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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그들은 왜 영화 '필름'에 집착했을까 <원 세컨드> [신작 영화 리뷰] 지난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았던 장이머우 감독은 이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았다. 14년 전에는 웅장하게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섬세하게 표현했다. 중국의 기조가 변했는지 장이머우의 기조가 변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올해 개막식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의 단결을 강조한 걸 보면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중국 우월주의 또는 애국주의로의 길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장이머우는 2010년대 들어 '문화대혁명' 시기를 다룬 이야기들을 다수 만들고 있다. 등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 같은 애국주의 물씬 풍기는 영화들도 내놓았다. 이 두 집단 영화들의 기조는 다른 듯하지만 같은 곳을 향한다. 바.. 더보기
중국의 세계적인 작가 위화, 그 문학적 디테일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서평]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많다. 마오쩌둥이 사랑한 세계적인 대문호 루쉰을 필두로 라오서, 바진 등의 대문호급 작가들. 하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제대로 된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게 되니 중국 문학은, 아니 중국 문화는 80년대가 되어야 기지개를 펼 수 있었다. 문화대혁명 직후 폭발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작가들은 3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중국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 세계 만방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을 비롯 위화, 쑤퉁, 옌롄커 등이 그들이다. 모옌의 과 위화의 은 장이모우 감독에 의해 영화로 훌륭하게 만들어져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함께 치르기도 했다. 모옌과 위화는 과거 한때 베이징사범대학교 창작연구생반 동기로 2년 동안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도 한다. .. 더보기
<5일의 마중> 페르소나 '공리'와 함께 돌아온 '장예모' 감독의 신작 [리뷰] 공리의 데뷔작이기도 한 1988년 으로 데뷔한 장예모 감독. 그는 이후 중국 영화사에서 5세대라 칭하는 감독군의 중심에 서게 된다. 5세대는 기본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였지만, 엄격한 검열 때문에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곤 했다. 한편 중국 전통의 '민족의식'을 신비롭게 포장하여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서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이후 1990년대를 완전히 석권한다. 1991년에 나온 을 시작으로, 5개의 작품이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이다. 이미 1988년 데뷔작 으로 베를린 영화제를 제패했던 그다. 거장은 2000년대 들어서 중국형 블록버스터로 눈을 돌린다. 2002년의 , 2004년의 , 2006년의 까지. 2년.. 더보기
<허삼관 매혈기> 부모님, 이제는 당신을 위해 사세요 [지나간 책 다시 읽기] 몇 년 전, 일명 '현대판 라푼젤' 브라질 소녀가 10년 동안 길었던 머리카락을 600만 원 가량에 판매해 소형 주택을 장만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얼마후엔 영국 여성들이 돈이 필요해 머리카락을 팔았다는 기사도 났었다. 몸의 한 부분을 팔아서 돈을 장만하는 것만큼 절실한 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신조가 널리퍼진 나라에서는 더욱 말이다. 그럼에도 불과 몇 십년전, 국가 전체가 가난에 찌들었을 당시에는 머리카락을 팔아 간간히 연명하는 집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 옛날 일도, 그리 먼 일도 아닌 것이다. 요즘은 여간해서 한 가지 일만 해서 먹고 살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서 '투잡 시대'라고 하는가 보다. 불황의 그림자는 정말 깊고.. 더보기
중국 영화사 개괄: 암흑기 중화인민공화국과 문화대혁명 시기(1949년~1978년) 1)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세계 2차 대전의 종결과 국민당의 패배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된다. 그리고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된다. 이는 역시나 중국문화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기존의 영화스튜디오를 인수하여 영화를 국민당보다 더욱 철저하게 도구화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서방영화 대신 소련영화를 도입한다. 오락영화는 완전히 배제되고 오직 선전영화만이 만들어졌다. 소련의 영향에 의해 스탈린이 주창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도입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관과 당(공산당)의 예술관을 합치시켜야 했다. 억압적인 정책의 실패로 인해 1956년 '백화시대'(마오쩌둥의 연설-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열리면서 새로운 시도로 잠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