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배우로 전향한 순간, 그녀의 인생은 무너졌다
[영화 리뷰] <퍼펙트 블루>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충격의 데뷔작
이름이 낯선 듯 낯익은 콘 사토시 감독은 살아생전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적임자로 불렸다. 그는 단 4개의 작품만 남겼는데, 비록 흥행에선 처참했지만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여 그의 작품들 모두가 국내에서 개봉했고 3번째 작품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작년 겨울에 재개봉하여 우리를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첫 번째 작품 <퍼펙트 블루>도 재개봉하여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2004년 첫 개봉 당시에 이미 일본 현지 개봉 7년 만이었으니, 나온 지 거의 30년 가까이 되었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왜냐, 이 작품이 건네는 리얼리즘이 현실과 작품의 경계를 허물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한계까지 파괴해 버리니 말이다.
하여 <퍼펙트 블루>는 애니메이션의 외피를 쓴 영화, 나아가 다큐멘터리로 작용하고 있다. 배경은 바로 연예계. 잘 나가지 않는 아이돌 생활을 청산하고 배우로 전향하려는 주인공의 지난한 이야기를 통해 1990년대 당시 일본의 연예계를 고발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이 작품이 의미를 갖는다는 건 그 자체로 씁쓸하다. 이른바 'TOP 100' 밖의 아이돌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여배우가 자리를 잡기 위해선 어떤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업계와 대중이 어떻게 그녀를 취급하고 있는지 등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바 시공간을 초월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먹먹하다.
아이돌에서 여배우로, 끝없는 착취의 굴레
키리고에 미마는 도쿄 상경 후 챰(cham)이라는 3인조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차트인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결국 기획사의 의지로 2년 남짓 활동한 끝에 그녀 혼자만 그룹에서 나와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아이돌 출신 매니저 루미가 격렬히 반대하지만, 아이돌은 돈이 안 되고 배우는 돈이 된다는 논리에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미마는 배우로서 고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여 기획사에서 배역을 가져오길 인지도를 한 번에 올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 즉 수위 높은 집단 강간신을 찍는 것이었다. 나아가 헤어 누드 화보도 촬영한다. 그녀는 겉으론 괜찮다고 했지만, 환영이 보이고 기억이 왜곡되고 현실과 드라마가 헷갈리는 등 정신적 혼란이 점점 심각해진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에 '미마의 방'이라는 사이트가 생기고 누군가가 마치 미마의 일기인 양 자세히 적어가고 있었다. 스토킹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 피폐해져 가는 미마를 루미가 곁에서 보살피지만 여의치 않다. 그쯤 미마의 강간신을 만든 각본가, 미마의 누드 화보를 촬영한 사진가가 차례로 참살당하는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 그래서 더 섬뜩하다
한때 잘 나갔던 아이돌이나 한 번도 잘 나간 적 없던 아이돌이나 배우로 전향하는 경우는 1990년대 일본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이돌이라는 게 나이를 먹다 보면 한계가 뚜렷하나 배우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거기엔 항상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아이돌 출신이라 잘하는 게 있긴 하네' '아이돌 출신치고 괜찮네' '아이돌 출신이라 역시 별로네'처럼 말이다.
그런데 배우, 그중에서도 특히 '여배우'의 경우 차원이 다르다. 지금이야 엄청나게 순화되었지만 1990년대, 그것이 일본이라면 여배우는 착취의 대상이자 성상품화의 도구로 작용하기 일쑤였다. 작중에서처럼 헤어 누드의 경우 1990년대 일본에서 열풍이 부는 동시에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니 다른 부분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싶다. 수많은 추악한 행위들이 당연시되었다.
한편 <퍼펙트 블루>는 지금도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는 '사생팬'도 정면으로 들여다본다. 미마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각조차 정확히 읽어 인터넷에 공유하는 사생팬, 아니 스토커. 팬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악질 중 악질적인 행위다.
미마는 연예계에 만연한 착취 구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임계점으로 치닫는 와중에 어떤 스텐스를 취해야 하는가. 그녀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누구이길 원하는가.
이 작품이 왜 흥행에서 참패했는지 알 것 같다. 현실을, 그것도 만인이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싶어 하는 연예계의 민낯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파헤쳤으니 말이다. 한편 이 작품이 왜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알 것 같다. 애니메이션 이상의 사이코 스릴러 영화이자 현실 고발 다큐멘터리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