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분열해 버리는 섬뜩한 질문, "너는 어느 쪽이야?"
[영화 리뷰]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분열과 통일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주요 논쟁거리였다. 분열과 통일, 통일과 분열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현재 전 세계는 외형상 대체로 안정적인 통일국가를 영위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분리독립을 외치는 지역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는 내전까지 나아갔던 경우도 많고 현재진행형인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이 휴전이라는 형태로 진행 중이지 않은가.
전쟁과는 가까워도 내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미국의 경우 1860년대에 '남북전쟁'이라 불리는 내전을 겪었다. 미국독립전쟁 이후 가장 큰 위기였다. 이후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을 영화 <시빌 워>가 그렸다. 물론 두 번째 내전은 없었으니 미래에 일어날지 모를 일을 상상한 픽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가진 대통령이 헌법 위에서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경우가 있으니 마냥 픽션으로만 볼 수 없다.
감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알렉스 가랜드, 대니 보일의 <비치> 원작을 시작으로 <28일 후> <선샤인>까지 연달아 각본을 맡으며 대니 보일 사단의 일원으로 거듭났다. <엑스 마키나>로 연출 데뷔에 성공했는데 크게 호평받았다. 이후 2년여의 텀을 두고 영화를 내놓고 있다. 대체로 장르 영화이며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다. 반면 <시빌 워>는 관조하는 시선이 주를 이룬다.
불법 대통령을 인터뷰하기로 한 종군기자
근미래의 미국, 민간인을 학살하고 FBI를 해산시켰으며 불법적인 3선에 성공한 대통령에 반기를 든 텍사스·캘리포니아의 연합 서부군이 워싱턴 D.C.로 진격해 코앞에 다다랐다. 한편 19주가 연방을 탈퇴해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뭉쳐 플로리다 연합을 이뤘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부군이 서부군을 궤멸 상태까지 밀어붙였다고 담화를 내보낸다.
전설적인 베테랑 사진 기자 리는 동료 기자 조엘과 함께 서부군의 뒤를 쫓아 워싱턴 D.C.로 가 대통령을 직접 인터뷰하기로 한다. 이 내전이 끝나고 남을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데 그들의 여정에 리가 존경하는 기자 새미 그리고 리를 우상으로 둔 신입 기자 제시와 함께한다. 탐탁지 않지만 같이 가기로 한다.
베테랑이든 신입이든 종군 기자인 만큼 전투의 한복판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데 여념이 없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도 끼어들 틈이 없다. 아군, 적군의 개념 없이 기록을 남길 뿐이다. 그런데 기자고 나발이고 자기편이 아니면 무조건 쏴 죽인다는 정부군과 맞닥뜨리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들은 무사히 워싱턴 D.C.까지 당도하여 대통령 인터뷰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전쟁 블록버스터 아닌 차라리 다큐멘터리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해도 법률상으로 의무병과 종군기자는 직접적인 발포 대상자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무병과 역사적 자료를 남기는 종군기자이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어느 편을 옹호하거나 상황에 끼어들지 않는다. 누구든 상관없이 살리려 하고 누구든 상관없이 기록을 남기려 한다. 물론 누구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여 <시빌 워>가 종군기자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시선이 주가 된다는 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목적이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제목부터 '내전'이다. 그 자체로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내전이라 하면 대부분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인데 모종의 이유로 정부에 반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다. 영화를 보면 불법적인 3선 대통령이 민간인을 무차별 폭격했고 FBI까지 해체했다.
즉 이 영화는 흔히 볼 수 있는 전쟁 블록버스터 장르가 아니다. 차라리 종군기자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종종 보여주는 전투 장면은 가히 실전을 방불케 한다. 아무런 영화적 장치 없이, 즉 클로즈업이나 슬로우컷이나 포격으로 팔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하는 것 없이 그저 무심하게 적군을 죽이는 것이다. 분명 치열한 전투 장면인데 감정적인 자극을 주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너는 어느 쪽이야?"라는 질문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이트가 주창하길 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지 않고 감정이입하지 않아야 비판적으로 또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소격효과'라고 하는데, <시빌 워>가 취한 거시적 방법론이라 하겠다. 현대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서 취하기 힘든 파격으로, 영화의 만듦새에선 호평을 받았을지 몰라도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화는 '미국'의 내전을 특정 짓는 게 아니라 21세기가 한창인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 세계' 내전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분열'의 모습, 그 원인으로 자기편이 아니면 가차 없이 죽이는 '극단성'을 그린다. 극 중에서 주인공이 맞닥뜨린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서 정부군의 섬뜩한 질문이 핵심이다. "너는 어느 쪽 미국인이야?"
우리나라야말로 오랜 세월 극단으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극단, 분열, 내전의 삼중주를 겪어서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는 "너는 어느 쪽 한국인이야?"라는 질문을 무차별로 받고 있다. 우리로선 이 작품이 아무리 소격효과니 종군기자의 시선이니 전쟁 블록버스터가 아니라고 해도 몰입하고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