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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방면으로 보는 회사와 일상의 이야기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2018.01.02

사방면으로 보는 회사와 일상의 이야기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1.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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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표지 ⓒRHK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출판 콘텐츠 중에 '퇴사'가 소소하게 눈에 띈다. 퇴사를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를 위로하거나, 퇴사를 해도 잘 살아갈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보라거나, 회사가 전부가 아니니 너무 의존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라거나. 누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고 가슴속 깊이 받아들이지만 결코 쉽게 하지 못할 퇴사. 


'퇴근', '퇴사',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그 설레는 말 이면엔 회사에선 설레는 일 따위는 없다는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지만 회사야말로 먹고 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편이 아닌가. 맡은 일을 하여 성과를 내고 그에 맡는 돈을 받는 것, 설레는 일 따위 없어도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이상의 것을 얻어갈 수 있다. 


결국 다시 회사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회사에서의 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회사든 집이든 어디든 그곳에 있는 '나'다. 나는 중심을 잡고 남을 해하려 하지 않으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만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같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소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RHK)로 조금은 알 수 있을까. 


쓰무라 기쿠코 소설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휩쓴, 일본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을 받고도 오랫동안 작가와 회사 일을 병행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직장과 일상의 어려움과 소소함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들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와 찬사를 얻었고 얻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 또한 그녀가 사방면으로 바라본 직장과 일상의 이야기들 중 하나다. 


갑질의 희생자들


소설은 건축회사에 다니는 시게노부와 디자인회사에 다니면서 프리랜서 기자를 부업으로 하는 나카코를 주인공으로, 기본적으로 소소하지만 때론 격렬함이 따르는 회사와 일상을 내보인다. 그들은 집에선 인간 이하의 삶을, 출근길에선 인간 아닌 삶을 살며, 회사에 와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에 다니기 싫은 건 매한가지다. 그런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날 시게노부에게 걸려온 낯선 남자의 항의 전화, 공사 소리도, 시멘트 냄새도, 작업자들의 이야기 소리도, 창문을 열면 보이는 방진망도, 그 틈새로 먼지가 날아오는 것도 불편하단다. 시게노부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사과하지만 상대방은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 이후에도 몇날 며칠 계속 말이다. 시게노부는 진저리가 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 낯선 남자의 꿍꿍이는 뭘까. 


나카코는 프리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시노즈카 씨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 프리스쿨 신입생 모집 팸플릿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하고 또 해도 일이 되돌아온다. 수정할 때마다 뭔가 불만스러운 점이 하나씩 되돌아왔고, 그것을 다시 수정하면 또 한두 가지의 지적 사항이 돌아왔다. 그것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작업을 잘하고 말고의 능력 문제가 아닌 듯하다. 시노즈카 씨의 꿍꿍이는 뭘까. 


시게노부와 나카코는 자신에게도, 자신이 속한 회사에게도 아닌, 외부의 누군가로부터 시달림을 당한다. 대상은 내가 속한 회사가 아닌 '나'이지만, 내가 하는 행위란 모두 '회사'에 속한 나로 귀결되기에,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다.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것이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어려울 수 있는 '갑질'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회사와 일상을 모두 지키는 방법


회사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청춘들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지금, 당연히 회사와 관련된 콘텐츠에서 회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회사원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설혹 회사원이 되었더라도, 가까스로 들어왔기에 회사에 종속되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도 그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소설이, 이 작가가 결이 조금 다른 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건, 회사가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회사 밖 일상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회사에서의 일을 크나크게 부풀리지 않고, 일상으로까지 가지고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사무탈하게 하루를 보내고 제때에 퇴근해 맛있는 저녁을 먹고 편안히 쉬는 게 잘못된 일일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 그런 생각은 잘못되었다고들 한다.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열심히 해야 비로소 내가 나일 수 있다고들 한다. 아니다, 그건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다른 생각이어야 한다. 회사는 인간 삶의 한 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란 말이다. 


아주 치기 어린 철 모르는 생각이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그런 '반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회사에서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갈림길이다. 나는 나를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한편으론 내가 속한 회사에 최선을 다할 권리와 의무 또한 있다. 모두 할 순 없을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나와 회사 모두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내가 무너지면 회사에게 타격이 심대하고, 회사가 무너지면 나에게 타격이 심대하다. 회사와 일상을 양립시키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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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일상, 직장,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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