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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을 믿는 남자와 자본주의의 그림자

singenv 2025. 12. 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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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부고니아>

 

영화 <부고니아> 포스터. ⓒCJ ENM MOVIE

 

2003년에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시대를 한참 앞서간 문제작이었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가 큰 위기에 빠질 거라 믿는 이병구, 유제화학 사장 강민식이 외계인이라 확신해 그를 납치해 고문을 자행한다. 결국 강만식은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는 진짜 외계인이었을까? 그리고 지구는 정말 위기에 처했을까?

영화는 이토록 황당무계한 외계인 이야기에 기상천외한 고문이 자행되지만, 명색이 블랙코미디로 광기 서린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니 2000년대 초반 당시에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반면 평론계에선 절대적으로 찬사를 받았으니, 당대 거의 모든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두고 ‘시대를 한참 앞서간 문제작’이라는 데 초첨이 맞춰진다면, 20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작업을 그리스의 세계적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해냈다. 한미 합작으로, 엠마 스톤과 제시 플레먼스가 각각 원작의 강만식과 이병구 역을 맡았다. 그 자체로 기대가 된다.

‘음모론자 테디’를 통해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모순

거대 바이오 기업의 물류센터 직원이자 양봉업자이기도 한 테디는 벌은 사라지고 인류는 고통받고 있으며 지구는 병들고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나아가 그 이유가 외계인의 지구침공 계획 때문이라고 ‘진지하게’ 여긴다. 그는 자사 CEO 미셸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 ‘진지하게’ 믿고 사촌동생 돈과 함께 그녀를 납치한다.

테디는 돈과 함께 철저히 준비했다. 납치와 고문, 절차와 예의까지 갖춰 미셸이라는 가면을 쓴 외계인에게 원하는 바를 얻으려 했다. 안드로메다 왕과 만나 진지한 대화를 해 보고 싶다는 것. 그러니 연결시켜 달라는 것. 하지만 미셸은 한사코 외계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며 한시라도 빨리 자신을 풀어주는 게 좋을 거라 한다.

말이 안 통하자 그녀는 자신이 사실 외계인이라고 털어 놓는다. 테디는 콧방귀를 뀌며 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셸에게 극도의 전기 고문을 행하는데, 일련의 수치를 보더니 안드로메다 왕이라며 그녀를 극진히 모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보안관 친구가 들이닥치고 돈과 미셸 단 둘만 남게 되는데… 이 해괴망측한 사건의 결말은?

광기로 포장된 진실 게임, 원작을 뒤집는 란티모스의 시선

<부고니아>는 표면적으론 ‘음모론’에 사로잡힌 오타쿠의 황당무계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 계획에 따라 외계인이 이미 지구에 잠입해 있고, 각고의 연구 끝에 그가 바로 굴지의 바이오 기업 CEO라는 것. 공적 뉴스는 믿을 수 없는 와중에 다수의 사적 유튜브들이 같은 류의 주장을 하니, 믿지 않을 수 없다.

한꺼풀 벗겨보면, 테디의 엄마가 멀지 않은 과거에 바로 그 바이오 기업의 실험 피해자였다. 그때 CEO는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로 대처했을 뿐이다. 테디가 저지르는 일련의 행동은 그 사태의 ‘복수’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앞서 음모론에 사로잡힌 오타쿠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들어다면, 외계인의 침공에서 지구를 지킨다는 영웅이 이런 모습이어도 괜찮을까 싶다. 그는 온갖 지식과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본주의의 낙오자에 가깝다. 그러니 그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의 낙오자 혹은 실패자로서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지키려는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세상은 온갖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거니와 영웅은 원래 하찮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미셸은 외계인인가? 인간은 지구를 지킬 자격이 있는가?

<부고니아>는 리메이크작인 만큼 대략의 줄거리와 결말까지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을 끝까지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동력은 테디와 미셸이다. 특히 미셸의 경우 외계인인지 사람인지 끝까지 알 수 없게, 사실 정체를 알면서도 계속 ‘설마’라고 되내게 한다. 테디의 경우 유일한 능동적 캐릭터로 극을 이끌고 있다.

원작이 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 반면, 이 작품은 자본주의 우화에 두 주인공이 따로 또 같이 얽혀 있기에 메시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화의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스타일이 한껏 묻어나는 바, 재밌게 즐길 수도 있고 이게 뭔 소리인가 하며 몰입이 안 될 수도 있고 영화란 이런 거지 하며 감탄할 수도 있겠다.

종국에 드는 생각은, 과연 인간에게 지구를 지킬 만한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테디가 주구장창 말하는 꿀벌들의 ‘군집붕괴현상’이 과연 인간 아닌 외계인의 짓이라 할 수 있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테디의 행동은, 인간이 저지른 짓으로 인간이 피해를 봤는데 인간이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아이러니다.

하여 이 작품은 일련의 이야기를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또는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로 비슷한 듯 완연히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독특한 재미는 보장하나 특별함은 보장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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