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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이 지나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5편

생각하다 2017. 12. 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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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챙겨보자


올해에도 역시 참으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어 우리의 눈과 귀와 머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를 이루는 기술, 스토리, 메시지 등에서 이제까지 축적해온 게 너무도 많아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들은 여지없이 그 생각을 무너뜨린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영화를 영상으로만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영상은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야흐로 이야기의 시대, 영화도 이야기가 최소한의 기본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 영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적으로 절대적이다. 그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게 아닌, 그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난 후 보이는 것들이다. 


올해 영화 이슈를 간략히 훑어보자. 역시 '송강호',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중간에서 포기한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단연 으뜸의 흥행력을 보여주었기에 박수를 보낸다. <범죄도시> <청년경찰>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소위 대박을 친 경우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큰 즐거움과 큰 돈을 안겨준 신드롬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역대급 망작과 최고 기대작의 실패도 올해 영화계를 풍성(?)하게 했다. 김수현 주연의 <리얼>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지만 엄청난 논란에 휩싸여 역대급 '망작'으로 최악의 흥행과 함께 마감했다.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초호화 캐스팅과 엄청난 제작비로 2017년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지만,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 왜곡 등의 논란에 휩싸여 흥행 실패를 맛보았다. 역시 신드롬의 주인공들이다. 


올해가 가기 직전, 시간을 어떻게든 내서 봤으면 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식견 하에 추려진,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다. 개중에는 누구나 알 만한 흥행 작품도 있고, 많은 인기를 끌지 못한 '듣보잡' 작품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어디에 내놔도 제 몫을 충분히 할 좋은 작품들인 건 분명하다. 


* 5편에 속하지 못했지만, 2017년이 지나가도 한 번쯤 봤으면 하는 2017년 작품들 10편을 추려 제목만 나열해본다. 이 작품들 또한 왠만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 <컨택트> <히든 피겨스> <겟 아웃> <지랄발광 17세> 

<프란츠> <몬스터 콜> <베이비 드라이버> <남한산성> <폭력의 씨앗>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 ⓒ오드(AUD)


① 문라이트(Moonlight)


명실공히 2016년 최고의 작품이다. <라라랜드>를 제치고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고야 말았는데, 그야말로 영화의 모든 이들이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영화 외적으로도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한 인간의 성장을 오롯이 대면할 수 있다. 


영화는 미국이 아마도 가장 덮고 싶어 하는 부분을 들춰내고자 한다. 배경이 되는 곳은 마이애미 흑인 지구의 마약 소굴, 그곳의 작고 한 없이 힘 없는 아이 리틀. 희망도 슬픔도 없이 공허하게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 그에게 후안은 많은 힘이 되는데, 그가 말한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빛나지'는 일종의 지침이 된다. 


성장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그에게 성장에의 길은 어둠 그 자체다. 그것도 겹겹이 쌓인. 그래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빛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에 달빛이 스며들 때 전율하지 않는 이 없고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성장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 성장은 파괴되고 파괴하는 어둠 속 빛의 미학이다.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② 덩케르크(Dunkirk)


명명백백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이다. 뜬금없이 전쟁영화를 들고 나온 그에게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았었는데, 재난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를 선보여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저 유명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놀란은 전쟁영화를 재난영화로 둔갑시킴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무차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재난이란 예측불허하고 무차별적이며 인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영화는 재난 상황은 매우 미시적으로 재난에 처한 인간은 매우 거시적으로 그려내며, '재난'의 전형적이며 실제적인 무서움을 역설한다. 


이쯤에서 놀란이 택한 마무리는 '인간'이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재난전쟁을 버틸 수 있는 건,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는 것이다. 새삼 곳곳에 뿌리박혀 있는 인간성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세계이다. 폭력적일수록 더더욱 숭고해지는 인간성이 우리를 지켜주는 세계. 



영화 <윈드 리버> 포스터 ⓒ유로픽쳐스


③ 윈드 리버(Wind River)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을 맡아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한 테일러 쉐리던이 연출자로 데뷔했다. 그는 전작에서 여지없이 '속살'을 비추는 데 천착했는데, <윈드 리버>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인디언 보호 구역이자 끝없이 펼쳐진 설원 와이오밍주 '윈드 리버'로 가보자. 


야생동물 사냥꾼 코리는 설원 한복판에서 여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곧 FBI 요원 제인이 달려오고 공조 수사가 시작된다. 이 설원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미국의 축소판이다. 영화는 윈드 리버에 마지막 희망이 있다고 보고, 미국 그 자체인 제인이 그 희망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보았다. 그녀가 얼마나 이 설원(자연)을 이해하고 윈드 리버(인디언)을 존중하고 그 모든 것에 공감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쉬워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단어들, 공감과 이해. 사실 그것들이 전부다. 그것들만 이행해도 세상은 한층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우리는 윈드 리버가 상징하는 막연하면서도 실질적인 '벽'을 허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다가갈 준비나 되어 있는가? 



영화 <우리의 20세기> 포스터 ⓒ그랜나래미디어


④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


영화는 나이도, 세대도, 성도, 삶의 방향이나 지침도, 생각도 완전히 다른 다섯 남녀를 통해 20세기의 면면을 보여준다. 상당한 미장셴을 앞세워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한 스토리와 구성을 감각적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들의 소소한 서사와 20세기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하는가. 


그들의 20세기는 문자 그대로 1999년까지가 아닌 1979년까지의 시대다. 1980년대부턴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대로 절제의 통제의 시대, 획일화된 시대로 진입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20세기는 문화와 세대와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들이 서로 편견을 갖지 않고 인정하는 시대인 것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다양한 장치들로 보여주려 한다. 빨리 감기, 홀로그램, 미래지향적이고 몽환적인 음악들 말이다. 영화에 활기를 불어줌과 동시에 품격까지 최소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지나간 한 시대를 기억하기에 알맞은, 여운이 길고 짙게 나는 장치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봤으면 하는 가장 좋은 영화이다. 



영화 <빛나는>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⑤ 빛나는(光, Radiance)


일본 최고의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행간과 자간을 꼼꼼히 살피고 읽어내어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호불호가 갈린다. 그런데 이 작품 <빛나는>은 그런 단점(?)들을 해소한 느낌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아도 감동이 스며든다고 할까.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음성 해설을 쓰는 작가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의 만남을 다룬다. 그러면서 관계와 성장과 상실의 하모니를 내보이는데, 그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개념들을 정교하게 잘 풀어낸다. 우린 그 와중에 '빛나는 순간들'을, 우리 인생에도 있을 빛나는 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다시 빛을 볼 수 없는 주인공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바, 옛날 어느 때 어느 순간을 그리게 되고 현재의 이 순간을 붙잡고 싶어지며 미래의 그때 그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 올해의 마지막을 수놓은, 수놓을 아름다운 영화 <빛나는>. 2017년의 마지막 빛나는 순간에 이 영화가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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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덩케르크, 문라이트, 빛나는, 영화, 우리의 20세기, 윈드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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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가장 들추기 싫어할 모습,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문라이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3.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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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 <문라이트>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의 쾌거를 올렸다. 더욱이 사상 최초로 남여조연상을 흑인이 휩쓸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문라이트>의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다. ⓒ오드(AUD)



지상 최대 영화 '축제'인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2월 26일 미국 LA에서 열렸다. 언제나처럼 쟁쟁한 후보들을 앞세운 사전 마케팅이 활개를 쳤는데, 이번엔 싱겁게 끝나버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다름 아닌 <라라랜드> 때문인데, 일찍이 골든글러브 6관왕으로 역대 최다 수상을 하였고 아카데미에도 14개 노미네이트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바 싹쓸이가 예상되었었다. 제목 'la la land'도 아카데미의 성지 LA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아카데미를 위한 영화였으니. 하지만 고작(?) 6관왕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도 메인 상 중 감독상과 여우주연상만 탔다. 


한편 8개 노미네이트 <문라이트>와 <컨택트>가 뒤를 따랐는데, 둘 중에는 <문라이트>가 압승을 거두었다. 수상 개수를 떠나,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탔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 세계 영화제에서 <라라랜드>를 저멀리 따돌리는 수의 상을 탔는데, 한때 158관왕으로 많은 언론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급기야 아카데미 3관왕으로 175관왕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실상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의 각축전이었던 거다. 


여기엔 '흑과 백'이라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라라랜드>가 백인의 꿈을 티끌없이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문라이트>는 흑인 소수자의 성장을 어둡고 아픈 아름다움으로 그려냈다. 둘 다 치명적이게 아름답다. 다만 그 방식이 완연히 다른 바, 머리는 <라라랜드>를 보고 싶어 하지만 가슴은 <문라이트>를 보고 싶어 한다. 나는 가슴이 시키는 말을 듣고 <문라이트>를 보았다.


짧은 시간에 한 인간의 성장을 담다


평균 이하의 짧은 러닝타임에 한 인간의 성장을 오롯이 담았다. 한 시기의 순간순간을 담았을 뿐인데 오롯이 담았다고 느껴진 이유는, 그 순간에 담긴 모습이 완벽히 그 시기를 담아냈다는 것일 테다. ⓒ오드(AUD)



배경은 미국 마이애미 흑인 지구의 마약 소굴, 미국이 결코 좋아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영화는 '리틀', '샤이론', '블랙'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샤이론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을 상징하는 별명들이다. '호모새끼'라고 놀림을 받는 한 작고 힘 없는 흑인 아이, 리틀. 여전히 놀림 받는 힘 없는 소년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샤이론. 과거를 청산하고 빈민가 출신 흑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블랙. 


우리는 짧은 시간에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 물론 모든 면을 볼 순 없다. 그건 영화 사상 성장의 시간을 가장 완벽히 담아 냈던 <보이 후드>도 해낼 수 없었다. 무수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만들고, 깨닫고, 변화하는 장면들만 볼 뿐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이 영화라서 충분하지 않았을까. 


마약쟁이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리틀', 오직 케빈이라는 친구만 있을 뿐이다. 한없이 작고 힘 없는 아이는 호모라고 놀림 받는다. 도망가다가 마약 소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연히 후안이 발견한다. 그는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상. 기댈 곳 없는 리틀은 엄마 대신 후안과 후안의 여자친구 테레사와 급격히 가까워진다. 이후 리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후안. 빈민가 흑인이 지녀야 할 생각과 마음가짐, 행동을 일깨운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넌 지금 세상 한 가운데 있어'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나도 엄마가 싫었지. 하지만 지금은 미칠듯이 그리워' 등 주옥같은 명대사를 리틀에게 전하는 후안. 상당히 도식적인 전개와 장면이지만, 꾸밈없이 다가오니 그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어두워야 빛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그들은 한 몸이 아니지 않은가. 어둠을 뚫고 빛이 나오는 게 아닐까. 어둠과 빛은 한 몸인 것이다. 후안도, 리틀도 어둠이자 빛이다.


가장 들추기 싫은 모습,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다


희망도, 슬픔도 없는 공허로운 눈의 샤이론. 꿈과 희망의 나라 미국이 가장 덮고 싶어 하는 모습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를 어찌하나. ⓒ오드(AUD)



리틀에게 희망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에겐 단순히 '소외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가 민망하다. 소외라는 단어에 함축된 엄청난 무게를 감안하고라도 말이다.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고립과 격리, 스스로에 대한 포기 등이 소외를 뜻하는 거라 한다면, 그는 소외의 모든 걸 지니고 있다 하겠다. 집안은 가난과 폭력이 난무하고, 무력감과 공허함과 혼란과 무의미가 몸을 휘감으며, 모두가 나를 업신여기고 놀리고 못살게 구는 것 같아 어디에도 눈을 둘 수 없다. 허공을 바라볼 뿐이다. 거기엔 슬픔도 없다. 


'희망'과 '꿈'의 나라 미국에서 가장 들추기 싫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순간이 다가오고, 순간이 영원같을 때가 있다. 리틀이 비로소 샤이론이 되는 순간, 샤이론은 인생의 지침이 된 후안의 '달빛 아래선 흑인도 파랗게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순간에 자신을 맡기는, 그때만큼은 난 껍데기의 내가 아닌 본질적 내가 된다. 


그러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다. 샤이론은 본질이 파괴되는 수모를 겪고 또 다른 껍데기를 입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이제 '샤이론'이라는 샤이론의 본모습은 아주 단단한 껍데기에 몇 겹이고 둘러싸여 절대 밖으로 내보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블랙'으로 살아간다. 그가 아는 가장 단단한 껍데기 후안의 모습을 하고서. 


그렇지만 머지 않아 그의 본질이 다시금 도전을 받을 위기에 직면한다. 그의 본질을 일깨워준 순간과의 조우, 그의 얼굴엔 '블랙'이 아닌 '샤이론'이 비추고 자신감 없고 움츠러든 표정과 말 본새가 드러나며 슬픔조차 찾기 힘든 공허하기 짝이 없는 두 눈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는, 다시금 달빛 아래서 파랗게 보이는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영화는 없다


이 '아름다운' 위대한 영화, 또는 아름다운 '위대한' 영화. 나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류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해낼 영화가 있을까? ⓒ오드(AUD)



영화는 상당 부분 헤르만 헤세의 세기의 베스트셀러이자 현대 성장 소설의 시초와도 같은 작품 <데미안>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그보다 더 위대한 성장을 다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한 아이의 성장이 뚫고 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지독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다 말하기도 힘들거니와 늘어놓는다해도 완전히 드러낼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위대함을 말해준다. 


절대 잊히지 않을 한 가지가 있다. 리틀과 샤이론과 블랙의 그 '두 눈'. 얼마나 캐스팅에 공을 들였을지 느껴질 만한 세 사람의 놀라운 싱크로율은 뒤로 하고서라도, 세 사람의 시기에 따른 두 눈의 공허함은 가히 치명적이다. 아무런 감정을 찾을 수 없는 두 눈은 모든 걸 말해준다. 이건 '경지'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런 연기는 처음 본다. 


순간을 이끄는 색감과 OST는 영화의 품격을 한껏 높이는 데 일조했다. 특히 색감은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에 절대적 공헌을 했다. 블랙톤에 가까운 파스텔 톤의 색들이 영화의 중요한 순간 순간을 수놓는다. 블랙을 돋보이게도, 그렇다고 블랙을 묻히게도 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우린 이 영화의 포스터부터 눈길을 떼지 못한다. 일정한 톤의 OST도 역시 중요한 순간을 일깨우는데, 안정감보단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일종의 영화적 장치,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에 색깔을 입혔다. 


<와호장룡>은 '무협영화'에게 갖는 선입관에 철퇴를 내렸었다. 이토록 아름답고 철학적인 무협이 있다니. 무협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부끄럽지만 <문라이트>는 '흑인영화'에게 갖는 선입관에 징벌을 내린 것 같은 충격을 내게 주었다. 누구나 편견 어린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는 데 말이다. 이보다 아름다운 영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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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문라이트, 성장, 소외, 아름다움, 아카데미, 위대함, 흑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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