게 무엇이든 비언어적 세계에 대한 번역이며, 한 언어의 기호와 구절은 다른 기호와 구절을 번역한 것입니다... 문학은 하나의 번역 과정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내용을 변형하고 구체화해서 문학적 가공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을 외국어로 재현하려는 번역가의 분투는 사실상 작가가 처음 비언어적 실체를 언어로 옮기려 기울인 노력의 연장입니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넘나드는 비언어적 기호와 구절을 '번역'한 것이고, 번역가는 그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번역'을 한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단적으로 작가의 원문을 '제1의 번역문'으로, 번역가의 번역문을 '제2의 번역문'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독창적인 것은 없다라고 단언하는 저자의 말은 얼핏 작가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거기에 어떤 절대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며 저자는 번역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바로 '번역 직역론'에 대한 비판이다. 언어에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직역하면 거기에 반드시 이질적인 면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번역가는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하겠지만, 그 충실성의 기준이 결코 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원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원문만이 가지는 맛을 자국어에 맞게 번역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양 언어에 속하는 모든 것을 완벽히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번역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인간으로서 꼭 필요한 '문학' 그리고 '번역'


저자는 '번역' 자체에 대한 예찬을 이어간다. 사실 이 부분이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자. 만약 번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 얼핏 생각해봐도, 깊이 생각해봐도, 골머리를 썩이며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번역이 없는 삶을 말이다. 당장에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저자는 이런 생각과 비슷한 이유로 번역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문학적 생각, 통찰, 직관의 자유롭고 필수적인 교류가 번역을 통해서 활성화되고 촉진된다는 것이다. 또한 번역은 문학을 통해 다른 사회, 다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는 능력을 키워주어,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게 해준다고 말한다. 절대적이지 않은 이 사회에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인 방법이 바로 '번역'인 것이다. 


"문학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유와 측면에서 번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예술적 충동과 예술에 대한 욕구는 억누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의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문화나 관습, 기대치에는 큰 변화가 있을지언정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 어디에든 존재합니다. 문학이 있는 곳에 번역이 있습니다. 문학과 번역은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와 같아 절대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번역에 대한 필수 참고서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에 동조를 하게 된다면 또는 동조를 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책을 대하는 눈이 많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저자는 문학과 번역이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라고 표현했지만, 삶과 번역이야말로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출판계 사람이라면, 그리고 번역가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 갖고 있는 시선이 아예 형성되어 있지 않다. 번역에 대해 말할 때, 오직 '오역'으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굉장히 중요하지만 굉장히 편협한 면에 불과한 '교정교열'로만 편집자의 편집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번역을 판단함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원작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얼마나 자국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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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문학, 번역, 번역 예찬, 번역가, 샴쌍둥이, 직역, 창작, 충실성, 편집자
  • BlogIcon 노지
    2014.02.24 09:25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사람들에게 국내 애니 방송사에서 갖다 붙인 자막은...참...말아 안 나올 때가 많죠...
    뭐, 그래서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안 좋을 때가 있지 않나 싶어요.

  • BlogIcon Blueman
    2014.02.24 11:20

    번역도 우리말을 살려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국어사전을 보고 공부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창작하는 사람처럼 우리말을 지키려는 사람이란 의미겠죠?

  • BlogIcon 귀여운걸
    2014.02.24 15:13 신고

    맞아요~ 번역가도 엄연한 작가지요~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 BlogIcon 알숑규
    2014.02.25 01:18 신고

    재작년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논쟁이 떠오르네요.
    그 시기 즈음하여 한국의 번역의 수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만화쪽은 뭐...

  • BlogIcon 푸른
    2014.02.25 21:22

    우연찮게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을 읽고 있던 중 <번역예찬> 서평을 읽게 되는군요. 번역은 창작이다란 말에 구미가 당깁니다.

  • BlogIcon ree핏
    2014.02.25 23:41 신고

    감사한 분들이네요.


  • 2014.03.03 23:1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3.05 18:48 신고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하죠~
      앞으로도 자주 트랙백 걸어주세요ㅋ
      저도 그리 하겠습니다^^


  • 2014.03.07 16:3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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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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