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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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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사회와 개인 문제를 녹여낸 연극 <2호선 세입자> 2019.10.25
  •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2019.10.05
  • 어느 중년 부부의 난임 해결 고군분투 이야기, 그리고 사사로운 삶 <프라이빗 라이프> 2019.01.02
  •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2018.12.27
  • 조각난 관계들을 포옹으로 형성시켜라, 영화 <오 루시!> 2018.07.11
  •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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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에게 남은 것, 다른 무엇도 아닌 복수 <복수는 나의 것> 2017.09.15
  • 빈 손으로 다시 모여 다시 시작해보자 <컴, 투게더> 2017.06.14
  •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리플리> 2016.08.19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사회와 개인 문제를 녹여낸 연극 <2호선 세입자>

생각하다 2019. 10. 25. 08:00



[연극 리뷰] <2호선 세입자>


연극 <2호선 세입자> 포스터. ⓒ(주)레드앤블루



이호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관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겨우 얻은 2호선 역무원 인턴, 간신히 취업을 했지만 여자친구가 떠나간다. 술에 취해 잠들어 차고지까지 가게 된 호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늦은 새벽 전동차 안에서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그들은 그곳에서 노숙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선은 역장에게 알린다. 


역장은 확인 후 본사에게 보고해야 하건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이나 호선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라며, 호선에게 제안/명령한다. 2호선 노숙자들을 쫓아내고나서 본사에 알리면 호선의 능력을 높이 사 정규직의 길이 열릴 거라고 말이다. 호선은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2호선 노숙자들을 쫓아낼 계획을 세운다. 우선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하나하나 잘 아는 것이다. 그러고자 '이호선 상담소'를 연다. 


호선으로선 그들을 쫓아내야 하건만, 정작 그 방법의 일환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연을 들으니 쫓아낼 마음이 들기는커녕 동화된다. 그들이 왜 그곳에서 '노숙자'가 아닌 '세입자'로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누군가한테 한 달에 10만 원의 '월세'를 내기도 한다. 더 이상 불법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그들을 쫓아낼 순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살 수는 없을 텐데...


웹툰 원작의 착한 장르 상업 연극


연극 <2호선 세입자>는 갖가지 사연으로 2호선 전동차 한 칸에서 모여 사는 다섯 명과 그들을 쫓아내려는 역무원 인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휴먼 판타지이다. 일면 있을 법하고 또 흥미롭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발상이자 설정이다. 지하철 체계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을 뿐더러, 그곳에서 삶을 영위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지난 3월 무대로 옮겨져 오픈런으로 공연 중인 이 연극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015년 1월부터 1년간 네이버 웹툰을 통해 선보인 <2호선 세입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0년 간 가장 인기 많은 연극 <옥탑방 고양이>의 제작사에서 발굴해 연극으로 선보인 것이다. <옥탑방 고양이>도 원작이 따로 있다. 당시 반짝이지만 큰 인기를 끌었던 '인터넷 소설'이다. 


향후 대학로 상업 연극의 '착한 장르'에서 새로운 강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2호선 세입자>, 호불호 없이 누구한테든 권할 수 있는 연극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기시감을 가실 수는 없겠다.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즐길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바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작품엔 지금 이 순간 사회가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이 순간 우리가 사는 사회


이호선은 역무원 인턴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취업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정규직이라는 올라서기 힘든 계단 위 또는 건너기 힘든 강 건너가 앞을 가로막는다. 고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 잠시 숨이라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평생 오르고 건너는 일밖에 없다. 


역장이 호선을 시켜먹는 방식이 가관이다. 계약직의 일환인 인턴조차 계속하고 싶으면 잠자코 있고, 정규직의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2호선 세입자들을 쫓아내라는 것이다. 자리를 빌미로 사람을 부리는 파렴치한의 전형이지만, 이 사회에선 그보다 더 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킨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 밥줄이 끊기지 않는가. 한편으론 번듯한 직업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그들은 엄연히 불법이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한 달에 10만 원의 월세를 내며 세입자로 살고 있다. 그런 그들을 강제로 쫓아내려 하는 모습은 재개발 강제 퇴거를 연상시킨다. 그들에겐 다른 곳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고 그에 맞는 개별 대책을 세우는 게 맞지 않겠나 싶다. 적어도 그 일이 그들에게 더 좋을 거라고 주장한다면 말이다. 


정이 가는 사연들


이 작품에 정이 가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호선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사연이 자못 흥미롭다. 그 사연이 갖는 휴머니즘을 전하기 위해 극적인 발상과 설정을 연출한 게 아닌가도 싶다. 그들 다섯은, 할아버지 한 명과 아저씨와 아줌마, 대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남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구의, 역삼, 방배, 홍대, 성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처음 탈 때의 역 이름이다. 


아들에게 버림 받은 할아버지,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아저씨,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아줌마, 꿈이 없는 남학생, 성내역에서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여학생까지. 전동차 안에서 생활하게 된 연유가 제각각이거니와 사회와 개인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나름 다층적으로 여러 줄기가 뻗어가는 면면이 시의적절해 보인다. 


작품은 진지하고 심각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오면서도 코믹함을 유지한다. 하여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주연 한 명 한 명이 연극의 재미를 오롯이 담당한다. 극중 캐릭터성을 넘어서 연극 고유의 관객친화성을 잘 살린 것이다. 한편, 사연이 주는 감동도 강도(強度)가 만만치 않다. 큰소리로 웃을 수 있게 재미를 주는 만큼 울음의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성내의 사연이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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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세입자, 강제퇴거, 개인, 사연, 사회, 연극, 웹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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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10. 5. 08:00



[영화 리뷰] <조커>


영화 <조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 DC와 마블, '마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탠리가 1960년대 '판타스틱 4'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까진 DC가 앞섰다고 한다. 영화 판권 시장 역시 슈퍼맨과 배트맨을 앞세운 DC가 앞섰다가, 2008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시작한 마블이 완전히 앞서게 되었다. DC도 뒤늦게 유니버스를 창조했지만 역부족,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본래, 마블이 캐릭터를 앞세웠다면 DC는 스토리를 앞세웠다. 그런 기조는 영화로도 이어져,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DC의 <다크나이트>가 손꼽히게 된 것이리라. 감독의 역량이 크게 좌지우지하겠지만 제작사의 입김이 없을 리 없다. 와중에 DC에겐 절대적 무기가 있으니,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조커'이다. 역설적이게도 조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신기하게도 조커 단독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 


DC가 방도를 모색할 때 아무래도 마블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수많은 캐릭터를 앞세워 거대한 연결 세계를 창조한 마블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 것 같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배우를 앞세운 영화 <조커>로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을 탄생시킨 것이다. DC가 앞으로도 별처럼 홀로 빛나는 캐릭터 영화를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별개로 <조커>는 반영구적으로 빛날 게 분명한 명작이다.


의심과 논란의 여지 없는 '연기'


고담시에서 광대로 일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노모를 모시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뇌 또는 신경 이상으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웃음발작을 일으키고, 망상증세도 심각한 수준이다. 주기적으로 약을 타 먹고 상담도 받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골의 외모로 지나가는 10대 아이들한테 무시받으며, 발작적인 웃음에는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을지언정 하나같이 뭐가 웃기냐며 의아해할 뿐이며 심지어 테러까지 일삼는다. 


영화 <조커>에서 의심과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연기'다.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과 조커, 그리고 아서 플렉이 조커로 거듭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로버트 드 니로의 머레이 프랭클린. 우선 로버트 드 니로는 35여 년 전 본인이 주연 루퍼트 펍킨 역을 맡은 영화 <코미디의 왕>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루퍼트 펍킨과 대칭된다.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웃기지 못하는 아서 플렉,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기회를 갖지 못하는 루퍼트 펍킨. 둘 다 망상증세가 심각하다. 


베니스와 칸을 접수했지만, 미국 아카데미에선 3번이나 고배를 마신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커>는 족하다. 많은 이들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최고의 조커로 '히스 레저'를 떠올리겠지만, 만들어진 조커와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 자레드 레토의 조커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조커들은 광기와 혼란과 악의 개념 하에 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에겐 슬픔과 아픔과 공허까지 있다. 태반이 웃음발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조커 하면 떠올리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웃음의 슬픈 기원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하염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한숨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 <조커>의 모든 것을 직조했다. 


흠잡을 데 없는 '연출'


10대들한테 밟히고 광고판까지 박살나고선 실의에 빠져 있는 아서에게 광대 동료가 총을 건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쏴버리라고. 집에서 혼자 폼을 잡으며 시늉하다가 쏘아 보니 당황스럽고 무서운 게 아닌가. 그런데 하필 총을 아동병원에 가지고 갈 게 뭐람. 그 일로 아서는 회사에서 잘린다. 여자 한 명을 희롱하는 술 취한 3명의 남자들과 지하철 한 칸에 같이 탄 아서, 웃음발작이 터지고 그들에게 밟힌다. 곧 총성이 울리고 3명이 죽는다. 아서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이후 토마스 웨인 시장 후보가 죽은 3명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하고 고담시는 폭풍전야에 빠진다. 


영화 <조커>의 연출을 맡은 이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다. 그가 누구인가. <행오버> 시리즈로 할리우드 막장 코미디의 대표 자리를 꿰찬 이가 아닌가. 연출 필모를 3편을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이후 2000~2010년대에 내놓은 9편을 모두 코미디로 채운다. 그야말로 코미디에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조커>를 연출한다니?


DC의 후광으로 대대적인 관심과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받을 테지만, 작품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러웠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DC에서 내놓은 <조커>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테다. 뚜껑을 열어보니, 개봉도 하기 전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코믹스 최초 3대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에 이은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예상치 못한 이변이자 예상했을 쾌거이다. 


영화는 흠잡을 데가 없다. 개인과 사회라는 씨줄과 날줄로 종횡으로 엮어 탄생 신화를 써내려갔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어구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 때문에 괴물이 탄생했다는 일방향식 서사에, 조커 이전 아서 플렉이라는 지극한 개인적 서사를 얹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입체감을 얻었다. 


<조커>에 있는 것들


우발적인 살인 이후 표정과 행동이 바뀌는 아서, 대담해지고 일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 말마따나 항상 웃으며 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웃음발작 때문에 행복한 적이 없었던 아서, 그에게 살인이라는 건 무례한 세상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가멸찬 외침이 되었고 당하고만 살았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향한 위로도 되었다. 이후 그는 광대라는 가면 뒤가 아닌 그 자신 광대가 되어 진짜 웃음과 함께 한다. 


영화 <조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깨달음은 차라리 <다크 나이트>에게서 받았고, 뇌리에 영원히 남을 듯한 모습은 히스 레저의 조커에게 남아 있으며, 기 막히게 창조된 세상은 DC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에 보다 확실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조커>에는 무엇이 있는가. 


코미디의 대가가 재창조한 완벽한 코미디 세상 고담시, 미친 도시이자 코미디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자 미쳐 가고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 인생을 산 아서 플렉, 토마스 웨인을 위시한 기득권층을 적으로 둔 대중들과 조롱의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을 적으로 둔 아서 플렉의 조우. 개인, 대중, 사회가 맞물리는 지점을 '조커'라는 상징과 은유의 꼭짓점으로 모이게 하는 과정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진행된다. 고담시, 웨인 부자, 아캄 정신병원 등 영화 <배트맨> 시리즈과 조우하는 요소들도 모두 조커로 모이는 것이다. 영화 <조커>에는 조커가 있다. 


신경을 긁는 불쾌함과 세상을 바꿀 이의 탄생을 직시하게끔 만드는 웅장함이 일품인 음악과 화려하진 않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최적의 워킹을 선보이는 카메라, 그리고 아서 플렉의 어두침침한 집 내부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색의 옷에서 조커를 상징하는 화려한 색감의 옷과 초록 머리 그리고 빨간 입술 등이 항상 뒤를 받친다. 이보다 더 조커와 조커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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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 부부의 난임 해결 고군분투 이야기, 그리고 사사로운 삶 <프라이빗 라이프>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 2. 12:2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프라이빗 라이프>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 포스터. ⓒ넷플릭스



미국 뉴욕 맨하탄에서 사는 40대 예술가 부부, 극연출가 리차드(폴 지아마티 분)와 극작가 레이첼(캐서린 한 분)은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아이를 가져보려 애쓴다. 체외수정까지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입양도 쉽지 않다. 관심 끌어보려는 어린 친구의 사기 행각에 몸과 마음만 다쳤을 뿐이다. 의사는 최후의 방법이자 최고의 가능성이 점처지는 방법을 제시한다. 난자를 기증받는 것. 레이첼은 극구 반대하고 리차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득한다. 


결국 난자를 기증받기로 한 부부, 하지만 생판 모르는 여자의 난자를 기증받아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차마 못할 짓 같다. 차라리 아는 사람이나 친척의 난자라면 모를까. 그때 마침 리차드의 형 찰리의 의붓딸 세이디가 몸을 맡기려 찾아온다. 


리차드와 레이첼은 세이디에게 차마 하기 힘든 부탁을 한다. "너의 난자를 기증해다오" 리차드와 레이첼 부부를 롤모델로 삼고 그들의 축복을 진심으로 세이디, 그들처럼 글쟁이의 꿈을 꾸는 4차원의 그녀는 선뜻 허락한다. 부부는 꿈에 그리던 임신에 성공할까? 


코믹한 드라마이자 드라마틱한 코미디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는 남들에게 알려주기 싫은 사사로운 어느 한 부부의 삶을 현미경으로 보듯 들여다본다. 중년에 가까워지는 나이임에도 난임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사이사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밀조밀 포진해 있다. 


영화를 보며 '그렇게까지 하면서 임신을 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한편, 현대 도시 사회 최고 '뉴욕'과 '뉴요커'의 민낯과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그곳에서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함께 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마냥 진지하고 숨 막히게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시크한 매력이 엿보이는 이유는, 리차드와 레이첼을 연기한 폴 지아마티와 캐서린 한 덕분이겠다. 그들의 연기는 곧 이들 부부의 삶인데, 코믹한 드라마이자 드라마틱한 코미디이다. 


감독 타마라 젠킨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프라이빗 라이프> 바로 이전 <새비지스>를 10년 전에 연출했는데, 그 영화 역시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 개인과 가족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삶을 그렸다. 두 영화 모두 지극히 '미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과 가족, 사회적 삶


영화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삶을 코믹하고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목과는 딴판으로 이 부부의 삶은 굉장히 사회적이다. 예컨대, 그들의 난임 치료 과정은 대기실에 같이 앉아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정형화되고 규정화된 틀을 그대로 따른다. 한 발만 물러서 바라보면 마치 공장 같다. 


세이디는 뉴욕 맨하탄에 사는 이 예술가 부부를 존경한다. 이들의 삶이야말로 이 사회의 로망이자 이 사회가 만든 이상 아닌가. 그동안 아이 없이 각자 최고의 위치 가까이 커리어를 쌓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며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도시 한가운데에 사는 뉴요커이다. 사회와 매우 밀접한 이들의 삶 모양이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 아이를 원한다. 새삼 그 앞에 '이제야 왜'가 붙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부부 사이가 멀어져 보다 돈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리에 오를 때까지 아이를 미룰 수밖에 없었던 듯 보이기 때문이다. 즉시, 동시에, 영화의 시선은 이 부부의 사회적인 면모보다 지극히 사사롭고 개인적인 면모로 향한다. 


그 면모는 난임 치료 과정 중간중간 삐져나오는 또는 충돌하는 또는 튀는 모습을 취한다. 사회와 대면하는 개인과 가족의 모습이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자괴감이 들 때,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냐' 하고 불쾌감이 들 때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을 지극히 사사롭게 그려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자만 감당해야 할 일들


남의 일상을, 일상의 치졸함을 들여다보는 건 자못 흥미롭다. 그들이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고 틀에 맞는 정형화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사는 최상의 모순적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이 부부의 일상을 마냥 흥미롭게 바라볼 수 없는 건 가히 그 치졸함의 원인, 종류 때문이다. 취업, 연애, 결혼, 집, 아이를 포기하고 이밖에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계속 나오는 이 시대에 아이를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부부라니. 


아이가 '당연'한 것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변해 가는 지금, 더불어 많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변해 가는 현재, 사회를 위해선 '아이'만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도대체 누굴 위한 아이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겠다 싶다. 아이를 기르는 건 나오지 않아 누구의 손에 키워질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낳기 위해 몸부림치는 전과정에 전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여자가 아닌가.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개인적인 모습에서 아내이자 여자만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아이와 관련된 건 가장 보이지 않지만 가장 힘든 일이 아닌가. 레이첼도 레이첼이지만, 세이디도 세이디이다. 아이 낳기 프로젝트의 피해자 주체와 객체 모두 여자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점들도 눈여겨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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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8. 12. 27. 08:0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영화 <로마>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이후 컬러영화가 대중화되었다지만, 사실 최초의 컬러영화는 19세기 말경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셈. 이제는 당연한 컬러영화 시대에 종종 고개를 내미는 흑백영화는 자못 새롭게 다가온다. 


눈이 호강하다 못해 피곤해지게 만드는 화려한 색감의 '요즘'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왠만한 화려함에는 성에 차지 않게 된 조류의 반대적 개념이라 하겠다. 영화를 위해 흑백을 수단으로 했던가, 흑백 자체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적으로 들어 있던가. 


최근 들어서도 1년에 한 번은 흑백영화 또는 흑백과 컬러가 교차로 나오는 명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니, 현대 흑백영화는 대부분 명작인 것인가. 우리나라 영화로는 <동주> <지슬> 등이 생각나고, 외국 영화로는 <프란시스 하> <프란츠> <아티스트> 등이 생각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작 흑백영화가 찾아왔다.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넷플릭스로 건너가 자전적 이야기 <로마>를 내놓은 것이다. 이 영화는 칸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베니스에서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 이야기


멕시코시티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의 평범한 이야기.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70년대 초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동네 '로마', 남자 아이 셋과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친정 엄마와 같이 사는 한 중산층 집안에서 클레오는 다른 한 명과 함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모두 클레오를 한 가족처럼 대하고 어린 두 아이들은 클레오를 엄마 또는 이모처럼 생각한다. 클레오는 남자친구도 사귀며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종종 들려오는 흉흉한 말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뿐이다. 정치적 격랑의 강도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와중, 클레오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남자친구는 도망가 버리고, 클레오가 몸을 담고 있는 이 가족의 가장이 바람을 피워 뒤숭숭하고, 멕시코시티는 보다 격렬한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클레오는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까, 가장의 외도로 흔들리는 이 가족의 앞날은 어떨까, 멕시코시티와 멕시코는 언제쯤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을 완벽히 이루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로마>는 20여 년 전 베를린 은곰상에 빛나는 명작 흑백컬러영화인 중국 장이머우의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나게 한다. 단순히 흑백영화라는 점뿐만 아니라 한 개인, 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개인사 또는 가족사를 통해 시대까지 자연스럽게 들여다보는 맥락에서 그렇다. 


이 가족의 네 아이 중 하나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의 개인사를 가져오면서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취하고 있어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가족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조망하는 듯한 정적이게 스며드는 카메라 워킹과 일절 OST 없이 자체 사운드로만 채우는 시도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흑백인 점까지 더불어, 이 개인사와 가족사에 오롯이 천착할 수 있게 철처하게 판을 짜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듦에 있어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무수한 정답들이 있을 뿐일진대 이 영화는 그 무수한 정답들 중 하나의 완벽한 모범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주요 요소를 모두 포기하면서 또는 모든 것을 집약시켜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상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목도했다.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한 편이면 족하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물결이 진하게 흘러간 의미있는 해이지만, 멕시코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올림픽 개최로 인한 경제 성장의 해이다. 이듬해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 균형 분배 요구, 부정부패 척결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기도 하였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필연적인, 필연적이어야 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모습이다. 그때 정부는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시위대를 향해 대학살극을 벌여 수백 명이 희생당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1971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로마>는 이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당대 일련의 사회적 갈등을 유추할 수 있는 면면들을, 한 개인과 가족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들과 자연스럽게 병치시킨다.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게, 깊고 따뜻하게, 감당하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클레오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이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밀려와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고 꿋꿋하게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영화 한 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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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개인, 넷플릭스, 로마, 멕시코, 사회, 시대, 알폰소 쿠아론, 역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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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관계들을 포옹으로 형성시켜라, 영화 <오 루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7. 11. 12:30



[리뷰] <오 루시!>


영화 <오 루시!> 포스터. ⓒ엣나인필름



일본 도쿄,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분)는 조카 미카(쿠츠나 시오리 분)의 부탁으로 영어 회화 교실을 다니게 된다. 일단 무료체험을 하겠다고 나선 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학원 내부의 한 교실로 안내된 세츠코는 그곳에서 선생님 존(조쉬 하트넷 분)을 만난다. 


그는 미국식 영어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별 거 없는 영어와 함께 과장된 몸짓과 포옹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녀는 루시(lucy)라는 영어이름으로 불린다. 금발머리 가발과 함께. 가발을 돌려주러 갔을 때 다케시(야쿠쇼 코지 분) 즉, 톰을 만난다. 존에게 영어를 배우러 온 그였다. 루시는 그때 존과 깊은 포옹을 하고 남다른 기분을 느낀다. 사랑?


정식으로 등록하러 갔을 때 존은 떠나고 없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미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세츠코가 대신 수업을 듣는 대신 내준 60만 엔을 들고서. 그 사실을 안 미카의 엄마이자 세츠코의 언니 아야코(미나미 카호 분)는 세츠코에게 60만 엔을 돌려주고, 이를 다시 세츠코가 아야코에게 돌려주려 하면서 미카가 있는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가겠다고 한다. 아야코가 동행한다. 이 동상이몽 여정의 끝은?


신인 감독과 베테랑 배우들


영화 <오 루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 <오 루시!>는 일본의 젊은 신인 감독 히라야나기 아츠코가 자신이 만든 단편 <오 루시!>를 장편으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단편의 장편영화화에 일본 최고 베테랑 배우들과 할리우드 스타가 합류했다.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배우 반열에 오른 테라지마 시노부와 야쿠쇼 코지, 일본 내 명배우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미나미 카호, 말이 필요 없는 조쉬 하트넷까지. 


초짜 감독의 그냥저냥 멜로 로맨스 영화에 이런 배우들이 모여들리 없다. 이 영화에는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게 뭘까? 섬뜩한 지하철 투신 자살 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 가족 간에 회사동료 간에 친구 간에 일절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보이는 세츠코, 고작 포옹 한 번에 미국까지 날아가는 세츠코, 언니에게 남자친구를 뺏긴 세츠코. 


세츠코의 기이한 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퍼즐 맞추듯 해보면 뭔가가 보일 듯하다. 영화 시작에서 보이는 투신 자살 사건이 비단 그 한 번으로 그치지는 않는다는 점은 사회적 병리 현상의 일면을 보이는 것 같고, 세츠코의 면면은 다름 아닌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흔하다면 흔한 병리자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영화가 겉으로 내보이는 멜로 로맨스 즉, 세츠코의 사랑조차 이 병리의 일환 같다. 결정적으로, 세츠코라는 자아와 루시라는 자아의 분리. 


개인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1인 가구의 폐해


영화 <오 루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1인 가구는 더 이상 특별한 현상 내지 양상이 아니다. 이미 전 인구에서 30%에 육박했고 머지 않아 1/3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 모습은 '문제'인가. 문제라고 하면 문제다. 의료발달로 수명은 점점 늘 것인데 반해 결혼과 출산은 점점 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들여다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문제를 문제라고 하기 전에 다른 의미로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개개인의 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도 있다. <오 루시!>는 사회적 아닌 개인적으로 1인 가구의 폐해를 들여다보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혼삶을 사는 이가 모두 세츠코 같은 건 아닐 것이다. 그들 대다수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연대하며 살아간다. 삶의 형식이 둘 이상이 아닌 혼자일 뿐이다. 와중에 혼삶의 객체적 문제가 드러난다. 1인 가구가 지닌 병리적 모습을 고스란히 떠안은 이, '사회적' 인간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이, 최악의 경우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빼앗아 갔다고 느끼는 이. 


세츠코의 경우, 가장 크게 다가오거니와 원초적인 사건이자 병리적 모습의 원인은 남자친구를 빼앗아간 언니 아야코와 미카의 존재다. 그녀는 그 때문에 자신의 삶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지금의 삶이 의미 없다고 느끼며 자연스레 이 사회에 적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는 비록 이유도 현상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관계들의 집합체


영화 <오 루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세츠코가 존을 사랑하게 된 또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저 존의 다가옴이었다. 존이 다가와서 포옹을 했고 세츠코는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면 '사랑'이라 자신있게 말하리라. 그런데 세츠코라는 사람이 사람과의 소통이 불능한 상태이기에, 관계에 있어 최상에 위치한 '사랑'을 한순간에 느끼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건 사랑이 아닌 병리적 모습의 또 다른 모습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존은 세츠코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결혼한 아야코의 딸과 함께 도망친 사람이 아닌가. 세츠코에게 한처럼 남아 있는 그 일에 대비해볼 때, 존에 대한 사랑의 모습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인 갈망과 집착과는 완연히 다른 복수의 일면일 수 있다. 세츠코에게 남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 형상이란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경제위기 시대의 현대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1인 가구가 된 게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1인 가구의 혼삶을 살게 된 것처럼 보이는 세츠코의 이야기는, 그 면면이 혼삶의 병리적 모습을 띄고 있기에 복합적으로 보여지고 다가온다. 뭔가 알 만한 그림이 그려질 듯한 퍼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외롭고 초조하고 기이하고 단순하고 아슬아슬한 관계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반면 영화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단순명쾌하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충분한 효과를 보인다. 진심 어린 포옹. 내 몸의 절반과 상대방 몸의 절반을 오롯이 맞대는 행위. 거기엔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 받는 모든 것들이 있다. 그 자체로 이겨낼 수 없는 병리를 초월한 관계 형성이다. 분리되어버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자아도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또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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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개인, 관계, 병리, 사랑, 사회, 오 루시!,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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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6. 20. 08:00



[리뷰] <세라비, 이것이 인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포스터 ⓒ디스테이션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 한참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건 단연 미국이다. 마치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라고 다시금 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 미국의 에디슨과 딕슨이 이미 영화용 카메라와 활동사진 감상 기구를 발명하였고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미국 아닌 프랑스를 동경한다. 세상이 자본주의로 획일화되어 영화 또한 그에 흡수되기 전에는 프랑스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기준이자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그 답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건 한참 전이다. 


프랑스 영화는 종종 상업적으로 미국 할리우드를 위협하거나 또는 훌륭하게 종속되거나 해왔다. 감독으로는 뤽 베송이나 미셸 공드리, 배우로는 마리옹 코티야르나 뱅상 카젤 등이 유명하다. 물론 레오 카락스 감독이나 이자벨 위페르 배우 등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도 많다. 


특별한 결혼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프랑스는 극강의 예술영화를 지나 범죄,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의 장르 상업 영화에 도드라지는 형태를 보여왔다. 그중에 한국에는 2012년에 선보여 생각지도 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언터처블: 1%의 우정>이다. 전신불구의 상위 1% 귀족남과 무일푼의 하위 1% 흑인백수의 기막힌 동거를 코미디와 감동 어린 드라마 조합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모든 작품을 함께 연출하는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거니와 그들의 출세작이다. 


이들은 2005년 데뷔 후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는데 모두 코미디였다. 최근에는 감동 어린 드라마를 적절하고 훌륭히 조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듯하다. 2017년 프랑스에서 선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올해 한국에 상륙한 <세라비, 이것이 인생!>이 최신작으로, 변치 않는 프랑스식 입담과 코미디와 드라마를 선보인다. 


웨딩플래너 업체를 이끄는 맥스는 17세기 고성에서의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유독 까다롭고 예민한 클라이언트 신랑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그날따라 불만 많고 불안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발하는 직원들 뒤치다꺼리가 힘들다. 요즘 부쩍 일 하기가 힘들어 회사를 넘길까도 생각 중이다. 


이뿐이랴? 믿고 맡겨야 할 넘버 2 아델은 땜빵으로 온 밴드 리더 제임스와 욕지거리를 주고 받으며 싸우질 않나, 맥스와 공공연한 내연 관계에 있는 조지앙은 부인과 매듭을 짓지 않고 시간을 끄는 맥스 보란 듯이 젊은 직원을 꼬시며 속을 뒤집어 놓질 않나, 처남이랍시고 내치지 않고 봐주고 있는 줄리앙은 잠옷 차림으로 출근해 한때 동료였던 신부에게 들이대려고 하질 않나... 과연 이 결혼식은 잘 끝날까?


일과 사람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영화는 17세기 고성을 배경으로 하객과 웨딩플래더 업체 직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결혼식 하루 나절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사장 맥스가 있고, 그가 처리하는 복잡다단한 일의 단면들이 전부다. 거기에는 정녕 개성 만점 인간군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지 작은 회사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라는 게 한번 몰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니와 정녕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의 다양한 종류의 일들이 터진다.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할 때는 정신 차리고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그때 드는 가장 주된 생각은, 각각의 일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이 아닌 사람들 말이다. 그럼 참 편할 텐데...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잡은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이런 바람을 역으로 살려 극대화시키며 재미를 끌어낸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들, 그 어려움은 사실 그 일들의 주체인 사람들에 있다는 공감. 내가 그 자리에 있긴 싫지만, 그 자리를 구경하는 건 정녕 재밌는 일 아닌가. 예를 들면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을 대리 경험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맞아, 꼭 저런 일이 있지. 꼭 저런 사람이 있어.' 하는 공감 경험. 


더불어 '사람'들에서 이 감독들이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있으니, 적정하고 유려하게 내놓는 사회 비판이다. 거기엔 인종의 용광로인 프랑스의 특성이 잘 배어 있어 더더욱 흥미롭다. 전작 <언터처블: 1%의 우정>과 <웰컴, 삼바>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물리적 아닌 화확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특성을 지닌다. 


이 영화를 즐기는 법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맥스의 회사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수준이다. 이왕이면 작아보이고 싶어서일까. 불법으로 보이는 일, 즉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현찰로 정직원 아닌 알바 또는 계약직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상당수가 백인 아닌 인도 쪽(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사람인 듯보이고, 역으로 그쪽 사람들은 모두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 자행되는 불법, 그런데 맥스는 국세청에서 찾아온 듯한 사람한테 가서 이실직고 정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역설한다. 걸리면 어차피 다 죽을 거, 하지만 걸릴까봐 두려워 불법을 자행하지 않아도 다 죽을 판이다. 


"우린 영세업체지만 일손이 부족해요. 정직원만 쓰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죠. 급여 100유로당 200유로를 손해보니까요. 그러니 급여를 현찰로 주고 쓰죠. 정부 지원이 없으면 어쩔 수 없어요. 정직원을 많이 쓰면 회계 감사도 받잖아요. 신규 채용 급여세 면제는 왜 안 하죠? 다들 실업률 증가네 어쩌네 떠들지만 문제 해결엔 관심이 없어요."


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단연 인간의 다양성 그리고 자연스레 수반되는 상황의 다양성에서 온다. 하지만 서사 흐름 속 위기 또한 다름 아닌 바로 그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회사와 먼 곳의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에 뛰어든 이들의 공공연한 합의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뜬금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로맨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 간의 자국어 대화로 엿보는 프랑스 셀프 디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말이다. 다름 아닌 이들이 문제를 얼추 해결하기도 하는 다양성의 일환도 흥미롭다. 


다분히 프랑스식 유머와 프랑스에서만 통용될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온전히 100% 즐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기억에 남을 만한 사연들, 범보편적 공감을 살 만한 상황들이 완벽할 수 없는 이해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라는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 하고 좌절을 느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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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다양성, 사람, 사회, 세라비 이것이 인생, 언터처블, 유머, 일, 코미디, 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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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과 아웃사이더 가해자를 들여다보다 <인 콜드 블러드>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8. 3. 5. 08:00



[지나간 책 다시 읽기]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인 콜드 블러드> 표지 ⓒ시공사



1959년 11월 15일, 미국 서부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클러터 일가족 네 명이 근거리에서 엽총에 맞아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모두 밧줄에 묶여 있었으며 각기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단서를 찾기 힘들었던 바 확실한 증거를 찾기 힘든 완전범죄에 가까웠다. 


캔자스 주에서 명성이 자자한 클러터의 집인 만큼 범인들이 훔쳐간 게 엄청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집에서 없어진 건 고작 4~50달러의 현금과 라디오, 만원경 따위였다. 이 믿기지 않는 살해 동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범인의 자백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이에 범인들은 캔자스 주로 다시 돌아오는 모험을 저지르는데...


한편, 홀컴 마을은 이 사건 이후 범인이 잡힐 때까지 서로 못 믿고, 무서워서 죽을 만큼 서로 겁주는 흉흉한 동네가 되었다. 몇몇은 마을을 떠났고,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전에 없이 철두철미하게 집을 지키려 했다. 캔자스 주 수사국에서 가든시티 책임자이자 서부 캔자스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앨빈 애덤스 듀이는 이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일찍이 본 적도 없는 극악한 사건,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유명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저자 트루먼 카포티는 클러터 일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59년 11월 어느 날 '뉴욕 타임스'의 짤막한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껴 직접 조사하기 위해 친구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 저자)와 함께 홀컴으로 향한다. 이후 6년 만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 작품을 내놓았으니 <인 콜드 블러드>다. 


이상적인 희생자, 아웃사이더 가해자


저자는 마치 창조한 듯한 이상적이고 완벽한 가족인 희생자 클러터 일가를 다루는 데 작품 초중반을 할애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해당해서는 안 되었고 그렇게 살해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캔자스 주에서 보기 드물게 존경받고 올곧은 삶을 살아가는 클러터 일가, 그들은 왜 끔찍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그렇지만 카포티는 그들 희생자보다 가해자인 딕과 페리에게 천착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학창 시절을 보냈음에도 평생 범죄를 저질러 왔던 딕, 그에 반해 불우하기 짝이 없는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풍부한 감수성을 유지했지만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페리. 


딕은 몰라도 페리야말로 특별한 케이스이다. 그의 살인에는 사회적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체로키 인디언 엄마와 백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는 정체성, 작은 키에 유독 짧은 다리의 신체, 거기에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기까지 하는 장애인. 그야말로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저자는 나름 중립을 지키며 죽은 사람들, 죽인 사람들, 죽인 사람들을 쫓는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그밖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문학적 감수성과 철저하게 객관적인 자료와 인터뷰를 혼합해, 지극히 주관적인 논픽션을 내놓았지만, 그와 철저히 닮은 듯한 페리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보는 이들도 페리에게 끌리고 일말 일순간 동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나온 지가 50년이 지나는 동안, 페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범죄자를 등장시킨 콘텐츠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적으로 철저히 버림받은 이가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는 내용. 이 괴물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 무작정 동조하기도, 그렇다고 무작정 방치하고 무시하기도 힘들다. 이 책의 위대한 점이 바로 그 부분을 굉장히 다양한 관점과 소견과 견해와 감정을 혼합해 쉽게 풀 수 없게 했다는 점일 테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논픽션 노블'로 들여다보는 1960년대 미국


<인 콜드 블러드>는 저자와 맞닿아 있는 페리를 들여다보며 객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집합체 사회 안에서의 개인을 끄집어내어 경종을 울리는 한편, 1950~60년대 미국 사회를 해부하며 사회 자체에 경종을 울린다. 일면 평화로운 시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지나 베트남전쟁 사이의 화려한 시대, 중산층이 비상하고 히피문화가 활황하는 와중 냉전 한복판에서의 세계 최강대국 미국.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 시대, 이 사회를 저자는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로 수렴시켜, 명망 높은 한 가족에 닥친 끔찍한 사태가 온 동네를 휩쓸어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일면 단단해 보였던 사회의 구조물은 실상 아주 부실한 구조로 쌓아올려졌던 것이다. 그들 모두 갈팡질팡 어쩌질 못한다. 


카포티는 이 책을 오로지 사실만으로, 또는 완전한 픽션만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논픽션 노블'이라는 전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면서 거짓으로 진실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모순이 공존하는 이와 같은 책을 쓴 이유는, 페리로 대표되는 개인과 홀컴으로 대표되는 사회를 복합적으로 효과있게 그러면서 임팩트있게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을 통해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개인-사회-시대라는 전체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부터, 삶-죽음이라는 핵심 가치의 개념을 지나, 살인-수사-사형이라는 범죄 특성상의 전문 개념까지 아우르다 보니, 살아가다 맞닦드리는 생각의 굉장히 많은 부분을 이 작품으로만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인 콜드 블러드>의 부제는 '일가족 살인사건과 수사과정을 다룬 진실한 기록'이다. 우선, 일가족 살인'사건'을 다뤘다. 범죄소설의 외형이다. 다음으로 '수사'과정을 다룬다. 개인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개념의 일환이다. 마지막으로 '진실'한 기록이다. 아웃사이더 저자에 의한 아웃사이더 페리를 위한, 거짓같은 진실과 진실같은 거짓이 오가는 기록이다. 이 책과 함께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카포티>를 보면 더 많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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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 살인, 아웃사이더,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8.03.06 17:54 신고

    미드 크리미널마인드에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 BlogIcon singenv
      2018.03.06 17:58 신고

      오랜만입니다~ 공수래공수거님^^ 그 유명한 미드군요. 그 시작이 <인 콜드 블러드>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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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남은 것, 다른 무엇도 아닌 복수 <복수는 나의 것>

오래된 리뷰 2017. 9. 15. 08:00



[오래된 리뷰]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스타일의 모든 것을 보여준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CJ 엔터테인먼트

 


자타공인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영화 감독 중 한 명, 박찬욱.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국내를, 2003년 <올드보이>로 해외를 접수하면서 지금의 박찬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은 미약하였다. 자그마치 25년 전인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들어본 적 없는 데뷔작과 1997년 <3인조>라는 작품 모두 실패하며 암흑의 초창기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2002년의 <복수는 나의 것>이 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데뷔 10여 년만에 입지를 다진 후 그 여세를 몰아 자신만의 색깔을 오롯이 입힌 영화를 만드는데, 그것이 이 작품이다. 박찬욱 영화를 지켜봐았던 사람이든, 박찬욱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이든 단번에 '박찬욱 영화'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폭력, 하드보일드, 아이러니, 극단의 조화, 블랙코미디, 미장센...


박찬욱 영화들이 그렇듯 <복수는 나의 것> 또한 절대로 마음 편하게 즐길 수는 없을 거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불편할 것이며, 보고 난 후에도 계속 괴롭힐 것이다. 물론 그 불편함들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


복수는 그들 모두의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의 뫼비우스의 띠. 그거 참... ⓒCJ 엔터테인먼트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류(신하균 분)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임지은 분)가 있다. 누나는 반드시 신장을 이식받아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인데, 혈액형이 다른 류는 신장을 이식하지 못한다. 조급한 마음에 천만 원을 가지고 아무도 몰래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는 대신 누나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을 받기로 거래하는 류, 사기를 당한다. 


그때 병원에서 좋지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누나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을 찾았다는 것... 천만 원만 있으면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류의 여자친구 영미(배두나 분)는 일단 류를 쥐어패고는 일명 '착한 유괴'론을 설파하며 천만 원을 구할 방도를 제시한다. 잘나가는 사장님 자식을 납치해서는 잘 대해주고 딱 천만 원만 받으면 바로 아이를 돌려주는 것. 


류와 영미는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분)의 딸 유선(한보배 분)을 타겟으로 삼는다. 그들 스스로가 약속한대로 유선을 마치 딸처럼 잘 보살핀다. 그리고는 곧 동진에게 협박편지를 보내 천만 원을 받아낸다. 하지만 당일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잇따른다. 자신 때문에 아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류의 누나가 자살하고, 류가 강가에 누나를 묻고 있는 사이에 함께 온 유선이 물에 빠져 죽는다...


이제 시작된다. 류와 동진의 한 맺힌 복수가. 아무 잘못도 없는 딸을 유괴해 죽음까지 이르게 한 류와 영미를 향한 피의 복수, 역시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의 천만 원과 신장을 갈취한 장기밀매업자를 향한 피의 복수, 그리고 조직에 속해 있는 영미를 죽인 동진을 향한 피의 복수까지. 그야말로 복수는 그들 모두의 것이다. 


복수할 상황에 처할 이유가 없는 이들에 남은 것, 복수


복수할 상황이 그들에게 갑자기 닥쳤다. 그저 복수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CJ 엔터테인먼트



다름 아닌 가족, 그것도 삶의 이유와 마찬가지인 가족의 죽음이 눈앞에 당도했다. 동진은 사실 잘나가는 사장님이 아니다. 일에만 몰두하다 이혼을 하고 아이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회사마저 어려운 지경이었던 것을, 그래서 더욱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던 그때 아이가 유괴당하고 죽기까지 한 것이다. 그에게 남은 게 복수밖에 더 있겠는가. 


류는 힘든 것도 그렇게 힘든 게 없는 주물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하루 아침에 해고당한 처지다. 거기에 누나의 치료비로 모아두었던 유일한 천만 원을 사기 당했다. 나름 방책을 연구해 '착한 유괴'를 실행에 옮기고 성공을 눈앞에 뒀는데 누나가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에게 남은 게 복수밖에 더 있겠는가.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한 복수가 없다. 눈이 찌뿌려지고 헉 소리가 나고 흠칫 놀란다. 우린 그동안 이보다 더 한 잔인함이 동반된 영화들을 무수히 많이 봐왔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이 영화가 복수에 초점을 맞췄기로 복수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행위가 눈에 띄는 건 행위의 연유와 사연의 처연함과 서늘함에 있겠다. 그들은 복수할 이유는 있었지만 복수할 상황에 처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외적 하이라이트는 류와 동진의 복수에 있지만, 주요 쟁점은 동진의 천만 원을 갈취하고 류의 누나가 자살하고 동진의 아이가 물에 빠져 죽는 그때에 있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곳은 영화의 초반에 있는 것이다. 물론 류와 동진의 복수에서 연유하는 '악'의 개념도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박찬욱 감독은 앞의 생각 지점보다 뒤의 생각 지점, 즉 악의 개념 또는 인간의 본성에 더 중점을 두었을 것이다. 


복수의 잔인함보다 초첨을 맞춰야 하는 곳


이 영화의 복수는 지극히 잔인하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복수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CJ 엔터테인먼트



두 주요 지점이 사실 진부한 논의가 발화되는 곳이기는 하다. 류와 동진이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가 이 사회에 있다는 것. 밑바닥의 소외계층과 망한 상류층 간의 대결 구도.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그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고, 왜 하필 그들끼리 서로 싸우게 된 것인가. 


그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겐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의 능력 또는 운명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능력론과 운명론. 영화에서 장기밀매업자의 사기 행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비롯 많은 '만약에'들에 안타까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데, 일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누가 해줄 수 있을까, 누가 해야만 할까. 


일련의 행위 원인을 들여다보았다면, 일련의 행위 결과를 들여다볼 차례다. 물론 영화에 나온 두 캐릭터들로만 일반화시킬 순 절대 없겠지만, 작은 표본을 도출할 순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위 자체는 아무리 자신의 삶의 이유를 잃고 남은 삶을 포기해버렸기로서니 분명 악마적이다. 직접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으니 더욱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악마'의 타이틀을 붙일 순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같은 짓을 저질렀지만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안나 하렌트가 아이히만을 두고 주장한 '악의 평범성'을 대입할 수 있을까. 거기에 어떤 깊이나 악마적 차원은 없었던 만큼 최소한 어느 정도는 맞는 면이 있겠다. 


그들은 내재된 악마의 목소리를 따랐다기보다, 상황이 던진 복수의 목소리를 따랐다. 즉, 누구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에 버금가는 짓을 행할 수 있는 요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행했다는 것처럼, 그들도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복수의 임무를 충실히 아니, 어쩔 수 없이 행했다. "너 착한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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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복수, 복수는 나의 것, 사회, 악, 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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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으로 다시 모여 다시 시작해보자 <컴, 투게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6. 14. 08:00



[리뷰] <컴, 투게더>


최소 2017년 상반기 최고의 독립영화 <컴, 투게더>. ⓒ비아신픽처스



오랜만에 한국 독립영화를 본다. 세상을 보는 온전한 하나의 눈, 상대적으로나마 누군가의 입맛에 종속되거나 손질되지 않은 날것의 묘미, 그 안에서 일관된 무엇을 발견할 때의 희열, 모두들 거기가 문제라고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자 하지만 결국 보여지는 건 다르게 손질되고 마는구나 생각할 때의 씁쓸함. 나는 그런 독립영화를 사랑한다. 


일찍이 그 맛을 알아 독립영화의 맥을 짚어 보려 노력했고 그중에서 괜찮은 작품을 골라 소개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는 이전보다 저조했다. 독립영화 자체가 저조했던 건지, 나의 관심과 반응이 저조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2월에 <장기왕> 정도를 소개했을 뿐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최악의 하루> <여고생> <혼자> 신작 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저조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문으로 위로해본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에 독립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소개도 하지 않았음에도 <컴, 투게더>는 올해 상반기에 발견한 최고의 독립영화로 평할 만하다. 6개월이 지나 올해가 끝나도 여전히 최고의 독립영화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쪽에선 잔뼈가 굵은 신동일 감독이 8년 만에 연출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가족 개개인의 말 못할 고군분투


가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사회 문제의 연장선을 이 영화는 탈피한다. ⓒ비아신픽처스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 범구(임형국 분)는 18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잘려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집에서 쉬다가 윗층의 층간소음 때문에 인연을 맺게된 호준, 그가 쿵쿵대는 건 천장에 머리를 닿고자 하는 행위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닿았는데 언젠가부터 닿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그 차이가 아주 조금이란다. 


어머니 미영(이혜은 분)은 각종 편법을 써 가며 힘들게 실적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창립 8주년을 기념해 실적 1위에게 주어지는 태국 가족 여행 티켓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고객이 변심해 취소하고 동료가 가로채가고 편법이 상부에 걸린다. 그래도 계속 해야지 어쩌겠는가. 


딸 한나(채빈 분)는 재수로 고려대학교를 들어가고자 하지만 예비번호 18번에 머물러 있다. 최종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래도 한 명씩 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더 피를 말리게 한다. 그런 와중에 예비번호 8번 후배 소식을 듣게 되고 만난다. 그러고는 은연중 진심을 내비친다. "내 앞 예비번호 누구라도 죽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영화는 한나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가족 한 명 한 명의 현 상황을 보여주고는 식사 자리에 둘러 앉은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예비번호 18번에 머물러 있는 한나로 인해 큰소리가 오가는 식사 자리,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말 못할 일들을 겪는다. 그래서 가족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개인의 고군분투 이야기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 문제는 하나다


영화는 개인, 가족, 사회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비아신픽처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가족을 돌아본다. 결혼하고 분가한 후로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 듯 연락도 거의 하지 않지만, 문제는 한 지붕 아래 살았을 때조차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화목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거나 했던 건 아니다. 그런 모습에서 유추하는 문제의식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는 척 위하는 척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게 문제가 아닌가. 


여하튼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유기적인 인과 관계에서 유추하는 문제를 향한 비판 형식을 취하는 여타 영화와는 다른 결을 보인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문제가 한 눈에 보인다. 한 쪽에서 촉발한 문제가 다른 문제로 번지거나 원인이 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통합적인 문제다.


범구가 실업자가 된 건 이 사회의 가장 극심한 문제 중 하나이자 한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자 개인적으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유발의 문제이다. 미영이 신용불량자임에도 아둥바둥 신용카드를 파는 것도, 한나가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알아주는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한 곳에서만 촉발한 문제도 아니고, 어느 한 곳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어느 한 곳에서만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감독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그 시작을 가족으로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들 세 명은 각자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방식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연을 맺는다. 그런데 연을 이어가기가 너무 어렵고, 그들과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너무 힘들다. 그들이 없어졌으면 하기도 하지만, 막상 없어지면 울부짖으며 찾기도 한다. 반대로 함께 하고 싶지만,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다시 모여 다시 시작하자


극단적 비극으로 문제의식을 극단적으로 전달해 파급력을 실현시키려는 여타 독립영화와는 다른 희망적인 결이다. ⓒ비아신픽처스



적어도 내가 봐 왔던 독립영화의 결은 두 가지였다. 젋은 세대이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거나, 사회에 만연한 가해불가역성을 피해자에게 투영하여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내는 사회를 묵직하고 날카롭고 아프게 그려내거나.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도 완연히 다른 결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텐데' 또는 자신이 자신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괴롭히는 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내가 아는 독립영화의 결이라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러고는 속죄하고 도망가고 괴롭힘 당하고 피폐해지고 결국 자신 또한 죽고 만다. 이 사회가 만든 거대한 덫이자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자 끝없이 되풀이되는 굴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빈 손으로 다시 모인다. 


그 아래에는 감독이 촘촘히 구성해 놓은 구조가 있다. 비록 아프고 힘들고 비참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을 만한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컴팩트하게 시작한다. 그러곤 지뢰를 하나씩 심어놓는다. 더 큰 무엇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자 복선이고, 하이라이트를 향한 전개 방식이다. 그러곤 각자 겪게 되는 극치의 경험과 한 데 뭉쳐 겪게 되는 최악의 경험을 동반한다. 이 지점에서 끝낼 것인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하는 건 감독의 몫일 것이다. 영화는 후자를 선택했다. 일장일단이 있을 텐데, 영화의 구조적인 면에서는 올바른 선택이지만 영화의 파급력 면에선 조금 아쉬울 수 있다. 


<컴, 투게더>는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힘이 느껴졌다. 각본의 힘이자, 연출의 힘이자, 연기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역설적으로 이 사회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을 하게 만든, 주인공들의 모습을 봐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 말이다. 밝디 밝은 영화를 봐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볼 맛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날은 언제일까. 그럼에도 그런 사회가 오고 있다는 걸 믿는다. 함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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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리플리>

오래된 리뷰 2016. 8. 19. 08:00



[오래된 리뷰] 멧 데이먼의 <리플리>


우연히 상류층의 일원으로 보여진 '톰' 그는 특출난 재능으로 빠르게 상류층의 일원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거짓된 삶이었으니... 그는 어떻게 될까? ⓒ미라맥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소프라노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어느 파티석상. 연주가 끝나자 선박 회사를 운영하는 부호 그린리프 부부가 다가와 톰 리플리에게 칭찬을 건넨다. 그러곤 그가 프리스턴 재킷을 입은 걸 보고 자신의 아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톰은 '디키, 잘 있죠?'하며 아는 척 하고 그린리프 부부의 환심을 산다. 


톰은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프리스턴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그는 피아노 선율사이자 호텔 보이일 뿐이다. 다만, 그때는 친구를 대신해 돈을 받고 프리스턴 대학교를 나온 피아니스트인 척했던 것이다. 그린리프는 톰에게 1000달러를 보장하며 이탈리아로 가서 디키를 설득해 들어오게끔 한다. 톰은 디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혀 모르는 재즈를 공부하고는 이탈리아로 날아간다. 


상류층이 되고 싶은 '재능'의 거짓된 삶


톰이 동경해 마지 않는 상류층의 삶 그자체인 디키. 톰은 차원이 다른 그의 사고와 행동과 여유와 씀씀이를 따라할 수 있을까? ⓒ미라맥스



영화 <리플리>는 이런저런 부차적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본론으로 넘어간다. 톰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단 몇 장면으로 보여주고는 곧바로 새로운 거짓된 삶이 나오는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건 톰의 거짓된 삶에 있다. 비천한 삶이 상류층의 삶으로 둔갑하면서 톰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졌다. 숨어서 동경해왔던, 언제든 준비가 된, 그러나 거짓되었다는, 그래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 


재능이 출중하지 않다면 일련의 일을 벌이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 톰은 상류층이 되기에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뭐든 금방 따라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능 말이다. 물론 뿌리 깊은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과는 근본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렇지만 그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게 있었다. 출신 성분이라고 해야 할까. 머나먼 윗세대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가문의 성분 말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가문, 학력, 돈, 명예, 지위 등. 디키는 선박 부호를 아버지로 두었고 돈은 엄청나게 많으며 프리스턴 대학교 출신이었다. 여기에 상류층다운 여유와 씀씀이,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소유하고 있다. 톰이 이런 것들까지 따라할 수 있을까?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초라한 현실보단 멋진 거짓이 낫다'는 생각으로 끔찍한 짓을 하고 끔찍한 현실을 버티는 톰. 그는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미라맥스



톰(멧 데이먼 분)은 디키(주드 로 분), 디키의 연인 마지(기네스 팰트로 분)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디키와 마지가 톰을 잘 대해주고 톰은 그들을 동경하며 잘 따랐다. 무엇보다 톰에게는 평생 다시 없을 상류층의 삶을 맛보는 나날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마치 자신이 진짜 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을 것이다. 


어느 날 상류층 친구 프레디가 찾아온다. 그는 디키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빌붙어 사는 게 좋냐고 톰을 놀려댄다. 톰은 적의에 불탔지만 이내 좌절하고 프레디는 그런 톰을 계속 놀려대고 디키는 톰을 조금 멀리하고 마지는 그런 톰을 위로한다. 그린리프 씨와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디키와 톰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디키는 톰에게 강력하게 전달한다. 따분하고 싫증났다고, 가난뱅이 빈대에 찰거머리라고, 계집애 같다고. 다툼 끝에 톰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영화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 모든 게 시작되었을 때처럼 우연치 않게 디키로 오해받은 톰은 아예 디키 행세를 한다. 그렇게 그는 디키가 되어 '진짜' 상류층이 된다. 영화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간다. 몇몇 장면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톰이 누군가에겐 톰이고 누군가에겐 디키이기 때문인데, 그 누군가들이 전부 상류층으로 서로 잘 알고 있다. 톰이 원하는 건 뭘까. 


톰은 '초라한 현실보단 멋진 거짓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 왔고 멋진 거짓을 현실로 옮겼으며 끔찍하지만 멋진 현실을 버텨 왔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를 생각나게 하는 이 생각은, 그러나 결국 진짜 상류층, 그가 바라는 멋진 삶을 주진 못한 것 같다. 그는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흔히 있는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회라면...


상류층만이 상류층을 인정하는, 참으로 슬픈 풍토다. 영화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상류층만이 상류층을 이해할 수 있고, 말이 통한다고. 이같은 풍토를 바꿀 순 없을까? ⓒ미라맥스



"과거를 창고에 꼭꼭 숨겨 두고 자물쇠를 채우고픈... 그 안은 어둡고 더러워. 그 추잡함을 들키면..." 


누구나 거짓된 삶을 사는 건 아니겠지만, 많은 거짓과 비밀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주고 싶지만, 그 더럽고 추잡한 사실을 들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평생을 사는 것이다. 톰 리플리, 그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모습이다. 너도 될 수 있고 나도 될 수 있고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미친놈이라기보단 괴물에 가깝지 않을까. 


때는 1950년대 미국, 위기와 전쟁을 지나 자본주의 최대 호황의 시대를 맞이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상류층의 삶의 양식이 정착되었다. 비천한 이가 감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기 쉽지 않을 거다. 누가 그에게 돈을 던질 수 있을까? 상류층이라면 돈을 던질 수 있을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재능 있는 리플리씨>에서 나온 '리플리 증후군'은 톰이 잘 보여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인데, 참으로 애잔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만약 현실이 비참하지 않다면?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끼는 건 누군가와 차별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건데, 그런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영화에서처럼 상류층만 상류층을 인정하는 풍토가 없다면? 리플리 증후군 따위는 없을 거다. 


자만심으로 풍만한 상류층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하류층의 더럽고 슬픈 합작품. 누구나 그것에 노출되어 있고 빠지기 쉽다는 게 안타깝고 두려울 뿐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고 아마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거다. 내가 의도했거나, 나도 모르게. 


사회를 바꿔가는 수밖에 없다. '나'라는 중심을 확고히 세우고 '나'를 사랑하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자칫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겐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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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거짓, 괴물, 리플리, 사이코패스, 사회, 상류층, 인정, 재능, 초라한 현실,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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