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기차의 꿈〉이 그리는 고독의 시간

singenv 2026. 1. 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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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기차의 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기차의 꿈> 포스터.


20세기 초 미국 아이다호, 로버트는 벌목 현장에서 나무를 베고 나르며 철도 부설 공사 현장에서도 일했다. 여러 날을 외지에서 지내다가 작은 오두막집으로 돌아가면, 아내 글래디스가 반겼다. 그러다가 딸 케이트가 태어났고, 빠르게 컸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못 알아볼 정도였다.

조금은 모자라지만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었다. 어김없이 일을 떠난 로버트, 현장에선 별 일이 다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했고 명백한 이유로 재해를 당했다. 로버트는 자신에게도 언젠가 재난이 닥칠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가 와 버렸다, 자신이 아닌 가족들에게.

멀리 거센 산불이 숲 전체를 태워 버리고 있었다. 그곳에 오두막 집이 있었는데 재가 되었다. 글래디스도 케이트도 없었다. 로버트는 한동안 죽지 못해 살아갔는데, 언젠가 글래디스와 케이트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홀로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머문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로버트는 살아간다.

짧은 소설에서 스크린으로, 고독의 확장

독일 출신의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은 살아생전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2002년 작 <기차의 꿈>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최고의 책으로 군림했으니 말이다. 보통 ‘긴 분량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라고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짧은 분량에 이토록 엄청난 게 담겨 있을 수 있나‘ 하고 감탄한다.

소설은 2025년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재탄생했다. 공개 직후 무수한 호평이 쏟아져 나왔는 바, 원작의 깊이를 영상으로 잘 표현해낸 것 같다. 특히 로버트 역을 맡은 조엘 에저튼의 연기를 두곤 그의 인생 최고의 연기라는 호평이 잇따르며 오스카 수상까지 점처지고 있다. 그의 고독이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더불어 빼어난 영상미가 한몫한다. 인위적이지 않은, 20세기 초 미국 서부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때 이미 수백 년의 시간늘 살아낸 숲속 나무들은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들이 하나둘, 큰 노력 없이 빠르게 쓰러질 때면 내적 울음이 동반된다. 느린 호흡의 영화 속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와 산불이 번질 때만 빠르고 걷잡을 수 없으니, 그 대비에서 감정이 요동친다.

잃어버린 것들로 채워진 삶의 풍경

로버트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때보다 상실로 슬퍼하고 고독했던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백미다. 앞엣것은 짧디짧고 뒤엣것은 길디긴데, 그저 버티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위태로운 듯 위대하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끊임없이 뭔가를 잃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 근본적인 위로가 되는 작품이다.

20세기 초 미국이라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북전쟁 후 서부개척시대와 제2차 산업혁명, 제1차 세계대전, 광란의 시대까지 이어지며 숨가쁘게 변화했다. 와중에 로버트는 천천히, 담담하고 의연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그렇다고 방향이 뚜렷하지도 않은, 무색무취의 삶.

생각해 보면, AI로 본격 시작된 제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실생활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지 않다. 점진적으로 변할 뿐이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원래 점진적으로 변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뚜렷한 방향을 향하지도 않는다. 로버트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 우리를 형상화해 놓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끝내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가장 낮고 깊은 위로

그럼에도, 삶에 상실이 상존한다고 해도 상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고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슬픔을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그 고독을 누구도 함께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그 숭고함을 두고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

모든 게 의미 없다고 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이제 끝났다고 그러니 끝내자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지는 게 인간이다. 불시에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가고 싶었던 이 세상을 대신 살아가려는 듯.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그들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

평범하게 절절한 이 영화 <기차의 꿈>, 삶의 동력이 부족하다 느낄 때나 아래로 아래로 침참한다 싶을 때나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고독이 덮쳐올 때 진지하게 시청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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