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열전/신작 영화

전쟁의 그림자 속을 건너는 사막의 로드무비

singenv 2026. 1. 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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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시라트>

 

영화 <시라트> 포스터. ⓒ찬란



아프리카 모로코 사막 한가운데, 온몸을 쾅쾅 울리는 저음역의 테크노 음악을 틀어놓고 밤새 춤을 추는 레이브 파티가 펼쳐지고 있다. 중년 남성 루이스가 아들 에스테반과 함께 연락이 끊긴 지 5개월 된 큰딸 마르를 찾고자 헤매고 있다. 전단지를 나눠주며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나 딸을 봤다는 사람조차 없다.

일련의 군인 무리가 와선 비상사태라며 파티를 해산시키고 유럽인들을 차에 태워 대피시키려 한다. 와중에 자드 일행이 탈출해 다른 파티로 향하는데, 루이스와 에스테반이 그들을 뒤따른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나 곧 가까워진다. 마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이려던 찰나 상황은 지옥으로 변한다.

사막은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손이 없고 종아리가 없는 이들이 파티에서 가끔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싶다. 루이스가 자드 일행을 뒤따른다고 할 때 자드가 한 말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것 같네”가 떠오른다.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무사히 딸을 찾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시라트’라는 이름의 다리, 로드무비의 얼굴을 한 예고

스페인 영화 <시라트>는 제78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2025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칭송받았다. 아무래도 생소한 제목에 눈길이 가는데, 이슬람에서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라는 뜻을 지닌다. 그 다리를 건너는 자들에게 경고하길, 그 길은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부자가 마르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 마치 지옥으로 가는 다리 시라트를 건너는 것과 다름없을 거라는 암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중반까지 영화는 여느 로드무비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띤다. 딸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딸을 찾으러 가는 과정으로 자연스레 포커스가 옮겨가는 것이다.

와중에 영화를 시작하며 울리기 시작하는 저음역의 레이브 음악은 비록 몸을 들썩거리게 하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하지만, 거대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을 안기기도 한다.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디고 있기 힘들게 하는 음악이니 오히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아닌가 싶다.

로드무비에서 스릴러로, 비극이 폭발하는 순간

영화의 중반부가 넘어가면 장르가 달라진다. 전반부가 로드무비 드라마였다면 후반부는 차라리 스릴러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 너무나도 영화 같지 않은 비극이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제대로 다잡을 겨를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 그야말로 ‘시라트’ 그 자체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그 다리.

자드 일행은 외형상 터프하고 비상식적인 떠돌이처럼 보인다.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레이브 파티를 찾아 떠돌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다. 외형만 그럴 뿐 심성 고운 이들이다.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벌이는 파티니만큼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각자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남들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 아니다. 군인들이 그들을 쫓아냈기에 여정을 떠났고 비극이 일어나며, 추스를 겨를도 없이 연달아 일어나는 일의 이면에 전쟁의 소용돌이가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전쟁에 크나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사운드로 완성된 지옥의 여정

하여 <시라트>는 루이스 부자의 딸 찾기 여정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급선회해 버리는, 일개 개인으로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을 때, 일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애초에 루이스로선 딸의 실종을 막을 도리가 없었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 영화는 사운드의 존재가 크다. 이야기도 이야기이고 의미도 의미지만, 사운드가 단단하게 '깔아주기에' 영화가 끝까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고 오롯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훅 빠져나오면 상당히 이상한 느낌, 일종의 이격을 느낄 것이다. '영화'라는 건 종합예술이 분명하다.

영화는 이야기로서 어렵지 않다. 단편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성에 기반한 여정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함유한 바가 의미심장하고 이야기가 보여주는 바가 파괴적이며 이야기가 전하려는 바가 세상사의 정곡을 찌른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나 어렵게 봐야 할 영화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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