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우리가 버린 아이들, 그럼에도 손을 내민 사람

singenv 2025. 10. 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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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티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티브> 포스터.

 

스탠턴 우드 학교는 교정이 중점인 학교다. 문제아들을 데려다 교정하려는 목적이 전부라는 말이다. 하여 기본 과목을 배우되 개개인을 상담하며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선생님도 학생도 많지 않은 편이다. 스티브는 교장으로 학교를 이끌고 있는데, 어느 날 학교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 일어난다.

스탠턴 우드 재단이 학교 부지를 팔아버렸다는 것. 하여 6개월 후, 1997년이 되기 전에 학교가 사라질 거라는 것. 그야말로 천천병력 같은 소식이다. 선생님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학생들은 받아주는 학교 없이, 관심 밖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될 것이었다. 절망이 닥쳐온다.

스티브는 아이들을 교정하는 데 열정을 바치는 건 분명하지만, 술과 약을 찾아 다닌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2년 전, 비록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교통사고로 소녀를 쳐서 죽게 만들었고 그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개인사와 더불어 학교 일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이 영화의 핵심에 가닿는 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티브>는 서점 직원 출신 소설가 맥스 포터가 2003년 출간한 <샤이>를 원작으로 한다. 그가 직접 각색한 각본으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샤이'라는 문제 학생의 시점에서 '스티브'라는 교정 학교 교장의 시점으로 옮긴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할까?

극 중에서 스탠턴 우드 학교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기자의 말이 영화의 핵심에 가닿는다. 이 학교의 정체성, 방향성 등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마지막 기회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사회의 폐기물을 버리는 아주 비싼 쓰레기통이라고 합니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교육적 개입일까요? 아니면 소년원 대기소일까요?"

그런가 하면 이런 말도 전한다. 교육이야말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분야일 텐데, 과연 이 학교의 교정은 교육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인가. "우리는 문제아들을 고급 사립 학교에 보내는 데 돈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급진적인 사회 개혁에 투자해 썩은 사과를 값진 과일로 바꾸고 있는 것일까요?"

 

문제아인가, 사회가 만든 희생자인가

 

첫 번째, 1년에 한 사람당 3만 달러 이상의 세금이 들어가는 아이들은 사회의 폐기물인가 하는 점이다. 아이들이 모든 곳, 모든 순간 행하는 짓을 보면 가관이다. 쉴 새 없이 욕하고 치고받으며 싸운다. 싸울 만한 이유가 아닌 것 같은데 죽을 듯이 싸우는 걸 보면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언론이 말하는 걸 보면 그들을 쓰레기로 보고 있다. 그러며 어떻게 개선하고 갱생할지 생각해 보는 게 아닌 어떻게 분류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 같다. 매우 불량, 불량, 덜 불량처럼 말이다. 그러며 세금을 내세워 시민을 선동하고 있다. 세금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걸 아느냐, 알면 그냥 두고 볼 수 있느냐.

그때 나서야 하는 게 국가 아닌가 싶다. 극중에선 일개 재단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선의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는가. 아이들을 감옥에 보내기 전에 기회를 준다는 식이 아닌 국가는, 그리고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해답일까, 또 다른 폭력일까

 

두 번째, 언론이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교육적 개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앞뒤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한가 또 그게 맞는가 하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100%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또 다를 것이다. 현실적 대책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과연 모두에게 괜찮을까?

어른의 아이를 향한 태도와 자세는 무조건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랑일지라도 말이다. 아이의 내면은 모두 다른 만큼 각각 다른 방향성으로 방법을 강구해야 할 텐데, 즉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할 텐데 거시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되지 않나 싶다. 무조건적인 사랑 또한 정확한 점과 선을 그려놓아야 한다.

물론 성인과 같은 참된 사랑, 문제 해결이나 갱생을 위한 게 아닌 아이들로 하여금 사랑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라면 좋다. 하지만 그러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이 다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걸 내놓은 사랑이니 자신이 다치지 않겠는가. 극 중 스티브가 비록 과거의 일 때문으로 죄책감 때문이 크겠으나 약과 술을 찾듯이.

 

결국 주체는 아이들이라는 것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단순히 문제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에 따른 개인적, 사회적, 종교적 의미가 다층적으로 싸여 있어 복합하기 이를 데없다. 이 영화가 내놓은 방향성은, 결론은 나이브한 편이지만 마음에 든다.

주체는 결국 아이들이라는 것. 그들을, 그러니까 문제아들을 바라볼 때 단점을 보고 해결하려 하기보다 장점을 보고 발전시켜 보려 하자는 것. 거기에는 무조건적인 사랑도 보이지 않고 아이들을 사회의 폐기물로 보는 시선도 없다. 아이들 자체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절망이 희망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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