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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팡세 다시읽기

파스칼의 <팡세>를 통한 자유로운 사유(思惟)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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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누군가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훌륭하다. 그것은 모호하다> 혹은 이와 유사한 의견을 말하기라도 하면 그것은 상대방의 상상력을 이 판단으로 이끌어 가거나 아니면 반대의 방향으로 자극하게 된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그래야만 상대방은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 그 당시의 상태대로,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은 다른 상황들이 작용한 데 따라 판단할 것이다. -> 주관에 의지한 의견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2. 자연스러운 문체를 대할 때 사람들은 놀라고 기뻐한다. 한 작가를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한 인간을 만나는 것이다. 반대로 훌륭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보면서 인간을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한 작가를 만나게 되면 크게 놀란다. -> 작가를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인간을 만나고, 인간을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작가를 만난다. 어느 것이든 실망은 없을 것이다. 이가 작가의 의도라면 더욱 놀랍다. 
3. 내가 어떤 새로운 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소재들의 배열이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공치기를 할 때 쌍방이 치는 공은 같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공을 더 잘 보낸다. 차라리 내가 옛말들을 사용하였다고 내게 말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은 말들이 다르게 배열되면 다른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같은 생각들은 다르게 배열되어도 다른 담론 체계를 만들어낼 수 없기라도 하는 것 같다. -> '말'의 중요성은 '생각'을 능가하는가? 
4. 사람을 유익하게 꾸짖고 그의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할 때는 그가 어떤 방향에서 사물을 보는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방향에서 보면 대체로 옳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옳은 점은 인정하되 그것이 어떤 면에서 틀렸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이에 만족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모든 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에는 화내지 않지만 틀렸다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본래 사람은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또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그 방향에는 본래 틀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감각이 인지하는 것들은 항상 진실된 것이므로. -> 세상에 틀린 건 없다. 절대적인 것도 없다. 다른 것이 있을 뿐.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것 뿐이다. 
5. 일반적으로 사람은 타인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이유보다 자신이 발견한 이유에 의해 더 잘 납득한다. ->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생각에서, '나'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세상의 중심은 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자유로운 사유(思惟)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킵니다. 파스칼의 <팡세> ⓒ민음사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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