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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불분명한 '우주군', 시대를 비추는 빙퉁그러진 자화상

singenv 2024. 12. 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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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 포스터. ⓒ미디어캐슬

 

자그마치 60년도 더 된 1961년 4월 12일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20일에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 전까지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우주 탐사 계획에 경쟁적이지 않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기에 많은 부분을 민간 기업에 넘겼다.

그런데 2020년대를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몇몇 선진국들이 '우주군'을 창설했다. 우주에서의 전투행위를 금지하는 우주조약이 존재하기에 별 의미가 없어 보이나, 이른바 우주시대를 맞이해 선도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혹시 모를 우주전쟁을 대비한다고 하나 여러모로 다분히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그런 만큼 현실의 우주군은 우주에서 활발히 활동하기 어렵다.

몇 년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페이스 포스>가 두 시즌에 걸쳐 미합중국 우주군을 풍자적으로 다루며 조직의 쓸모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장장 40여 년 전에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역시 우주군의 쓸모없음을 다룬 바 있다.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제작사 가이낙스의 첫 작품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다.

 

실체가 없는 조직 우주군의 유인 우주 계획

 

제트기 파일럿을 꿈꿔 해군에 들어가려 했지만 성적이 안 되어 우주군에 입대한 시로츠구. 그런데 우주군이란 게 말만 번지르르하지 하는 게 없다시피 하는 조직이다. 그래도 훈련,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힘들게 하는데 군인들이 어이없게 죽어 나간다. 그러니 인원은 계속 줄어들어 10명 남짓이고 군인들은 전쟁에 나설 일이 없으니 하릴없이 빈둥거릴 뿐이다.

어느 날 시로츠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흥가에 가서 노는데, 길거리에서 사이비 종교를 전도하고 있는 여자 리이쿠니를 본다. 그녀에게 끌렸는지 다음 날 집으로 찾아가는 시로츠구, 그녀의 말에 크게 감화를 받는다. 우주군이란 게 너무 멋진 일이라니 말이다. 그녀에게 폭력과 전쟁이 판치는 이곳은 곧 사라질 것이고 우주의 별나라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마침 우주군에서 유인 우주 계획을 발표한다. 비행사로 지원하는 시로츠구, 계속해서 리이쿠니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에게 이성적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인 우주 계획이란 게 우주군사령관의 사비가 들어갔고 국방부에선 외교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계획만 있을 뿐 실체는 모호했다. 시로츠구는 리이쿠니한테도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유인 우주 계획에도 싫증이 나고 마는데…

 

총체적 난국의 우주군, 죽어 나가는 젊은이들

 

우주군의 일원으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가 주인공이지만 누구나 기대할 만한 '우주전쟁'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는 작품이 바로 <왕립우주군>이다. 스타워즈나 건담 시리즈를 연상했다면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는 게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 언급한 명작들보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작품 속 '우주군'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우주군의 실체는 훈련이나 실험으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고 10명 남짓 남은 군인들은 우주전쟁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 또는 우주군에선 이룰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허무하게 죽지 말고 제대해 뭘 하며 살지에 대한 생각 등으로 똘똘 뭉쳐 있다. 차라리 없으니만 못한 정부 조직인 것이다. 작품 속과 지금의 한국이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우주군 총사령관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유인 우주 계획을 선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자기 딴에는 우주군의 총체적 난국을 파헤칠 묘안이라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그 계획을 승인한 정부 윗선은 우주군 자체를 외교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애꿎은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인 만큼 제아무리 질 높은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작화가 중요하다. 이 작품, 듣도 보도 못한 배경에 우주군이 주캐릭터군으로 나오는 만큼 작화가 어려울 텐데 스탭이 어마어마하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와 사다모토 요시유키, <종말의 발키리>의 이이다 후미오 등이다. 거기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남을 이용해 먹고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상황

 

일본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는 1980년대 중반으로 이른바 '버블 경제'의 한복판이다. 일본의 자산 가치가 하늘 높이 상승하고 경제 활동이 과열되었으며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그러니 이 작품 속 무기력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와닿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일본은 거품이 빠졌고 '잃어버린 30년'의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머지않아 들이닥칠 일본 경제의 짙은 먹구름 속 분위기를 미리 예견할 걸까 또는 당대 일본의 공무원 사회를 꼬집은 걸까. 후자에 가깝다고 보는데, 몇십 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또는 전 세계 어디서든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어째서 윗선은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데 혈안이고 조직의 수장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것이며 아래의 젊은이들은 죽어 나가거나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가.

극 중의 시로츠구와 리이쿠니, 그들은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하지만 세상의 작은 움직임에도 삶이 크게 요동친다. 시로츠구는 수시로 무기력과 활력의 모습을 오가며 리이쿠니는 사이비 종교의 가르침에 더욱 깊이 파고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흔들리는 삶을 다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그 시절뿐만 아니라 이 시절의 빙퉁그러진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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