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에, <뉴요커>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

‘뉴요커’ 하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최대 도시 뉴욕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바쁜 화이트칼라 사람들이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를 먹으면서 일을 하고 와중에 시간을 쪼개 책을 읽으며 저녁에는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연상된다. 선망의 대상이랄까. 이 모습은 다양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 시작은 <더 뉴요커>였다.
<더 뉴요커>는 미국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로, 1925년 2월에 <뉴욕 타임스>의 기자 해럴드 로스와 그의 아내가 창간했다. 100년 동안 ‘정론직필’의 대명사로 명성을 날렸고,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며 필연적으로 뒤따른 위기에도 자존심을 지켜 나갔다. 하여 오랜 세월 뉴욕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는 <더 뉴요커>의 100주년 기념호 제작 비화를 따라가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룬다. 명배우 줄리안 무어가 내레이션을 맡았고 아카데미 수상자이자 <더 뉴요커>의 오랜 독자로 유명한 마샬 커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치밀하게 들여다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100년간 계속된 <뉴요커>의 시작
급변하는 콘텐츠 생태계, 그중에서 종이책 생태계, 그중에서도 잡지 생태계는 사양 산업의 최전선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길 게 너무나도 많은 세상에서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와중에 <더 뉴요커>의 100주년은 기념하지 않을 수 없고,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에 손색이 없다.
<더 뉴요커>가 창간된 1920년대 중반의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과 유럽은 광란의 시대로 돌입한다.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한 것. 그때 <더 뉴요커>는 뉴욕의 지적 엘리트 부유층을 위한 깊이 있고 신랄하면서도 풍자로 가득하지만 정론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하며 시작되었다.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가 이야기하려는 바가 거기에 있다. 어떻게 그 기조를 100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히 <더 뉴요커>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히로시마, 레이철 카슨, 인 콜드 블러드까지
1940년대 <더 뉴요커>는 저널리즘 혁명을 이룩한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두고 대다수의 언론이 폭탄의 위력을 말할 때, 존 허시는 생생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그렇게 ‘히로시마’라는 글은 전 세계로 퍼지며 핵무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을 바꿨고, 가벼운 농담조의 <더 뉴요커>는 진지한 저널리즘으로 바뀌었다.
1950년대 <더 뉴요커>는 2대 편집장 윌리엄 숀이 이끌며 논란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때 레이철 카슨이 DDT의 심각성을 논하는 글을 가져왔고 숀의 지지 속에 대대적으로 다뤄졌다. 엄청난 화제를 뿌리며 논란을 일으켰고, 시리즈는 책으로 출간되어 역사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녀의 연구로 현대 환경 운동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에는 젊은 소설가인 제임스 볼드윈에게 글을 부탁했고 그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종 관련 에세이를 써냈다. 1980년대에는 트루먼 커포티의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실어 <더 뉴요커>에 실린 글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더 뉴요커>는 지난 100년간 미국 역사의 주요 길목마다 시대를 선도하는 글을 실었다. 역사를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동시에 이후 오랫동안 계속될 논란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굽히지 않는 정론의 신념을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가졌기에 가능했으리라.
정론직필의 <뉴요커>가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지금의 <더 뉴요커>는 초창기의 농담 어린 가벼운 조와 진지한 저널리즘을 모두 흡수해 내보이고 있다. 연예계부터 뉴욕 사람들 이야기, 나아가 미국 내 정치 권력과 전 세계 분쟁 지역 전쟁 이야기까지 다룬다. 그러니 글이 대체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한결 같이 그 어려운 길을 간다.
<더 뉴요커>는 힘겨운 1980년대를 보내고 1990년대 초 거대 자본에 팔렸다. 이후 제4대 편집장 티나 브라운에 의해 짧은 시간에 대대적인 개혁을 이룩한다. 구시대에서 신시대로의 전환이랄까. 그리고 1998년에 취임한 제5대 편집장 데이비드 램닉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다큐를 잘 들여다보면 <더 뉴요커>의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편집장을 포함해 십몇 년에서 수십 년간 재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신규 직원들도 끊임없이 들어온다. 신구 조화가 더할 나위 없다. 필자도 마찬가지인데, 수십 년간 함께한 이들이 있는 한편 수천수만 통씩 쏟아지는 글과 카툰들 중 옥석을 골라내는 작업을 쉬지 않는다.
램닉 편집장이 말했듯 <더 뉴요커>는 흔들림 없이 한 세기를 지나왔고 앞으로도 2세기, 3세기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다들 자극적인 것만 보고 싶어 한다지만, 정론직필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