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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유머'에 해당되는 글 8건

제목 날짜
  •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2018.06.20
  • 전쟁의 끔찍함 속 유머, 그보다 더한 원칙과 시스템의 황망함 <어 퍼펙트 데이> 2017.10.03
  • 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레이디 수잔> 2016.12.21
  • 비쥬얼 쇼크와 적재적소의 묘미,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 <닥터 스트레인지>를 살리다 2016.11.04
  • 계속되는 인재, 무너지는 대한민국, 꿋꿋이 버텨 낸 두 인간 <터널> 2016.08.15
  • 눈앞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2) 2015.09.21
  • 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할까? <베테랑>(6) 2015.08.10
  •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 그 섬뜩한 마지막은?(2) 2013.08.21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6.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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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라비, 이것이 인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포스터 ⓒ디스테이션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 한참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건 단연 미국이다. 마치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라고 다시금 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 미국의 에디슨과 딕슨이 이미 영화용 카메라와 활동사진 감상 기구를 발명하였고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미국 아닌 프랑스를 동경한다. 세상이 자본주의로 획일화되어 영화 또한 그에 흡수되기 전에는 프랑스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기준이자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그 답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건 한참 전이다. 


프랑스 영화는 종종 상업적으로 미국 할리우드를 위협하거나 또는 훌륭하게 종속되거나 해왔다. 감독으로는 뤽 베송이나 미셸 공드리, 배우로는 마리옹 코티야르나 뱅상 카젤 등이 유명하다. 물론 레오 카락스 감독이나 이자벨 위페르 배우 등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도 많다. 


특별한 결혼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프랑스는 극강의 예술영화를 지나 범죄,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의 장르 상업 영화에 도드라지는 형태를 보여왔다. 그중에 한국에는 2012년에 선보여 생각지도 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언터처블: 1%의 우정>이다. 전신불구의 상위 1% 귀족남과 무일푼의 하위 1% 흑인백수의 기막힌 동거를 코미디와 감동 어린 드라마 조합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모든 작품을 함께 연출하는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거니와 그들의 출세작이다. 


이들은 2005년 데뷔 후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는데 모두 코미디였다. 최근에는 감동 어린 드라마를 적절하고 훌륭히 조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듯하다. 2017년 프랑스에서 선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올해 한국에 상륙한 <세라비, 이것이 인생!>이 최신작으로, 변치 않는 프랑스식 입담과 코미디와 드라마를 선보인다. 


웨딩플래너 업체를 이끄는 맥스는 17세기 고성에서의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유독 까다롭고 예민한 클라이언트 신랑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그날따라 불만 많고 불안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발하는 직원들 뒤치다꺼리가 힘들다. 요즘 부쩍 일 하기가 힘들어 회사를 넘길까도 생각 중이다. 


이뿐이랴? 믿고 맡겨야 할 넘버 2 아델은 땜빵으로 온 밴드 리더 제임스와 욕지거리를 주고 받으며 싸우질 않나, 맥스와 공공연한 내연 관계에 있는 조지앙은 부인과 매듭을 짓지 않고 시간을 끄는 맥스 보란 듯이 젊은 직원을 꼬시며 속을 뒤집어 놓질 않나, 처남이랍시고 내치지 않고 봐주고 있는 줄리앙은 잠옷 차림으로 출근해 한때 동료였던 신부에게 들이대려고 하질 않나... 과연 이 결혼식은 잘 끝날까?


일과 사람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영화는 17세기 고성을 배경으로 하객과 웨딩플래더 업체 직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결혼식 하루 나절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사장 맥스가 있고, 그가 처리하는 복잡다단한 일의 단면들이 전부다. 거기에는 정녕 개성 만점 인간군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지 작은 회사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라는 게 한번 몰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니와 정녕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의 다양한 종류의 일들이 터진다.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할 때는 정신 차리고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그때 드는 가장 주된 생각은, 각각의 일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이 아닌 사람들 말이다. 그럼 참 편할 텐데...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잡은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이런 바람을 역으로 살려 극대화시키며 재미를 끌어낸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들, 그 어려움은 사실 그 일들의 주체인 사람들에 있다는 공감. 내가 그 자리에 있긴 싫지만, 그 자리를 구경하는 건 정녕 재밌는 일 아닌가. 예를 들면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을 대리 경험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맞아, 꼭 저런 일이 있지. 꼭 저런 사람이 있어.' 하는 공감 경험. 


더불어 '사람'들에서 이 감독들이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있으니, 적정하고 유려하게 내놓는 사회 비판이다. 거기엔 인종의 용광로인 프랑스의 특성이 잘 배어 있어 더더욱 흥미롭다. 전작 <언터처블: 1%의 우정>과 <웰컴, 삼바>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물리적 아닌 화확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특성을 지닌다. 


이 영화를 즐기는 법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맥스의 회사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수준이다. 이왕이면 작아보이고 싶어서일까. 불법으로 보이는 일, 즉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현찰로 정직원 아닌 알바 또는 계약직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상당수가 백인 아닌 인도 쪽(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사람인 듯보이고, 역으로 그쪽 사람들은 모두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 자행되는 불법, 그런데 맥스는 국세청에서 찾아온 듯한 사람한테 가서 이실직고 정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역설한다. 걸리면 어차피 다 죽을 거, 하지만 걸릴까봐 두려워 불법을 자행하지 않아도 다 죽을 판이다. 


"우린 영세업체지만 일손이 부족해요. 정직원만 쓰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죠. 급여 100유로당 200유로를 손해보니까요. 그러니 급여를 현찰로 주고 쓰죠. 정부 지원이 없으면 어쩔 수 없어요. 정직원을 많이 쓰면 회계 감사도 받잖아요. 신규 채용 급여세 면제는 왜 안 하죠? 다들 실업률 증가네 어쩌네 떠들지만 문제 해결엔 관심이 없어요."


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단연 인간의 다양성 그리고 자연스레 수반되는 상황의 다양성에서 온다. 하지만 서사 흐름 속 위기 또한 다름 아닌 바로 그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회사와 먼 곳의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에 뛰어든 이들의 공공연한 합의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뜬금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로맨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 간의 자국어 대화로 엿보는 프랑스 셀프 디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말이다. 다름 아닌 이들이 문제를 얼추 해결하기도 하는 다양성의 일환도 흥미롭다. 


다분히 프랑스식 유머와 프랑스에서만 통용될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온전히 100% 즐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기억에 남을 만한 사연들, 범보편적 공감을 살 만한 상황들이 완벽할 수 없는 이해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라는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 하고 좌절을 느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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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다양성, 사람, 사회, 세라비 이것이 인생, 언터처블, 유머, 일, 코미디, 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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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끔찍함 속 유머, 그보다 더한 원칙과 시스템의 황망함 <어 퍼펙트 데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0.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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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 퍼펙트 데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의 유머스럽고 황망한 하루. ⓒ마노엔터테인먼트



1992년부터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1995년 발칸반도의 어느 곳, 내부인과 외부인 콤비가 차를 이용해 우물에 빠진 시체를 끌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시체의 육중한 무게로 밧줄이 끊어지면서 실패한다. 이내 동료들이 당도하는데, 그들도 밧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밧줄이 없으면 시체를 건지지 못하고, 24시간 안에 시체를 건져 우물을 청소하지 못하면 마을의 유일한 식수가 완전히 오염될 것이었다. 그들은 튼튼한 밧줄이 필요하다. 한편, 더 이상의 오염을 막기 위해 시체를 건져낼 때까지 우물을 막아야 한다. 그건 UN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4명인 그들은 2명씩 짝지어 각각 밧줄을 구하기 위해, UN의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사실 하등 어려울 것 없는 일들이다. 튼튼한 밧줄 하나 없을까? 24시간 안에 그런 거 하나 못 구할까? 그런데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시체 때문에 마을 유일의 식수가 오염되었으니 우물을 막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합당한 논리로 UN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너무 쉬운 일인 듯 느껴진다. 하지만 이 또한 황당한 원칙주의를 앞세운 UN의 비논리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정말 좋지 않은 의미로 완벽한 날이다. 


유머에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


영화는 절대 유머를 놓치 않는다. 아니, 유머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출연진들이다. 대가의 반열에 오른 베니치오 델 토로와 팀 로빈스가 각각 팀의 리더와 베테랑 요원으로 분해 극의 중심을 확실히 잡는다. 올가 쿠릴렌코, 멜라니 티에리가 허리를 든든히 받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다름 아닌 팀 로빈스가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유머'에 있다. 


인류사에 길이남을 '인종청소'로 유명한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겪은 직후라는 배경에 마을 유일의 식수가 완전히 오염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 겹치는 지극히 일촉측발의 하루를 보여줌에도, 영화는 팀 로빈스가 분한 B를 앞세워 유머를 최우선적으로 내보이려 한다. 


심각한 상황임에 분명함에도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한 유머를 주로 선보이는데, 그럼으로써 전쟁이라는 비극이 촉발한 끔찍한 사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전쟁, 그것도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전의 참모습이겠지만 그럼에도 유머가 계속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유머는 한편 인간성을 포기한 이 내전에 휴머니티, 즉 인간성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건 비단 B뿐만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태생이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영화 전체로 이어진다. 그리고 종국엔 제목과 지극히 반(反)하는 하루의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한 유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유머에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 제목 <어 퍼펙트 데이>가 주는 아이러니함도 그 자체로 유머가 아닌가. 


전쟁의 직설적이고 모순적 끔찍함


주인공들이 놓인 상황은 내전의 막바지다. 즉, 전쟁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마노엔터테인먼트



밧줄을 찾으러 간 B의 팀에게 리더가 요청한 게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닌 '공'. 리더의 팀이 UN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던 길에 한 아이(니콜라)가 또래 불량 소년들에게 공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았다. 리더는 불량 소년들에게 공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이 총으로 위협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는 어느새 이 요원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지만,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의 직설적 끔찍함과 모순적 끔찍함을 모두 상징하는 게 니콜라인 것이다. 그 아이는 지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전쟁 때문에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 엄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내전으로 니콜라 같은 아이들은 너무 많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사실상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 없는데, 불과 20여 년 전에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양상이다. 여기서 더욱 끔찍한 건 '내전'이라는 전쟁이 주는 모순이다. 그 모순의 한복판에 니콜라의 가족이 있었고, 니콜라 가족의 집이 있었다. 


밧줄과 공을 찾으러 급기야 니콜라의 옛집을 찾은 요원들, 그들은 여러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한다. 집의 어느 곳엔 지붕이 없었는데, 니콜라 가족들이 달아난 사이 이웃사람이 와서 폭발시켜버렸다는 것이었다. 니콜라의 부모님이 서로 내전에서 적과 적으로 있는 계였기 때문이었다. 이웃사람들은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달아날 곳은 없었다. 니콜라의 부모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원칙을 위한 원칙,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황망함


전쟁보다 더한 치명적 상황은, 원칙과 시스템에 목매인 원칙과 시스템이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방면은 원칙을 위한 원칙,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황망함이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사람의 목숨이거늘, 그러하기에 유일한 식수가 오염된 상황에서 처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그 원인을 제거하고 또 제거하기 전까지 임시로라도 막아놓은 것임이 당연한 것임을, UN은 그보다 원칙과 시스템을 따르고자 한다. 


물론 그들이 내세운 이유도 사람의 목숨이다. 시체로 오염된 우물 말고도 근처에 2개의 우물이 더 있는데, 그곳엔 지뢰가 설치되어 있고 아직 제거하지 않은 상태다. UN은 시체로 오염된 우물보다 지뢰 제거가 우선이라는 원칙 하에서 확고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지뢰 폭발은 당면한 눈에 보이는 최고 최악의 위기다. 무엇보다 빨리 해치워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식수 오염이라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광범위하게 지대한 위기를 줄 것이 뻔한 사태보다 시급할까. 그들에게는 '식수 오염'으로 죽는 사람보다 '지뢰'로 죽는 사람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의 목표는, 그들이 하달받은 목숨에, 그들이 지켜야할 사람에, '식수 오염' 관련된 조항은 전혀 없다. 그럼 끝인 것이다. 더 이상 거들떠볼 것도 없다. 


진정 전쟁보다 더 황망한 게 이런 모습들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영위하고 전쟁 덕분에 살아가는 것들도 다름 아닌 이런 모습이다. 정녕 그들의 유연성 없고 고지식하며 완벽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면에서 그리 완벽하고, 모든 순간에 그리 완벽하면, 우리네 사는 인생의 하루하루가 어찌 완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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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목숨, 시스템, 어 퍼펙트 데이, 원칙, 유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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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레이디 수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2.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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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레이디 수잔>


다분히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2017년)을 기해서 나온 듯한 영화 <레이디 수잔>. 더군다나 제인 오스틴의 미발표 첫 번째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했다. ⓒ㈜수키픽쳐스



2017년 사후 200주년을 맞는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들은 정전으로 추대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거의 접해보지 않았다. 18~19세기 영국 귀족의 청춘 연애담을 위주로 하기에 성향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일 테지만, 그게 하나의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을 테다. 왠지 그렇고 그런 연애 이야기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당연히 그녀의 작품을 영화한 것들도 거의 접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살아생전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많은 인기를 끌었거나 좋은 평을 듣지도 않았다. 20세기 들어서야 대대적으로 재조명 되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그녀의 작품뿐 아니라 <비커밍 제인>처럼 그녀의 인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정도임에도 거의 접하지 않았다는 건 어지간히도 관심이 없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와중에 최근 나왔다는 영화 <레이디 수잔>을 접했다. 제인 오스틴이 채 20살도 되지 않은 때에 지은 미완성·미발표 단편 습작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제인 오스틴의 여타 소설들의 여주인공과는 다르게 당차고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도덕적이지 않기까지 하다는 점 등에 눈길이 갔다. 


레이디 수잔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사랑 방식


기존의 제인 오스틴 작품과는 달리 여성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사랑 방식을 중심으로 영국 귀족 사회의 연애담을 폭로한다. 거기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커녕 사랑 자체가 없다. ⓒ㈜수키픽쳐스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레이디 수잔, 그녀는 맨워링 경과 연애를 시도한다. 하지만 맨워링 부인의 반대에 부딪혀 뜻대로 되지 않자 급히 선회, 레지널드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는 다름 아닌 사별한 남편의 남동생의 부인의 남동생, 즉 동서의 남동생이다. 사돈이라는 얘기. 


하지만 레이디 수잔이 워낙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은 바, 레이디 수잔의 동서인 캐서린은 남동생을 그녀에게 장가가는 걸 싫어한다. 대신 그녀의 딸인 프레데리카와 잘 이어지길 바란다. 그건 캐서린과 레지널드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가문의 수치'라며 레지널드를 나무란다. 그래봤자 레지널드에겐 소 귀에 경 읽기. 그는 레이디 수잔에게 푹 빠졌다. 예쁘고 지적이고 품격 높은 레이디 수잔이 아닌가. 


영화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영국 귀족 사회로 예상되는 배경에 걸맞지 않게(?) 경쾌하다. 그 중심엔 레이디 수잔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인생 지침 하의 사랑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다들 그런 그녀를 비방하고 조롱하지만 정작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다 잘 되자고 그러는 거지 다 못 되자고 그러는 게 아니다. 새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이 그녀가 바라는 바다. 그런 그녀를 악녀라 치부하며 미워할 수가 있을까? 없다. 


더불어 영화 자체가, 즉 감독이 추구하는 바가 굉장히 유머스럽다. 영화 초반부에 주요 인물들을 각각 몇 초간 보여주며 자막으로 이름과 함께 유머스럽고 풍자적으로 설명해주는 게 매우 알맞게 재밌다.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제임스 경'이라는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성격 좋고 활달한 귀족의 원맨쇼가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품격 높은 코미디라고 할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몇 있는데, 왠지 감독이 일부러 그가 출현하는 코믹한 장면을 더 넣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극 전체와 크게 부합되지 않는 장면이자 인물임에도 많은 분량을 소화한다. 


제임스 경이 프레데리카가 있는 '처칠'에 와서 하는 말, "여기 교회(처치)와 언덕(힐)이 어디 있나요? 아, 이곳 이름이 처칠이었나요. 저는 처치힐인줄 알았지요. 하하하." "12계명이 아니라 10계명이라고요? 그럼 12개 중 2개를 버려야 하는데, 뭘로 하면 좋을까요? '살인을 하지 마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하느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어차피 하면 안 되는 거고 하지 않을 건데. 하하하." 실제로 보면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여성에게 요리조리 휘둘리는 남성들


여타 제인 오스틴 작품과 같은 점은, 여성이 주가 되어 남성을 요리조리 휘두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영화는 이 점을 아주 잘 살려냈다. ⓒ㈜수키픽쳐스



한편, 레이디 수잔은 딸 프레데리카가 돈 많고 가문 좋고 성격 좋지만 나이가 좀 있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제임스 경에게 시집가길 원한다. 미망인인 자신이 딸을 언제까지 보살펴 줄 수도 없거니와, 딸이 잘 살길 바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딸의 꿈을 무참히 꺾어버리면서, 바보에게 시집가길 중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면, 나이도 비슷하게 자신이 제임스 경에게 시집을 가고 딸과 레지널드가 이어지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는 이 모든 걸 머리에 넣고 판을 짜서 자신의 의중대로 되게끔 조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지휘가 땅을 뚫고 들어가는 당시, 여성이 남성을 조종하며 변화시키기까지 하는 모습이 신선하지 않은가. 


영화는 어김없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영화한 작품)답게 당대 귀족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그려냈다. 사실 레이디 수잔을 비롯해 그녀를 둘러싼 지난한 연애담 자체가 그러할 텐데, 전 세계를 제 집 앞마당에 가듯 드나들면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던 대영제국의 한복판이 당시이다. 또한 그 중심에 귀족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고작 얼토당토하고 어이 없는 연애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엔 사랑이 없다. 


적어도 이 작품엔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에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그것도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될 수 있지만, 이정도로 신랄하진 않을 거다. 


한편, 남성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부가 되어 여성에게 요리조리 휘둘리는 모습들은 속이 시원할 뿐 불편하지 않다. 심지어 제임스 경으로 대표되는 천하의 멍청이도 남성이고, 레이디 수잔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차이는 허당 레지널드도 남성이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멍청이고 허당이다. 재밌게 느껴졌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연기와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이, 음악, 의상도 최상위급이다. 분위기가 워낙 코믹스러워 소품 정도로 치부하기 쉽지만, 웬만큼 이상의 꼼꼼함이 묻어난다. 결정적으로 '재밌다' ⓒ㈜수키픽쳐스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상당히 나오는데 잘은 모르지만, 바흐보다는 헨델과 비발디, 베토벤보다는 모차르트 풍의 음악이었던 것 같다. 진중하고 고뇌에 찬 느낌이 아닌 발랄하고 사교적인 느낌. 영화의 느낌을 잘 살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빛이 났는 바, 모든 걸 떠나서 영화를 아주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모든 시대극에서 빛이 나는 건 뭐니뭐니 해도 당시를 재현한 스타일일 것이다. 당시 스타일의 풍광이나 풍미도 그렇지만, 의상이 가장 빛난다. 그건 동서양이 모두 그렇다. 이 작품도 그것에 굉장히 공을 들인 듯, 기존의 제인 오스틴 영화들에게 보여주었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초기작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실제 시간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때쯤 입었을 만한 의상 스타일을 차용한 게 아닌, 꼼꼼한 조사가 뒷받침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의 처음으로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를, 참으로 오랜만에 서양 시대극을, 그것도 진중하지 않은 코믹한 느낌으로 보게 되어 색다른 경험을 재미있게 했다. 솔직히 이 작품을 계기로 제인 오스틴 원작의 다른 영화를 볼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보다 '좋은' 영화겠지만 적어도 '재미'있진 않을 것이기에. 재미를 찾는 게 조금 황당할지 모르지만 어쩌랴. 그녀의 작품으로 정녕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이가 여기 있고, 나는 그 작품을 입문작으로 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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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쥬얼 쇼크와 적재적소의 묘미,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 <닥터 스트레인지>를 살리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1.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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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멀티 버스'의 시작을 알린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다. 엄청난 기대감을 오롯이 받을 텐데, 그에 부응할까?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몇 년 전에 이미 개봉일이 잡혀 체계적으로 사전 마케팅을 해오며 기대감을 한층 부풀어 올렸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대망의 막을 올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포문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2016년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MCU의 14번째 영화이기도 한 바, 현재 22번째까지 예정되어 있는 MCU의 주요 연결고리이자 새로운 세계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즉, '멀티 버스'의 시작이다. 


어벤져스와는 다른 차원의 적에 대항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현실에서 온 '마법사'다. 그렇다는 건 누구나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영화는 거기까지 제대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신, 아이들이라면 정녕 넋을 놓고 황홀하게 바라볼 장면들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자 사실상 전부가 바로 그 장면들이다. 더불어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여러 비쥬얼 쇼크들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이 영화는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이다. 결과가 보여주는 바, 여기에서의 '전형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항상 세계관과 속편과 (시리즈) 후속편을 염두에 두는 MCU 영화답게 진행된다. 또한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의 시작을 알려야 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상당히 늦다.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하지 않고, 군데군데 그리고 마지막까지 여지를 남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MCU 영화다. MCU 영화라는 단어가 생긴 것과 더불어 어느새 '전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이 수식어가 시리즈 자체에 악영향이 아니라 선영향을 끼칠 것 같다. 


천재 신경외과의 스티븐 스트레인지,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쿨하다. 가히 그 천재적인 솜씨로 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지만, 동료 의사를 거의 묻어버리다시피 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실력으로 똘똘뭉친 오만방자함 그 자체인 것이다. 비오는 어느 날, 여지 없이 비싼 것들을 걸치고는 비싼 차를 끌고 미친 듯한 속도로 길을 떠난다. 당연한듯 사고를 당해 하필 두 손만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는 스트레인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온갖 방법으로 손을 고치려 한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수술을 해보기도 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물리치료를 해보기도 한다. 다 부질 없다. 그 와중에 찾아낸 어느 환자의 기록. 그 환자는 예전 절대 가망없을 거라 판단하고 수술을 거부했던 환자였다. 지금 그는 살아있는 건 당연하고 걸어다닐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스트레인지는 그를 찾아가 비법을 묻는다. 그가 가르쳐준 건, 네팔의 카마르-타지였다. 스트레인지는 당장 그곳으로 떠난다. 그의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별 것 없는 스토리, 말할 게 없는 연기, 공감할 만한 유머


마블의 히어로 영화가 갖는 여러 요소를 갖추었다. 정작 들여다보면 별 게 없는 이야기, 캐릭터가 워낙 강해 연기랄 게 없는 하고, 중심에 선 인물의 유머는 빛을 발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토리는 더 이상 알려드릴 게 없다.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단시간'에 엄청난 능력을, 마블 히어로 최강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역시 마블 히어로 최강 최악의 빌런을 그만의 방식으로 물리친다. 그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아가모토의 눈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절정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지구를 지키는 소서러 슈프림인 '에이션트 원'을 배신하고 떠나 다크 디멘션의 힘을 업고 그들을 치려는 케실리우스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적이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약속하는 다크 디멘션이야말로 우리들이 따라야할 진정한 '선'이라고 말한다. 그 앞에서 한낫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은 맥이 풀릴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어렴풋이 내비치려 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만다. 스트레인지는 그에 반대하고, 영화는 다시 비쥬얼 쇼크를 준비한다. 


연기도 뭐라 말할 게 없다. 캐릭터에 배우들이 완벽하게 이입했다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 그 이상인데, 수없이 많은 상을 타며 압도적인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연기' 경력에서만큼은 흠으로 남을 수 있는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무리 없이 오로지 캐릭터에 맞춰져야 하는, 연기력이 출중한 이들에겐 힘들 수 있는 역할을 하나 같이 잘 해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레이철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치웨텔 에지오포가 그들이다. 


반면 베네딕트 컴배비치만이 할 수 있는 유머는 영화의 격을 높이는 데 크게 한몫했다. 비록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생각나게 하는데, 한층 더 대중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만한 유머라는 말이다. 스트레인지 역할에 베네딕트 컴배비치보다 적절한 배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오직 비쥬얼 쇼크, 그리고 적재적소의 묘미


전에 없는 비쥬얼 쇼크를 선보인다.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오래가진 않는다. 이제까지 봐왔던 여러 영화들에서 봐왔기에. 다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묘미를 선보였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쥬얼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것밖에 남는 게 없고, 그것이 단연 압권이다. 사정없이 뒤틀리는 시공간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하는데, <인셉션>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물론 훨씬 정교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이런 류의 시공간의 뒤틀림은 영화의 액션 장면에 도맡아 출현한다.


스트레인지가 손을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찾아가 에이션트 원에게 수련을 받는 장면은 단연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액션 영화에서 동서양의 만남이 종종 있어 왔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닥터 스트레인지>와 <매트릭스>만큼은 따로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그뿐인가? 오만방자한 스트레인지에게 에이션트 원이 세계의 진면목을 알려주기 위해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장면은 <인터스텔라>가, 영화의 숨은 조연 '리비테이션 망토'는 <해리포터>가 연상된다. 이처럼 대놓고 따라하는 영화는, 패러디 영화를 제외하곤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건 '재미' 덕분이다.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느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게 재미의 요소인 것이다. 이는 MCU 영화가 추구하며 보여주는 퍼즐 맞추기 느낌과 궤를 같이한다.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얼마나 더 멋지고 화려하게 재탄생시켜 구현해냈는지 구경하는 재미를 보장한다. 비쥬얼의 신세계나 신기원을 열어젖히진 못했을지라도, 그동안 봐왔던 비쥬얼의 집대성, 그리고 한층 발전한 비쥬얼 쇼크나 향연을 질릴 만큼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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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인재, 무너지는 대한민국, 꿋꿋이 버텨 낸 두 인간 <터널>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8.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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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터널>


계속되는 인재의 향연 속에서 꿋꿋이 버텨 낸 한 인간, 아니 두 인간의 이야기 ⓒ쇼박스



재난은 해마다 반복된다.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은 인간의 손으론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될 뿐 피해를 생략할 수도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도 없다. '인재'라 불리는 재난이 있다. 이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도 피해를 생략할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 실수가 없을 수 없고 완벽할 수도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인재'는 하나같이 너무도 어이 없는 실수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다. 


문제는 인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인재가 계속된다는 데 있다. 태초의 원인이 되는 인재가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인재가 일어나기도 한다. 차라리 이런 건 양반이다. 종종 인재를 양산시키기도 하니, 새삼 인간이 참으로 대단한 존재구나 싶다. 


계속되는 인재, 무너지는 대한민국


영화 <터널>은 계속되는 인재의 향연 속에서 꿋꿋이 버텨 낸 한 인간, 아니 두 인간의 이야기다. 한 인간, 즉 터널에 갇히게 된 한 인간만의 이야기였다면 생각나는 영화가 몇몇 있다. 톰 행크스의 <캐스트 어웨이>, 제임스 프랑코의 <127시간> 등, 오로지 고립된 한 인간의 사투를 다루었다. 


비슷한 설정이지만 <터널>과 더 가까운 영화들은 멧 데이먼의 <마션>, 라이언 레이놀즈의 <베리드> 등이 있겠다. 고립된 한 인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를 구출하려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앞엣것보다 뒤엣것에서 생긴다.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정수와 대경이 선사하는 씁쓸한 웃음 속에 무너진 대한민국의 울음이 있다. ⓒ쇼박스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으십시오."


무너진 터널 속에서 119에 전화한 정수(하정우 분), 안전이 무너진 곳에서 안전한 곳을 찾으라는 119 대원.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런 류의 웃음을 선사한다. 그 웃음 속에는 무너진 대한민국의 울음이 있다. 


한편 일생일대의 특종을 놓칠 수 없는 기자들이 어김없이 출현한다. 정수의 유일한 생존수단이나 마찬가지인 휴대폰 배터리엔 전혀 관심이 없고 목소리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은,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따위로 정수를 더욱 사지로 몰아 넣는다. 그의 목숨에만 관심이 있는 119 대원 대경의 제지가 있기 전까지는. 정녕 치가 떨린다. 


영화는 한 발 더 나간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께서 하시는 말씀이 "알아서 하세요"이고, 하시는 행동이 고작 사진 찍기라니.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가족들만 재수 없는 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영화 속 현실과 비현실이 바뀌었으면...


수많은 현실의 반영일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자 인물은 정수와 대경이다. 가장 인간적인 그들이 아이러니하게 가장 비현실적이라니, 내가 말하고 내가 어이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인재들이야말로 비현실적인 게 아닌가. 비현실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니 지극히 현실적이다. 


정수와 대경이 영웅이 되길 바라는가? 영웅이 되길 바라지 않으면서도 바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속에 우린 살고 있다. ⓒ쇼박스



정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웃음은 잃었을 지언정 유머는 잃지 않는다. 사람의 온기 또한 잃지 않는다. 큰 고민 없이 자신의 목숨을 나눠준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대경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웃음도 유머도 잃지 않는다. 그래야만 정수에게 믿음과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은가. 


무너진 시스템 속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스템도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시스템의 부속품이라 할 수 있는 개인이 한단 말인가. 그런데 꼭 개인이 일을 낸다. 시스템이 할 수 있는 게 따로 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 상관 없이 일단 구하고 보면 좋을 거다. 하지만 우린 안다. 그건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우린 바란다. 시스템이 해결해주기를. 그게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런 연속성에서 영웅도 바라지 않는다. 현실이 지극히 현실적이기만 한다면 왜 영웅이 필요하겠는가? 정수와 대경이 영웅이 되길 바라는가. 그들이 영웅이길 바라지 않으면서도 바라는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게 해주길. 


2016년을, 아니 최소 차후 몇 년을 관통한다


영화는 분명 많은 재난 영화의 문법을 비껴 간다. 어떤 전조도 없이 시작부터 재난을 당하고, 주인공이 직접 난국을 헤쳐나가지도 않으며, 누군가 명쾌하게 나서서 그를 구출해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영화가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영화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명쾌하게 보여주려다 보니 곳곳에 헛점이 보인다. 헛점이라기보다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충분히 손쉽게 해결 할 수 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름 아닌 현실이라면? 현실이 아닌 비현실을 옮겨놨다면 영화적 장치로 볼 수 있겠지만, 현실이라면 그건 극도의 리얼리티로 봐야하겠다. 영화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보여주려 한 현실 말이다. 굳이 '세월호'라고 말하지 않아도, 굳이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마냥 즐기기 힘들 것이다. 인간들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고, 절망하는 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쉴 것이며, 웃음조차 씁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쇼박스



단점을 찾기 힘들다. 헛점이나 어색한 점조차 의도의 산물이라면 말 다했다. 그냥 즐기면 될 듯하다. 생각지 못한 웃음보따리도 선사해주니 즐기는 데 충분할 것이다. 다만, 마냥 즐길 수 없다는 게 흠이다. 시종일관 다양한 인간들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고, 절망하는 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쉴 것이며, 웃음조차 씁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어두울 것이다. 


재난 영화다운 블록버스터급의 비쥬얼과 영웅 서사시에서나 볼 법한 전개, 그리고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한 해결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추천하지 않는다. 반면 진실을 마주볼 용기가 있다면 그래야 한다고 느낀다면, 꼭 볼 것을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거고, 계속 생각날 것이다. 2016년을 관통하는, 아니 차후 몇 년 간을 관통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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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9.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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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표지 ⓒ아시아



평소 왕래를 않던 어머니가 칠백만 원 사채 때문에 도움을 청하자 권순찬 씨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대신 갚아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도 여기저기 돈을 모아 갚았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목숨을 끊고 말았고요. 그 사채꾼은 천 사백만 원을 챙긴 거죠. 어느 날, 권순찬 씨는 그 사채꾼이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와서 자리를 깝니다. 사채꾼을 상대로 일인 피켓 시위를 시작한 거죠. 


이 아파트 단지는 지은 지 이십오 년이 넘었어요. 아주 낡은 아파트인 거죠. 주민들은 참 착해요. 가난해도 서로를 챙기고 항상 안부를 묻지요. 권순찬 씨에게도 마찬가지예요. 그의 계속되는 시위에 주민들은 김치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취업을 알선해주기도 해요. 급기야 십시일반 돈을 모아 칠백만 원을 만들어 가져다 주죠. 여기서 갈등이 발생해요. 


눈앞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기호 소설가의 짧은 이야기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여전한 이야기꾼 이기호 특유의 색채가 살아 있는 소설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굴지의 웃긴 이야기꾼이에요.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낄낄거리며' 웃게 되죠. 결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는데, 영화 감독 장진이 생각나더군요. 이야기 그리고 유머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이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려 했을까요. 개인적인 이유로 피켓 시위를 하는 권순찬 씨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채꾼 김석만, 권순찬 씨를 가엽게 여겨 도와주려는 주민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는 교수이자 작가인 나. 짧은 소설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이기호 소설가라면 기대감이 충만합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칠백만 원을 권순찬 씨에게 건넸을 때 권순찬 씨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사채꾼을 상대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성가시다고 쫓아내지는 않고 오히려 진심을 다해 도와주려는 주민의 마음이 얼마나 고맙겠어요. 받아야 마땅하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권순찬 씨는 받지 않아요. 일거에 거절해요. 답답할 노릇이죠. 착한 사람들이기에 눈앞의 어려움을 그냥 넘어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도와줬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다고 사채꾼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사채꾼이 산다는 103동 502호에는 사채꾼의 어머니만 있다고 하는데, 그 분이 폐지를 줍고 사는 형편이라고 해요. 그런데 아들 녀석 때문에 밖에 나오질 못하는 거죠. 아들 녀석하고는 연락이 끊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안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에요. 


만약에 우리 아파트, 또는 우리 동네에 권순찬 씨와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와서 다짜고짜 진을 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상대는 몇 개월 동안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요. 몇 년 전부터 보이질 않았으니 앞으로도 보지 못하겠죠. 가여워서 도와주고는 이제 그만할 것을 중용 했어요. 그런데 거절 당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더욱이 주민 중 한 사람이 생계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고, 알게 모르게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저라면 어떻게 하든 그 사람을, 권순찬 씨를 쫓아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착하지 않고, 남들이 뭐하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쫓아내려 하지 않을 거예요.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만 낡은 아파트가 아니라 강남의 초호화 아파트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집값이 떨어지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웃지 못할 우리네 모습


문제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가난하지만 이기적이지 않아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네 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권순찬 씨를 보살펴줄 수는 없어요. 평화롭고 조용한, 거의 유일한 이점만 가지고 있는 동네인데 이런 평지풍파라뇨.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결국 주민들은 권순찬 씨를 쫓아내고 말아요. 정말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정작 당사자는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애꿎은 이들끼리 싸운 꼴이잖아요. 


2014년, 작년이죠. 4월에 세월호가 침몰했어요. 사측의 명백한 범죄였죠. 그리고 제대로 대응하고 수습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도 컸어요. 그런데 싸움은 애꿎은 사람들끼리 하더군요. 유가족들, 피해당사자들이 시위를 하는 게 못마땅했나 봐요.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난하고 나섰어요. 소설에서 처럼 착한 사람들이 아니죠. 그렇지만 당사자가 아닌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운 건 똑같아요. 중요한 게 바로 이 점이죠. 애꿎은 사람들한테 화내고,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 다름 아닌 우리네 모습이에요. 


강자라고 해야 할까요, 악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강자이자 악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또는 그들은 왜 나타나지 않을까요. 왜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까요. 누군가는 강자이자 악인을 대신해서 싸울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사실도 모르는 채 싸우고 있을 거예요. 훗날에 깨닫겠죠.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면 무관심이 답일까요?


현대 사회에서 제일 가는 악(惡)이 다름 아닌 '무관심'일 거예요. 어느 곳이든 불통의 시대를 외치는 마당에 무관심은 최악인 거죠. 그런데 관심과 소통의 결과가 이런 식이라면 어처구니 없어 지죠.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밖에 설명이 안 돼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 부분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과 사회의 소통, 관심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이요. 말하자면 '구조적' 차원이 아닐까요.


이 너머까지 다룰 성질의 소설은 아니지만, '계급 구조'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강자와 약자의 계급 구조가 곧 악인과 선인의 이분법적 구조까지 집어삼키게 되는 때에 직면하면 답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소설 속 화자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요.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그가 말이죠. 그로 하여금 글을 쓸 수밖에 없게끔, 그래서 사람들에게 전말을 알려주고 싶게끔 했어요. 안 그러면 이 사건에서 나쁜 놈은 보이지 않고 끝나버려요. 그는 기어코 나쁜 놈을 출현 시켜야 해요. 착한 사람들, 애꿎은 사람들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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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무관심, 사채꾼, 세월호, 소통, 애꿎은 사람들, 유머, 이기호, 이야기
  • BlogIcon 空空(공공)
    2015.09.21 09:58 신고

    조금은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아 보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0.04 15:48 신고

      그런가요? 저는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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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할까? <베테랑>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8.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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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베테랑>


영화 <베테랑>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몇 편의 단편 영화를 찍고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화려하게 데뷔한 류승완 감독. 이후 그가 들고 나온 영화들은 거의 여지없이 살아 있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동생 류승범과 함께한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나 <주먹이 운다>도 있지만,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한 <짝패>야말로 그의 액션 스타일의 전형이자 정점이었다. 


<짝패>가 나온 6년 후 그는 또 다른 액션을 선보인다. 다름 아닌 <베를린>인데,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액션 자체가 주는 쾌감에 집중하기보다 동작이 인물의 목표를 향해 전진해나가는 모양새가 되길" 바랐다고 한다. 앞엣것이 '동작'이나 '몸짓'이라면 뒤엣것은 '행위'나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액션'이라는 이름 하에 취할 수 있는 큰 두 개의 모습을 다 보여주었다. 훌륭하게. 


한편 <부당거래>는 누구 뭐라 할 수 없는 월메이드 범죄 영화다. 범죄 오락 액션물이 보여줄 수 있는 한 정점이었다. 감독 류승완, 주연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모두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영화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이렇게 잘 요리해서 내놓은 적도 별로 없다. 이로써 류승완 감독은 또 하나의 기막힌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유머와 액션, 류승완 감독의 또 다른 카드 '현실'의 앙상블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5년 빅3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한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카드를 아주 효과적으로 잘 버무려낸 영화이다. 그가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액션'과 정극이 아닐 때는 항상 보여줬던 '유머' 그리고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잘 요리해서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에 몇 개의 아이템은 최대한 배제했다. 생각과 고뇌와 여백이 그것이다. 일단 주연들부터 그렇다.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 이들은 첫만남부터 끝까지 치고 박는다. 말 그대로 치고 박는 게, 한 번은 이쪽이 한 번은 저쪽이 치기를 계속하면서 일이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직접 한 판 붙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들을 제어해야 할 오 팀장(오달수 분)과 최 상무(유해진 분)조차도 이들의 불도저 같은 질주를 막지 못한다. 오히려 부추기고 도와주고 함께 한다. 그들은 사실 막고 싶었지만 말이다. 만약 그들이 서도철과 조태오의 사이에서 훌륭하게 중재를 하며 훨씬 강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면 영화가 이렇게 '유쾌상쾌통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겉모습 또는 직위와는 다른 조금은 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두 주인공을 띄어 주었기에 가능했다. 철저히 의도한 바인데, 완벽히 들어맞았다. 


영화는 서도철이 평소 경찰 관련 일을 종종 해주며 친분을 쌓았던 배 기사(정웅인 분)가 크게 다쳤고 급기야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배후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급변한다. 그 전 초중반까지 영화는 너무 재밌고 활달한 팝콘 무비로서의 모습만 보여준다. 타격감 있는 큰 액션과 함께 격렬한 와중에 정말 적절히 터지는 유머가 영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면서 액션과 유머가 줄고 류승완 감독의 또 다른 카드인 현실이 보여진다. 그 현실은 일전의 <부당거래>와 궤를 같이 한다. 


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할까?


배 기사 자살 사건의 배후에 조태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도철은 가히 불도저 같이 밀고 나가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형사로서의 직감과 함께 철저한 자료 분석으로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올라가,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옥상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고 마는 것이다. 거기엔 <부당거래>의 형사와는 정반대의, 서민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서도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서민의 대표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반면에 조태오는 그런 서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재벌 3세의 대표다. 그는 둘째 마누라의 자식, 즉 사생사로서 재벌 집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러야 한다는 생존에의 촉각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건 평생 굽신거리기만 하다가 세상을 뜬 아버지에 뒤를 이은 최 상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무엇을 남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그들이라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배 기사를 이해해줄 만도 한데, 오히려 무차별적인 폭력과 무책임한 처리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때조차도 고뇌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과 고뇌를 하지 않음으로서 '악'이 된다. 반면 서도철 형사도 생각과 고뇌를 하지 않는데, 악을 대하는 데 무슨 생각과 고뇌가 필요하겠는가? 선과 악의 대립 구조에서는 여백 없이 전진만 필요할 뿐이다. 즉 서민과 재벌, 이 시대를 압축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조이다. 서민에게도 판타지, 재벌에게도 판타지이다. 그 궤가 천지 차이겠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건 대립 구조 스토리와 액션


영화는 서민과 재벌이라는 구조를 액션에 그대로 가져 간다. 형사들이 '싸움술'을 펼치고, 기업인들이 '기술'을 펼친다. 기술보다는 싸움술이 더 정감 있지 않은가? 그러며 형사들 모두에게 유머 감각을 첨가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 시켰다. 반면 조태오로 대변되는 재벌들은 그 노는 짓거리가 도무지 인간 같지 않다. 서도철의 "재벌들은 이렇게 노나?" 한 마디에 돌변해 역겨운 행동을 하는 조태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관통하는 건 서민과 재벌 간의 극명한 대립 구조 하에서의 스토리와 함께 단연 액션이다. 팝콘 무비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초중반의 차고지와 부산항 액션, 그리고 중후반의 옥상 추격 액션과 하이라이트 명동 8차선 카체이싱 액션까지. 대립이 커질수록 그에 맞게 액션도 커지는 구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완벽하다 못해 아름다운 진행이 아닌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총동원해 다 써버린 듯한 영화 <베테랑>. 패기를 넘어, 안정감을 넘어, 노련함까지 갖춘 듯한 베테랑 감독 류승완의 정점이다. 그가 가지고 나올 영화가 무엇이든지 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이제는 어떤 영화를 들고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올라가면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하는데, 그말인즉슨 그가 감독으로서 정점에 섰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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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류승완, 베테랑, 액션, 유머, 재벌, 현실, 형사
  • BlogIcon 空空(공공)
    2015.08.10 09:51 신고

    멋진 리뷰입니다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 저는 기대됩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8.23 16:54 신고

      감사합니다^^
      저도요! 저도 차기작을 어서 보고 싶어요 ㅋ

  • BlogIcon 새 날
    2015.08.11 13:30 신고

    베를린에서 실망했었는데, 이 영화는 제법 평이 괜찮군요.

    • BlogIcon singenv
      2015.08.23 16:55 신고

      힘을 빼고, 말하고자 하는 걸 잘 말한 것 같아요~

  • BlogIcon 까칠양파
    2015.08.11 17:11 신고

    류승완의 다음 영화는 서도철이 국정원을 잡는 내용이면 좋겠네요.ㅎㅎ

    • BlogIcon singenv
      2015.08.23 16:55 신고

      아무래도 속편이 나올 것 같은데ㅋ
      그럴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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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 그 섬뜩한 마지막은?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3. 8. 2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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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


25년 전쯤 살인을 그만두고 개점휴업에 들어간 일흔의 늙은 살인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병수로 프로페셔널 살인자였다. 살인 충동이나 변태 성욕 따위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쾌감을 위해 살인을 해왔다. 그리고 뒤처리도 아주 깔끔해서 열여섯에 처음 살인을 한 후 수십 명을 죽였지만, 경찰은 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자꾸 넘어지고 실수하고 잊어먹는다. 딸 은희의 권유로 병원에 가 보았다. 검사를 하니 알츠하이머라고 한다. 치매란 말이다. 그렇게 점점 기억이 사라지고 혼란이 찾아온다. 그 혼란 속에서 동네에 여대생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제발 우리 은희에게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살인자의 기억법> ⓒ 문학동네

알고 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설가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늙은 살인자가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1인칭이기 때문에 사투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극 중에서 다른 인물들이 보기엔, 치매 걸린 노인이 정신 못 차리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겠다. 

이 소설이 아주 잘 읽히고 또 비록 싸늘하지만 웃음 짓게 하는 농담이 곳곳에 있어 재밌게 생각됨에도, 섬뜩하기 그지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1인칭이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기억을 잃고 혼란에 빠진 노인의 심정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한테만 찾아오는 끝없는 고독의 심연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다. 

한편, 김병수는 딸 은희 주변을 맴도는 한 사람 박태주를 알게 된다. 김병수의 눈엔 그가 여지없는 연쇄살인범으로 보인다. 그런데 얼마 후 은희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며 박태주를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살인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김병수는 그가 이유 없이 싫었다. 낯이 익은데 말이다. 

이제 김병수는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간다. 마당에 알짱거리는 똥개가 옆집 개인지 우리 집개인지 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정신이 돌아와 여기가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많다. 알츠하이머를 진단받고 어떤 일을 하든지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여놨는데도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살인자로 살다보니 안 그래도 작아진 나의 세계가, 점점 더 작아지는 걸 느낀다. 

반면, 방금 기억과 최근 기억은 홀라당 까먹어도 옛날 기억들은 더욱 생생해진다. 특히 젊은 시절을 수놓았던 살인의 추억. 미래는 아예 사라지고, 현재는 뒤죽박죽, 과거는 눈앞에서 벌어진 듯 생생하다. 살인을 해서 다행인건가? 이렇게 생생하고 강렬한 과거의 기억을 눈앞으로 불러와주니? 살인자가 기억하는 건 살인밖에 없는가 보다. 그게 살인자의 기억법인가.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살인자?

이 소설은 장편 소설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조금 어색할 정도로, 굉장히 짧은 분량을 자랑한다. 뒷부분의 해설을 제외하고 나면 140쪽 안팎에 불과하다. 또한 기록들 사이의 공간을 제외하면 많아야 120쪽 안팎일 것이다. 분량만 치자면, 잘 쳐줘야 경장편이고 중편 내지 단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 살인자의 뒤죽박죽 띄엄띄엄 기억의 파편들과 그가 읽은 책의 잠언들이 아주 짜임새 있게 서사적으로 들어맞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분량으로는 절대 장편 소설이 될 수 없음에도, 그 서사적 짜임새로 인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자주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살인자이니까 당연히 살인이 제일 많이 나올 테고, 알츠하이머 환자이니까 기억도 많이 나올 테다. 의외로 농담이란 단어가 눈에 많이 띈다.(김병수가 직접 말하고 생각하는 농담 즉,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농담과 김병수가 어느 때에 맞이하는 농담 같은 상황) 초반에는 살인에 관련한 농담이 주를 이루고, 후반으로 갈수록 기억에 관련한 농담이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이 잘 읽히는 이유는 비단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농담 중에 김병수가 직접 말하고 생각하는 농담, 즉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농담은 사실 유머에 가깝다. 극 중에서 그는 분명 유머 감각이 출중하다. 그리고 이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작가가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살인자에게 유머 감각이 있다니?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노인에게 유머 감각이 있다니? 

섬뜩함과 유머의 앙상블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섬뜩하다. 겉으로 보면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살인자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해하려 하는 다른 살인자를 죽이려 한다는, 살인의 관점을 적용한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그것만 본다면 이 소설은 단언컨대 그냥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억의 섬뜩함이 존재한다. 시간이 감에 따라 기억이 없어지고 세계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해설에서는 무너져 내린다고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엔 소멸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김병수는 그 사실을 인지한 후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극 중에서도 김병수가 말하지 않는가.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본문 속에서)

소설은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김병수의 성격이 작용하고 있다. 사실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는 이 늙은 노인의 독백. 그 시크하고 냉랭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가끔은 포커페이스가 웃길 때가 있듯이. 

나이가 먹어갈수록 무뎌지는 그의 악(惡)이, 과거의 전유물이 되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섬뜩함을 잃어버린 그의 시크한 말투와 생각들은 반대급수의 재미를 양산한다. 이빨 빠진 호랑이를 보고 조소를 보내는 것과도 조금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 김병수 개인이 갖고 있었던 섬뜩함을,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했던 섬뜩함을 이제는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그만이 철저히 느끼게끔. 1인칭임에도 독자는 그가 느끼는 철저한 고독감과 두려움, 허탈감을 느낄 수 없다. 다만 섬뜩함을 느낄 뿐이다. 처음 읽을 때는 유머를, 두 번째 읽을 때는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어떤 느낌이 찾아갈 지 직접 읽어보시길...


살인자의 기억법 - 10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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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기억, 김영하, 농담, 늙은 살인자, 살인자의 기억법, 시간, 알츠하이머, 유머, 책으로 책하다

  • 2013.08.30 17:4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3.08.30 17:43 신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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