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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의족, 안대... 의심으로 굴러가는 지옥의 로드무비

singenv 2025. 12. 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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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그저 사고였을 뿐>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세 가족이 차를 타고 밤길을 나섰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와중에 차가 덜커덩해 내려 보니 개를 치고 말았다. 딸이 아빠를 추궁하듯 하니 아내가 나서서 “신의 뜻이야,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대꾸한다. 가족은 근처 정비소를 찾는데, 정비공 바히드가 남자의 의족 소리를 듣고 확신한다. 과거 자신을 고문한 정보관이라는 걸.

그는 남자를 납치해 사막 한가운데로 가 생매장시키려 하지만, 남자가 발뺌하며 작년에 다쳐 의족을 달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정말 정보관이 맞을까? 바히드는 남자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우고 안대를 씌운 채 꽁꽁 묶어 트렁크 공구박스에 넣는다. 그러곤 과거의 동료들, 그러니까 함께 고문받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를 찾아간다.

바히드는 그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바히드를 만류하는 한편, 꼭 알아야겠다면 ‘시바’를 찾아가라고 했다. 웨딩 촬영 기사로 일하고 있던 그녀를 시작으로, 웨딩 사진을 촬영 중이었던 예비 부부, 시바의 옛 연인까지 바히드가 데려온 그 남자에게 고문을 당했던 이들. 반응이 제각각인 가운데 남자를 죽이려는 이도 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

자파르 파하니의 영화 안과 밖

1995년 데뷔 후 영화 연출 경력 30년의 이란 감독 자파르 파하니는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을 석권한 국제적 거장이다. 영화계 역사상 3대 영화제 최고상 그랜드슬램을 이룩한 감독은 손에 뽑을 정도. 하지만 그는 반국가적 행위들로 징역을 살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한 바 있다. 그 와중에도 여건이 닿는 만큼 영화를 찍었다.

영화 안팎으로 이란이라는 국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을 일관되게 시행해 온 그는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다시 한번 반국가적인 면모를 선보였다. 10년 넘게 해외 출국 금지를 당했으나 올해 칸영화제에 참석해 대망의 황금종려상 영예를 직접 안았다. 하지만 또다시 선전 활동 혐의로 징역형과 출국 금지령을 받았다.

영화는 반국가, 반체제, 반인륜적인 모습만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황, 사연, 캐릭터, 카메라, 음향, 장르 등 영화를 이루는 다양한 층의 요소들을 이용해 ‘재미’를 안긴다. 통상 이런 류의 영화들이 ‘영화 보는 재미’를 안기긴 힘들 텐데, 이 작품은 다르다. 몇몇 장면에선 블랙 코미디가 아닌가 다시 생각할 정도다.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건만 심지어 웃길 때도 있다.

체제에 맞서는 방식으로 웃음을 설계하다

자파르 파하니는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영화를 최대한 가볍게 하며 ‘반귄위주의’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극 중 바히드와 시바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과거 왜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는가 생각해 보면, 국가와 체제의 권위주의 때문이 아닌가 싶다. 권위를 앞세워 반인륜적인 짓을 행하는 것이다.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신정정치 독재 국가로 변모했다. 삼권분립이 형성되어 있지만 명목상일 뿐 이슬람 최고지도자가 모든 걸 통제한다.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결합이 만들어낸 독자적 정치 체제로, 민주주의 지수가 최하위권이다. 최하위권 등급을 ‘권위주의’라고 칭한다.

극 중 피해자들이 체포될 때 받은 혐의는 반체제 선전 선동이었다. 시위에 참가만 해도 잡혀 들어가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고문, 성폭행, 나아가 노예 같은 생활을 해야 했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다. 국가, 아니 최고지도자 혼자 모든 걸 철저히 통제하는 독재 체제에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체제, 종교, 인간이 만들어낸 폭력의 얼굴

<그저 사고였을 뿐>은 제목이 많은 걸 담고 있다. ‘사고’의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다. 극 중에서 피해자들이 정보원이라 확신하는 남자가 첫 장면에서 차로 개를 쳤을 때 아내가 “신의 뜻이었어,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하니, 인간이 행한 일을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 논리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영화는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고문한 정보원으로 보이는 이를 납치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지만, 곳곳에서 상존하는 일상적 폭력들이 눈에 띈다. 권위를 내세워 막무가내로 위협하고 결굴 돈을 뜯어내기에 이른다. 혹여 그때 무마시키지 못하면 어떤 혐의가 씌워져 체포되어 고문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애꿎게도 피해자들은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납치한 이 사람이 정말 정보원이 맞는지, 정보원이 맞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사람의 부인이 당장 아이를 낳아야 할 것 같은데 도와줄 것인지 등 난감한 상황들에서 서로 소리치고 싸우고 비난한다. 피해자들끼리 반목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어쩔 수 없을 때가 다반사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 사고라는 것이 갖는 특성을 악용해 고의성 있는 ‘사건’을 의도치 않은 ‘사고’로 둔갑시키려 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국가의 권위까지 얹혀진다면, 누구도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다. 완전무결한 악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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