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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영원을 그린 화가, 스크린에 부활하다

singenv 2025. 10. 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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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베르메르: 위대한 전시회>

 

다큐멘터리 <베르메르: 위대한 전시회> 포스터. ⓒ영화사 빅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최고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지만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전시회를 열었던 적이 없다. 베르메르가 누구인가. 비록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지만,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네덜란드 대표 화가로 유명하다. 위대한 렘브란트와 쌍벽을 이루며, '빛과 색채의 화가'로 이름 나 있다.

지난 2023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최초로 베르메르 전시회를 열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회고전'.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전시회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겼다. 다큐멘터리 영화 <베르메르: 위대한 전시회>는 그렇게 탄생해 우리에게 왔다.

2년 전 달리, 지난해 뭉크와 프리다, 올해 카라바조와 반 고흐와 클림트와 쉴레까지 역사적인 화가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우리를 찾아왔다. 와중에 <베르메르>가 특별한 건 화가의 삶이 아닌 화가의 작품 전시회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다. 쉽게 가볼 수 없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전시회를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베르메르의 삶을 잘 모르기에 그의 작품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살아생전 40~45점의 작품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데, 남아 있는 건 37점이고 그중 28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65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전설적인 전시회로 평가받는 이유다. 작품은 전시회의 기획부터 설치, 보존, 복원 과정까지 모두 담았다.

 

일상을 영원으로 바꾼 화가

 

베르메르는 화가 경력 초창기에 역사화를 주로 그렸다. 이탈리아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 추측되는데, 이후 방향을 틀어 풍속화를 그렸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혹자는 이 작품을 두고 네덜란드와도 바꿀 수 없다고도 한다. 어떤 해석이 뒤따를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완벽한 데는 강렬함, 단순함, 그리고 행복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검은색 배경의 소녀, 눈도 귀고리도 강렬하지만 정작 눈에 띄는 건 입술, 무엇보다 소녀는 행복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눈썹과 코를 빛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과 적, 청, 황 등의 색을 정묘한 대비로 그려내고 있다.

<우유 따르는 하녀>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유명하다. 사실 이 작품이야말로 베르메르의 전체적 작품 세계를 알 수 있게 하는데, 그 누구보다 '빛'을 잘 알고 또 활용했고 '색' 또한 화려하면서도 단순 명료하게 조합해 활용할 줄 알았다. 나아가 마치 사진처럼 일상의 한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해내니 감탄을 금치 못한다.

베르메르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그는 지극한 일상을, 당시 네덜란드의 주류인 중산층의 평범한 일상을 그림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런데 앞과 뒤의 시간이 있을 것 같은 순간을 포착하니,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별 볼 일 없는 일상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재주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베르메르가 필요한 이유

 

베르메르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한복판에서, 그것도 소위 잘 나가는 도시 델프트에서 나고 자랐지만, 돈이 많지 않았다. 가난한 축에 속했다. 아이가 10명이 넘었으나 1년에 작품을 2~3편밖에 내놓지 않았으니 후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웃 부부가 주요 후원자였다고 한다. 그들 덕분에 그는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는 극소수지만 풍경화도 남겼는데 <델프트 풍경>이 걸작으로 남아 있다. 항구도시 델프트의 바다 건너편에서 시의 전경을 그렸는데, 먹구름 아래선 빛이 반사되지 않고 맑은 하늘 아래선 빛이 반사되어 환한 게 보인다. 이토록 섬세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벽함을 자랑한다.

베르메르의 연구는 그림 밖을 향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을 향한다는 것이다. 관람자가 그림을 볼 때 시선이 향할 곳, 그렇게 향한 시선에서 느낄 것,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야 했다. 그러니 수백 년의 시간과 수천 킬로미터의 공간을 두고 지금 우리도 그의 작품을 감동 어린 시선으로 감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의도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효용성을 생각하게 된다. 돈이 되는가? 이익을 주는가? 그럴 때 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그럼에도 예술이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아 경제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뭇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감상하는 순간의 찰나가 영원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중독의 일종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가장 적합한 화가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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