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에서 시작된 대화, 인생의 본질을 묻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레사마 공원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사마 공원, 한적한 한낮의 벤치에 안토니오가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하지만 그는 눈이 거의 멀었으니 노력하고 있는 것. 그의 곁으로 레온이 다가와 앉더니 끝없이 이어질 말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르완다 해방군 소속의 비밀 요원으로 위장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86세 노인인 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안토니오로서는 3년 전에 찾은 조용하고 편안한 자리인데, 일주일 전부터 웬 노인이 찾아와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방해하고 있다. 그는 관리인 보조로, 52년간 지하 보일러실에서 일하고 있다. 몇 번 결혼했는데, 그때마다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둘은 거짓말하고 적대하다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대마초를 피우며 과거로 돌아가 추억에 잠겼다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난데없이 안토니오가 직장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4개월치 봉급의 위로금을 받아들이려던 찰나, 레온이 끼어드는데… 급진 공산주의 투사 출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또 어떤 거짓말을 늘어놓을까?
현실을 버티기 위한 상상과 거짓의 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레사마 공원에서>는 독특하다. 공원에서 두 백발노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소소한 사건들에 얽히며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거짓말과 진실이 혼용되어 있고, 그들이 얽히는 사건들은 사실 그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깊숙이 관여해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것인데, 둘은 함께 이른바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만 해결되는 건 없고 몸만 다칠 뿐이다. 잔인한 현실에서 두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테다. 그러니 레온이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는 현실이 아닌 거짓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레온은 고백한다. 과거 한때 급진 공산주의 투사로 광장을 누볐지만, 이후 오랫동안 카페에서 웨이터로 일했다고 말이다. ‘별 볼 일 없는 삶’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안토니오가 믿지 못한다, 아니 믿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레온은 다시 과거의 무용담을 거짓말로 늘어놓으며 다른 세계로 훌쩍 떠나 버린다.
레온은 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중요한 건 섹스가 아니라 로맨스와 모험이야"라고, 즉 상상력의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현실을 살아가고자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그 반대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결국 현실에 두 발 딛고 살아가려면 충분한 상상력을 갖춰야 한다. 레온은 거짓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사라진 존재들의 투쟁, 그리고 노인의 미래
두 노인의 대화를 듣고 함께하는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노인에게도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더 이상 인생이 짧은 게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너무 길다는 게 문제다. 그런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두 노인은 자신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걸 그냥 넘기지 않고 투쟁한다.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노인의 미래다.
그런가 하면 노인의 어쩔 수 없는 현실도 엿보인다. 레온이 말하길, “우린 둘 다 유령이야, 오히려 현실이 꿈같아”라고 하는데 투명인간 취급 당하고 있으나 없으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인 것이다. 그때 둘의 태도는 정반대에 있으나,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보살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 자신은 잘 모르지만 함께일 때 강해진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바라던 모습이 보인다. 이를테면 레온은 거짓말을 멈추고 진실만을 말한다. 그의 거짓말은 잔인한 세상으로부터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안토니오의 경우 나약한 면모를 불식하고 세상을 향해 포효한다. 그의 나약함 또한 잔인한 세상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그만의 방도였으니.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기려면 쓰러지는 법을 알고 물러서는 법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대가를 얻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일하기에도 바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면 옛날 싸움, 이른바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레사마 공원에서 두 노인이 한적하게 벌이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