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과 사람, 현실과 이상, 이성과 감성... 연애, 사랑, 결혼에서 고민하는 것들
[신작 영화 리뷰] <머티리얼리스트>

사장되다시피 한 정통 멜로 영화의 부활을 알린 <패스트 라이브즈>가 개봉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도 극장에 걸려 있고 관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데,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점도 한몫하겠으나 작품의 힘도 대단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셀린 송 감독은 북미 개봉 2년 만에, 한국 개봉 1년 만에 신작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이번 작품 <머티리얼리스트>는 멜로보다 로맨스에 가깝다. 진지하고 감정적 깊이가 없지 않아 있으나 경쾌한 편이고 이상적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어의 뜻을 한국어로 옮기지 않고 영어의 음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셀린 송 감독에 직접 밝혔듯 영화의 톤과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한다. 그녀의 의도가 들어맞았다고 본다.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s)'는 '속물(또는 속물들)'이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물질을 최우선시하는 이들이다. 작금 시대에 속물 아닌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하겠지만 연애, 사랑,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무엇보다 사랑 그 자체가 최우선이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나가는 커플매니저에게 다가온 것들
뉴욕에 사는 루시는 소위 잘 나가는 커플매니저다. 이 고객, 저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캐치해 알맞게 매칭해 주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렇게 벌써 아홉 커플 매칭에 성공했다. 하지만 39세 여자 소피의 커플 매칭이 까다롭다. 그래도 시간 문제일 뿐, 그녀가 원하는 조건에 만족하고 그녀의 조건에 만족하는 남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날은 그녀가 최근 매칭한 가장 성공적인 커플의 결혼식이다. 힘들어하는 신부를 신의 경지에 다다른 화법으로 달랜 후 신랑의 형 해리로부터 대시를 받는다. 그는 부호이자 잘생기고 키 크고 몸 좋고 라이프스타일과 매너 좋고 학벌과 성격까지 겸비한 이른바 ‘유니콘’이었다. 한편 루시는 결혼식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옛 연인 존과 조우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돈 때문에 헤어졌다.
루시는 해리와 점점 가까워지는 한편 존과도 연락을 이어간다. 모든 게 잘 풀려가고 있다고 느낄 때 루시에게 큰 재앙이 닥친다. 소피와 매칭해 준 남자가 데이트 도중 그녀를 폭행했던 것이다. 자책하며 일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고한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녀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까?
조건과 사람부터 연애와 결혼까지
'연애'하기 적당한 사람과 '결혼'하기 적당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 마음을 잘 알아채고 같이 있을 때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이 전자라면 조건에 잘 맞는 사람이 후자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게 법적 제도로서 계약의 일환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혼할 땐 속물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걸까.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조건'에 맞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는 걸까.
애초에 커플 매칭 회사에 예비 배우자를 의뢰하는 것 자체가 조건을, 아니 조건만 본다는 말일 것이다. 내 조건은 이러저러하고 내가 원하는 조건은 이러저러하니 알맞은 상대를 데려와 달라고 말이다. 소개를 받아 누군가를 만나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서로의 니즈가 어느 정도 맞으니 소개해 주는 것일 테니까.
그런데 조건이 전부라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 사람 자체를 두고 소우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복잡다단한 존재인데 어찌 상품 고를 때처럼 조건만 보고 선택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여 조건만 보고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틀렸다. 결혼 생활이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조건은 오히려 이상적이고 감성적이다.
이왕이면 사람 자체와 맞는 사람과 함께
영화에는 극단적인 조건의 두 남자가 나온다. 외모, 학력, 성격, 집안 등 모든 걸 다 갖춘 남자 해리와 돈이 없어도 너무 없는 존. 루시는 존과 사귀다가, 돈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뿜어져 나오는 생활의 바이브를 견디지 못해 헤어졌다. 그러다가 해리와 사귀고 있는데, 모든 게 순조로운 것 같지만 결혼을 '비즈니스'로만 대하는 그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꺼림칙하다.
루시는 평소 누누이 말하고 다니는 직업 신념처럼 해리 또는 적어도 해리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 아니면 돈이 없다는 것 빼곤 모든 게 잘 맞았던, 사람 그 자체와 잘 맞았던 존 또는 적어도 존 같은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누구와 결혼하든 행복할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을 테다.
그런데 살아보면 사람으로는 온전히 채워져도 돈으로는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 결혼 생활에도 마찬가지로 돈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게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조건에 맞는 사람보다 그 사람 자체와 맞는 사람과 살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이 영화는 어떤 방향을 견지하고 있을까. 이른바 '속물'의 결혼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사람과의 결혼이었으면 좋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