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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대학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괴물이 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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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괴물이 된 대학>



<괴물이 된 대학> 표지 ⓒ시대의창



2010년 '명문대' 고려대학교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학생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자퇴한 것이다. '거부한다'라는 단어가 주는 그 울림은 수백 만 네티즌들의 슬픔과 분노를 얻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왜 대학을 거부했는가? 요약하자면, '상품'으로 선택 되기보다 '인간'을 선택했다. 대학은 더 이상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었다. 상품을 길러내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4년이 지난 2014년 또 한 번의 자퇴선언이 있었다. 이번에도 '명문대'인 중앙대학교. 당시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창인 학생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자퇴한다. 그는 두산 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난 뒤 이루어진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다가 탄압과 낙인 찍기를 당했고, 마지막 저항 수단으로 자퇴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 두 자퇴 선언의 성격은 다르다. 김예슬은 경영학과라는 '앞날이 창창한' 학과를 다님에도 그녀의 앞날에 펼쳐질 '상품'으로서의 길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며 '인간'으로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는 바, 그녀의 선언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철학과 사상이 있다. 


반면 김창인은 철학과라는 '앞날이 막막한' 학과를 다니는 바, 대기업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가 가고자 하는 길과 정반대에 있었다. 중앙대는 철저한 기업적 논리로 무장해 대학을 통째로 '개혁'하려 하였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인문학은 방해물에 불과했다. 인문학은 당장 돈이 되지 않으니까. 그 뿐이다. 그래서 김창인은 대항한다. 자신의 과를 지키기 위해,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대학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학생,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다


"기업을 등에 업은 대학은 괴물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난 다섯 차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세 차례 징계 조치를 받았다. 무기정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자 그 대신 유기정학 18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유기정학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조조정 토론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근신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징계 이력은 낙인 찍기였다." (본문 중에서)


<괴물이 된 대학>(미래의창)은 김창인이 자퇴를 하고 난 후 역시 대학 구조조정이 일어난 또는 일어나고 있는 대학에서 그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 책이다. 그리고 유명 인사들을 만나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견해를 듣고 인터뷰를 했다. 저자가 중앙대에 대한 마지막 저항 수단으로 자퇴를 하고 난 후 그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김창인은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기대감에 풍덩 빠져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순수하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게 좋아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소모임, 학생회 활동에 참여했고 자연스레 운동권(?)으로 불렸다. 그가 입학한 2009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2008년 2학기에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 그룹이 2009년 2학기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시될 거라는 보도가 시작이었다. 학내 구성원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김창인은 학생회를 통해 대항한다. 학교 측은 학생회의 영향력을 없애고자 한다. 그리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 


그는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들어간다. 천막 농성, 서명 운동, 한강대교 고공시위, 원탁회의 토론회, 철학과 학생회장 등으로 6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한결 같이 구조조정 반대에 최전선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탄압의 결과물로 다섯 번 상벌위원회 출석과 세 차례 징계였다. 구조조정은 해마다 계속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견디고 버티는 것이 너무 잔인한 일이고, 무엇보다 그의 주위 사람들이 다치고 상처 받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또한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나가고자 했기에,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대학은 대학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한국 대학에서 일어나는 구조조정은 정체가 무엇일까. 도대체 왜 대학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것일까. 김창인은 자퇴 이후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정확한 현황 진단과 분석, 그리고 대안 찾기와 싸우는 방법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을 이기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싸움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활동임과 동시에, 태반이 대학과 관련되어 있는 한국의 앞날을 위한 앎의 투쟁이기도 하다. 적을 알아야 이길 게 아닌가. 아니, 적이 과연 적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 있다. 


저자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임재홍 교수와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대학 구조조정는 정부와 교육부 정책의 산물이다. 그 기본 배경은 '학령인구의 감소'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 정원의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며, 기왕 하는 김에 교육의 질을 재고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대학 등급제를 실시해 경쟁을 시킨다. 경쟁에 위한 교육의 질 향상과 대학 정원의 감축. 


그런데 이 계획을 보면, 기초 학문 계열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재학생 충원률과 취업률 지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스레 대학 구조조정 하에서 기초 학문 계열 학과가 사라지거나 통폐합 되기 일쑤이다. 또한 장여 재산 귀속 법률안으로 대학의 시장화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기초 학문 분야 없는 대학이 과연 대학이 맞느냐는 것이다. 결국 대학 영리화가 가능한지 안 되는지, 나아가 교육이 사유재인가 공공재인가 하는 논쟁까지 맞닿아 있다. 


저자는 말한다. 대학은 사유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식 자체가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고, 현 시대는 민주 사회이기 때문에 시민 모두에 대한 교육은 시민 개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효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럴 진대, 어떻게 일개 기업이 대학을 사서 구성원과의 합의 없이 기초 학문 분야를 없애는 정책을 실시할 수 있냐는 말이다. 


"성균관대나 중앙대의 구조조정 사태는 대학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일이지요. 기업이 아예 대학을 인수해 일종의 자회사처럼 운영하려는 발상으로 취업 잘되는 학과나 전공만 남기겠다는 건데, 이건 교육부의 구조조정 방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민영화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벌 기업이 지배하는 사립대학은 대학의 수장이 기업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교수들은 기업의 사원처럼 성과에 목을 매겠죠. 취업 사관생도인 학생들은 오직 취업을 위한 학점과 스펙 경쟁에 바빠요. 든든한 후원의 대가로 상아탑의 영혼은 빼앗긴 신세가 됐습니다." (본문 중에서)


기업과 정부 비판, 나아가 이데올로기 비판까지



정부의 정책이 그러한대, 대학 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는 합법적으로 대학을 개인의 이윤 창구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손을 놓고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대학을 시장에 맡겨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실패를 신자유주의적으로 돌파하려는 잘못된 판단이다. 


저자는 대학 구조조정으로 기업 비판을, 교육 정책으로 정부 비판을,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까지 나아간다. 일개 기업의 대학 사유화와 기업화,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같은 중앙대 출신이자 책에서 한두 차례 언급된 노영수의 <기업가의 방문>(후마니타스)와 비슷한 느낌과 맥락이지만, 이 책이 훨씬 심도 깊은 듯하다. 전반의 짤막한 분투기를 뒤로 하고 중후반의 인터뷰로 실상을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체험에 중점을 두기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모아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모습에 희망이 서려있다. 계속해서 싸우기 위해 자퇴를 선택했다는 그의 말도 이해가 간다. 이런 방법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신력 있는 목소리로 정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의 가치, 전 세계적인 대세, 변화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대학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걸 그가 보여줬으면 한다. 


괴물이 된 대학 - 10점
김창인 지음/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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