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책임도 아닌 죽음에 대하여
[영화 리뷰] <콘티넨탈 '25>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중심 도시 클루지, 가짜 공룡들이 포효하는 숲 속 테마파크를 초라한 노숙인이 훌렁훌렁 돌아다닌다.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데 도심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구할 때는 공손한 편이다. 하지만 실속 없이 돌아서는 그는 어느 집의 지하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잠을 청하는데, 오래지 않아 일련의 무리가 들이닥친다.
법원 집행관 오르솔리아가 경찰들을 대동하고 와선 노숙인을 강제 퇴거시키려 한다. 곧 집이 통째로 밀려 ‘콘티넨탈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고 노숙인이 지하실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으니 퇴거시켜야 했다. 잠시만 정리할 시간을 주라는 노숙인, 오르솔리아 일행은 잠시 밖으로 나가 시간을 때운 후 돌아온다.
하지만 노숙인은 라디에이터에 전선으로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일행은 신고한 후 응급처치를 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큰 충격을 박은 오르솔리아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동일한 구조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쁜 부동산업자들 때문에 내가 최선의 방법으로 노숙인을 퇴거시키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록 내게 법적 책임은 없지만 크나큰 죄책감을 느낀다.‘라는 식이다. 하나같이 위로를 건넨다.
가벼운 말들, 무거운 죽음
루마니아 영화 <콘티넨탈 25>는 이른바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정신과 형식을 계승하는 2세대 기수 격인 라두 주데 감독의 8번째 장편이다. 베를린 황금곰상 경력의 그는 이 작품으로 베를린 은곰상(각본상)을 수상했다. 아이폰으로만 비극적 현실을 한껏 풍자하는 웃픈 블랙 코미디를 완성했는데, 줄기차게 이어지는 롱테이크 속 대사들이 한몫했다.
오르솔리아는 자못 충격적인 사건(혹은 사고)을 맞닥뜨린 후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이 되풀이하는 말의 종류는 두 가지다. 심각한 죄책감이 든다, 내게 법적 책임은 없다. 그녀를 위로하는 이들이 똑같이 되풀이하는 말의 종류는 하나다. 너는 할 일을 했을 뿐 잘못이 없다. 자꾸 반복해서 들으니 그 반대인 것처럼 느껴진다.
감독이 의도한 바가 여기에 있다. 분명 그녀에겐 잘못이 없고 법적 책임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행태를 보면,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죄책감과 위로 사이에서 다름 아닌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것 같다. 이 위선적인 모습을 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정부로 확대해 봐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 또는 미안함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내세워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그래도 법적으로는 우리가 맞고 일이 잘못되어도 우리 책임은 아니니, 결국 물러나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다 원론적인 곳에 있으나 개인의 이야기로 치환해 현실적 재미를 추구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오르솔리아가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동분서주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결코 가볍지 않다. 노숙인 자살 사건과 관련된 주택 문제는 오히려 비중이 덜한 편이다. 전쟁, 역사, 정치, 종교 등에 관한 대화가 오간다. 잘 모르면 꽤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를테면, 루마니아 중서부 지방을 총칭하는 ‘트란실바니아’의 경우 과거 900년 가까이 헝가리 영역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일부가 헝가리에 할양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루마니아로 최종 편입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여전히 헝가리인 공동체가 존속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루마니아가 아닌 헝가리에 두고 있다.
또한 루마니아는 20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민주주의를 쟁취하며 차우셰스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정상 국가로 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라 곳곳에 망령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니 비록 노숙자라지만 국가의 법 집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을 두고, 죄책감에 빠져 있다느니 네 잘못이 아니라느니 하고 있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책임지려는 이나 기관이 없다.
어마무시한, 때론 위대한 건물 혹은 건축물이 지어지는 데 있어 자질구레한 방해물들은 어떻게든 치워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노숙자 따위의 비극이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묻고 지나가게 놔둬야 하는가? 영화가 거대하고도 막심한 것을 다룸에 있어 결코 무겁지 않게, 오히려 상당히 가벼운 듯한 추임새를 건넨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서늘하고 오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