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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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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황당무계하지만 환상적인 챔피언들이 있다! <위 아 더 챔피언> 2021.01.08
  • 열정의 '적절한 균형'에 대하여 2018.10.15
  • <위플래쉬> 최고의 영화, 그러나 그 이면에 흐르는 황당한 교육 방식은...?(10) 2015.04.03
  • <소설가의 일> 지금이 글쓰기의 시대라는 걸 보여주는 책(2) 2014.12.08
  • <족구왕> 유쾌한 분위기와 뻔한 스토리의 시너지(6) 2014.10.13

여기, 황당무계하지만 환상적인 챔피언들이 있다! <위 아 더 챔피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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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위 아 더 챔피언>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위 아 더 챔피언> 포스터. ⓒ넷플릭스



종종 생각한다. "세상은 참 크고 넓다"라고 말이다. 그러니 별의별 사람도 다 있고, 그들은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산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저게 뭐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들. 평범한 우리들에게 '진기명기'는 영원히 신기함의 대상이자 우상이자 별꼴의 대명사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다. 


여기, 자못 황당무계하고 쓸데없고 대단하고 환상적인 일을 꾸미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회를 열어 더욱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또 열광하게 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위 아 더 챔피언>은 그들을 가리켜 '챔피언'이라고 명명한다. 챔피언이라고 하면 운동 경기나 기술 따위에서 최종승자를 말하는데, 유래는 대신 싸워 주는 '대전사' 또는 '대변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종목들이지만, 챔피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특출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이기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는 이미지가 아닌, 전통을 지키고 자신을 이기며 축제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여, 대회의 최종 승자가 아닌 대회에 참가한 모든 이가 챔피언이라는 게 아닐까. <위 아 더 챔피언>, 6개의 대회, 6개의 에피소드가 반긴다.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면, 챔피언


영국의 깊은 시골 브록워스에서 족히 수 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치즈 롤링' 대회가 열린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의 언덕인 쿠퍼스 힐에서 3.5kg의 원통형 더블 글로스터 치즈를 굴리고는 쫓아 내려가는 경주이다. 두메산골에서 벌어지는 소규모의 대회이지만,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경주'라고 할 만하다. 1등을 거머쥐기 위해선, 달리거나 미끄러지는 게 아닌 구르고 일어서는 걸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몸 어딘가 다치는 건 당연지사이자 다반사, 그럼에도 대회를 계속 이어 나가는 건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미국 에인절스캠프, 일명 '프로그 타운'에서 '개구리 점프 대회'가 매년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개구리 점프 대회로,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변함없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 미국 황소 개구리여야 하고 개구리는 운동선수로 대우받으며 일련의 가이드라인으로 보호받는다. 경기에 임해선, 세 번 뛰어서 거리를 측정한다. 두 가문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세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는 데는 다른 곳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개구리 선수, 매년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흥미진진하다. 


치즈 롤링 대회와 개구리 점프 대회, 챔피언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최종 승자가 되거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 준 대회들이다. 두 대회는, 겉으로 보기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역사와 전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지역만 지니고 있는 특색을 여지없이 보여 주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왔듯 앞으로도 지켜나갈 용의가 있는 이들이 존재하며 신구가 잘 조합되어 있기에 앞으로도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 대회들에 참가하는 모든 이와 관람하는 모든 이와 관계된 모든 이가 챔피언이다. 


자신을 이기면, 챔피언


미국 포트밀에서 제1회 세계 고추 먹기 대회가 열렸다. 미국 남부의 농사꾼이 강박적으로 재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들'의 협찬을 받았다. 그중에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 캐롤라이나 리퍼가 눈에 띈다. 일반 할라페뇨의 스코빌 지수는 3000이지만, 캐롤라이나 리퍼는 5000배 이상으로 맵다. 자그마치 1,641,000이다. 세계 각지에서 고수들이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면, 부와 명예와 인기도 따르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이겼다는 자부심을 얻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인 요요는 기원전 1000년부터 인간 사회의 주요 장난감이었다. 당연히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발달시켜 왔을 터, 지난 88년간 세계 최고의 자리를 가리기 위해 세계 요요 챔피언십을 개최해 왔다. 최상위 클래스 선수들의 기술을 보면, '예술' '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를 터. 완벽한 재능과 끊임없는 연습으로도 따라가기 힘든 그들은,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지위가 낮은 신이다. 


챔피언의 자질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추상적이거니와 크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은 이 주장은, 그러나 사실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바도 이와 같지만, 실제로 뭔가를 도전해 보면 알 것이다. 경쟁에 있어서는, 남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일단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남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상관없이 내가 잘하면 되는 게 아닌가.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챔피언


세계 최고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를 뽑는 대회가 있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브로너 브러더스 국제 헤어쇼', 헤어계의 수퍼볼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규칙이 꽤나 꼼꼼하다. 가발은 안 되고 누드도 안 되며 동물은 소품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모발, 머리 장식, 의상, 화장, 손톱, 액세서리를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특이한 점은, 대회의 모든 관계자가 흑인이라는 것. 그들은 흑인 뷰티의 표준이다.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댄스 파트너는 반려견이다. '도그 댄스'라는 스포츠 종목이 존재하는데, 아직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과 개의 오래된 관계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스포츠이기에 전 세계에 수백 개의 대회가 존재한다. 그중 최고로 손꼽히는 건, 오픈 유럽 챔피언십으로 일명 'OEC'이다. 인간과 개의 완벽한 일체가 중요할 텐데, 창의적이어야 하고 음악을 잘 이해해야 하며 춤을 잘 춰야 하는 건 물론이다. 반려견 훈련은 필수이고. 힐워크와 프리스타일 두 종목을 심사한다. 어느 팀이, 어느 나라가 도그 댄스의 표준이 될까.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선 엄격한 심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자타공인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최고 권위의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점수를 매기게 한다. 그렇게 가려진 챔피언은, 표준이 되고 우상이 된다. 그런데, 사람이 심사를 보는지라 아무리 완벽한 객관화로 중무장했다고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자만심을 갖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대회에 참가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량을 쏟아부었다는 그 한 가지로, 이미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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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적절한 균형'에 대하여

생각하다 2018. 10.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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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해봤나?" 현대그룹을 만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명한 말이다. 기업의 제1의 가치를 '도전'으로 치는 그의 정신이 집약되어 있는 한 마디라 하겠다. 그 한 마디가 지금의 현대를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 그의 또 다른 명언들을 보탠다. 현대만이 아니라 가히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만든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만이 해낸다." 누구라도 들으면 힘이 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기필코 해내고야 말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말이다. 


그런데, 이 명언은 너무 간 것 같다. 도전과 열정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고 한 말인 것 같다. 너무나도 좋은 의미의 '도전'과 '열정'을 무식하리만치 한 데 모아놨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라.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가야 한다." 이 말이 지금도 통용된다는 건, 우린 여전히 전후 196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리라. 


'열정 만수르' '열정의 대명사' 유노윤호




최근 여러 의미로 '열정'이 이슈다. 의욕적으로 일에 매진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인 '번아웃 신드롬'이 전국민을 강타하며, 출판계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바람과 생각을 글로 옮긴 책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에세이의 강세와 맞물려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가 '열정 만수르' '열정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사건(?)이 있었다. 3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기상하자마자 바로 춤연습에 돌입하는 모습을 보였고, 10월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 "사람의 몸에 가장 안 좋은 해충은 바로 '대충'이라는 벌레다"라는 명언을 내놓았다. 


이후 '나는 유노윤호다'라는 유행어가 한동안 SNS뿐만 아니라 대형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했다. 번아웃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쓰러질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자조 섞인 주문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지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유노윤호는, 그 예전 산업화 시대 때 그야말로 온몸을 바쳐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의 정신적 우상 정주영과 다름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사람들을 옥죄는 열정이라는 괴물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외치는 에세이




요즘 출판계는 에세이가 대세다. 과거 정말 오랫동안 자기계발이 대세였던 적이 있는데, 직장인들이 필수로 봐야 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자기계발이야말로 회사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탄탄한 진로를 확립해주는 방법, 그 길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성공, 다름 아닌 자기계발 책들이 가르쳐주었다. 


이젠, 아니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길이 성공의 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과연 성공이 무엇인지 성공을 왜 해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묻는 시기에 와 있는 것이다. 제목만 봐도 느껴지는 반(反)열정의 스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등의 책이 함께 한다. 


작년에는 사표를 내는 과정과 백수로 지내는 모습을 담은 에세이가 유행을 했었다. 사실 에세이라는 게 '쉼'을 매개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의 시대 상황 또는 시대 정신과 잘 맞아들어가는 것이리라. 넓은 의미에서 이 또한 자기계발의 일환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방향이 정반대일 뿐이다. 


재작년 말 전국민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촛불혁명', 당시 박근혜 정부의 온갖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두고볼 수 없었던 국민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여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비리를 척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경제 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채 돌이킬 수 없는 정치 위기를 몸소 양산해내고 있던 '벌레'를 '퇴치'했다고 하면 너무한 말일까. 


결과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냈지만, 국가와 사회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을 국민이 직접 나서서 할 수밖에 비극인 것 사실이기에 국가 전체가 번아웃에 걸렸을 테다. 큰 일을 치른 후 일상으로 돌아오면 너무나도 힘든 게 자명한 만큼, 이 사회와 개인들은 그야말로 '살' 방법을 찾고 있다. 사회의 미묘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캐치하는 걸 잘하는 출판계, 그 대세의 변화는 소소한 일면일 뿐이다. 


적절한 균형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균형'이 아닐까. 인간을 이루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도 이 사회도 이 국가도 마찬가지다. 겪어본 결과 '열정'은 과하면 절대 안 될 테지만, 없어서도 절대 안 된다. 누구나 최소한의 열정은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최소한의 열정에 비례해 나머지를 채울 건 무엇인가. 말그대로 '대충하는 것' '열심히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 함정이 있다고 본다. '과도한' 모든 것엔 '과도한' 반대급부가 생기기 마련인데, 참으로 오래된 과도한 열정 괴물이 부른 참사나 다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보다 '짧고 굵게' 사는 게 각광 받아 왔고 여전히 일면에선 각광 받고 있다. 이 '잛고 굵게'에 과도한 열정이 '잘 살아보자'는 말과 함께 그 자체로 자리를 잡고 있을 텐데, 그 반대급부이기도 하지만 적절한 균형에 맞춰 말하고 싶다. '가늘고 길게' 살자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프레임이 아닌, 누가 만든 기준인지 모를 '잘' 살 필요는 없다는 프레임에 맞추자는 이야기다. 


일단은 '그냥' 살아보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난 그냥 살고 있다. 그냥에는, 열심히 할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할 때도 대충할 때도 속해 있다. 어느 한 방면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느 한 방면을 '하는' 것이다. 영원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영원히 열심히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겠는가. 가늘고 길게, 지치지 않고 살아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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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번아웃 신드롬, 삶, 에세이, 열정, 유노윤호,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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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최고의 영화, 그러나 그 이면에 흐르는 황당한 교육 방식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4.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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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위플래쉬>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천재와 폭군의 만남. 천재는 아직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고, 폭군은 그의 재능이 진짜인 걸 안다. 천재는 최고가 되기 위해 폭군의 가혹한 채찍질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폭군은 역시 그의 재능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질고 가혹한 채찍질을 선사한다. 이들에게는 재능이 밑받침 되는 노력, 한계를 가볍게 넘어서는 열정,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의 광기만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천재는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한계에 직면한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그리고 폭군의 가혹한 채찍질에 대해. 무엇보다 그 모멸감 가득한 채찍질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최고가 되기 전에 내 자신이 파괴될 것 같은 기분이다. 폭군 앞에서는 천재는 커녕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 


반면 폭군은 천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모멸감과 가혹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폭군은 철저히 교육에 의한 천재 양성을 지지한다. 문제는 방법에 있다. 누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그는 칭찬은 개나 줘버리고 오직 채찍질만이 천재를 만든다고 한다. 


나를 따르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다. 여기에서 천재는 주인공 앤드류이고, 폭군은 플렛처 선생이다.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최고의 명문 음악학교 신입생이다. 그는 학교의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음악 교수인 플렛처 눈에 들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말그대로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했고 마침내 플렛처의 눈에 들었고 그의 반으로 직행한다. 


영화는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악연도 이제 시작이다. 완벽함이란 단어가 가장 완벽하게 들어 맞는 플렛처의 반에서는 연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만 연습일 뿐이다. 연습 때라도 완벽하게 연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메인과 보조의 자리가 바뀌거나, 아예 반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쫓겨난 이는 다시는 플렛처의 반으로 돌아올 수 없다. '연습도 실전처럼' 이란 명구가 생각나게 한다. 


플렛처의 교육 방법론은 피교육자의 실력을 최상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먼저 그는 실력 뿐만 아니라 잠재능력과 열정이 있는 학생 만을 골라 가르치기 때문에 최상위로 오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갖춰져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자신 만의 지독하고 모질고 가혹한 방법을 선사하는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그의 방법은 다른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하라' 단, 플렛처 교수 자신의 기준에서 단 1%의 오차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의 기준이 곧 최고가 되는 기준인 것만은 분명하기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나를 따르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악 영화가 아닌 교육 영화, 황당한 교육 방식


앤드류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시련을 겪으며 한 발씩 나아간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연습 시간을 버티며 보조에서 일약 메인을 꿰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시시각각 메인과 보조를 오간다. 플렛처는 왜 앤드류한테서 최고의 실력을 끄집어 내놓고는 곧바로 그를 내동댕이 치는 것인지? 앤드류는 분노가 폭발하기에 이른다. 


폭군 플렛처는 그의 분노가 폭발하기를 기다린 듯하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열정으로, 광기로 변해 최상의 실력을 뽐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길 원한다. 그것이 바로 최고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생각은 한 장면에 꽂혀 있다. 


역사상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찰리 파커'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게끔 해준 '조 존스'의 이야기. 조 존스는 찰리 파커의 연주가 삼류라며 얼굴을 향해 드럼 심벌을 날린 적이 있다. 이 모멸감 가득한 사건을 계기로 찰리 파커는 각성했고 그 분노를 광기로 승화시켜 이후 최고의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의 핵심 사례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를 다르게 보게 된다. 음악 영화가 아닌 교육 영화로. 전율이 흐르는 음악을 듣는 것도 황홀하지만, 전율이 흐르는 교육 방식을 보는 것도 황당하다는 걸. 그렇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저 황당할 뿐이다. 또 눈살이 찌뿌려지고 짜증이 난다. 그가 만들어 낸 최고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다. 광기만 있을 뿐. 


그래도 <위플래쉬>는 영화 자체로 최고의 수작


문제는 수요에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플렛처의 교육 방침을 기꺼이 따르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교육을 추호도 옹호할 수 없다. 천재 또는 최고인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런 세상을 지탱해가는 이들이 바로 평범하지만 올바른 이들 아닌가. 


이런저런 논란을 제외하고 영화 자체의 재미로 보자면, 이 영화 <위플래쉬>는 가히 최고의 수작이다. 시종일관 눈과 귀가 즐거웠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너무나도 몰입이 잘 되었다. 자칫 무겁고 재미 없을 수 있는 소재와 주제임에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음악 영화로도, 교육 영화로도, 심지어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다. 앤드류의 광기 어린 연주는 전율 그 자체였고, 플렛처의 동작 하나하나는 마치 나를 향하는 것 같아 섬짓함이 폐부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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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광기, 교육, 수작, 시련, 열정, 위플래쉬, 음악, 천재, 최고, 칭찬, 폭군
  • BlogIcon 空空(공공)
    2015.04.03 08:46 신고

    몇주 상영관 영화를 못 봤네요
    위플래시 내리기전에 꼭 봐야겠습니다

  • BlogIcon 우학
    2015.04.03 13:24 신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플레쳐의 방법론은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죠. 마일즈 데이비스나 빌 에반스 혹은 조빔까지, 최상급 플레이어들이 과연 철저한 폭력을 기반으로 궁지에 몰리고서야 눈에 띄게 기력을 발했는가 하고 묻는다면요. 이 영화의 흥행성과 별개로 이렇게까지 많은 구설들이 혼재할 줄은 몰랐는데 보신 분들의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좋은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말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4.05 00:05 신고

      저도 우학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좋은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영화 속 플렛처의 교육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요~

  • BlogIcon ILoveCinemusic
    2015.04.03 19:55 신고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심혈을 기울인다는 걸 보여준 영화 같아요.

    • BlogIcon singenv
      2015.04.05 00:05 신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만 볼 수는 없었다고 봐요~

  • BlogIcon 空空(공공)
    2015.04.04 12:17 신고

    오늘 조조로 보고 왔는데
    제겐 좀 불편하게 느껴지던 영화로군요

    영화는 좋았지만 영화 속의 인간성 부분은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4.05 00:07 신고

      보셨군요^^
      그래서 누구는 이 영화를 스릴러 영화로 보더군요.
      그만큼 긴장하고 불편했던 영화로 볼 수 있구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교육 방식에서의 문제도 심각하구요.

  • 지금여기
    2015.04.06 09:53

    몹시 피곤한 날 집에 들어가 쉬는게 억울해서 혼자 이 영화 봤어요.
    영화 상영 내내 손을 움켜쥐고, 긴장하고,
    마지막 드럼 연주가 계속되는 장면에선 온 몸에 리듬을 실으며...ㅋㅋ
    그런데 방법론에서는 도저히 동의 할 수 없더군요.
    자신의 교육방법에서 낙오된 자는 도태시키는 철저하게 짓밟아 버리는.
    이건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더 많은 괜찮은 열정이 있는 연주자를 성장시켜가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봅니다.

  • widow7
    2015.04.06 19:04

    한국은 너무 교육에 목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더욱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은데..... 아무리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하더라도 저걸 교육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그 관점이 애처롭게 보인다. 설리번이 켈러에게 가르치듯 영화 연출이 된다면 당신들은 보겠는가.... 연예인의 노출을 성교육 관점에서 보는 YWCA의 아줌마 같은 느낌이다..... 한국은 너무 가르쳐서 탈이고, 너무 교육적이라 피곤하다.... 광기는 그냥 광기로 봐도 될듯하다. 김기덕 감독의 광기어린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만 보는 영화평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이렇게 어른들이 교육에 신경쓰고 애를 쓰니 아이들이 더욱 교육에 정을 떼는 그런 구조가 되어 가는 것 같다......

  • BlogIcon 화이트퀸
    2015.07.06 12:19 신고

    완전 공감합니다. 저런 교육 방식으로 찰리 파커가 100명이 나온다면 음악계는 정말 끔찍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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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지금이 글쓰기의 시대라는 걸 보여주는 책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12. 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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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설가의 일>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바야흐로 글쓰기의 시대다. 자기계발, 힐링, 인문학 열풍을 넘어 글쓰기까지 왔다. 글쓰기는 자기계발 요소, 힐링 요소, 인문학 요소까지 포괄한다. 더군다나 열풍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있으려면 대중을 상대로 해야만 하는데, 그렇다는 건 일반 대중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책 읽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책을 만들려는 욕구는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다. 


이는 곧 대중들의 시선이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전에는 책에서만 얻을 수 있던 것들을 더 이상 책에서만 얻을 필요가 없어졌고, 이제는 얻은 정보들을 전해주려 한다. 이럴 때 문학과 같은 비실용서는 설 자리를 잃기 십상이다. 소설, 시, 산문 등. 읽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도움을 얻을 수 없는 책들. 그래서 같은 글쓰기지만 '소설 쓰기', '시 쓰기'와 같이 그 자체는 

실용적이지만 비실용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 책은 시장적 가치가 적다. 


산문으로 시작해서 소설 쓰기로 끝나는 글


그런 면에서 김연수 작가의 신작 <소설가의 일>(문학동네)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위에서 말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은 산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가의 일을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자기 비하까지 섞어가며 재밌게 담아냈다. 그런데 이 책의 실제 정체는 '소설 쓰기' 실용서이다. 소설가의 일이란 게 소설 쓰기인 만큼 자연스러운 전개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위치는 애매모호해진다. 짧은 글들이 산문으로 시작했다가 소설 쓰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산문이라는 것을, 그 중에서도 에세이라는 것을 수필이라고 했을 때 거기에 어떤 계몽적인 면모가 들어가면 그 가치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소설가의 일>은 자신의 이야기로 자기계발을 시키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소설가는 이런 일들을 합니다.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소설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설은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시고, 잔잔한 감동까지 함께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펄펄 끓는 얼음에 이르기 위한 5단계' 라는 애매모호하고 오글거리며 다분히 소설가의 문장스러운 장을 통해 소설가의 '쓰기'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설파한다. 그 5단계 제목들만 나열해본다. 이 제목들도 다분히 소설가스럽다. 즉, 에세이답다. 하지만 내용은 자기계발적이고 실용적이다.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2.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 

3.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놓은 걸 치운다. 

4.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자기계발인데 계몽적이지 않다, 비호감이 아니다


한편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의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자기계발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 시켰지만 전혀 비호감이 아니라는 것. 자기계발적 요소는 분명 계몽적이지만, 이 책에서는 계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20년 소설가의 내공으로 독자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분명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소설가가 될 생각이 꿈에도 없는 사람이 읽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저자는 단지 제목대로 자신이 하는 일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시장적 가치까지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한 발을 실용에 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시대에 산문의 힘을 보여줬다. 


저자는 소설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세 가지 부분이 있다. 먼저 '열정, 동기, 핍진성', 다음으로 '플롯과 캐릭터', 마지막으로 '문장과 시점'이다. 이 책을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공식(?)이 있는데,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에 갖은 방해 = 생고생(하는 이야기)'란다. 이것이 저자가 언제나 쓰고자 하는 이야기이고 소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서 꼭 들어가야 할 것이 '핍진성'이다. 핍진성은 뒤에 나오는 플롯과 캐릭터보다 중요한데, 뜻은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이다. 저자는 핀집성이 소설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라고 말한다. 


플롯과 캐릭터 파트에서 제일 중요한 건 '표정, 몸짓, 행동'이다. 저자는 소설가가 하는 일이란 바로 이 표정 및 몸짓과 행동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절망'과 '좌절' 그리고 '회복'을 붙이면 소설의 플롯과 캐릭터가 완성된다. 이때 이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소설은 하고 싶은 말을 '말'로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표정과 몸짓과 행동으로 표현해내야 한다. 


문장과 시점, 그 중에서도 문장은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설가의 일 중에 하나다. 자연스레 소설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문장에 대한 건 저자의 말로 대체한다.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그게 다다." (본문 중에서)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


책을 읽어보니 소설가가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일반적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설가의 일이란,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부수수한 머리를 헝크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원고지를 수십 장 찢어버리기도 하고 술까지 마시면서 힘들게 힘들게 한 자 한 자 써서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다지 할 일은 많아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힘들어 보일 뿐이다. 


반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저자는 본래 소설가의 일을 말했을 뿐이다. 저자가 소설가의 일을 쉽고 재밌게 전달했지만 소설가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됐다. 소설가가 어떤 일을 하는 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알게 되었으면 족하다. 소설가가 되는 일에 대한 부분은 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소설가의 일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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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김연수, 동기, 문장, 소설, 소설가, 소설가의 일, 시점, 실용서, 열정, 자기계발, 캐릭터, 플롯, 핍진성
  • BlogIcon 노지
    2014.12.08 08:21 신고

    단편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 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늘 쓰다보면 산으로 가서....(...)

    • BlogIcon singenv
      2014.12.09 22:12 신고

      이야.. 그 꿈 꼭 이룰 거예요 ㅋ
      저도 어렸을 땐 작가가 꿈이었는데요.
      이제는 소설 말고 죽기 전에 책 하나 내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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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 유쾌한 분위기와 뻔한 스토리의 시너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4. 10. 1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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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족구왕>



영화 <족구왕> 포스터 ⓒ 광화문시네마



중학교 2학년 때 족구라는 걸 처음 해봤다. 자발적으로 좋아해서 했던 축구를 제외하곤, 발야구와 피구에 이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축구를 테니스 코트로 옮겨 왔다고 할까? 의외로 재밌었고, 정말 의외로 잘했다. 대회 비슷한 경기였는데, 우승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봤자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고, 이후 군대에서 하게 될 때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군대에서 다시 접한 족구.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원래 못했던 건지, 소위 '개발'로 통하게 되었다. 내가 찬 공은 어디로 튈 지 나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계급이 오르면서 점점 잘 하게 되었다. 그럼 뭐하나? 이제 슬슬 자신감이 붙고 재미있어 지려니 제대를 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오니 아무도 족구를 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족구하자고 하면, 백이면 백 비웃을 것이 뻔했다. 복학을 했으면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 취직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왜 하필 족구지? 축구, 농구, 야구, 탁구, 당구 등 할 게 이리도 많고, 그나마 할 사람도 많은데? 족구는 찬밥 신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족구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족구라는 소재로 풀어낸 복잡다단한 청춘


영화 <족구왕>은 족구라는 소재로 이 복잡다단한 상황과 심리를 풀어냈다. 제대한 복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낭만을 청춘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남들 이목이 두려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는' 못난 이들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갓 제대한 만섭은 족구장이 테니스장으로 탈바꿈한 것을 보고 아쉬워하며 친구 창호와 함께 '총장과의 대화'를 통해 총장에게 족구장 건립을 제의한다. 여기서 뜻하지 않게 미래라는 친구가 합류한다. 만섭은 수업 시간에 첫눈에 반한 안나에게 솔직한 감동을 선사해 족구 패밀리로 데려온다. 학교 체육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들은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하며 동시에 족구장 건립을 위한 서명 운동까지 벌인다.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한편, 전직 축구 국가대표 출신 강민은 부상으로 꿈을 잃고 방황 중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여자친구 안나에게 보여줄 자신감도 없다. 그런 그의 앞에 만섭이 나타나 안나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닌가? 강민은 안나에게 모질게 대하고, 이에 만섭은 강민에게 족구 한 판을 제의한다. 별 거 없을 거라고 생각한 강민. 하지만 그는 만섭에게 처참하게 깨진다. 이 영상이 학교 전체에 퍼지며, 학교에 족구 열풍이 분다. 남자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걸까. 


직접적인 대사로 주제를 전하다


영화는 족구라는 알레고리를 제외한 어떤 어려운 알레고리 없이 쉽게 말을 전한다. 만섭이 복학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된 선배는 "족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해서 공무원이나 돼."라고 말하고, 만섭과 창호가 족구 연습을 할라 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 여학생도 "여기서 족구 같은 거 하지 마세요. 남에게 피해를 주잖아요."라고 말한다. 


또 학교 교직원 한 명은 "학교에 족구 열풍이 불면 안 됩니다.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헤치고, 결국엔 취업률이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열을 낸다. 안나도 족구를 두고, "더러워요. 복학생들이 족구하고 나서 땀내 풀풀 풍기며 강의실에 들어 오잖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족구는 그야말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연애를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인생에서 정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그렇다면 만섭에게는 이런 무시무시한 뜻이 감춰져 있는 족구를 굳이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선배의 물음 "너에게 족구는 뭐냐?"에, 만섭은 "그냥, 재밌잖아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재미라. 주구장창 의미를 부여한 그 어떤 명언보다 명확하고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다. 살인자에게 같은 물음을 던지고 이에 살인자가 재미를 운운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마는, 여기서 중요한 건 족구이다. 영화에서 족구는 많은 사람들 안에 공통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꿈, 열정, 낭만이다. 


유쾌한 분위기와 뻔한 스토리의 시너지


이후의 영화 스토리는 뻔하게 흘러간다. 만섭은 대회 결승을 황홀하게 마무리하고, 만섭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사랑을 찾아간다. 반면 만섭은 바닷길 드라이브로 자신만의 낭만을 즐긴다. 그동안 보아왔던 독립영화, 즉 감독의 의중이 크게 영화를 좌지우지 했던 영화 중에서 가장 뻔한 스토리인 듯하다. 그런데 그 뻔한 스토리가 독이 된 것이 아니라, 득이 되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여타 (필자가 보아온 묵직하고 어둡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독립영화와 다른 유쾌상쾌통쾌함인데, 그 유쾌함이 뻔한 스토리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본다. 이 유쾌함에 얽히고 설킨 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를 얹혔으면 굉장히 이상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기분이 우울해 질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 현재의 청춘을 다루면서 이리도 우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 청춘의 일면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는 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지 않을까?


언제부터 청춘이 우울했는가? 청춘은 우울하지 않다. 

누가 청춘이 아프다고 했는가? 청춘은 아프지 않다. 

설령 우울하고 아픈 청춘이라 해도, 그조차 부럽기만 한 청춘이다. 

그 어떤 모습도 너무나 아름다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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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꿈, 낭만, 복학, 열정, 유쾌상쾌통쾌, 족구, 족구왕, 청춘, 취업
  • BlogIcon 노지
    2014.10.13 07:42 신고

    청춘은 참 멋진 건데...
    하아....
    왜 이렇게 답답한 걸까요... 현실은.

    • BlogIcon singenv
      2014.10.19 16:39 신고

      흠... 힘냅시다!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10.15 09:46 신고

    마지막글이 명답입니다~~
    청춘은 어떠해도 아름답습니다. 아팠어도, 비참했어도..그래도 가장 아름다워요..
    청춘을 살아가는 모든이들이..행복할수는 없지만, 청춘 그순간만큼은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길...

    • BlogIcon singenv
      2014.10.19 16:40 신고

      저도 청춘의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한 번쯤은 멀리서 떨어져 바라보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 BlogIcon 조아하자
    2014.10.17 11:17 신고

    전 청춘인데도 우울하네요. 취업안되서... ㅠㅠ

    • BlogIcon singenv
      2014.10.19 16:41 신고

      취업이 모든 거라고 말하기도, 아니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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