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으로 세상을 보는 소년, 수학으로는 풀 수 없는 ‘관계의 방정식’
[영화 리뷰] <수학영재 형주>

16살 소년 형주는 어딜 가든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케이드보드에 몸을 실는다. 스케이드보드 천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런데 정작 그가 진심인 데는 따로 있는데, 수학이다. 그는 “나는 수학을 믿는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온 우주는 수학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수학을 향한 진심을 풀어낸다. 하지만 동시에 수학은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그에게 충격적 소식이 들린다. 엄마가 유전병 신장질환인 다낭성 신부전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것. 형주는 수학 천재답게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에 달한다는 걸 알고, 도무지 닮은 데라곤 찾을 수 없는 아빠를 의심해 친자 검사를 받는다. 결과를 받아보니 친자 확률이 채 0.1%도 되지 않다고 한다. 형주는 신장 공여를 약속받고자 생물학적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한편 형주는 아빠를 ‘민규씨’라고 부른다. 싸움꾼 출신이라 그런지, 아빠라는 사람의 평소 행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반항심 어린 행동이겠다. 싸움질도 곧잘 하는 밤톨 머리 형주에겐 이성적 느낌이 나지 않는 여자친구도 있는데, 그녀가 여정을 함께한다. 수학 말고는 모든 게 서툰 형주의 16살은 어떻게 흘러갈까?
작지만 깊은 파동을 남기다
이른바 ‘수학천재’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종종 선보였다.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생각하는지, 정작 그들 자신의 삶은 어땠는지 들여다보는 건 꽤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독립영화 <수학영재 형주>는 제목에 대놓고 ‘수학영재’(천재라는 수식어는 차마 붙이지 못했나 보다)를 붙였으나 형주라는 사람이 만고에 길이남을 업적을 세웠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수학영재 형주>는 꾸준히 장편 영화를 내놓으며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최창환 감독의 신작이다. 반면 흥행 면에선 그동안 이른바 ‘독립영화 아이콘’들, 강길우, 곽민규, 강진아, 김시은 배우 등과 함께 작업해 왔으나 그리 좋지 못했다. 이번에도 곽민규 배우와 협연했지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반면 흥행에선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 또한 기억에 남을 듯한데, 주제도 주제이겠으나 소재가 독특하다. 수학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16살 소년이 희귀유전병으로 엄마를 잃고 스스로를 살리고자 친부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에겐 이미 아빠가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옛날 엄마와 아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감정 대신 논리로 세계를 읽는 소년
<수학영재 형주>의 첫 번째 키포인트는 ‘형주’라는 캐릭터다. 그는 16살에 불과한 꼬맹이지만, 어딘지 어른스럽다. 수학이라는 이성의 극치로 사람을 대하고 현상을 해석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하고 수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없다고 믿기 때문일까? 나아가 그는 엄마를 잃었고 아빠는 미덥지가 않다. 세상에 홀로 남은 느낌.
그러니 엄마의 유전병이 자신에게로 향할 거라는 걸 알고 직접 친자 확인를 하고 친부를 찾아나서기까지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이런 10대가 어디 있을까? 마냥 신기하게만 대견하게만 바라볼 게 아니라 애초에 왜 그는 엄마가 죽었을 때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는지 혹은 못했는지 궁금해야 할 것이다.
그의 행태를 보면 크게 엇나간 것 같진 않다. 수학도 잘하고 학교나 집에서 행패를 부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일까, 종종 싸움에 휘말리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아빠 민규씨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혹은 하지 못한다. ‘애어른’이 되어 버린 형주이지만 엇나가지 않은 것 같아 대견하다.
엇갈린 혈연이 만들어낸 따뜻한 미지수
<수학영재 형주>의 두 번째 키포인트는 ‘민규씨와 친부 후보 3인방’이다. 형주는 엄마가 남긴 일기장을 읽고 친부 후보 3명을 추린다. 엄마의 밴드 1호팬, 민규씨와 엄마의 동네 오빠, 엄마와 함께 밴드를 했던 멤버. 형주는 대뜸 그들을 찾아간다. 뿌리를 알고 싶다거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가는 게 아닌, 자신의 수학적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와중에 민규씨는 지극히 감성적으로 형주를 품는다. 나름대로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수학 지식만 있는 형주에게 전한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것 같은 둘이지만, 마치 문이과 통합을 보는 듯 당면한 문제를 조화롭게 헤쳐 나간다. 그들의 조합은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형주가 찾아나선 친부 후보 3인방도 각기 독특한 면모를 풍긴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친부 검사를 하려니 머리카락을 달라고 하는 형주를 보고도 노여워하거나 황당해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형주를 품는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전한다. 그들의 조합은 편안함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