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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2020/10'에 해당되는 글 12건

제목 날짜
  • '대체 역사'로 다시 쓴, 프랑스 대혁명의 알려지지 않은 서막 <라 레볼뤼시옹> 2020.10.30
  • 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2020.10.28
  • 아론 소킨이 재창조한 최악의 '시카고 7 재판' 실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2020.10.26
  • 옥토버페스트를 두고 벌어지는 욕망과 욕망의 치열한 부딪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2020.10.23
  • 어린 딸을 냉동 보존하기로 한 어느 과학자 가족의 사연 <희망을 얼리다> 2020.10.21
  • 독일 통일 직후 독일을 뒤흔든 암살 사건의 막전막후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2020.10.19
  • 대한민국 결않못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2) 2020.10.16
  • 전대미문의 대참사, '챌린저호 폭발'의 막전막후 <챌린저: 마지막 비행> 2020.10.14
  • 올곧은 신념을 입체적 에피소드에 담아낸 수작 로드무비 <낙엽귀근> 2020.10.12
  • 선과 악을 오가는 그녀 '래치드'가 펼치는 사이코 드라마 <래치드> 2020.10.08

'대체 역사'로 다시 쓴, 프랑스 대혁명의 알려지지 않은 서막 <라 레볼뤼시옹>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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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라 레볼뤼시옹>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라 레볼뤼시옹> 포스터. ⓒ넷플릭스



1787년 프랑스의 몽타르지 백작령, 어느 날엔가부터 소녀들이 한 명씩 사라진다. 사라졌다가 잔인한 형체로 발견되지만 형제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레베카에 이르자 사람들 마음에 불이 지피기 시작한다. 범인으로 잡힌 건 흑인 오카, 감독의 젊은 담당의사 조제프 기요탱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뒤를 캔다. 그는 푸른 피의 정체에 한 발씩 가까워진다. 와중에, 오래전 죽었던 형 알베르가 살아 돌아왔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듣는데... 알베르의 죽음엔 몽타르지 백작 가문이 깊숙이 관여했었다. 


한편, 몽타르지 백작령을 다스리는 몽타르지 백작은 왕을 알현하러 갔다는데 이후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그 사이를 틈타 남동생 샤를이 백작령을 차지하려 한다. 푸른 피의 힘을 빌려 다리의 괴저로 죽어 가는 아들 도나시앵을 멀쩡하게 살리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몽타르지 백작의 여식 엘리즈가 선한 강인함으로 버티고 있다. 그녀에겐 말 못하고 정신이 여의치 않은 듯한 여동생 마들렌이 있기도 하다. 꿈속에서 레베카의 죽음을 목격하고 푸른 피를 뒤집어 쓴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을 자주 목격하는 마들렌이다. 


푸른 피가 도대체 뭘까. 몽타르지 백작령의 귀족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런가 하면, 형제단은 본격적으로 반란 나아가 혁명을 꿈꾸기 시작한다. 알베르와 오카, 조제프와 카텔, 엘리즈와 마들렌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합세한다. 각자 생각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1%의 귀족이 99%의 서민을 옥죄며 세상을 지배하는 불평등을 타파하고 자유를 되찾아 박애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알려지지 않은 서막


18세기 말 프랑스, 왕과 귀족의 절대적인 특권제도가 계속되는 와중에 국가적인 재정 궁핍과 자연재해가 겹쳐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이 살기 힘들어졌음에도 특권층의 횡포는 더욱더 심해질 뿐이다. 하여, 실로 오랜만에 평민 대표까지 함께하는 회의가 열려 상황을 타개해 보려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왕은 국경수비대를 파리로 진군시킨다. 이에 국민들은 공포와 함께 형용하기 힘든 분노를 느낀다. 


프랑스 대혁명의 대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시대 착오적이거니와 익숙한 욕망에 집어삼켜진 특권층의 당연한 말로가 아니겠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라 레볼뤼시옹>은 제목에서 대놓고 드러내듯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진중하기 그지 없고 세련된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드라마, 시작부터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만 정작 프랑스 대혁명의 직접적인 막전막후를 다루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시즌 1'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뒤이어 올 크나큰 사건의 서막을 보여주며 주요 캐릭터 관계를 설정하고는 핵심 소재가 '푸른 피'의 정체를 알듯 말듯 띄엄띄엄 내보이는 것이다. 다분히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 연상되는 스토리와 소재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프랑스 드라마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명시하지 않지만 엄연히 실화가 연상되는 바다. '대체 역사'라는 장르를 차용한 게 아닌가 싶다. 시즌 1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의 알려지지 않은 서막'으로 포장했지 싶다. 프랑스 대혁명을 향해 나아가며 단두대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실존 인물 '조제프 기요탱'을 주요 인물로 내세워 당시를 묘사했지만, 적어도 알려진 실제 역사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영리하게도 나폴레옹의 저 유명한 말 '역사는 합의된 거짓말이다'로 작품을 시작해 '진짜' 이야기일지 모를 상상력에 발을 들이게 한다.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선뜻 빼기가 힘들다. 자못 치밀하게 얽히고설킨 관계와 그 사이에서 재미와 흥미를 담당하는 '푸른 피' 그리고 진중함과 묵직함을 담당하는 '혁명'이 제 몫을 다하니, 장대한 역사극 이상의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좀비물으로서의 호러가 지나치지 않고 적절하게 껴 있는 모양새가, 프랑스 산 드라마답게 세련되었다. 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드라마는 본 기억이 없다시피 한대, 얼마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본 독일 시대극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나 스페인 시대극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나 앞서 언급한 한국의 <킹덤>과 비교해 보면 '느린 편'이다. 또는 '덜 파격적'이라고 할까. 좀비 소재인 만큼 잔인하기도 한데, 그조차 '세련'되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다. 잔인한 게 마냥 잔인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사건보다 서사에 서사보다 인물에 치중한 편이어서 그런지, 혹자는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모두 하나같이 우아함을 기본으로 장착했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이게 다 원대한 전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즌 1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동안 모아 두고 감춰 두었던 액션을 분출시키는데, 그 면면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방대해지고 극렬해져야 하는 시리즈의 특성과 운명을 잘 알고는, 처음엔 맛만 보여 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최소화 시킨 게 아닐까.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야말로 혁명의 나라가 아닌가. 그것도 권력자끼리 쿠데타에 의한 반란 성공에서 이어진 반쪽 짜리 혁명이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뤄진 완전체에 가까운 혁명을 현대에 들어서도 몇 번이나 성공 시킨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일 듯하다. 프랑스 대혁명이 특히나 유명한 건, 완전체에 가까운 시민 혁명으로서 성공 덕분일 테다. 영국의 명예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 혁명, 러시아의 러시아 혁명 등의 유명한 혁명들도 온전히 시민 혁명이라 보기 힘들다. 


<라 레볼뤼시옹>은 '푸른 피'를 좀비물이라는 장르에만 국한하지 않고 '허기'와 '강함'과 '불멸'이라는 특성을 당대 귀족의 특성과 맞물리게 해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거운 백성의 고혈을 빼먹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끝없이 계속하는 '갈망'의 파렴치함을 표현해 냈다. 푸른 피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기 전에도 하는 짓이 똑같았으니, '푸른 피에 자신을 빼앗겨 어쩔 수 없이 광기에 휘말렸다'라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그야말로 악의 화신과 다름없는 18세기 당대 프랑스 귀족의 면면이다. 


작년이 프랑스 혁명 230주년이었다. 자그마치 230년이나 지난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났었고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것이다. 많은 것이 '옳게' 바뀌었다고 하는데, 혁명이 필요한 걸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것이 '그르게' 고착되어 왔던 것일까. 고이면 언젠가 반드시 터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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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역사, 라 레볼뤼시옹, 세련, 우아, 좀비, 프랑스 혁명,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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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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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포스터. ⓒ넷플릭스



고백하건대 '블랙핑크'를 잘 모른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 이 노래가 블랙핑크 거였어?' 하고 놀라는 정도. 그들의 노래야 하도 많이 들어 봤으니 모르기 힘들 테지만, 그 노래가 그들의 노래인지 모를 때가 많거니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양한 모양새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4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이라는 건 알지만 각각의 멤버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와중에 블랙핑크를 조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가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여성 아티스트 다큐멘터리를 접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가장 최근 공개되었던 <미스 아메리카나>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거대한 명성과 인기와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테일러 스위프트를 알려 준 소중한 콘텐츠. 그 전에도 넷플릭스는 여성 아티스트로는 레이디 가가와 비욘세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는데, 모두 꽤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블랙핑크인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재미없지 않다, 굉장히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있어야 한다. 하여, 재미없을 것 같은 다큐는 애초에 보지도 않는다. 솔직히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내외적으로 그리 관심 가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난 블랙핑크를 잘 몰랐지만 알고 싶었다. 모두 방탄소년단을 입에 올리지만, 걸그룹으로서 블랙핑크는 방탄소년단에 필적할 유일한 아티스트라 하지 않는가. 시대를 일정 정도 이끌고 또 책임지고 있는 대상을 기본적으로나마 알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블랙핑크의 독보적인 기록들


작품은 1시간 20여 분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블랙핑크의 데뷔(2016년 8월)에서 3년 후 월드 투어까지를 다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성공 가도의 스토리를 보여 줄 거라 예상되었는데, 실제로는 매우 아기자기했다. 포커스가 블랙핑크라는 그룹의 현재와 미래에 있지 않고 블랙핑크를 구성하는 4인 따로 또 같이의 과거와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 말고는 '제5의 블랙핑크 멤버'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YG의 책임 프로듀서이자 블랙핑크 프로듀서 테디 정도가 나와 인터뷰할 뿐이다. 


잠깐 블랙핑크의 영향력을 수치로 들여다본다. 지난 10월 2일 블랙핑크 첫 정규 앨범 'THE ALBUM'은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올랐고 그 덕분에 빌보드 아티스트 100에서 정상을 밟기도 했다. 또한 이 앨범은 KPOP 걸그룹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지난 8월 28일 셀레나 고메즈와 함께 발매한 싱글 'Ice Cream'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3위에 올랐다. KPOP 걸그룹으로서 독보적인 기록이다. 또한 작년엔 KPOP 그룹 최초로 세계 3대 음악 축제 중 하나로 불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블랙핑크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V LIVE와 스포티파이와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모두 국내 탑 수준이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로 따지면, 10억 뷰 이상 기록한 곡이 3개에 이른다. 총 10개의 뮤직비디오가 있는데, 모두 1억 뷰 이상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는 걸그룹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핫한 걸그룹인 건 분명하다. 그런 그들의 지극히 소소한 개인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이 작품인 것이다. 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의 다양한 문화 결합


테디가 말하길 모든 그룹에는 정체성을 결정짓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한다. 블랙핑크의 경우 다양한 문화의 결합으로 눈에 띄고 특별하다고 하는데, 4인의 멤버가 각각의 개성과 배경을 갖고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결합하는 모습에 있다고 하겠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가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니는 메인래퍼로 솔직한 매력을 가진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그녀는 10살 때까지 서울에서 자랐다가 5년 동안 뉴질랜드 유학을 다녀와 연습생을 거쳐 데뷔했다. 제니의 눈에 태생 천재로 보인 이가 있었으니 리사다. 그녀는 메인댄서이자 리드래퍼로 발랄한 실행주의자라고 한다. 평소와 다르게 실행에 들어서면 무섭게 집중하는 타입이다. 태국인으로, 태국에서 자라 태국 현지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 


리더 없는 그룹인 블랙핑크의 맏언니이자 실질적인 리더 역할의 리드보컬 지수는 소탈함이 엿보인다. 비쥬얼 담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며, 데뷔 전에 TV 광고와 드라마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블랙핑크 하면 생각나는 독특하고 독보적인 음색을 담당하는 이는 메인보컬이자 리드댄서 로제다.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가서는 연습생이 된 16살 때부터 한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타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타입이지만, 끊임없이 성실한 노력으로 헤쳐 나간다. 


작년 연예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버닝썬 게이트'로 특히 YG 엔터테인먼트의 명성이 곤두박칠 쳤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열렬히 좋아라 했던 'YG 엔터테인먼트'라는 문화 공동체와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신뢰 또한 없어졌다시피 했다. 블랙핑크도 예외일 순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이 작품을 보니, 버닝썬 게이트와 YG를 떼 놓을 순 없겠지만 버닝썬 게이트와 블랙핑크는 떼 놓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한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라는 다큐멘터리 콘텐츠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이목을 끌 만한 화려한 편집도 없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실을 건네려 하지도 않고, 모두가 알지만 애써 쉬쉬했던 진실의 뒷이야기를 파헤치려 하지도 않고, 역사의 길이남을 만한 성공의 뒷이야기를 치열하게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특별한 게 있다면 블랙핑크 그 자체다. 하여, 그들의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면을 보여 주는 것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디서도 블랙핑크의 성공한 현재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작품은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통속적이지 않고 별 게 없어 보이지만 특별하다. 블랙핑크 입장에서는 팬 아닌 이들에게도 다가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테고, 팬 입장에서는 블랙핑크가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보다 많은 이에게 가 닿을 수 있을 테며, 블랙핑크와 접점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명 연예인의 꾸미지 않은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특별한 공감을 전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처음과 끝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다. 차량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인 멤버들이 "이제는 가냘픈 이미지의 노래도 해 보고 싶다"며 소소한 바람을 드러내고, 연습생 시절의 식당을 방문해서는 "우리가 마흔 넘어서도 춤을 출 수 있을까?"라며 미래에 대한 보통의 질문을 던진다. 특별한 이력을 쌓아 왔고 쌓고 있으며 쌓아갈 그녀들이지만, 우리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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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YG, 걸그룹, 기록, 로제, 리사, 문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일상, 제니, 지수, 특별,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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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이 재창조한 최악의 '시카고 7 재판' 실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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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포스터. ⓒ넷플릭스



할리우드에 많고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지만, '아론 소킨'만큼 유명한 이를 찾기도 힘들다. 각본가 중에 이름만 대도 전 세계적으로 알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매카시즘 광풍에 엮여 10개가 넘는 필명으로 활동한 할리우드 전설의 각본가 '달튼 트럼보'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두 번 만들어져 일반 대중에게 보다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 


한편, 아론 소킨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1990년대부터 끊임없이 있다. 그가 손을 댄 것들이 대부분 유명하기에 유명한 것들만 언급해도 리스트가 꽤나 길다. 연극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성공적으로 영화 각본 데뷔를 한 <어 퓨 굿 맨>을 시작으로, <찰리 윌슨의 전쟁>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 등의 영화와 최고의 미드로 손꼽히는<웨스트 윙>과 <뉴스룸> 등의 TV시리즈까지 섭렵했거니와 2017년에는 <몰리스 게임>으로 장편 영화 연출도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넷플릭스와 손잡고 또 하나의 '아론 소킨 표' 영화 하나를 들고 왔다. 이번에도 지난 <몰리스 게임>처럼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하였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때 주요 시위자로 기소되어 재판받은 '시카고 7'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다. 제목 그대로, '시카고 7의 재판'이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론 소킨이 영화계로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재판을 다룬 영화 <어 퓨 굿 맨>이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후...


1965년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미국 전역에서 징집 계획에 의한 추첨으로 젊은이들을 뽑아간다. 대학 캠퍼스에선 저항운동이 일어난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하고 전국적으로 애도와 시위가 일어난다. 이를 막고자 의회는 '랩 브라운법'을 통과시킨다. 이는 폭력 선동을 목적으로 주 경계 횡단을 금지시키는 법이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다. 8월에는 시카고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시카고 시장은 반애국적 조직의 집회 허가를 거절한다. 


그런 와중에도 1968년 8월 시카고에서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전국에서 수많은 '선동가'가 몰린다. 그들의 목적은 반전과 종전이었다.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시위대와 경찰·군대가 충돌하고 혼란에 빠진다. 11월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선출되고, 이듬해 1969년 3월 8명의 운동가가 랩 브라운법에 따라 기소된다. 그들은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비스, 청년국제당 소속의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국가동원위원회 설립자 데이비드 델린저, 존 프로인스와 리 와이너 그리고 흑표당 의장 보비 실이었다. 


바뀐 정부에 따라 역시 새롭게 들어선 법무장관 존 미첼이 검사장의 추천을 받아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검사 리처드 슐츠에게 10년 형을 때려 버리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들은 큰 틀에서 반전과 종전이라는 목적만 같을 뿐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 확고한 신념과 방향을 지니고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또한, 존 프로인스와 리 와이너는 운동가라고 하기엔 뭣한 이들이었고 보비 실은 흑인 자경단인 흑표당 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시위 당시 4시간만 머물렀을 뿐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1969년 9월 재판은 단독 판사 줄리어스 호프먼의 주재 하에 진행된다. 그런데 재판이 다름 아닌 호프먼 판사에 의해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아론 소킨 표 '시카고 7 재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재판인 '시카고 7의 재판' 실화를 바탕으로 다분히 아론 소킨 스타일로 재탄생된 영화이다. 그가 그동안 선보였던 유명한 명작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져온 바, 물 흘러가듯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스토리를 기본으로 장착하곤 개성과 신념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극을 이끈다. 거의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완벽한 '틀'을 마련해 두고 그때그때 넣는 것 같다. 통속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할까. 그의 작품은 통속이 먼저이지 결코 예술이 먼저인 것 같진 않다. 


아론 소킨의 작품들이 논란과 논쟁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고 안으로 수렴시켜 '뭔가 굉장한 게 있을 것 같아' '뭔가 굉장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데, 이 영화 또한 다르지 않다.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 내의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안으로 수렴시켜, 꽤나 어렵고 자칫 지루한 듯하지만 '있어 보이고' '굉장한 듯'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공화당 아닌 민주당 대통령 치하에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고 유명 진보 인사들이 암살당하고 반전 시위를 무력화 시키려 한다. 미국 정치판은 공화당과 민주당뿐이어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진보'의 민주당과 '보수'의 공화당의 설명하기 힘든 관계가 다양한 희생양을 양산 시키는 것이다. 반전과 종전의 신념과 정치적 방향이 설 곳은 당시엔 없지 않았을까. 


와중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오히려 반전과 종전을 외쳤으니 아이러니하다. 영화 속 주요인물인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브스처럼 말이다. 혼란과 압박과 모순 속에서 반전과 종전이라는 신념 하나를 붙잡고 나아가야 했으니, 그러면서도 나중을 위해 '이기는 선거'에 걸맞는 이미지를 버릴 수 없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시대라는 빌런, 사람이라는 빌런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몇몇 타 영화와 함께 내년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작 예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의 모양새를 돌이켜 보면 그 예상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만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또 하나의 할리우드적 명작의 반열에 올라갈 게 분명하다. 아니, 올라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아론 소킨의 각본 작품뿐만 아니라 연출 작품도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10년도 더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론 소킨에게 각본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에 아론 소킨이 각본 초안을 다시 보냈는데, 미국작가조합 파업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대선 '사건' 이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시대의 조류가 50여 년 전 시대의 조류와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다. 


시대도 그 자체로 빌런 역할을 하지만, 이 영화엔 단독으로 재판을 주재해 피고뿐만 아니라 원고의 이야기도 또 법으로 지켜져야 할 사항들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내가 곧 법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줄리어드 호프먼 판사가 빌런으로 나온다. 그는 정치 역학으로도 시대 조류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빙퉁그러진 신념으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람의 전형이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과 황당과 분노의 심정들을 느낀다. 


국가와 사회와 시대는 누가 만들고 이끄는가. 그것들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을 테다. 다름 아닌 '사람'이 만들고 작동시켜 이끄는 것이다. 하여, 사회와 시대의 이야기를 대하고 보고 느끼는 데에 사람이 없어선 안 된다. 아론 소킨은 그 지점을 정확히 알아채 포착하여 세련되게 드러 낼 줄 안다. 그가 창조·재창조한 캐릭터에 힘이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믿고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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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페스트를 두고 벌어지는 욕망과 욕망의 치열한 부딪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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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포스터. ⓒ넷플릭스



'옥토버페스트',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시 테레지엔비제에서 매년 9월 말경부터 10월 초까지 대략 2주간 열리는 맥주 축제로 족히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해 1조 원이 훌쩍 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유명하다. 지금은 9월에 열리지만, 200여 년 전 최초엔 10월에 열려 'Octorber(10월)'+'Fest(축제)'의 개념으로 옥토버페스트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역사상 25번째로 축제가 취소되었다. 

 

이 축제에는 뮌헨 시내에 위치한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6개 브랜드의 맥주만 유통된다. 순혈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그중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파울라너'도 있다. 순혈주의임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라는 점에서 그 인기도와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다. 올해 축제가 취소되어 관계자들은 경제적 손실을, 관광객들은 실망감을 떠앉았을 것이다. 와중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 줄 콘텐츠가 나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1900년 옥토버페스트를 배경으로 현재의 옥토버페스트 모습을 갖추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실존인물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치열한 암투와 목숨을 건 사랑과 배신 등 화려한 축제의 비열한 뒷이야기를 보여 준다. 단백하고 직선적이며 단단한 느낌을 주는 '독일'의 드라마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오며 색다른 재미도 준다. 


옥토버페스트를 둘러싼 운명의 소용돌이


1900년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옥토버페스트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뉘른베르크에서 성공한 사업가라 자처하는 커트 프랑크가 나타난다. 그는 옥토버페스트 운영위원을 찾아와서는 옥토버페스트 때 족히 수천 명은 들어갈 거대한 텐트를 만들 청사진을 건넨다. 하지만 옥토버페스트는 전통적으로 바이에른주 순혈주의, 뉘른베르크 사업가에게 내 줄 자리 따위는 없다. 프랑크는 운영위원의 가정사 치부를 빌미로 그를 부려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5개 부지에 해당하는 자리를 거대한 텐트로 채우려 한다. 하지만 프랑크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4개의 부지 자리의 양조장들은 모두 넘어왔는데, 마지막 하나의 양조장 '다이벨 양조장'의 호플링거 가문 사람들은 넘어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몇 대에 걸쳐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오며 왕실에도 맥주를 납품하는지라 아무리 좋은 제안에도 넘어갈 수 없었다. 프랑크는 사람을 시켜 호플링거 가문의 다이벨 양조장을 파멸에 이르게 하려 한다. 와중에, 호플링거 가문의 장자 로만과 프랑크의 딸 클라라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옥토버페스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뮌헨 양조장협회장이 클라라에 반해 프랑크에 접근하고 프랑크는 클라라를 그에게 시집가게 하려 하지만, 그녀에겐 로만이 있었던 터 양조장협회장은 프랑크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클라라의 샤프롱으로 들어온 콜리나는 클라라가 임신하는 바람에 쫓겨나 다시 힘겨운 생활을 시작하고 다이벨 양조장의 안주인 마리아는 점점 더 힘겨워지는 삶을 간신히 부여 잡으며 나아가려 했으며 로만의 남동생 루트비히는 양조장과 여관 운영이 아닌 그림에 관심을 가진다. 결국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프랑크는 야망을 이룰 수 있을까? 클라라와 로만을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콜리나와 마리아는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얽히고설킨 운명의 소용돌이는 이들을 어디로 어떻게 이끌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는 원제 'Oktoberfest: Beer & Blood'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맥주와 피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진중하고 긴장감 넘치는 시대극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이라 하면 굉장히 오래 되어 보이지만, 20세기를 여는 해로 불과 지난 세기이다. 사람들은 머리로는 몰라도 마음으론 알고 있었을 테다, 새로운 시대의 당위를. 


옥토버페스트가 1900년 경에도 물론 유명하고 큰 축제였겠지만, 지금의 세계 3대 축제로 발돋움했던 건 분명 혁명에 가까운 혁신이 있었을 테다. 작품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창조한 인물인 프랑크가 그 시작을 알리며 물꼬를 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봤다시피 그 이면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지만 말이다. 그는 파멸할 듯 결코 파멸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다시 원제를 보면, 맥주가 '혁신'을 피가 '혁신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상징하고 있지 않는가 싶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사람 목숨을 대하는 게 보통과는 다르다. 마냥 슬퍼하지도 마냥 당연한 듯 대하지도 않는다. 슬퍼하면서도 이용하는 것 같았다. 죽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한다고 할까. 욕망과 희생 위에 혁신이 위태롭게 쌓아지지만 결국 단단하게 굳혀진다. 생소한 독일 드라마의 특징일까,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특징일까,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라는 드라마만의 특징일까. 궁금하다. 


긴장감 어린 스토리가 단단하게 이어진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적절히 퍼지고 합하는 스토리의 가지까지 아우르는 능력이 상당한 작품이다. 어느 한 스토리의 가지는 재미없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그러지 않았다. 모든 작은 스토리들이 나름의 합리적 생명력과 상징성을 지닌 채 존재하며 메인 스토리를 뒷받침했다. 하여, 작품 자체가 재미있을 수 있었다. 특히, 프랑크와 호플링거 가문의 얽히고설킨 감정과 관계들. 프랑크의 딸 클라라와 호플링거 가문의 장남 로만의 '로미오와 줄리엣' 버금 가는 사랑조차 철 지난 로맨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권다툼의 한 방면으로 편입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야망 어린 거짓말로 클라라의 샤프롱으로 들어갔지만 그녀가 임신하는 바람에 쫓겨 나서는 다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기지를 발휘해 수석 웨이트리스이자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콜리나는 '새로운 시대의 성공적인 여권 신장'이라는 서브 스토리의 메인 캐릭터로 충분히 제 몫을 했다. 한편, 호플링거 가문의 둘째이자 여관 운영자로 살 운명이었지만 그림을 좇아 당시 금지되어 있던 동성애까지 나아갔다가 자살하고 마는 루트비히는 '새로운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한 비극의 희생자'라는 서브 스토리의 메인 캐릭터로 한몫했다. 


화당 평균 50분이 채 되지 않는 6화 분량이 짧은 드라마가 장대한 시대극을 온전히 담는 건 무리가 있었을 테다. 하여, 이 작품 자체로는 완벽한 작품성을 담보하진 못하지만 시즌제로 갈 만한 이야깃거리들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본다. 격동하는 시대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가.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옥토버페스트에 어떤 이야기와 인물과 상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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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을 냉동 보존하기로 한 어느 과학자 가족의 사연 <희망을 얼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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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포스터. ⓒ넷플릭스



불과 얼마전인 2020년 5월, 국내 첫 '냉동인간'이 나왔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크리오러스'와 국내에 냉동인간 서비스를 론칭한 '크리오아시아'라는 업체를 통해 체세포 보존 형태가 아닌 전신 냉동 보존 형태였다. 해당자는 경기도에 사는 80대 여성으로, 숨진 직후 영하 20도로 냉동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급파했다고 한다. 국내에는 아직 냉동인간 보존에 대한 법적·행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러시아로 보내 그곳에서 전신 냉동 보존 처리가 시행되었다. 1억 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고 한다. 


5년 전인 2015년, 태국의 어느 과학자 가족이 크나큰 결단을 내린다. 정확히는 가족의 가장 사하똔 박사의 결단으로, 뇌암으로 죽은 2살 배기 딸 아인즈를 전신 냉동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태국 굴지의 대학인 쭐라롱꼰 대학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사하똔 박사는, 과학자의 시선과 딸을 보낼 수 없는 마음과 진보하는 과학의 미래를 믿으며 가족을 설득하고 주위의 반대를 무릎쓰며 전 세계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딘 채 진행한다. 아시아에선 최초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례라고 한다. 


아인즈를 전신 냉동 보존하기로 한 태국 과학자 가족의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로 만들어졌다. 아시아 최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불교가 약 95%를 차지하는 절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행한 냉동인간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었을 것이고,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채 한시간 반도 안 되는 러닝타임으로 짧다면 짧을 작품은, 굉장히 과학적인 동시에 굉장히 뭉클하고 생각도 많이 하게 한다. 


낯설지만은 않은 '냉동인간'


냉동인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수많은 매체에서, 수십 년 전부터 익히 봐 왔던 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억나는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대표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로 그 자신이 빙하에 갇혔다가 살아돌아왔고 빌런 '윈터 솔저'가 70여 년간 냉동과 해동을 거치며 암살자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1979년 시작된 <에일리언> 시리즈에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우주 여행 시 승무원들은 냉동수면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넘어와, 세계 최초의 냉동인간은 자그마치 55여 년 전인 1967년 암으로 숨진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생물냉동학재단 설립자 제임스 베드포드였다. 그의 인체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에 보관되어 있다. '알코르'는 1972년 설립된 재단으로 <희망을 얼리다>에서 사하똔 박사가 딸 아인즈의 전신 냉동 보존을 맡긴 곳이기도 하다. 


현재 기술에서 전신 냉동 보존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 그대로 전신을 있는 그대로 냉동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를 모두 제거하고 피를 모두 뽑아낸 뒤 부동액으로 채워넣은 방법이다. 하여, 지금으로선 보존은 할지언정 되살릴 방법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터, 사하똔 박사가 거는 기대는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다. 과학은 계속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과학자'의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은 계속 변화해 왔다. 나라와 부족의 문화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묘지 매장이 당연했지만, 화장 후 재를 뿌리기도 하고 이제는 봉안당에 안치시키는 게 익숙해졌다. 작품을 보며, 머지 않아 냉동 보존이 시신을 모시는 주요 방법의 하나라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으로선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먼훗날 언젠가 다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할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본인 또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보게 된다고 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과학자' 또는 '과학자 가족'의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한다는 사하똔 박사와 가족들. 감정을 싹 거두고 이성적으로만 다가가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냉동인간 보존. 그렇지만, 어떻게 감정 없이 이성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하똔 박사의 아내를 보고 있자면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냉동인간 보존술에 대해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남편의 과학자적인 시선과 과학에의 믿음(물론 그 또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과 달리 아내가 냉동인간 보존을 대하는 것에는 아이를 한없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이성과 감성의 슬프고도 고귀한 조화이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 빌런으로서의 '미친 과학자'가 종종 나온다. 엄청난 지식과 빙퉁그러진 신념 그리고 가슴 아픈 사연이 뒤섞여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 과학자 말이다. 이 작품에서 사하똔 박사의 첫째 아들 매트릭스가 아빠를 '미친 과학자'라고 칭하는 게 그리 위화감이 들지 않는 이유다. 이를테면, 딸의 암세포를 가져와 배양해 치료약을 만들려고 하는 행동 말이다. 과학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딸을 향한 끔찍한 사랑이 빚어 낸, 출중한 실력을 지닌 과학자의 미친 이야기. 다행이도(?), 그는 거기서 멈췄다. 


인생에서 그만큼의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매트릭스, 즉 오랜 시간 혼자였다가 생긴 여동생 아인즈를 향한 사랑이 그녀의 죽음으로 과학적 동기가 되어 아빠를 뒤이어 과학자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아인즈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학적이지만 한편 종교적이면서도 미신적인 믿음. 그야말로 아빠의 이성과 엄마의 감성을 조화롭게 이어받았다. 


신기하다, 불교는 내세를 믿을진대 이들 과학자 가족 또한 내세를 믿는 불교신자이다. 즉,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한 게 아닌가? 그들에게 집중포화식으로 쏟아진 질문, '아인즈의 영혼이 쉴 수 없게 막는 것 아니냐' '아인즈의 영혼을 가둔 게 아니냐'에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사하똔 박사는 아이의 영혼을 가둔 게 아니라고, 아이를 보낼 수 없었을 뿐이라고, 아이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답한다. 맞는 답인지, 올바른 답인지 알 순 없다, 판단할 수도 없다. 


'죽음'을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자 말로 당사자에겐 씨알도 안 먹힐 공산이 크다. 당사자와 관계자에게 죽음은 슬픔과 아픔의 끝이다. 죽음과 멀리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까. 작품 속 아인즈처럼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면 말이다. 사하똔 박사와 가족들을 윤리적·종교적으로 비난할 순 있을지언정, 개인적으로 판단할 수 없거니와 인간적으로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라면? 아인즈를 냉동인간 보존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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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직후 독일을 뒤흔든 암살 사건의 막전막후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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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포스터. ⓒ넷플릭스



1991년 4월 1일 늦은 밤, 통일된 독일 하의 뒤셀도르프에서 독일을 뒤흔들 암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신탁청장으로 구동독 지역경제 청사진을 구축 중이던 로베더가 자택 1층 거실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암살범은 자택 부근 주말농장에서 잠복해 있다가 첫 번째 총알로 로베더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두 번째 총알로 부인을 부상입혔으며 세 번째 총알은 책장에 가 꽂혔다. 


곧바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된다. 과학기법까지 동원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느 각도로 무슨 총을 쏴서 로베더를 죽였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는데 현장에 버려진 한 장의 자백서였다. 다름 아닌 독일 적군파 RAF가 남긴 장황한 자백서였다. 암살범의 정체를 명명백백하게 지명하는 증거였지만, 정작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한다. 또한 현장엔 지문도 있었다. 문제는 당시 기술로는 쉽게 밝혀내기 힘들었다. 몇 년은 소요될 것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실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완전 범죄' 로베더 암살 사건의 막전막후를 다룬다. 독일 통일 직후의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발생한 이 사건, 우리나라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 전후로 로베더보다 더 높은 직급의 더 중요한 인물들이 자주 암살당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얽히고설킨 이해 관계 속에서 또 한 명의 고위급 인사가 암살당했구나' 하고 지나갈 수 있었던 분위기였던 것이다. 


로베더 암살, 독일 적군파? 슈타지?


다른 고위급 인사들 암살 사건은 잘 모르니 차치하고 로베더 암살 사건만을 보면, 그리 단순하게 볼 만한 사항은 아닌 것 같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의심이 다방면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작품에는 당시 로베더 암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수사 관계자들과 로베더와 정치적으로 엮였던 고위급 인사들과 암살범 집단으로 의심받았던 독일 적군파, 슈타지 출신의 사람들까지 총출동했다. 


물증 덕분에 가장 근접한 접근일 독일 적군파 RAF, 2세대 RAF 출신의 두 노인이 출현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유명한 스톡홀름 독일 대사관 테러 사건의 주동자로 감옥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진짜' 적군파였다. 그가 말하길 로베더 암살 사건 현장에 남겨 있던 자백서는 적군파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적군파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 또 어떤 수사관은 로베더 암살 사건을 주동했다고 알려진 소위 '적군파 3세대'의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적군파는 2세대까지만 존재하고 3세대는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냐는 것. 


그런가 하면, 완전 범죄인 점도 그렇고 첫 총알에 치명상을 안긴 점도 그렇고 적군파가 아닌 보다 훈련된 조직일 가능성을 들어 해체된 구동독 국가보안부 슈타지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관점도 있다. 로베더가 추진한 일로 구동독 경제가 초토화되며 그로 인한 불만의 일환으로 슈타지 잔당이 암살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의심만 있을 뿐 확실하지 않다. 


독일 통일 후 동독 경제를 집어삼키는 서독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독일 통일 후 사실상 서독이 동독의 경제를 집어삼키는 양상으로 흘러간다. 서독의 수뇌부는 어차피 동독의 경제는 오래지 않아 무너졌을 것이고 이미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했고 또 변명한다. 동독도 서독만큼 잘 살 수 있다는 명분, 동독의 경제를 서독에 흡수한다는 방법, 구동독의 모든 기업을 소유한 신탁청을 발족해 보유한 모든 것을 팔아치워 버린다는 수단.


로베더는 서독의 총리와 경제부 장관에 의해 신탁청장으로 발탁된다. 그는 일찍이 경제부 차관으로 일했고 위기에 처한 거대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해 본궤도에 올려놓기도 했던 독일 정재계의 거물로, 다시 한 번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빨리 민영화를 실시하라는 윗선의 압력에 시달리고 동독 주민들에게 '동독을 팔아먹은 악마'가 되면서도 일을 해 나간다. 서독의 얼굴마담이자 동독의 핵심 타깃이었던 셈. 당시, 동독 주민들의 인터뷰를 보면 통일을 반기기는커녕 인생의 절대적인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고 또 팔려가면 직원들이 해고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에...


일이 일이다 보니 로베더는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암살 4일 전 로베더 부인이 직접 경찰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 요청을 당연히 받아들여 순찰을 강화하고 주위를 지켰다. 그럼에도 로베더는 암살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의문점 중에 하나는 그가 암살당한 1층 거실 창문이 방탄유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이면 그 정도 대비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암살범은 로베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면식범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진짜 실세'에 의한 암살? 합리적인 음모론


작품에서는 적군파나 슈타지의 소행이 아닌 서독 내 정치조직일 가능성이 대두된다. 동시에 암살 현장에서 나온 흔적을 분석한 결과 적군파의 일원이라는 물증도 나온다. 그런데, 그는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일련의 과정으로 유추할 수 있는 건, 로베더를 희생양으로 삼아 동독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완전 범죄로 추적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조직이지 않을까 한다는 것. 


그 알 수 없는 조직은 동독의 반발이 너무 거세지기에 자칫 동독을 집어삼키는 데 차질이 일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생각으로 로베더를 제거했고, 실제로 곧바로 동독의 반발은 누그러져 시위대는 해체되었으며, 그럼에도 신탁청은 로베더의 방침을 고수해 동독의 민영화를 진행·완수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조직의 로베더 제거는 상상이지만, 뒤엣것들은 사실이다. 비록 흔하디흔한 음모론의 클리셰를 따르지만, 앞뒤가 들어맞는 시나리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조직이 실체한다면, 당시 총리나 장관이 아닌 나라를 주물럭거릴 수 있는 '진짜 실세'의 모임이지 않았을까.


로베더 암살 사건을,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력의 소행으로 볼 것이냐 독일 통일을 서독의 동독 경제 침략으로 본 세력의 소행으로 볼 것이냐 그 모든 것 위에서 오직 자신들의 방식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 중요한 세력의 소행으로 볼 것이냐... 당사자는 죽었고 암살범은 잡히지 않았으며 판단은 자유이다. 한 가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을 테다. 그리고,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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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적군파, 독일 통일, 동독, 서독, 슈타지, 신탁청, 실세,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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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결않못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20. 10. 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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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표지. ⓒ유노북스



작년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웹툰 형식의 에세이를 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요. 해 본 적 없는 기획과 편집 그리고 출간이기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검색하는 채널과 대상은 명확했습니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이하, '베스트도전')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만을 들여다보며 일상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작품만 선별해 연락을 취했죠. 출간 과정 중 가장 어렵고 지지부진하고 재미없을 기획이 그때 만큼 재밌던 적이 없습니다. 


네이버 웹툰이 아닌 베스트도전만을 들여다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가능성'이었죠. 네이버 웹툰은 이미 타 출판사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며 빠르게 계약했을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계약과 기획 등 출간 과정도 복잡할 것이었습니다. 하여, 작가 개인이 직접 올리되 도전만화에서 승격되어 검증된 베스트도전 작품들만 노렸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작가주의'였습니다. 네이버 웹툰은 네이버에서 관리하기에 작가의 견해와 시선만큼 네이버의 입김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개인이 직접 관리하는 베스트도전은 작가만의 고유한 글과 그림이 생생히 살아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요. 혹자는 베스트도전을 네이버 웹툰의 하부리그, 2부 리그라고 말하겠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영화계로 따지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라고 할까요? 


인스타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았더니, 은근 많은 수가 베스트도전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징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선별하고 연락하고 만나고 기획하여 내부 결재를 받아 계약까지 간 작품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갸우뚱하고 누군가한테는 산뜻하고 누군한테는 뼈때리는 제목으로, 많은 분께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쉬울 듯 결코 쉽지 않았던 단행본화 과정


올해 초 계약할 당시만 해도 단행본으로 낼 만한 분량의 연재물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하여, 나름 정교하게 단행본 목표 쪽수를 상정하고 연재물의 특성을 고려해 어느 정도 더 연재를 한 후 단행본 작업에 들어가면 좋을지 계산했죠. 올해 여름까지 열심히 연재를 마무리한 후 가을에 출간하기로 스케줄을 짰습니다. 큰 틀에서 스케줄에 변동 없이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름 쉬울 거라 생각했던 단행본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텍스트 작업보다 어려웠죠. 문제는 '교정'이었습니다. 텍스트라면 저자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손쉽게 소통하며 교정을 진행할 수 있죠. 하지만, 저자만의 그림과 그에 따른 작가주의적 글이 합세한 웹툰 형식이다 보니 디자이너는 사실상 빠지고 저자와 편집자가 직접적으로 교정 과정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즉, 기존의 저자-편집자 간의 교정 시행과 편집자-디자이너 간의 기술적 반영에서 저자-편집자 간의 교정 시행과 기술적 반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다시 한 번 디자이너의 최종 반영이 추가되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복잡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해 놓고 보니 값진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회일 텐데, 웹툰 형식의 에세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만화책'이라고 할 만한 책을 내 놓았으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책 자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만화책을 가장 좋아라 합니다. 그렇지만, 회사 차원에서 그리고 실무자들의 협업 차원에서 만화 형식의 책을 자신있게 또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더 특별한 마음이 들었던 게 아닐까도 싶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요. 



<결않못>의 롤모델이었던 <막돼먹은 영애씨>


이 책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는 보시다시피 제목이 전부 혹은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만한데, 한 번 보거나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계속 그 저의를 생각해 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왜 결혼을 못하게 된 걸까? 주인공 예민희씨는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흔히들 말하는 '노처녀' 혹은 '올드미스'죠.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지만 명명백백하게 존재하는 '편견'과 '관습' 때문일까요? 작품 속에서 민희씨는 그런 것들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 때문이라고 해요. 


민희씨는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또 살고 싶을 뿐인데 온갖 생각들과 고개를 치켜 드는 다양한 모습의 '나' 때문에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은 듯해요. 그 또한 누구나의 모습이겠죠. 이 책의 장점이, 그런 생각들을 가감없이 여과없이 드러내면서도 너무 자조적으로만 빠지지 않고 일상에 두 발을 굳게 서 있으며 은근히 단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깔린 은은한 유머와 때때로 보이는 호소력 짙은 페이소스는 덤이고요. 


이 책을 기획할 때 롤모델이 될 콘텐츠를 상정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가장 좋아라 하는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인 <막돼먹은 영애씨>죠. 주인공을 관찰하는 듯한 시점, 리얼 다큐로 보여 주는 일상, 30대 여성의 고군분투, 어쩔 수 없이 삶의 중심이 도는 결혼까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다만, <막돼먹은 영애씨>는 전체적인 기조가 좀 더 전투적이거니와 회사에서의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 주는 게 중심을 이루고 있죠. 막상 책을 내 놓고 보니 기획과는 달라진 것 같네요. 정확히는, 기획이 아닌 머릿속으로 그렸던 상일 것입니다. 


'공감'과 '캐릭터'를 자신있게 내 놓다


이 책에서 가장 자신있게 내 놓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두 가지 '공감'과 '캐릭터'일 것입니다. 둘을 이어 '공감 가는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30대 후반 미혼 여성의 현실적 공감뿐만 아니라 기혼자들에게도 추억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공 예민희씨가 스스로만을 천착해 자신 안으로 끊임없이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약한 듯 단단한 그녀는 닫혀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1980년대~2020년대를 두루두루 아우르는 시대적 공감도 함께합니다. 옛날 이야기를 촌스럽지 않게 '라떼는 말이야~' 같은 느낌이지 않게 풀어 내는 데 수준급의 실력을 뽐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오그라들지 않게 자조적이지 않게 풀어 내는 데 기가 막힌 실력을 뽐내고 있죠. 찾아보면 볼수록 디테일하고 깨알같은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캐릭터에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하면서도 또 일상이 중심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주인공 예민희씨와 주변인물들은 우리네와 1도 다르지 않은 면면을 보이거니와 그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누구나이기 때문입니다. 공감을 넘어선 감정이입까지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죠. 


깔깔 거리며 속시원하게 웃기에도 꺼이꺼이 슬프게 울기에도 여의치 않은 이 작품, 애매모호할 것 같지만 그런 게 또 인생이 아닌가 생각하면 하등 이상할 게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저 피식피식 얉게 웃고 울먹울먹 희미하게 울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책은 거기까지는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 10점
정변 지음/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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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않못,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공감, 단행본, 막돼먹은 영애씨, 연재, 웹툰, 캐릭터
  • 춘복
    2020.10.18 19:00

    2014년쯤 쓰신 과학의 민중사 글을 읽다가 아직도 하고 계신가? 해서 최근 글을 찾다 보니 이 글을 보게 되었네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결혼을 못한다, 안 한다로 마음대로 정의 내리는 것. 씁쓸한 현실이죠. 저는 비혼주의자인데요 다행히 부모님들이 먼저 결혼 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시라고 이야기 하시네요. 이 책을 읽어 본적이 없지만 제목만 봐도 애매하지만 피식 거리면서 볼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BlogIcon singenv
      2020.10.19 10:36 신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글을 보시고 다시 찾아와 댓글을 남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책, 재밌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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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대참사, '챌린저호 폭발'의 막전막후 <챌린저: 마지막 비행>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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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챌린저: 마지막 비행>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 비행> 포스터.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은 지구에서 모든 분야를 두고 경쟁했는데 우주에서도 경쟁을 했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시작되었는데, 초반에 소련이 앞서 나가다가 케네디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이 10여 년만인 1969년 실현되면서 미국이 승리했다. 미국이 '우주 경쟁'을 '문 레이스'로 국한시키고 또 성공해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소련은 1974년 달 탐사 계획을 중단했다고 한다. 


소련과의 문 레이스에서 승리하면서 이른바 '우주 패권'을 손에 쥔 미국은, 룰루랄라 후속 미션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야말로 인류를 대표해 우주와 경쟁하게 되었다고 할까. 80년대, 우주왕복선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비행기 모양의 익숙함과 우주를 상대하는 '간지'로 일반 대중에게 깊숙이 침투한다. 어느새 군사 목적에서 상업 목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우주선과 NASA에 퍼붇는 엄청난 돈에 비해 그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 버린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떨어지고 있었던 바, NASA는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데 '일반인도 우주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들었던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일거에 받고는, 고심 끝에 '우주에서 시행하는 수업'을 매개로 교사를 모집한다. 1986년 1월 28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제2호기 '챌린저호'의 10번째 임무이자 우주왕복선의 25번째 임무 'STS-51-L' 수행의 전말이다. 


전대미문의 챌린저호 폭발 참사


1986년 1월 28일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11시 38분, 챌린저호가 케네디 우주센터를 떠나 날아올랐다. 총 7명의 대원이 타고 있었다. 공군 중령이자 사령관 딕 스코비, 공군 중령이자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엘리슨 오니즈카, 물리학자이자 사상 두 번째 미국 흑인 우주비행사 론 맥네어, 엔지니어이자 사상 두 번째 미국인 여성 우주비행사 주디 레스닉, 탑재체 전문가이자 휴즈 항공기 회사 직원 그레그 자비스, 해군 중령이자 조종사 마이크 스미스, 그리고 비행 중 우주선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게 될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까지. 


NASA의 꿈은 물론 일반인의 꿈까지 싣고 화려하게 날아오른 챌린저호는, 그러나 73초만에 폭발해 버리고 만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 7명 대원 전원이 사망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챌린저: 마지막 비행>은 그 막전막후를 상세히 다룬다. 그 너무나도 강렬한 폭발 장면 때문에 그밖의 사항들을 알기 싫은 경향이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사실, NASA의 우주 탐사에서 큰 사건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 1967년 아폴로 1호는 임무 훈련 중 화재로 3명의 대원 전원을 잃은 참사를 당했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 이후 1970년 4월에 쏘아올린 아폴로 13호는 달에 가던 도중 사고를 당해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지구에 귀환했다. 기적적으로 3명의 대원 전원이 생환하여 '성공적인 실패'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1986년 1월 챌린저호의 출발 직후 폭발 사고와 2003년 2월 컬럼비아호의 귀환 도중 폭발 사고로 7명 대원 전원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치명적인 문제들을 내포한 발사 강행의 결과


<챌린저: 마지막 비행>을 보면, 챌린저호의 STS-51-L 임무 수행은 애초에 여러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던 걸로 드러난다. 위에서 주지했던 바, NASA의 사활이 걸린 이벤트성 다분한 임무 수행으로 '무조건' 발사되어야만 했었다. 문제는, 나중에 드러난 바 고드름이 얼 정도로 평년 기온보다 너무나도 낮은 추운 날씨에 로켓 부스터 이음새를 메우는 고무 O-Ring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챌린저호 발사 전, 부스터 제작사 타이오콜 사의 기술자들과 O-Ring 설계 담당자는 위험성을 간파하고 NASA 측에 발사 연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NASA와의 계약 문제로 얽혀 있는 타이오콜 사와 자사의 사활이 걸린 임무 수행이라는 점과 레이건 대통령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NASA는 그 의견을 묵살해 버리고 발사를 강행시킨다. 그들 입장에선, 이전에도 수차례 더 추운 날씨에도 발사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알고서도 강행한 후과는 본인들이 아닌 희생된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NASA의 우주왕복선 계획은 안전이 담보된 혁신이 아닌 진보라는 이름을 먹칠한 되도 않는 모험으로 밝혀진다. 계속되는 성공에 도취되어 본래의 임무를 잊고, 한편으론 관료주의에 절은 채 한편으론 대중과 언론의 관심에 취한 채 제대로 중심을 잡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대미문의 대참사로 수직상승하던 NASA의 우주 계획은 뒤흔들린다. 


대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도전을 계속한다?


작품에는, 당시 챌린저호 발사와 관련된 다양한 부류의 관계자들이 대거 출현했다. 7명 대원들의 유족들, NASA 직원들과 핵심 관계자들, 타이오콜 사의 기술자들과 핵심 관계자들, 청문회 관계자들, 언론인들, 우주비행사들까지. 당시의 참혹함을 전하며, 그리워하고 분노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반면, '빌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당시 챌린저호 발사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존슨 우주 센터장은 '어쩔 수 없었다'는 정도가 아닌 '인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소신(?) 발언을 이어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황당함과 분노를 자아냈다. 가히 그 거시적인 안목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본인이 희생 당사자였어도 그런 소리를 해 댈 수 있을지...


시종일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모두의 말을 듣는가 싶었던 작품은, 마지막 화의 마지막쯤에 이르러서 황당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출현한 관계자들의 숙연한 얼굴을 하나하나 비추며, 당시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애도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담화문을 얹힌 것이다. 주요 요지는, '대참사를 애도하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우리는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였다. 당시 존슨 우주 센터장의 망언에 가까운 주장과 상호보완적으로 일치하는 말이 아닐 수 없는데, 설령 그게 그것대로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서 이런 식으로 다루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나라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건, 그게 노동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목숨이든 권력과 명예와 돈을 두루두루 또는 한 가지만 가진 저 높으신 분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명령에 따라 그야말로 '아랫것'들이 희생되는 게 명백하다. 그 비극적 사실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거룩하게 보여 주면 안 된다. 


이 작품 <챌린저: 마지막 비행>은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막전막후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걸 추천하되, 마지막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양새는 절대적으로 비추천한다. 사실뿐만 아니라 진실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로서 쓰레기 같은 모양새라고 말하고 싶다. 다큐멘터리의 뉘앙스는 픽션의 그것과는 달리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비록 나의 개인적인 성향과 반하는 뉘앙스였다고 하지만, 시종일관 취하던 스탠스와 너무 빗나가는 것이어서 작품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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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다큐멘터리, 문제, 사망, 성공, 우주, 일반인, 챌린저: 마지막 비행, 폭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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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신념을 입체적 에피소드에 담아낸 수작 로드무비 <낙엽귀근>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0.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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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낙엽귀근>


영화 <낙엽귀근> 포스터. ⓒ블루필름웍스



공사판에서 4년 동안 함께 일하던 친구 리우콴유가 운 없게도 술을 마시다가 죽자 시체를 짊어지고 그의 살아생전 고향으로 향하는 중년 남자 라오자오, 사장을 비롯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화장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친구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꼭 고향 땅에 묻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수중엔 500위안뿐 사장이 리우콴유에게 준 5000위안은 건드릴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일하는 '선전'에서 리우콴유의 고향 '충칭'까지는 장장 1400km나 되는 대장정의 거리이다. 


라오자오와 리우콴유는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우여곡절을 시작한다. 버스에 타서 잘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강도 무리의 습격을 받아 돈을 몽땅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죽은 친구를 향한 의리에 감동한 강도 두목이 외려 다른 승객들한테 빼앗은 돈을 모두 그에게 주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때문에 버스에서 쫓겨나고 만 그들이다. 시체와 함께 버스를 탈 수 없다는 승객들의 당연한 반발 때문에. 여정의 시작부터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 허름한 숙소에서 500위안을 도둑맞고는 시름에 빠져 있다가 까칠하게 굴던 트럭 기사에게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버스에서의 일과 반대되는 상황이 아닌가. 힘들어 보였던 트럭 기사의 사연을 들어 보니 실연을 겪었던 것, 라오자오는 인생 선배로 적절한 조언을 해 주어 트럭 기사로 하여금 새로운 목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돈도 절도 없는 라오자오는 친구 시체와 함께 그의 살아생전 고향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진심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여정이다. 


이 영화가 뒤늦게 개봉하게 된 이유들


영화 <낙엽귀근>은, 지난 2018년 국내에 <영혼의 순례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티베트 순례단의 라싸 순례 여정 다큐멘터리로 중국 역대 다큐멘터리 순위 3위에 드는 위업을 달성한 장양 감독의 2007년 작이다. <영혼의 순례길>의 '여정'이 국내에 소소하지만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판단 하에, <낙엽귀근>을 늦게나마 소개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장양 감독의 많은 영화가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타기도 했던 바 이 영화도 그러했는데,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탔고 벤쿠버와 도쿄와 뉴욕과 하와이와 홍콩 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낙엽귀근'이라는 말은,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본래 났거나 자랐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용이 가능한 바, 영화가 개봉한 날(2020.9.24)을 미루어볼 때 추석 명절을 겨냥한 게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추측을 해 본다. 특히, 올해 추석은 그 어느 때와 다르게 '코로나 19'로 정부에서 특별방역기간을 정했고 왠만하면 고향을 찾지 말라고 당부했기로서니 영화 속 죽은 친구 고향으로의 여정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테다. 문제는, 영화관을 찾지 말라는 당부 또한 함께 내려 왔다는 것...


직선적 신념을 곡선적 이야기에 담다


각설하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단연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원톱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라오자오', 그리고 그를 연기한 '자오번산'. 영화를 통해 거의 접한 적이 없는 듯한 그는, 찾아 보니 '중국의 찰리 채플린'이자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불리는 유명한 대희극인이라고 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성공해 회사를 설립하고는 자가용 비행기까지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연극배우로 데뷔해 TV와 영화까지 종횡무진 활약했고 활약하고 있는, 자타공인 '중국 NO.1 연예인'이다. 


<낙엽귀근>은 자오번산 즉, 라오자오의 원맨쇼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를 잘 모르는 우리에겐 신기한 것이, 영화가 로드무비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본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그들과의 짧은 에피소드들에 인생의 모든 것, '희로애락'과 '신념'이 담겨 있는 것도 신기하다.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알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의리' '신의' '진심' 등의 직선적 신념을 희로애락 듬뿍 담긴 곡선적 이야기에 담은 것이다. 


에피소드들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버리기는커녕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것들이다.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꾸역꾸역 시체를 짊어지고 갈 때까지 가서는 길가에 전복된 크나큰 트럭의 타이어를 빌려서 편안하게(?) 길을 가다가 급경사길에서 그만 놓치고 만다. 타이어 속 시체는 낭떠러지 격의 숲속으로 떨어지고, 라오자오는 그를 포기하려던 찰나 자신도 함께 죽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하고 눈을 떠 보니 어느 가족이 구해 준 게 아닌가. 그들은 라오자오에게 밥도 챙겨 주고 라오자오의 사연을 듣고는 멀리까지 차를 태워 주기도 한다. 


라오자오의 여정에 감정을 이입하다


영화를 보다 보니, 라오자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게 아니라 라오자오와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라오자오의 사연을 믿고 그와 시체를 태워줬을까, 라오자오의 허름한 외모와 '시체'라는 말만 듣고 그냥 지나쳐 버렸을까. 그의 신념과 의리는 당연히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오히려 그를 도와준 이들의 행동에 보다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영화로라도 대할 수 있어 참으로 진귀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롤러코스터 타듯 위로 아래로 쉼 없이 오르내리는 라오자오의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누구나의 '인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와 닿는 건 인생이 아닌 그의 '여정'이다.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어느 순간에도 잃지 않는 여유와 끈기 그리고 인생 여정에서 꼭 필요할 임기응변을 두루두루 갖춘 라오자오의 여행 같은 여정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나도 모든 걸 뒤로 한 채 팔도강산을 누비는 여정을 떠나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를 잘 들여다보면 결국 라오자오에게 가닿는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당사자적 입장이 아닌 제3자적 입장이지만 라오자오처럼 살면 좋겠다 싶게 만든다. 그의 성격이 부럽다, 모든 이와 잘 어울리고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밌겠다 싶다. 그렇지만, 외려 이 영화는 라오자오를 주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고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캐릭터가 아닌가. 그런데, 영화를 보는 입장에선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보다 '라오자오'라는 캐릭터에 주목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잘 만든 영화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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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귀근, 시체, 신념, 에피소드, 여정, 인생, 자오번산, 장양, 캐릭터,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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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오가는 그녀 '래치드'가 펼치는 사이코 드라마 <래치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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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래치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래치드> 포스터. ⓒ넷플릭스



1960년대 전 세계는 참으로 많은 것이 휘몰아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이 전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자 모든 분야에서 대결하는 가운데,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신세계를 맛보고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전에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히피 문화는 미국의 신세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950년대 저항의 분위기에서 도피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1962년 나온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1950년대 비트 세대의 저항 문화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미국 사회와 권력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을 띄고 나왔다. 또한 이어질 1960년대 히피 세대의 도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15년 뒤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밀로스 포먼 감독에 잭 니콜슨 주연으로 비록 원작자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영화는 길이남을 명작으로 뽑힌다. 


와중에, 정신병원 간호사 밀드러드 래치드는 역대 최고 또는 최악의 '빌런'으로 손꼽힌다. 지금에 와선 빌런이라 칭하지만, 수십 년 전 당시만 해도 '악인'에 다를 바 없었을 테다. 그래도 빌런이라 칭하기 위해선 사연이 필요할 터, 소설이 나온 지 어언 60여 년이 지나고 영화가 나온 지 45여 년이 지난 2020년 '래치드'라는 타이틀로 시리즈가 선보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래치드>이다. 


자그마치, 라이언 머피가 총괄제작과 약간의 에피소드 연출을 맡고 그와 최고의 조합을 선보인 바 있는 세라 폴슨이 래치드 역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연극과 영화 판권을 소유해 그 옛날 제작까지 했었던 마이클 더글라스가 이번에도 제작에 참여했다. 신시아 닉슨, 주디 데이비스, 샤론 스톤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주연급으로 세라 폴슨과 함께한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새. 


선악의 마음을 가진 그녀,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루시아 정신병원, 원장 하노버 박사와 수간호사 벳시의 진두지휘 아래 잘 돌아가고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래치드라는 이름의 간호사가 다짜고짜 하노버 박사에게 자신을 뽑아달라고 한다.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그녀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와중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공보 비서 그웬돌린을 앞장 세워 루시아로 와선 재선을 위한 담금질에 손을 잡고자 한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신부들을 참혹하게 살해한 살인마 에드먼드가 루시아 정신병원에 임시수감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지사로서는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에드먼드를 죽이고자 했고 하노버 박사의 정신감정이 필요했다. 한편, 래치드는 하노버와 벳시는 물론 여타 간호사들과 환자들을 상대로 누군가한테는 천사같이 누군가한테는 악마같이 대하며 루시아를 점령해 나간다. 


그녀의 목적은 명확했는데, 동생 에드먼드를 사형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법적으로만 친남매였던 바, 어릴 적 어느 위탁가정에서 만나 함께 참혹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함께했다. 이후 래치드가 에드먼드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래치드는 한없이 미안한 감정을 지닌 채 에드먼드를 찾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 정신병원 안팎에서 수많은 실타래로 엮인 관계들 때문에 에드먼드를 되찾기가 쉽지 않다. 래치드가 직접 나서서 실타래를 풀 수밖에 없다. 과연 그녀는 특유의 선과 악이 모두 어린 마음을 가지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라이언 머피'의 색채가 묻어 있는 사이코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래치드>는 다분히 '라이언 머피'의 색채가 묻어 있는 작품이다. 화려하기만 한 게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정제된 미장센과 색감을 앞세워, 서사와 메시지 보다 순간순간 번뜩이는 기지와 반전의 보는 재미로 중무장한 채, 어김없이 빠질 수 없는 LGBTQ 요소를 과하다 싶을 만큼 넣어서는, 신경을 긁는 또는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하여, 이보다 더 갈리기 힘들 만큼의 호불호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원작 또는 영감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소설과 영화가 모두 당대 사회적 메시지가 다분한 형태를 취하기로서니, <래치드>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다. 이 작품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당대를 그리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복장과 화장과 제스처와 대사로 말이다. 즉,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다. 


캐릭터성으로 들여다보면 보이는 게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주인공 래치드와 그녀의 살인마 동생 에드먼드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또라이'다. 보는 내내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또라이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는데, 이 정도면 집단 정신 착란 증세가 아닐까 싶었다. 진정한 '사이코 드라마'가 이런 게 아닐까. 1940년대 후반 미국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을 테다. 하지만 전후 혜택을 최대로 받는 와중에, 혼란은 혼란대로 느끼고 또 상대적 박탈감은 전에 없이 커졌을 것이다. 세상이 급작스럽게 바뀌니, 어떤 나이 든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하고 어떤 어린이들은 미래가 혼란스러웠을 거다.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표현되진 않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러하다. 와중에, 래치드 선의를 보이는 이와 악의를 보이는 이 그리고 입체적으로 다가가는 이가 갈린다. 잘못이 없는 이에겐 선의를 보인다, 그들이 누구라도 다른 이들이 그들을 뭐라고 하든 말이다. 소수자에 향한 한없이 따뜻한 시선이 엿보인다. 잘못이 있는 이에겐 악의를 보인다, 그들에겐 공통적으로 사연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입체적인 캐릭터에겐 그녀 또한 입체적으로 다가간다.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보이기도 하고 선의에서 악의로 또는 악의에서 선의로 선회하기도 한다. 이 시리즈의 재미 요소 중 하나이다. 


'재밌다' 보다는 '흥미를 돋운다' 정도


<래치드>를 한마디로 재밌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포장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둘러싼 예쁜 선물이 두고두고 보고 쓰면서 간직할 만한 것인 줄 알았더니 몇 번 쓰고 버릴 만한 수준의 것이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콘텐츠를 두고 '재밌다' 한마디면 모든 게 정리되는 시대에 이 작품은 재밌다기보다 흥미롭다 아니, 흥미를 돋우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라이언 머피는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그의 작품들을 '예술' 아닌 '상업'의 범주에 넣어 둘 게 분명하다.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영상 콘텐츠들, 뭘 봐야 할지 선택하기가 너무 힘든 와중에, 본인 작품이 최고는 아닐지언정 중간은 간다고 천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중간이라도 가려면, 어떤 면에서는 최고여야 하는 건 잘 알고 있을 테고 말이다. 선택과 집중이 뭔지 아는 사람인 것이다. 


시즌 1의 8화에 이어 시즌 2의 10화 제작이, 작품 공개 이전에 확정되었다고 한다. 포장 하나는 '기똥차게' 하는 이의 기대작답다. 개인적으로, 시청하기 전에 기대했던 면이 전혀 없어서 당황하고 실망하기도 한 반면 얽히고설킨 관계들 사이에서 예측하기 쉽지 않은 반전이 끊임없이 이어져 계속 볼 수밖에 없기도 했다. 작품을 보는 사람보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한테 더 좋은 콘텐츠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시즌 2가 나오면 '보기 싫은데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고 할까... 작품을 접하면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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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라이언 머피, 래치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사이코 드라마, 선악, 재미, 정신병원,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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