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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버려진 아기를 홈리스들이 돌보는 기적

singenv 2024. 12. 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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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콘 사토시 감독은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도쿄 갓파더즈> <망상 대리인> <파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작품만 남기고 떠났다. 그는 일찍이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끌 거라 주목받았는데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에 가깝고 일상에 환상이 막무가내로 끼어든다. 하여 상당히 어둡고 난해한 편이다.

와중에 <도쿄 갓파더즈>는 어둡지 않고 난해하지 않으며 대중적이다. 제목을 직역하면 '도쿄의 대부들'이라고 할 텐데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라는 기가 막힌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제목에 배경, 사건, 캐릭터, 메시지, 분위기 등이 두루두루 담겨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추운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 줄 거라 확신한다. 

작품은 존 포드의 1948년작 <3인의 대부>를 오마주했다고 익히 알려져 있는 바 그 작품은 '아기 예수와 3인의 동방박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베를레헴의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직감하곤 예루살렘으로 온 동방박사들, 헤로데 왕은 그들로 하여금 아기 예수를 찾게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다시 떠오른 베를레헴의 별을 보고 마리아를 찾는다. 이후 헤로데를 만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동방박사들에게 속았다는 걸 안 헤로데는 예루살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지만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셉은 이미 이집트로 피신한 후였다.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 홈리스들의 여정

 

일본 도쿄의 신주쿠 공원 근처, 홈리스 긴과 하나와 미유키는 함께 노숙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재활용 쓰레기장을 뒤지던 중 버려진 갓난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하나가 키요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기와 함께 있는 건 '아기를 잘 부탁한다'는 쪽지와 알 수 없는 열쇠 그리고 사진과 명함이 전부다.

긴과 미유키는 당연한 듯 경찰서에 데려가자고 했지만 하나가 아이에게 크리스마스에 버려지는 불행을 줄 수 없다며 그들이 함께 기거하는 움막으로 데려온다. 다음 날, 그들은 아기의 부모를 직접 찾고자 길을 나선다. 자신의 앞가림도 하기 힘든 만큼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길을 나선 후 우연히 아쿠자 보스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다.

알고 보니 보스의 사위가 될 사람이 명함의 가게 사장이었다. 그에게서 키요코 엄마의 정체도 알게 된다.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암시일까? 그런데 난데없이 한 웨이트리스가 총을 쏘는 바람에 그 사위가 다치고 결혼식장은 난장판이 된 와중에 미유키가 키요코와 함께 암살범에 납치되는데… 과연 세 홈리스는 키요코를 부모한테 잘 데려다줄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에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듯

 

'우연히' 아기를 발견한 셋은 이후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려는 여정에서 수많은 우연과 마주한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키요코의 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긴과 하나와 미유키는 따로 또 같이 각자의 묻어둔 사연과 조우한다. 크리스마스에 도쿄 뒷골목의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키요코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조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가 건네는 함의가 절대적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전쟁도 멈추고 적을 향해 축복을 전하는 기적이 행해지지 않는가. 그러니 어떤 기적도 가능하다. 하물며 계속되는 우연 따위야. 나아가 버려진 아이 키요코가 불행이 아닌 행운을 그리고 축복과 기적을 가져다준다고 믿게 된다. 예수를 떠오르게 하는 한편 크리스마스가 뿜어내는 기대감이 모두를 들뜨게 한다. 작품 자체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작품이 크리스마스라는 누구도 깔 수 없는 절대적 대지 위에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우연으로 얼버무리진 않았다. 실사에 가까운 질감의 배경과 애니메이션 속 같지 않은 인격화된 캐릭터들이 믿을 수 없는 우연과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만화적 표현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여 작품은 애니메이션적이기도 하면서 영화적이기도 하며 다분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무력한 이들이 아기를 돌본다는 것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데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는 당연히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딜 가나 네온사인이 번쩍거려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고 초고층 건물이 즐비해 고개를 얼마나 들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중심부의 바로 옆에는 어둡고 더러우며 위험한 곳이 도사리고 있다. 비단 도쿄뿐만이 아닐 터 대도시 옆에는 홈리스들의 움막이 있기 마련이다.

한편 세 홈리스는 각자의 지난한 사연으로 남을 돌볼기는커녕 돌아볼 처지가 아닐 텐데 아기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한없이 무력한 그들이지만 사람의 아기는 누군가가 보살피지 않는 한 반드시 죽고 마는 절대 무력(無力)의 소유자다. 아기를 홈리스들이 보살피는 모양새가 웃기면서도 서글프지만 덕분에 그들은 한껏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 이어졌던 긍정적인 우연들이 그들을 또다시 찾아갈진 알 수 없다. 아기를 버려둘 순 없다는 순수한 의도에 세상을 관장하는 무엇인가가 반응했을 테다. 그 또한 우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부디 그들이 기적적인 우연들을 인지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다시 기적이 찾아올 거라고 기대할 테니까, 그런 이들에겐 기적이 찾아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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