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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2020/11'에 해당되는 글 11건

제목 날짜
  • 드러나지 않지만 진정한 유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기 앞의 생> 2020.11.30
  • 추천하면서도 비추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배경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2) 2020.11.27
  • 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2020.11.24
  • 21세기 오리무중 밀실 살인, 그녀는 누가 왜 죽인 걸까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죽었다> 2020.11.20
  • 금융사기극 실화로 메시지와 재미를 잡다 <블랙머니> 2020.11.18
  •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주 작은 단면을 들여다보다 <블러드 오브 제우스> 2020.11.16
  • 인생이라는 체스를 사는 불우한 천재 소녀 이야기 <퀸스 갬빗> 2020.11.13
  • 이집트 고왕국 사제, 그 화려한 무덤과 평범한 삶의 비밀 <사카라 무덤의 비밀> 2020.11.11
  •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한마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미안해요, 리키> 2020.11.09
  • 로마 시대 게르만족 영웅 실화 이야기 <바바리안> 2020.11.06

드러나지 않지만 진정한 유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기 앞의 생>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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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자기 앞의 생>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자기 앞의 생> 포스터. ⓒ넷플릭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의 소설,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이다. 변호사 연수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대위로 참전했으며,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소설을 남겨 42살 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해 스타로 떠오른 '로맹 가리'. 20여 년이 지나며 비평가들은 그를 두고 한 물 갔다고 했는데, 그는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하며 압박을 피하려 했다. 그러던 61살이 되던 1975년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 공쿠르상을 수상한 것이다. 


에밀 아자르 즉, 로맹 가리는 수상을 거부했지만 공쿠르 아카데미 측에서 밀어붙였다. 공쿠르상은 같은 작가가 두 번 이상 수상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당시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문학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로맹 가리는 오촌 조카에게 에밀 아자르를 연기하게 했다. 이후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문학계에 엄청난 찬양을 받았고,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표절 시비까지 나며 혹평을 면치 못했다. 1980년,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만다. 그는 유서를 남겼는데, 거기에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여, 올해는 로맹 가리 40주기이자 소설 <자기 앞의 생> 45주년이 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배경은 프랑스가 아닌 현대의 이탈리아로 말이다. 이탈리아와 유럽은 물론 헐리우드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계 최고의 레전드인 소피아 로렌이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최신작이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 감독의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가 연출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정 눈여겨 봐야 할 이가 있었으니 소피아 로렌의 로자 역과 더불어 주인공 모모 역을 맡은 이브라히마 게예다. 


슬픔과 아픔을 지닌 이들의 만남


고아 소년 모모, 사회 복지사의 부탁으로 코엔 박사가 후견인으로 있다. 소매치기가 특기이자 취미인 듯한 그를 코엔은 더 이상 맡기가 힘들다. 코엔은 모모가 훔쳐 온 값 비싼 촛대의 주인, 로사를 찾아가 사과하면서 모모를 맡아 달라고 간청한다. 입양할 가정을 찾을 때까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칼에 거절한다. 나이도 많이 든 그녀는 안 그래도 매춘부 아이들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모모도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마약을 취급하는 동네 아저씨가 모모에게 접근한다. 코엔 박사네에서 나와 로사 아줌마네로 오면 일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모모로선 돈이 필요해 평소에 안면을 트고 지냈는데 잘됐다 싶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로사네 집으로 향하는 모모, 동시에 뒤로는 마약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로선 로사네 집에서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었다. 로사는 물론이고 로사가 맡은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로사가 비를 맞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는 슬픔 이상의 공허를 지닌 채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모모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하고자 온몸으로 웃기려 했고 그녀는 정신을 차린다. 이후 모모는 조금씩 마음의 덧창을 열기 시작한다. 로사가 소개시켜 준 잡화점에서 주인장 하밀 씨를 도와 간간이 일도 하고 로사가 맡은 아이들과도 잘 지내 보려 한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 또다시 로사의 이상 현상을 목격하는데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그녀를 감싸 주는 모모다. 


특별하지 않지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영화 <자기 앞의 생>은 소설 원작과 상당히 다른 결을 가진다. 누군가는 다른 결이라고 할 테고, 누군가는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모모라는 캐릭터의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한껏 살려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로 로사와의 관계에서인데, 둘의 관계가 보여 주는 롤러코스터 감정이 특히 그랬다. 반면 영화는 모모의 캐릭터 자체도 그렇고 로사와의 관계에서도 특별한 뭔가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감독의 '잘못'이 크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전적으로 로사 역의 소피아 로렌과 모모 역의 이브라히마 게예다. 영화가 그리 잘 나오진 못했기에 오히려 두 주인공의 연기가 돋보이는 게 아닌가 싶지만, 연기만 따로 떼어 놓고 봐도 손색이 없다. 칸, 베니스, 베를린, 미국·영국 아카데미, 골든 글러브 등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받은 전설적 배우 소피아 로렌은 그렇다고 쳐도 듣도 보도 못한 이브라히마 게예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수훈이다. 


소피아 로렌이라는 대배우와 밀착해 연기를 펼치는 데 위축되거나 어색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80대 중반으로 50년대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해 60년대 전성기를 보낸 '옛날 사람'이기에 오히려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어설프게 유명하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배우였다면 완전히 다른 케미와 퍼포먼스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말 못할 아픔을 아주 깊숙이 간직한 채 천천히 아파 가는 로사, 모모 역시 어리디 어린 나이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할 아픔을 지니고 있다. 결이 같은 아픔이었을까 아니면 아픔은 아픔을 알아보는 걸까, 모모는 로사를 감싸 주고 받아들인다. 로사는 겉으론 힘들다 못한다 싫다고 하지만, 진작 모모를 감싸 주고 받아들였다. 


이 영화의 아이러니


뭘 하든, 남기고 싶은 게 있다면 단 하나면 족하다. 이 영화 <자기 앞의 생>을 보고 나서 남은 게 뭔지 생각해 본다. 소피아 로렌과 이브라히마 게예의 훌륭한 연기가 주는 풍만함만으론 어딘가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그들의 연기를 통해 일으킨 뭔가가 있을 것이었다. 드러나지 않는 '유대감'이 아니었나 싶다. 보는 우리는 물론, 로사와 모모 서로도 서로의 진짜 아픔을 추측만 할 뿐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드러내지 않는 아픔을 로사와 모모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주 잘 아는 듯하다. 그 유대감은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감정이자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고 교감하는 최고의 감정교환일 것이다. 그 지점을 알아 차릴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 밖에서 보는 우리로선 알아 차리기가 쉽지 않다. 아주 미묘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만 공유하고 영화 밖으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아주 불친절했다는 것.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이 영화가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는 지점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영화가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싶지만, 만약 친절했으면 이 영화에서 남는 건 훌륭한 연기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부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안으로 침참해 들어가, 로사와 모모의 드러나지 않는 아픔과 그들만의 감정선을 파악하여, 진정한 유대감을 조금이라도 엿보길 바란다. 그러 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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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선, 고아, 로맹 가리, 불친절, 소피아 로렌, 슬픔, 아픔, 연기, 유대감, 자기 앞의 생,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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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면서도 비추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배경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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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포스터.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미국 오클라호마 소재의 한 부대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해 나치가 점령한 유럽을 관통하는 혹독한 여정을 시작한다. '선더버즈'로 불린 이 부대는 멕시코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카우보이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정작 미국 본토에선 같은 바에서 어울려 술도 마실 수 없었다. 하지만, 전쟁 중엔 서로의 목숨을 내맡기고 구하는 형용하기 힘든 전우애로 똘똘 뭉쳤다. 


2년 전 오클라호마 포트 실, '해결사'라 불리는 스파크스 소위는 J중대를 맡게 된다. J중대의 J는 'jail'의 J였다. 즉, 군대 내 교도소에 있는 군인들을 한데 모아 훈련시켜 전쟁에 나설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스파크스는 과거는 물론 인종도 상관하지 않고 차별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판단할 것을 천명하며 문제아들을 한데 모아 출중한 실력자들로 길러낸다. 그리고 1943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해 500일 동안 나치 점령 하의 유럽을 관통하며 무훈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스파크스는 전투 중 크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는 '100만 불짜리 부상'을 입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무단 탈영을 하여 부대원들이 있는 최전방으로 향한다. 하지만, 필사적인 독일군에 맞선 안치오 전투에서 대부분의 부대원을 잃고 절망한다. 'E중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병사들을 모아 다시 일어서는 스파크스, 꿀맛 같은 휴식과 지옥 같은 임무가 그들을 기다리는데... 스파크스와 부대원들은 과연 무사히 기나긴 여정을 마칠 수 있을까?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이하, '더 리버레이터')는 알렉스 커쇼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제2차 세계대전 밀리터리물이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특이한 외형이 눈에 띄는데, 실사인 듯 애니메이션인 듯 한눈에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눈이 가는 게,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트리오스코프 스튜디오'의 특허기술이라고 하는데,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실사로 촬영 후 애니메이션 랜더링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전쟁물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은데, 마치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가장 유명한 FPS게임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연상된다. 


후술하겠지만, 스토리나 메시지 들이 생각보다 현찮은 반면 보고 즐기는 맛이 나쁘지 않다. 전쟁 영화를 즐겨 봤던 이들에겐 꽤 괜찮은 선물 같은 콘텐츠라고 할 만하다. 필자 또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전쟁 영화를 많이 봐 와서 왠만큼 색다르지 않는 이상 큰 감흥을 받진 못하는데, 이 작품은 확실히 남다름을 자랑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허술하고 아쉬운 부분들


작품이 내보이고자 하는 건 의외로 허술하다. '의외'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작품 초반 '미국에선 같은 바에서 어울려 술도 마실 수 없는' 인종들이자 범죄 관련의 문제가 다분한 이들을 한데 모아 캐릭터성 확실하고 메시지도 확실한 부대를 만들지만 정작 큰 활약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릭터성 확실한 이들의 개성을 제대로 내보이지도 못했고 말이다. 허술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전쟁 '영화'가 아닌 '시리즈'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제목 그대로 전우애를 중심에 두고는 전장을 함께 보냈던 이들의 고충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반면 이 작품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것처럼' 보이게 시작했음에도 말이다. 역시 허술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겠다. 


대신, 작품은 전우애로 가득 찬 신념을 두른 채 자신의 목숨보다 부대원들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스파크스의 인간애 어린 고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쟁을 다룸에 있어 '영웅'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하고 또 하찮은지 수많은 전쟁 콘텐츠로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류의 이야기와 메시지는 성에 차지 않는 게 사실이다. 원래 8부작으로 기획된 것이 제작과정에서 4부작으로 줄여졌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스토리나 캐릭터나 메시지나 스케일 등의 면에서 '수박 겉 핥기' 정도로 다루고 보여 주는 게 너무 눈에 띄었다. 


평이하게 괜찮은 부분들


그런가 하면,  비(非) 밀리터리물 팬의 입장에선 <더 리버레이터>가 평이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일 테다. 한 에피소드 당 45분 정도의 4부작으로 길다면 길지만 시리즈로선 짧은 편인 러닝타임으로, 영웅적 개인의 여정을 중심에 두고 소규모와 대규모 전투를 오가는 액션과 실패, 좌절, 성공이 이어지는 서사와 아군과 적군을 가로지르는 감동 어린 전우애와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전쟁의 이유를 고찰하는 장면이 성실하게 배치되어 있다. 


전쟁을 다루는 실사 콘텐츠가 어쩔 수 없이 보여줘야 할 잔인한 장면들이 이 작품에선 상당히 중화되어 있기로서니 전쟁 액션에 바라는 기대에 못 미치지도 않으니, 전쟁 콘텐츠 초심자들에겐 안성맞춤인 작품이라 하겠다. 평론적으론 호평이나 혹평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나, 대중적으론 이만큼 볼 만한 작품도 없지 않나 싶다. 그러니, 한편으론 비추천하면서도 한편으론 추천한다. 


전쟁 콘텐츠가 매해 꾸준히 우리를 찾아오는 건, 전쟁의 무용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거기에서 영웅적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 한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전쟁은 정녕 모두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게 아닌가. 이 작품을 보고서도 부디 궁극적으론 그런 깨달음을 얻어 가길 바란다. 하지만, 전쟁의 무용성 말고도 무용한 전쟁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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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실사, 애니메이션, 영웅, 전우애, 전쟁 콘텐츠, 전투, 제2차 세계대전, 캐릭터
  • BlogIcon 결정해주는 남자
    2020.11.27 18:02 신고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부탁드립니다 자주 관심 가질게용 ㅎ

    • BlogIcon singenv
      2020.11.27 19:40 신고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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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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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 포스터. ⓒ넷플릭스



프랑스 칸, 16살 생일을 맞이한 소녀 나이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선, 방학을 맞이해 게이 친구 도도와 자주 어울리며 함께 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하고, 엄마가 일하는 호텔 조리실에서 인턴으로 일해 볼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파리에 사는 사촌 언니 소피아가 나이마의 생일도 축하할 겸 놀러왔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언니라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소피아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는 나이마에게도 명품 가방을 생일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성형 티가 많이 나는 얼굴과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나이마와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해변에서는 반나체로 있으면서 뭇남자들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대형 요트를 소유한 부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나이마와 함께 요트에 올라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엔 앙드레라는 이름의 부자 명의로 고가의 시계를 사 버리는 그들이었다. 


나이마는 요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우연히 밤중에 소피아와 앙드레가 섹스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나이마는 자신의 삶과 스타일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도도를 멀리하며 소피아와 가깝게 지낸다. 화려하고 자유분방게 지내면서도 부족함 없이 사는 게 부러웠을 터다. 하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엄마가 말하길, 소피아는 '자유'롭지만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며 '지쳐' 있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나이마, 그래도 소피아의 삶의 방식을 우선 따라 보고 싶다. 그녀의 방학은 어떻게 끝날까?


프랑스 예술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은 프랑스 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방학을 맞이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 여자로서의 심리를 세세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역시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 다섯 편의 연출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두 편이나 극장 개봉을 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 예술영화계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한국에 개봉한 두 편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주연 여성 배우인데, <그랜드 센트럴>에서는 레아 세이두이고 <플래니테리엄>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이었다. 둘 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로,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의 여성을 내세운 연출 감각이 얼마나 출중한 지 반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이지 걸>의 경우 눈에 띄는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가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긴 한다. 그녀는 배우라기보다는 란제리 모델이자 디자이너인데, 미성년이었을 때 성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고위층만 상대했다는데, 결국 2010년 경찰 단속에 걸려 프랑스의 국보급 축구선수들인 카림 벤제마와 프랑크 리베리와 시드니 고부 등이 체포되었다.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란제리 브랜드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소피아 캐릭터가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여성의 성장


영화가 시작되며 프롤로그처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칸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해변을 반나체로 걸어가는 소피아, 그리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철학자 파스칼의 한마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좌우한다."까지. 영화 속 나이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영화 밖 자히아 드하르의 인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이마는 호텔 조리장 인턴과 연기 오디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어쩔 줄 모르는 듯 고민하는 듯하다. 인턴을 한다고 해서 오디션에 붙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나름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때 우연히도 소피아가 끼어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여름밤의 꿈에 가까운 한 방학의 일탈이었을 뿐인 좋은 경험이지만, 당시에는 빨려들어가듯 중심을 잡지 못했을 테다. 엄마의 지난한 삶과 비교되어, 소피아의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영화 속 소피아는 자체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보다 나이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오히려 소피아는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의 삶과 연결되는 것 같다. 연기자의 실제 삶과 캐릭터의 영화 속 삶이 복제 수준으로 비슷하다. 마치 영화 속 삶으로 영화 밖 삶을 변호하는 듯, 겉으론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힘들고 공허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 나이마의 드러나는 성장만큼 소피아의 드러나지 않는 성장 또한 찾아볼 만한 여지가 있다. 


나름의 철학


나이마가 직업적 선택에의 성장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부류라고 해야 할까, 계급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직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유유자적 대형 요트에서 살아가는 듯싶은 앙드레, 그와 함께 요트 생활을 하며 친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충실한 손발이 되어 주는 필리프, 음식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와 눈초리를 받지만 부자의 눈에 들어 눈요기와 쾌락의 상대가 되어 주고는 그들의 풍요를 조금 나눠쓰는 소피아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자못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로 빠지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내보이는 핵심이다. 어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애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의 나이마가 혼란스러워 하는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세상의 한 진면목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 잡아 준 건, 의외로 소피아가 아닌 앙드레의 친구 필리프였다. 소피아는 그녀를 끌어들였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고, 필리프는 그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가르쳐 주었다.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프랑스 콘텐츠답게 이해하기 힘든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을 쉽고 짧은 대사로 치고 빠지곤 한다. 스토리 맥락과 닿아 있는 듯하지만 서사적 맥락을 방해하는 듯한 대사들이 애매모호한 타이밍에 나와 애매모호함을 남기니 난감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허투루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만큼,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만족의 근원이야. 욕심과는 거리가 멀지."

"노화에 저항하는 게 한심하다고요? 아니죠. 오히려 감동적이죠." 

"이건 원칙의 문제가 아니야. 가치에 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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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어른, 여성, 이지 걸, 인생, 자유, 자히아 드하르, 철학, 프랑스 영화,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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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오리무중 밀실 살인, 그녀는 누가 왜 죽인 걸까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죽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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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죽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죽었다> 포스터. ⓒ넷플릭스



2020년 10월 27일 비 오는 일요일, 아르헨티나 카르멜 컨트리클럽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마리아 마르타 가르시아 벨순세라는 이름의 그녀는, 남편과 함께 친구네랑 점심 식사를 하고는 4시에 다른 친구들과 테니스 시합을 했다. 하지만 비가 내려 가족들이 모여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 제부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축구 경기가 끝난 6시 10분 경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카를로스는 6시 50분 경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하여, 그녀의 잘못된 상태를 최초로 발견하게 된 남편 카를로스, 그가 집에 와 보니 문이 열려져 있었고 가르시아는 욕조에 고꾸라져 있었다. 카를로스는 그녀를 끌어내 눕혔다. 7시면 항상 방문해 안마를 해 주는 안마사가 집에 왔다고 한다. 그는 우선 여동생 이레네에게 전화로 알렸고, 그녀는 집에 오자마자 뛰쳐나가 의사를 찾았다. 카를로스는 구급대에 전화를 걸었고, 7시 30분 경 첫 번째 구급대가 도착했다. 그리고 7시 45분 경 두 번째 구급대가 도착했다. 하지만 둘다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족들은 한데 모여 밤을 새우며 그녀를 기렸다. 그러던 와중, 가르시아는 어떻게 죽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했다. 단순히 목욕을 하려던 중 미끄러져 머리를 찧어 사고를 당해 죽은 걸까? 여하튼, 그들은 곧 마리아 마르타 가르시아 벨순세의 장례식을 치른다. 이미 땅에 묻힌 가르시아, 하지만 담당 검사인 몰리나 피코가 관련 증인들을 소환해 신문하면서 사고는 서서히 사건으로 변질된다. 가족들의 이야기와 완전히 딴판인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류층 공동체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죽었다>는 2002년 10월 27일 시작해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한 사건의 자세한 전모를 풀어 내고자 했다. 아르헨티나의 카르멜 컨트리클럽이라는, 상류층들이 철저한 보안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편안하게 생활하는 공동체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큰 관심을 끌었다. 


가르시아가 욕실에서 단순 사고사로 숨졌다면 그녀가 살아생전 자선사업가로 좋은 일에 앞장섰던 만큼 모두가 그녀를 기리며 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보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정황이 없고 당황한 가족들'은 가르시아의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가르시아 아래에 있던 납 조각을 변기에 버렸다. 경비원한테 말해 경찰이 들어오지 않게 했다고도 하고, 사건 현장을 말끔히 청소해 핏자국 하나 남지 않게 했다. 부검 결과 머리에서 5개의 총알이 발견되었다. 변기에 버려진 납 조각은 튕겨나간 6번째 총알이었다. 이제 가르시아는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왜 그녀를 죽였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밀실 살인, 미스터리물의 단골 소재이자 가장 흥미로운 소재이기도 하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궁금하지만, '누가' 죽였는지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사건에서 '누구'는 자연스레 '왜'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말이다. 동기를 밝히지 못하면 '누가'가 성립되기 힘들다. 그렇다, 카르멜 컨트리클럽은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된 밀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정황상, 외부의 소행일리는 희박하고 내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게 대두될 수밖에 없다. 몰리나 검사, 언론, 대중의 시선이 다름 아닌 가족들에게로 쏠린다. 가족들의 행동이 수상했음은 물론이다. 증거를 은폐하려는 수작으로 봐도 충분한 조치를 취한 게 아닌가. 


그녀는 도대체 누가, 왜 죽인 걸까


몰리나 검사는 기어이 고인의 남편 카를로스와 가족들을 기소한다. 공범과 함께 살인을 저질렀고 이후 증거들을 은폐하려 한 죄였다. 그가 세운 가설 중 하나는 이렇다. 가르시아는 자선사업가로 후원 계좌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평소 카르텔과 거래를 하고 있던 카를로스가 돈세탁에 그 후원 계좌를 이용했다. 이를 알게 된 가르시아는 좌시하지 않을 거라 항변했고 그 과정에서 몸싸움 끝에 살해당한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이지만, 가르시아가 철저한 보안의 카르멜 컨트리클럽 본인 집 욕실에서 6발의 총을 맞고 죽은 것도 절대 흔하지 않지 않은가.


가족의 입장에선,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당연히 황당하기 그지없었을 터. 변호사를 대동해 치열하게 대응해 보지만, 결국 증거 은폐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만다. 이후, 몰리나 검사와 카를로스의 대결 구도가 이어진다. 몰리나는 카를로스가 살인에 가담한 핵심인물이라 주장하고, 카를로스는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가족들은 카를로스의 편을 들고, 두 번째 구급대 의사와 몇몇 경비원들은 몰리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일 년 전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경제 위기에 봉착해 크게 무너진 적이 있었다. 와중에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 법, 잘 나가던 증권 중개인으로 큰 돈을 벌고 일찍 은퇴해선 외부와 단절된 채 안전한 소왕국에서 호의호식하는 카를로스와 가족들이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소식에 일반 대중들의 시선이 쏠린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잘 팔리는' 뉴스를 언론이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시간이 흘러 무죄 판결을 받는 카를로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러다가 2016년 다시 무죄 판결을 받고 지금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은 완전 종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카를로스 등의 가족과 함께 유력한 용의자로 뽑혔던 이웃집의 위험한 남자 니콜라스 파첼로와 경비원들이 계속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사건의 전말은 언제 알 수 있을까. 가르시아는 도대체 누가, 왜 죽인 것일까. 


잘 팔리는 뉴스를 놔두지 않는 언론의 작태


세상엔 정녕 수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다큐멘터리 시리즈로까지 만들어질 정도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 안에 '흥미거리'가 많아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죽었다>야말로 흥미거리가 많은데,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외부와 단절된 부유층의 소왕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라는 점이 가장 흥미를 돋는 가운데 가족들의 수상한 움직임과 컨트리클럽 내 타인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가 하면, 미스터리 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언론'의 작태가 아주 볼 만하다. 


저널리즘의 윤리 따윈 싹 무시하고 오로지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을 자극적인 소재들만 찾아 흥미를 돋우는 헤드라인으로 모든 언론지상을 도배하는 것이다. 언론은 사건이 빨리 종결되길 절대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이 자신들(언론)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려 혼돈으로 치달아 갈팡질팡 못하게 되길 바란다. 그래야 이전보다 더 재밌는 기사거리를 양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사건은 실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언론의 사건에 대한 중구난방 융단폭격 톱기사들로 대중은 물론 경찰과 검찰과 피의자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건의 주요 관계자들은 횡설수설을 면치 못했고 판결은 계속 뒤집혔다. 


그렇다고 언론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그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남고자 전쟁 같은 경쟁의 결과물로 자극적이고 일회성 높은 기사들을 쏟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관심이 없다면, 즉 수요가 없다면 공급도 없을 거라는 점도 생각해야 하고 말이다. 문제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더 많았다고 봐야 한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수상한지, 몰라서 수상한 짓을 한 건지 알고도 저지르고 나서 인맥을 동원한 건지 말이다. 검사 집단은 수상한 가족과 카르멜 컨트리클럽을 왜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지, 그들과 뒤에서 연결되어 있어 사건 당시 초짜였던 몰리나 검사만이 들쑤시고 다녔던 것인지. 


시리즈에는 카를로스와 가족들 그리고 몰리나 검사와 사건 관계자의 변호사들, 지인들이 대거 출현해, 당시를 상세하게 재연한다. 모두 동일한 사건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들어 보면 거의 맞지 않다. 철저하게 본인을 위해, 본인에게 해가 되지 않게 말하고 있다. 비록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가르시아의 이복 여동생 이레네가 말한다. "형부 카를로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저는 검찰에서 부르지도 않았어요!" 이 한마디로도 그들의 치부가 충분히 드러나고도 남는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살인에 가담했을 것 같진 않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사건 후의 과정을 헤쳐나갔을 것 같다. 파렴치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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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극 실화로 메시지와 재미를 잡다 <블랙머니>

오래된 리뷰 2020. 11. 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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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블랙머니>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정지영, 75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노장 감독으로 1970년대 영화계에 발을 들여 1982년 장편 연출 데뷔를 했다. 80년대에 꾸준히 각본·연출작을 내놓았지만 큰 빛을 보지 못하다가 90년대가 시작하는 해에 <남부군>으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한다. 그의 제1 페르소나 안성기가 주연을 맡고 또 다른 페르소나 최민수가 주연급으로 활약한다. 이후 1994년까지 세 작품을 내놓는데,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그것들이다.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 이경영을 비롯 안성기와 최민수 등이 출연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내놓은 두 편의 영화로 그는 충무로를 떠난다. <블랙잭>은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에서 감독상을 받았을 만큼 연출력을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선 실패한다. <까>는 괴작 판명을 받고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망한다. 그렇게 2000년대 영화계에서 정지영 감독을 찾아볼 수 없었다. 14년 후 페르소나 안성기와 함께 <부러진 화살>로 돌아와 흥행과 비평 양면으로 화끈하게 성공한다. 같은 해 말 또 다른 문제작 <남영동1985>를 들고 와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연출이 아닌 기획과 제작이었다. 문제작들인 <천안함 프로젝트> <직지코드> <국정교과서 516일>을 진두지휘했다. 논쟁적인 사회 현안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 2019년에는 '론스타 게이트'를 다룬 <블랙머니>를 선보였고, 2020년에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다룬 <소년들>이 크랭크인했다는 소식을 들렸다. 최신작인 <블랙머니>, 누구나 알 만한 거대 사건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 냈을지 기대된다. 


미약한 시작, 창대한 끝


2011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소속 양민혁 검사는 출근하자마자 뉴스를 보고 황당해 한다. 그가 얼마전 심문했던 피의자 박수경이 자살했는데, 그 이유가 담당검사가 그녀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저질렀고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양 검사는 억울함에 주변 검사들과 상부에 항변하지만 먹혀들지 않고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한다. 이에 직접 해결할 것을 천명하고 박수경의 죽음을 둘러싼 내막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녀가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양 검사는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수사 중인 친구 최 검사에게 자초지종을 엿듣고, 몇 년 전 스타펀드라는 회사가 70조짜리 자산가치의 대한은행을 불과 1조 7천 억에 샀었고 이제 수조 원의 수익을 남기며 조건 없는 단순 매각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헤친다. 선배이자 대한은행 단순 매각 반대 공동대책 위원회 소속 서권영 변호사를 찾아가 보다 자세한 자초지종을 엿듣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스타펀드의 법률대리인 CK로펌의 김나리 변호사를 알고 그녀로 하여금 시선을 바꾸게 한다. 


자신이 맡은 일에 결코 불법이 끼어들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던 김 변호사는 흔들리고, 그녀의 도움으로 양 검사는 사건의 핵심에 조금씩 더 깊이 다다른다. 그 과정에서 도청, 자택 침입, 신변 위조 등의 불법을 저지르지만 상대하는 자들이 너무 거대한 불법을 저지르고 너무 거대한 힘을 갖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는 성추행 검사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대한은행이 단순 매각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금융사기극 실화로 메시지를 던지다


<블랙머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스타펀드(론스타)는 대한은행(외환은행)을 단순 매각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허면, 정지영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개인적인 신념에 따른 사명감도 있었을 테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에 매료되었을 테다. 그동안 그가 내놓은 이른바 '사회파 영화'들을 보면, 하나같이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킨 사건들을 가져와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못지 않게 재미와 흥미 또한 확실했다. 


이 영화도 우선 확실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드러난 권력자 위에서 세상을 주무르는 진짜 권력자들이 해외 펀드 회사와 국내 로펌과 금육감독원과 대형 은행 등과 결탁해 '금융사기극'을 벌여 성공했다고 하는 실화를 가져와 묵직하게 전하는 것이다. 드러난 실체는 그렇고, 그 때문에 구속되어 죗값을 치른 사람들은 누구들이지만, '진짜' 실체는 이랬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또는 이랬을 거라고 말이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음모론을 구체화한 것이겠지만, 한편으론 픽션 매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자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것이겠다. 


한편 영화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상은 양민혁 검사이다. 그는 '막 프로'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거침없이 돌진하는 게 특징인데, 그러다 보니 불법을 넘나들기 일쑤이다. 물론 그의 말마따라 상대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큰 불법을 무기로 막강한 권력과 힘을 휘두르고 있기에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틀린 논리이자 방식이다. 불법을 불법으로 상대하다가는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거시적으로 보면 틀렸다고 단언하기가 힘들다. 그 비중과 무게가 크든 작든 똑같이 '불법'이라는 걸 저질러놓고, 누구는 벌을 받고 누구는 벌은커녕 돈과 권력과 힘을 더욱 공고히 하니 말이다. 누구라도 극 중 양 검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한몸 희생해 나도 벌을 받을 테니 그들도 벌을 받게 해 달라고 한다면, 옳고 그름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게 되지 않겠나. 정지영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진 작은 논쟁적 의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절대적으로 단언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적 재미를 잡다


메시지만으로 <블랙머니>를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이 영화는 충분한 영화적 재미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그 중심엔 단연 '막 프로' 양민혁 검사가 있는데, 유쾌통쾌상쾌한 성격을 앞세워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게 재밌다. '뭐 이런 놈이 있어?'라고 황당해 할 만하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캐릭터임에 분명하기에 위화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조진웅 배우 특유의 허당인 듯 말랑한 듯 빈틈없이 돌직구 날리는 스타일에 부합한다. 


영화는, 이런 류의 여타 한국영화들처럼 무게를 잡지 않는다. 긴장감 조성하는 OST, 카메라 워킹, 대사, 표정, 행동 등을 거의 배제한 채 관객으로 하여금 최대한 사건 자체에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하여, 영화적 재미는 '충분할 정도'로만 그치고 더 나아가지 않되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궁극적으로 하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정확히 전달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사회적 논쟁 사건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충분한 재미를 보장하는 영화를 보는 건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는 다양한 이유 중 아주 큰 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의 '실체'일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영화로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기회. 부디 정지영 감독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작업을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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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주 작은 단면을 들여다보다 <블러드 오브 제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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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러드 오브 제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블러드 오브 제우스> 포스터. ⓒ넷플릭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가장 대표적 사례라 하면 단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들 수 있겠다. 다분히 판타지가 가미된 배경에, 신이 중심이 되어 괴물과 반인반신과 반인반괴와 인간 등 온갖 존재가 출현하여 전쟁, 사랑, 배신, 모험, 암투, 욕망 등 온갖 것이 뒤섞여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특히 영감을 주는 건 최고 신 제우스의 사생아 이야기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구상 모든 신화와 전설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헤라클레스'가 있다. 그는 제우스가 "거인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는 위대한 인간 영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운명의 세 여신의 예언에 따라, 티린스 왕 암피트리온의 부인 알크메네와 동침해 낳은 아들이다. 헤라클레스는 평생 시련을 겪었는데, 올림푸스의 존망이 걸린 거인족과 신의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며 사후 신이 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블러드 오브 제우스>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했는데, 제우스의 피를 물려받은 반인반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구전으로 전해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지워진 이야기 중 하나라고 운을 떼는 걸 보니, 상당 부분 창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헤라클레스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연출과 각본과 제작을 도맡은 찰리 팔라파니데스와 블라스 팔라파니데스 형제는 10여 년 전에 영화 <신들의 전쟁>의 각본을 맡았는데, 흥행에선 성공했지만 평단의 혹평을 면치 못했던 이 작품에서도 제우스의 사생아인 테세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 작품의 좋지 않은 전력을 <블러드 오브 제우스>에선 어떤 식으로 매꿨을 지도 감상 포인트가 되겠다. 


제우스가 잘못 뿌린 것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 갑자기 마을을 습격한다. 여전사 대집정관 알렉시아가 막아 보지만 역부족인 듯하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마을 밖 외딴 곳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청년 헤론, 오랫동안 그들을 챙겨 준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 준다. 태초에 있었던 신과 티탄족의 싸움에서 신이 최후의 티탄족을 물리치자 저주로 태어난 거인족, 다시 시작한 전쟁에서 거인족을 물리친 신, 거인족의 영혼을 봉하고 시신은 대양 깊숙이 보낸다. 시간이 흘러 시신 중 한 구가 해안가로 나온다. 한 사내가 시신을 대면하고 급기야 먹고선 악마가 된 것이다. 


헤론의 기막힌 출생 비밀이 곧 밝혀진다. 제우스는 코린토스의 왕비 엘렉트라를 사랑해, 왕의 모습으로 변신해선 그녀와 사랑을 나눴고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문제는 제우스의 정부인 헤라, 그녀는 제우스의 일곱 번째 사생아가 태어나는 걸 두고볼 수 없었다. 꿈의 신한테 도움을 청해 왕으로 하여금 곧 태어날 자식 중 다른 남자의 아들이 있다면 죽일 것을 맹세하게 한다. 하지만 제우스가 나타나 본인의 아들, 즉 헤론과 엘렉트라를 구해 낸다. 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로 변신해 모녀를 곁에서 꾸준히 챙겨 왔다. 


한편, 막강한 힘을 앞세운 악마의 침공에 폴리스는 무너지고 주민들은 살해되거나 포로가 된다. 헤론은 알렉시아와 따로 또 같이 맞서다가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의 존재도 알게 되며 어머니의 죽음도 목격한다. 그리고 악마의 수장 세라핌의 정체까지 알게 된다. 그는 다름 아닌 쌍둥이 형으로, 어머니 엘렉트라와 코린토스 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간낫아기일 때 삼촌한테 버림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가다 거인족의 시신을 먹고 악마가 된 것이다. 


지상에서의 전쟁과 맞물려 개입하려는 남편 제우스가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헤론을 더 챙기며 신들의 왕으로서 제대로 된 권위를 세우지 않는 제우스가 못마땅하기도 한 헤라는, 제우스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그녀는 세라핌을 움직여 헤론을 처단하려는 한편 그로 하여금 거인족의 봉인을 풀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재창작


신과 인간 세상의 욕망이 뒤섞인 애니메이션 대서사시 <블러드 오브 제우스>는,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들을 상당 부분 가져와 재창작하였다. 어느 하나 원인 없는 결과가 아니고, 운명과 자유의지가 촘촘하고 복잡하게 엮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또는 비극의 시작엔 단연 '제우스'가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분개스럽고 황당하고 흥미로운 점이라 하겠다. 


최고 신이자 신들의 왕답게(?) 만물의 변화를 직접 관장하고 그 원인 또한 직접 제공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신화 밖에서 들여다보면 '완벽한' 신의 위상을 일개 인간보다 못하게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의 일환이구나 싶기도 한 것이다. 작품에서 나쁜 쪽 신의 대표격으로 나와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게 자못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헤라가, 사실은 대인배이자 정의를 구현하는 당사자이다. 제우스라는 작자,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저지른 짓거리들을 보면 '과연 신이라고 할 수 있나' 싶어진다. 


이 작품은 원래 <신들과 영웅들(GODS & HERO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블러드 오브 제우스>로 바뀌었다고 한다. 앞엣것은 본격적인 거시적 이야기인 듯 보이고, 뒤엣것은 제우스의 혈통을 지닌 헤론 이야기에 천착한 이야기인 듯 보인다. 작품을 대해 보니, 확실히 둘이 섞인 이야기인데 뒤엣것이 조금 더 알맞아 보인다. 앞엣것의 제목과 콘셉트라면, 보다 훨씬 장대한 이야기였어야 할 것이다. 하여, 작품은 제우스가 잘못 뿌린 것들을 헤론과 세라핌이라는 피해자들이 온몸을 바쳐 헤쳐나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크 애니메이션


<블러드 오브 제우스>는 전체적으로 다크 아우라가 넘쳐 흐른다. 신이 티탄족에 이어 거인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평화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름 아닌 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인간 세계에 평화 아닌 파멸이 들이닥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이 하찮게 보이기도 한다. 미시적인 죽음 또는 삶이 거시적인 죽음들의 원인이 되는데, 거시적인 죽음들의 합당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 다분히 신의 입장과 시선을 대변하는 면모가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신과 인간 들의 이야기가 휘몰아 치는 가운데 특별한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건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에 느끼는 바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 거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 작품 속 다양한 이야기와 메시지 하나로도 수많은 콘텐츠를 양산할 수 있을 정도이니 그 수많은 이야기와 메시지가 조금씩 들어앉아 있으면 정작 건질 게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예를 들어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세라핌의 사연을 통해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크 애니메이션의 만듦새로선 흠 잡을 데가 없다시피 한 <블러드 오브 제우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안다고 해서 더 재밌게 보거나 숨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보다 흥미로울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모르고, 몇몇 신과 영웅 그리고 유명하디 유명한 이야기의 얼개 정도만 알고 나서 보는 게 더 재밌고 흥미로울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치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길이로, 빠르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주 작은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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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다크 애니메이션, 블러드 오브 제우스, 비극, 신, 운명, 인간,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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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체스를 사는 불우한 천재 소녀 이야기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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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후반 미국 중남부 켄터키주의 어느 보육원, 아빠 없이 살다가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곤 혼자 살아남은 9살 소녀 엘리자베스 하먼(이하, '베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흑인 친구 졸린이 그녀와 함께해 준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매일매일 두 가지 약을 먹었는데, 초록색 약은 온화환 성품을 주황갈색은 튼튼한 몸을 길러준다 했다. 불시에 혼자가 된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완벽한 식단을 챙겨 주지 못하기에 약으로 보충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베스는 어느 날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관리인 샤이벌이 두는 체스에 관심을 가지고 곧 초록색 약, 즉 신경안정제의 효능으로 체스에 비상한 능력을 뽐내게 된다. 신경안정제만 먹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머릿속 체스 게임이 천장에 그려져 시물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샤이벌에게 방법과 전략과 매너 등을 배우며 곧 그를 이기고 근처 고등학교 체스부 전체와 맞붙어 이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에 중독되고 만 그녀에게 체스금지령을 내리고 몇 년 후엔 휘틀리 부부에게 입양되어 보육원을 떠난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곤 하는 남편을 둔 앨마 휘틀리 부인과 살게 된 베스, 휘틀리 부인이 복용하는 신경안정제를 빼돌려 복용하며 다시 체스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체스에 대한 열망과 돈 벌 길 없이 앞날이 막막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체스대회에 출전한다. 켄터기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돈도 벌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베스, 휘틀리 부인이 매니저가 되어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의 체스 대회들을 석권하기 시작한다. 


US 오픈, US 챔피언십 등의 미국 대표 대회에도 출전하며 미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이자 친구들을 만나고, 해외 대회에도 출전해 체스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 될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와도 대결한다. 그토록 갈망하던 최고의 체스 선수 자리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 보이는 그녀,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녀에겐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넷플릭스 명작 드라마 폭격의 선두주자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를 만드는 데 열일하는 모양새다. 결코 쉽게 국경을 넘기 힘든 각국의 명작 드라마들이 폭격하듯 시간차를 두지 않고 찾아오니까 말이다. 최근 들어 접한 드라마들, 이를테면 한국의 <보건교사 안은영>, 독일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바바리안>, 프랑스의 <라 레볼뤼시옹>, 미국의 <어웨이> <래치드> 그리고 영국의 <퀸스 갬빗>과 곧 나올 <더 크라운 시즌 4>까지. 하나같이 나름의 합리적이면서 확고한 시선을 장착하곤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와 미장센으로 중무장했다. 


<퀸스 갬빗>은 1983년에 출간된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함이 돋보인다. 2014년에 드라마로 데뷔해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주조연 가리지 않고 활발히 얼굴을 비춘 '안야 테일러조이'가 베스 역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그녀가 아니면 이 역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낯익은 얼굴도 몇몇 보이는데,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암 니슨이 분한 다니엘의 아들 역으로 큰 명성을 떨친 '토머스 브로디생스터'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두들리로 역시 큰 명성을 떨친 '해리 멜링'이 그들이다. 


'퀸스 갬빗'이라고 하면 필자처럼 뭘까 싶은 이들이 많을 것 같은데, 체스의 오프닝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해, 체스 게임을 시작하는 전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오프닝 전략은 체스의 말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폰'(우리나라로 치면 '졸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을 희생해 '퀸'으로 이후 포지션을 유리하게 진행시켜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인기가 많을 뿐더러 분석도 많이 되었다고 한다. 


체스라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다


작품은 엘리자베스 하먼의 '성장'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체스 대회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인 듯 시크한 성격에 인생을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베스에게 불시에 '체스'가 다가온다. 이후 그녀는 체스를 잘 두어 최고가 되는 데에 삶의 목적을 두게 된다. 그렇다면,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길이 성장의 길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순 없겠다. 


베스는 체스를 하지 않는 때에 체스를 통해 인생을 알아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 뭔가를 하며 살아간다. 대체로 직업으로서의 일일 텐데, 거기에서 기본적으로 돈을 취득하고 나아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생을 알아간다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실제론 인생을 알아가거니와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함께하며 많은 걸 공유하는 사람들, 내가 하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나는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등. 


동양의 장기나 바둑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양의 체스도 다분히 남자의 전유물이다. 지금이야 남녀 관계 없이 함께하지만, 50년이 넘은 작품 속 배경에서 여자는 여자부에 소속되어 여자끼리 실력을 겨루어야 했다. 물론, 여자부에서 우승했다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배경에서 10대에 불과한 소녀 베스가 독보적인 실력으로 대회를 휩쓰니 세상의 눈이 획기적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극한 일상에서 그녀가 대면한 건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다. 세상이 가르쳐 준 '여자'로서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지는 모습 말이다. 


베스는 그래서 더더욱 체스로 빠져든다.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64칸의 체스판을 앞에 두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놓쳤고 놓칠 뻔한 것들이 있으니, 그녀 곁에서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 준 사람들이다. 체스를 잘하려면, 당연히 체스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체스에 인생을 바친 베스에게도 인생=체스일 수 없듯, 베스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체스 아닌 것들도 필요하다. 체스라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는 걸 깨닫는 데 좋은 인연들이 절대적으로 한몫들 한다.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 너머, 특별한 이야기


<퀸스 갬빗>은 체스를 잘 알면 알수록 재밌을 테지만 체스를 아예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내공을 갖췄다. 베스의 '체스' 이야기만큼 '인생' 이야기가 투 트랙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리라. 중간중간 나오는 체스 대회와 대회 속 게임에서의 알 길 없는 용어, 전략 들이 꽤나 전문적인데, 그래서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체스와 관련되어 있지만 체스 밖의 것들이라 할 만한 스승과 친구와 라이벌과 파트너 들이 빛을 발한다. 베스의 '체스' 이야기가 아닌, '베스'의 체스 이야기. 


그런가 하면, 사실상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다룬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꼭 그렇게만 느끼지 않았던 건 베스의 특별한 개인적 배경 덕분이겠다. 극중에서 베스의 최대 난적인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가 말하기도 했던 바 "물러설 곳이 없으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 말이다. 그녀는 채 10대도 되지 않은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홀로 보육원에 뚝 떨어진다. 10대 중반 입양을 가서 나쁘지 않은 시절을 보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체스밖에 남은 게 없지만 여전히 어리디어린 나이에 끝없이 계속되는 과중한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 '체스 천재'가 체스 안에서가 아닌 체스 밖에서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천재 아닌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통용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 체스의 오프닝과 엔드게임, 베스의 밑바닥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남김 없이 모두 보여 준 작품은, 시즌 2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베스의 이야기로는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강렬했던 베스 아닌 다른 캐릭터로 스핀오프를 제작할 여지도 많지 않다. 그만큼 여러 모로 완벽했던 작품 <퀸스 갬빗>, 하여 제작과 각본과 연출까지 도맡아 한 '스콧 프랭크'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 본다. 그는 <조지 클루니의 표적> <마이너리티 리포트> <말리와 나> <로건>의 각본가로 유명한데, <퀸스 갬빗>으로 본인 인생에 한 획을 그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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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고왕국 사제, 그 화려한 무덤과 평범한 삶의 비밀 <사카라 무덤의 비밀>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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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카라 무덤의 비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카라 무덤의 비밀> 포스터. ⓒ넷플릭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남서쪽에 위치한 '사카라 네크로폴리스(고대 묘지)', 기자와 다슈르 등과 함께 이집트 고왕국의 피라미드 소재지로 유명하다. 이들이 모두 포함된 고왕국 시대 수도 '멤피스'의 피라미드 지역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는데, 단연코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이기도 하다. 배워서 익히 알고 있는 4대 문명(황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중 하나다. 


사카라에는 수많은 유물이 있지만, 지상에서 가장 규묘가 큰 최초의 석조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자그마치 4600여 년 전 이집트 고왕국 제3왕조 조세르왕의 묘지 말이다. 이 피라미드는, 이후 기자 지역에 건립되었던 피라미드들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곳엔 발견되지 않은 유물들이 여전히 많다고 알려져, 현재도 조사·발굴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18년 말경 근래 수십 년 동안의 발견을 압도할 만한 발견이 이루어져 전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집트 고왕국 제5왕조 왕실 사제였던 '와흐티에'의 묘로 추정되는 피라미드 무덤이었다. 4400년 동안 발굴·도굴의 흔적 없이 아주 잘 보관되었다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카라 무덤의 비밀>에서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와흐티에의 무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와흐티에 무덤, 큰 의미를 가진 발견


와흐티에 무덤을 찾은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해석'이었다. 전문가도 결코 쉽게 알아낼 수 없는 수천 년 전 상형문자를 해독하고, 함께 그려진 그림들 그리고 함께 있는 조각상들과 맞춰 봐야 한다. 완벽한 해석일 수 없이 합리적인 추측을 해야 하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 사이 발굴자들은 또 다른 무덤을 찾아 작업을 계속한다. 해독이 끝나면 갱도를 파기 시작할 텐데, 그곳에 유골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발굴단에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친다. 라마단이 시작되는 6주 후에는 발굴 자금이 바닥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작업을 끝마쳐야 하고, 이후 시즌을 이어가기 위해 또 다른 거대 발견을 이뤄내야 한다. 자잘하지만 의미 있는 발굴을 이어가는 와중, 다수의 고양이 미라를 확보한다. 그런데 그중에 유독 크고 또 얼굴 부분에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미라가 있었다. 


전문가를 통해 정밀하게 알아보니 고양이가 아니라 '새끼 사자'라는 게 아닌가. 적어도 사카라 피라미드에선 최초의 발견으로,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문화, 경제, 종교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지는 유물인 것이다. 그들은 야생동물과도 교감을 나눴고 야생동물을 신께 제물로 바치기도 했을 테다. 그동안엔 합리적인 가설에 불과했지만 이 발견으로 사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것이리라. 와흐티에 무덤과 함께 크나큰 의미를 가진 발견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가족의 최후


몇 개월의 기다림 끝에, 문자 해독이 끝나고 안전검사가 통과되고 묘실 갱도를 발굴하기 시작한다. 라마단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4개의 갱도 중 우선 2개를 파기로 한다. 시작부터 아주 안 좋은 소식이 들린다. 2번 갱도가 가로세로 1m의 넓이를 자랑하지만 깊이는 불과 60c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온 게 거의 없었다. 반면 1번 갱도는 상당히 아래까지 파 들어 갔는데, 심히 가슴 아픈 것들이 발견된다. 


다름 아닌 아이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세 아이, 유골을 맞춰 유추해 보니 동시에 죽어서 묻혔던 것으로 나온다. 묘실의 글, 그림, 조각상 들을 해독한 결과 와흐티에 본인과 함께 어머니와 아내와 네 아이(여자 아이 1, 남자 아이 3)가 묻혔다고 나왔으니, 세 남자 아이의 유골일 것이다. 신과 왕을 잇고 왕과 백성을 잇는 최고위 관리인 사제였던 와흐티에도 아이들의 죽음 앞에선 무력했던 것일까. 얼마나 가슴 아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발굴자들의 심정도 다를 바 없다고 한다. 


3번 갱도에서도 3명 분의 유골이 나온다. 모두 여성으로, 와흐티에 어머니와 부인과 딸로 추정된다. 눕혀져 있지 않고 수직으로 묻힌 것으로 보아 급하게 묻은 게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1번과 3번 갱도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통해 강한 의구심이 도출된다. 한꺼번에 죽어 묻힌 걸까? 마지막 4번 갱도에서 와흐티에 본인의 유골이 나온다. 그의 유골까지 모두 모아놓고 가설을 도출해 본 결과, 말라리아 전염으로 일가족이 몰살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것이다. 이집트 역사를 뒤흔들 발견인 동시에, 너무나도 비극적인 고위급 일가족의 최후이다. 


삶은 같은 방향으로 지속된다


앞서 글과 그림과 조각상을 해석하여 알 수 없는 일차적 비밀이 드러났었다. 사실 이 무덤은 와흐티에 본인의 묘가 아니라 와흐티에 형제의 묘라는 것. 즉, 와흐티에가 형제의 묘를 가로챘다는 것이다. 뒤이어 갱도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해석하여 합리적 가설에 의한 이차적 비밀이 드러난다. 와흐티에 가족이 말라리아로 한꺼번에 몰살했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와흐티에는 어쩔 수 없이 형제의 묘를 가로챈 것일까? 몰살한 가족들을 급하게 매장하기 위해서? 전문가들도 그것까진 알 수 없는 듯하다. 


사실 와흐티에 무덤 발견은 당시 이집트는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아주 중요한 발견이니 말이다. 하여, 검색창에 '와흐티에'라고만 쳐도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당연히 단편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이 다큐멘터리로 비로소 자세한 뒷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모습이 엿보인다. 발굴의 진짜 모습, 4400년을 잇는 동질성, 현세와 내세의 비동질성 등. 


'고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모양새가 상상된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는 모양새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몇몇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술자와 일용노동자였던 것. 책임자들은 위대한 발견뿐만 아니라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발굴을 계속하길 원한다. 위대한 발견이 그 자체로 열렬한 박수를 가져오지만, 발굴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열렬한 박수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천 년 전을 가로지르는 동질성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고고학자라면 잘 알 텐데, 수천 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곳에서 별로 다르지 않은 일을 하며 먹고 살았다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은 달라진 생각과 보다 훨씬 편안해진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론 다를 게 없다. 삶은 같은 방향으로 지속되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현세보다 내세를 중요하게 여긴 이집트인'의 실체도 알 수 있다. 현세에선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가, 내세에도 현세의 모든 걸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런 무덤을 만들어, 현실 아닌 꿈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는 건 사막에서 발굴되는 화려한 무덤이다. 그들의 실체는 아주 '평범'했을 테다. 지금 여기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평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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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한마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미안해요, 리키>

오래된 리뷰 2020. 11.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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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안해요, 리키>


영화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영화사 진진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안 해 본 일 없이 온갖 일을 다 한 리키, 이제는 혼자 일하면서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택배 일을 택한다. 면접 담당자이자 지점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하길, "고용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거예요, 우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겁니다"라고 한다. 리키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문제는 택배 물량을 실을 수 있을 만큼 큰 밴 차량이 필요하는 것인데, 회사에서 빌리기엔 날마다 드는 돈이 너무 많아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계약금이 없으니 아내 애비의 차를 팔아야 한다. 애비는 간병인으로 일하는데 하루에도 몇 군데를 돌며 차비를 직접 조달하고 있다. 안 그래도 힘들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남편 리키의 택배 사업이 번창하길 기대해야 한다. 리키와 애비에겐 큰아들 셉과 작은딸 리사가 있다. 엄마, 아빠가 잘 챙겨 주지 못해도 리사가 의젓하게 커 가는 반면 셉은 하염없이 빗나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아빠한테 그러한데, 욕설 섞인 말대답을 하지 않나 그래피티를 한답시고 공공기물을 손상시키지 않나 물건을 훔치지 않나 사람을 때리지 않나...


리키와 애비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라며 자조하고 위로하고 나아가려 하지만, 자잘한 듯 큰 일들이 계속 터진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게 일이 터졌다고 달려갈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특히, 리키는 택배물품들이 정확한 시간에 반드시 고객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불변의 철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체 기사 없이는 절대로 쉴 수 없다. 비록 개인사업자에 개인 차량에 개인 보험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돈을 더 까먹는 것 같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던 켄 로치 감독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영국 북동부 뉴캐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4인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 전, 켄 로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겐 '좌파 감독' '사회파 거장' '블루칼라의 시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아무래도 대중보단 평단의 사랑을 받는 느낌인데, 그가 평단의 사랑을 받기 위한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다. 그는 그만의 신념으로 그의 영화를 찍는다. 


1936년생으로 85세의 현역인 켄 로치 감독은, 사실 지난 2014년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런데 2년 후 전격적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들고 와 10년 만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영국 모순투성이 복지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켄 로치 월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서민과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선을 견지한 것이다. 이후 켄 로치는 다시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3년 후 다시 카메라를 든다. 아니 들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민과 노동자의 삶을 옭죄어 가족 해체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미안해요, 리키>가 보여주는 처참하고 슬픈 현실이 결코 먼 나라 영국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더 하면 더 했지 그보다 못하진 않을 것 아닌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노동자 현실


코로나 시대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택배 물량과 실적에 비해 택배기사 처우는 그대로인 현실에서 올해에만 15명의 택배기사가 사망한 우리나라 택배노동계, 영화에서도 나오듯 '구역 물량 분류 작업' 일명 '까대기'가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의 주원인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고된 노동, 알바를 쓰더라도 본인의 돈이 나간다. 물론 개인사업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맞을 것이다. 문제는, 말은 '함께' 일한다고 해놓고 노동자는 권리 없이 책임만 떠앉으며 사측은 대책없이 방관하는 모양새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안정과 불확실이 경제 전반을 잠식하는 가운데 '긱 이코노미'(정규직 아닌 비정규직, 계약직, 임시직을 선호하는 현상) 시대가 도래했는데, 불안정과 불확실이 가속화되며 임계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은 서민과 노동자가 아니라 '가난한' 서민과 노동자일 수 있다. 긱 이코노미의 수혜자라고 할 만한 기업이 허울 좋은 말로 상대하고 있는 이들이, 주로 치열하게 일해도 먹고사는 데 빠듯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영화에서 빌런은 택배회사 지점장 멀로니와 리키의 큰아들 셉인 듯하다. 멀로니는 개인사정을 전혀 봐 주지 않고 철저하게 사측의 원칙과 논리와 입장만 고수하며 리키를 압박한다. 그런가 하면 셉은 자잘하게 시작해 큰 사고까지 계속 치르며 리키를 괴롭힌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적어도 셉은 빌런이 아니다. 사춘기 나이 때,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그런 일들을 한 번쯤 저질러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리키의 잘못이랄 수도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멀로니가 남는다. 본인의 말마따나 "불평불만, 분노, 화, 증오를 모조리 흡수해 전국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지점으로 만드는 연료로 쓴다"는 그는, 이 시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화신일 것이다. 그는 분명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지만, 그조차 영화적 존재가 아닌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한 존재이다. 비판의 대상일 뿐, 그를 사라지게 하는 게 대안일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영화에는 비판의 대상이 몇몇 더 나온다. 리키가 강도 일당에게 맞아서 크게 다쳐 병원에 갔는데 엑스레이 결과를 받는 데만 3시간이 걸린다는 황당한 답변이라든지, 리키가 신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비싼 스캐너는 2분마다 울리며 현재 배송 상황을 모두에게 공유하게 한다든지. 사람 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법과 복지, 그리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디지털.


이 시대 노동과 가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인 네 가족은 모두 일반인이라고 한다. 리키 역의 크리스 히친은 오랫동안 배관공으로 일해 왔고, 애비 역의 데비 허니우드는 돌봄 노동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아니 다큐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일상생활을 카메라로 담았다고 할까. 우리나라의 그 유명한 <인간극장>이 생각났다. 이 시대 노동의 현실과 가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리라. 


켄 로치 감독이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게 60년대 중반, 어언 50년이 훌쩍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참으로 일관되는 시선을 견지했는데,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비판적 시선이 가 닿은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반증이니까 말이다. 올해 11월 13일이 고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나아가 권리를 찾고자 분신으로 자신을 희생한 사건의 50주년 되는 날이다. 이후 한국노동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IMF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공허해지고 말았다. 세상이 바뀌기는커녕, 어느 면에서는 뒷걸음친 것 같다. 


'각개약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무도 나와 함께하거나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나 또한 누구와 함께하거나 도울 마음이 없는 세상. 이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다. 또는 꿈쩍하지 못한다. 그런 세상에서 <미안해요, 리키> 같은 작품은 '약'이다.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종류의. 그러니, 누군가는 이런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 하고 우리는 이런 작품을 꼭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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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노동자, 미안해요 리키, 블루칼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칸 영화제, 켄 로치, 택배,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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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 게르만족 영웅 실화 이야기 <바바리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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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바바리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바바리안> 포스터. ⓒ넷플릭스



로마 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게르만족을 점령하고선 게르마니아 총독으로 바루스를 임명한다. 바루스는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가축과 곡물을 세금으로 걷는다. 이에 게르만족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던 케루스키족장 세기메르는 여러 족장을 모아 로마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의한다. 찬반이 이어지던 중 케루스키족 부족장 세르게테스의 결정적 반대로 로마에 가축과 곡물을 바치고 평화를 유지하기로 한다. 하여, 열심히 모아 보지만 로마가 원하는 만큼 모을 수 없었다. 로마군과의 실랑이가 벌어지던 와중, 세르게테스의 딸 투스넬다가 위기에 빠진다. 투스넬다의 어린 남동생이 나섰다가 크게 다치고 만다. 복수를 결심하는 투스넬다, 그리고 그녀의 연인 폴크빈이다. 


투스넬다와 폴크빈은 친구 둘과 함께 로마군 진영을 급습한다. 그들의 목표는 로마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독수리 형상, 로마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진 못하겠지만 상징적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결국 성공하는 그들, 게르만족 모두가 환영하지만 다가올 후과가 무섭다. 하지만 로마군이 수없이 많은 게르만족 진영을 모두 뒤질 수는 없을 노릇으로 그들이 안심하는 사이, 로마군이 단번에 그들에게 당도한다. 지휘관은 다름 아닌 아리였다. 케루스키족장 세기메르의 아들이자 투스넬다, 폴크빈의 절친 말이다. 


아리는, 과거 로마의 게르만족 점령 때 세기메르가 평화협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로마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두 아들 중 첫째다. 바루스 총독의 양아들로서 지휘관의 보직으로 아르미니우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그는 아버지도 만나고 어릴 때의 절친 투스넬다와 폴크빈과도 재회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다. 


아르미니우스로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독수리 형상만 가져가서 점수를 따면서, 케루스키족의 짓이 아니라고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투스넬다와 폴크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한 번 게르만족 전체를 한데 모아 일으켜 로마에게 반기를 들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친로마파 세르게테스가 뒤에서 로마에 붙어 그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 아르미니우스, 투스넬다와 폴크빈, 세르게테스, 바루스 등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로마와 게르만족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로마 시대, 게르만족의 이야기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의 게르마니아 실화를 바탕으로 재탄생된 독일 드라마 <바바리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되었다. 폴크빈과 몇몇을 제외하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실존 인물들이다. 신임 게르마니아 총독 바루스의 당연할 수 있는 세금 요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토이토부르크 전투로 끝난다. 아리가 로마로 끌려간 건 서기전 10년쯤이고, 아르미니우스가 이끈 토이토부르크 전투는 서기후 9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을 이룩했던 로마인 만큼, 로마 시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콘텐츠화되어 우리를 찾아왔다. 오랜 역사와 방대한 영토와 위대한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배울 점도 무궁무진하다. 자연스럽게 로마의 로마에 의한 로마를 위한 이야기들만 듣게 되는 것이다. 


종종 로마 시대의 로마 아닌 이들의 이야기가 찾아온다. 그들에 대항하거나 그들과 관련된 이들 말이다. 대표적 인물로 한니발과 클레오파트라가 있을 테고, 대표적 직업(?)으로 검투사가 있을 테며, 대표적 나라로 그리스가 있을 테다. 그런데,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토이토부르크 전투와 관련된 이야기는 <바바리안>이 처음이다. 로마 시대 게르만족 이야기 자체를 영상 콘텐츠로 들어본 적이 없다시피 하다.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인정투쟁과 독립투쟁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각하면, 절대로 불과 몇몇 인간이 이뤄냈을 것 같진 않다. 한편으론, 불과 인간 한 명이 이뤄낸 위대한 역사가 많지 않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아르미니우스로 대표되는 몇몇 인간이 바꾼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화도 드라마틱하지만, 드라마는 더욱더 드라마틱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실화를 거의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서 드라마틱하기가 쉽지 않다. 


<바바리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한 개인의 '인정투쟁'과 부족의 '독립투쟁'이 아닌가 싶다. 아르미니우스는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적국 로마에 떨어진다. 바루스 의원에게 맡겨져 살아남고자 투쟁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세기메르를 잊고 자신을 알아 준 바루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지휘관이 되고 기사 작위까지 얻게 된 아르미니우스지만, 바루스 또한 그를 이용하고자 게르마니아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에서 홀로 우뚝 서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 것이다. 


아르미니우스가 홀로서기를 선언하며 함께한 이들이 다름 아닌 투스넬다와 폴크빈, 그들은 게르만족 독립투쟁의 상징이다. 게르만족의 대 로마 화평 정책을 한순간 돌이켜 세운 이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다. 투스넬다의 남동생이 로마군에 의해 크게 다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투스넬다를 사랑하는 폴크빈이고 말이다. 역사적이고 대의적인 이유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한 목숨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묵직하다


주요 캐릭터들이 입체적이라고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 오히려 굉장히 단순하다고 하겠다. 결정적 사건 때문에 굳은 결심을 한 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기에 스토리는 입체적일 수 있었다. 나름의 신념들이 내외부로 부딪히고 또 이어지며, 헷갈리지만 이해되게끔 선을 지킨다. 억지가 없다. 실화를 상당 부분 빌려온 힘이 실렸다고 하겠다.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묵직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빨려들어가게 하면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같은 감정선 대신 어느 순간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특히, 주인공 아르미니우스로선 확고히 보장된 성공의 길을 내팽겨치고 확고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도박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했을 때 성공의 길을 가야 하지만, 신의 개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회들이 보이기에 도박의 길을 가게 된다.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 도박으로 이끌었지만, 정작 도박을 성공시키려면 어느 때보다 또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명품 드라마의 자질이 충분한 <바바리안>, 다분히 게르만족의 입장에서 바라본 로마 시대의 일면이다.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독일 드라마 또한 접하기 힘들다. 넷플릭스라는 인터넷 영상 서비스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은 다시 한데 모여 주류를 형성하겠지만, 또다시 퍼져 다양성을 형성시킬 것이다. <바바리안>은 다양성에 기반한 게르만족 이야기를 내보이며 콘텐츠 자체로 빛을 발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 외적으로도 다양성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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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 독립투쟁, 독일 드라마, 로마제국, 묵직, 바바리안, 시대극, 실화, 아르미니우스, 인정투쟁, 토이토부르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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