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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길 포기할 것인가, 인간이길 포기할 것인가

singenv 2025. 6. 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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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씨너스: 죄인들>

 

영화 <씨너스: 죄인들> 포스터.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2013년 20대 후반 나이에 처음 만든 장편 영화가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이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 4편의 작품을 더 만들었다. 모두 흥행애 크게 성공했고 좋은 평가도 받았다. 여전히 30대지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 우뚝 섰다고 할 만하다.

그의 작품들을 일별해 보면 공통점이 확연히 눈에 띈다. '흑인'이라는 유색인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나아가 작품의 정체성으로도 확고히 내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색인종에게만 먹히고 이해된다는 성향이라는 비판 아닌 비판을 받을 수 있는데,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가뿐히 넘겨버린 <블랙 팬서>로 갈무리했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배우 마이클 B. 조던, 음악가 루드비히 고란손과 모든 작품에서 함께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함께했으니 페르소나라고 할 만하다. 영화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내보임에 있어 최적의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최신작 <씨너스: 죄인들>에서도 어김없이 함께했다.

북미에서 크게 흥행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는 그러나 내수용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지없이 흑인 위주의 유색인종 정체성이 매우 짙은 이야기이기에 마냥 편안하게 즐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를 만회하고자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한껏 내뿜었음에도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주점을 오픈하려는 쌍둥이 형제

 

1932년 10월 미시시피 델타, 목화밭에서 일하지만 뮤지션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 청년 새미는 갑자기 찾아온 스모크-스택 형제의 차에 탄다. 쌍둥이 형제는 델타에서 악명을 떨치다 시카고로 향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후 시카고 갱단에 있었다가 델타로 돌아와 주점을 열고자 한다. 새미를 비롯해 인재들 영입에 박차를 가한다.

주점 오프닝 데이, 형제는 오직 흑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만 들여보낸다. 음악으로 오래된 한을 나누고 풀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그들, 그런데 불청객이 찾아온다. 백인 세 명이 찾아와 큰돈을 줄 테니 들여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절당한 그들, 하지만 형제는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라 일행 중 한 명을 보낸다.

그녀는 돈을 받아 돌아왔지만 알고 보니 뱀파이어에게 당했던 것. 그녀 또한 뱀파이어가 되었고 스택을 유혹해 물어뜯어 버린다. 그렇게 뱀파이어가 된 스택, 이후 주점은 아수라장이 된다. 다행인 건 뱀파이어는 안에서 들어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이대로 해가 뜰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겹다.

 

KKK단과 뱀파이어의 오묘한 조우

 

1800년대 중반, 남북전쟁 직후 남부 연합 출신의 퇴역 군인들에 의해 탄생한 'KKK단'은 백인우월주의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인종주의 집단으로 유색인종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린치를 가했다. 영화 <씨너스: 죄인들>에서도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뱀파이어 렘믹에게 가장 먼저 희생된 부부가 KKK단 일원이다. 그들의 사상은 뱀파이어의 사상과 섞인다.

그렇게 섞인 사상으로 주점의 유색인종들을 꿰어 내려는데, 해방이라느니 구원이라느니 하는 말들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거니와 평생 힘들게 뻔한 삶을 뒤로하고 죽지도 않거니와 백인 무리와 함께하면 힘들 것도 없을 테니, 안으로 들여보내 주든 밖으로 나오든 하라는 것이었다. 매우 달콤한 말이지만 결정적으로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

상당히 색다른 접근이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라는 것도 아닌 한편 당시 만연했던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을 수 있을뿐더러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는 건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부분과 맞닿기에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어느 누구도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죄인인가. 뱀파이어가 죄인인가 인간이 죄인인가. KKK단이 죄인인가 유색인종이 죄인인가. 욕망을 흩뿌리고 다니는 쌍둥이 형제가 죄인인가 욕망에 이끌려 주점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죄인인가. 어려운 질문이기에 답변하기가 쉽지 않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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