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망가졌을 때, 영화는 가장 빛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무너진 세계: 1975>

1975년 미국은 사회 전반에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1972년에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 10년 넘게 지속된 베트남전쟁 종전,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침체, 인종 및 남녀 차별 논란까지 사회, 정치, 문화, 경제 등 흔들리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영화계에도 이른바 피바람이 불었고 영화계 사람들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영화로 사회를 비춰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훗날 세기의 걸작으로 남을 만한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밑바닥일 때 진짜배기가 보이거나 나타난다고 하는데, 1970년대 중반 미국 영화계에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영화계에 돈이 돌지 않아 이전까지의 공식은 파괴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제작자들에게 던졌고, 그래도 영화는 만들어야 했으니 그렇게 만들어 내놓은 영화들은 시대를 관통하고 상징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무너진 세계: 1975>는 1975년 즈음의 미국 영화들을 주요 소재로 다루며 무너진 미국을 조명한다.
뉴 할리우드의 탄생, 영화가 시대를 정면으로 비추다
1975년 미국은 범죄율이 증가했고 긴장감은 높아졌으며 편집증적 불안이 만연했다. 미국인은 점점 불만스러워지고 무기력에 빠져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국가적으로 신경 쇠약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영화계에 국한해 보면, 할리우드를 주름잡은 존 웨인 서부극과 대규묘 예산의 뮤지컬이 텔레비전과 냉담한 대중에 무너져 몰락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손을 놓다시피 했고 곧 독립영화계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뉴 할리우드’ 시대다. 사람들은 비로소 영화가 정말 보고 싶어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영화는 시대를 모른 체하지 않았고 사상 처음으로 엉망이 된 사회를 오롯이 비추고 반영하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목록은 대략 다음과 같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차이나타운> <택시 드라이버> <내쉬빌> <네트워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등이다. 당대를 완벽에 가깝게 비추는 걸작들이다.
냉소와 허무의 얼굴들, 그리고 균열의 시작
1970년대 초중반 미국은 선의가 무너져 허무주의가 득세했고 낙관주의가 냉소주의로 바뀌었으며 두 발 디디고 있는 땅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이 팽배했다. 할리우드는 그런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는데, 잭 니콜슨과 로버트 드 니로가 를 상징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하지만 거기에 흑인은 없었다. 시대를 반영하려는 에너지를 술과 폭력과 섹스로만 풀어냈으니 대중은 지치기 시작했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했다. 당대 가장 폭발적인 목소리를 가진 코미디언 리처드 프라이어가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선도했다.
한편 영화계 내에서 세대갈등이 극에 달했다. 존 웨인과 시나트라로 대표되는 구세대는 영화로 정치적, 즉 미국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걸 반대했고 신세대는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발언했다. 당대 가장 첨예한 정치적 이슈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쟁이었고. 워런 비티가 가장 잘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천착하는 개념의 일환으로 자기계발이 성행했고 모든 문제의 근원이 나에게 있다는 사기적인 결론까지 나아갔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퍼스널 컴퓨터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고, 도널드 레이건이 등장해 정치 판도를 흔들었다.
블록버스터의 등장과 영화의 방향 전환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부르는 법이다. 미국의 불안, 냉소, 허무, 논란 등의 부정적이지만 진짜 모습이라 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진실로 반영한 영화들이 대거 나왔던 것과 반대급부로 행복하고 찬란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재편되었다.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캠페인을 의외로 인물이 주도했는데, 다름 아닌 베티 포드 여사로 당시 보수 대통령 제럴드 포드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죠스>가 개봉해 영화계를 뒤엎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 작품은 ‘블록버스터’의 효시가 되어 수많은 사람을 극장으로 불러왔다.
그때가, 1970년대 중반이 할리우드의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평가된다. 1980년대로 들어서며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자본주의 상품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1975년은 미국이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해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영화가 조명하고 재연하려 했지만, 결국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계의 독특한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류가 아닌 예외가 되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