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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10.26에 부쳐] 권력의 심장을 향해 쏴라...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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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에 부쳐] 권력 암살의 빛과 그림자


영화 <영웅> 포스터 ⓒ 코리아픽쳐스

중국 영화 <영웅>을 보면 파검(양조위 분)이 사막에 글자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天下'. 무엇을 뜻하는가? 사전을 참조하면 하늘 아래 온 세상, 한 나라 전체, 온 세상 또는 한 나라가 그 정권 밑에 속하는 일 등의 뜻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인데, 중국 전토를 말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왜 파검은 '천하'라는 글자를 쓰는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그 유명한 '진시황'(진나라)이다. 이 영화에서 진시황은 통일을 직전에 두고 있었는데, 그를 암살하려 하는 전설의 검객 중 한명이 파검이다. 그들은 모두 진시황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개인적으로 원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파검은 평화주의자다. 고심 끝에 결국 진시황 암살을 포기하고 무명(이연걸 분)이라는 검객에게 기회를 넘기면서 천하라는 글자로 자신의 뜻을 밝힌다.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전란 속에 희생당하는 백성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사로운 것이다. 연과 진의 원한도 천하라는 대의 아래에서는 사사로운 것이다."

 

그 뜻을 풀어보면 대략 위와 같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진시황을 죽이게 된다면 천하는 또 다시 혼란에 빠져 백성들은 도탄에 빠질 것이다. 그럴 바에야 내가 천하를 위해 희생하겠다. 결국은 무명조차 천하를 위해 희생을 하게 되면서 영화를 끝을 맺는다.

 

이처럼 절대 권력은 양면성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로부터는(대부분 절대 권력이 확립된 이후) 태평성대라 칭송받고, 어떤 사람들로부터는(대부분 절대 권력을 차지하는 중) 최악의 인권탄압 내지 독재시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누구의 말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인류 역사상 그런 사례는 무수히 많으니까.

 

권력 암살자들

 

20세기 초 중국 대륙을 놓고 공산당과 국민당이 자웅을 겨루고 있을 때다. 만주 군벌인 장쉐량은 일본에 의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본에 맞서 싸우지만, 1931년에 있는 만주사변으로 근거지를 잃고 국민당 정부의 휘하에 들어간다. 하지만 장제스(국민당)은 국내 통일 이후 외세(일본 등)에 맞서 싸우는 전략 하에, 장쉐량으로 하여금 공산당에 대응하게 한다. 결국 공산당은 국민당의 공세로 인해 대장정을 떠나게 되고, 장쉐량을 동북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공산당 본거지를 공격하게 한다.

 

공산당에 대항해 싸우기보다 먼저 힘을 합쳐 일제에 대응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한 장쉐량은, 1936년 12월 12일(공교로운 날짜다)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시안을 방문한 장제스를 체포, 구금한다. 이를 '시안사변'이라 하는데, 공산당에게는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결국 장쉐량의 제안 하에 국민당과 공산당은 12월 25일에 제2차 국공합작에 동의한다.

 

이후 장쉐량은 장제스에 의해 죽기 10년 전까지 구금 아닌 구금과 감시를 당한다. 권력자를 암살하진 않았지만, 권력을 암살하려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그의 행동은 결과론적으로 또 다른 독재자 '마오쩌둥'을 탄생시켰지만 말이다.



왼쪽의 장쉐량과 오른쪽의 장제스



여기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소개한다.

 

"브루투스 너마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율리우스 카이사르> 중 가장 유명한 대사로, 극 중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할 때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려 한다는 불안이 귀족 전체에 번지면서, 이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그 중에는 카이사르가 총애해 마지않던 데시무스 브루투스도 끼어 있었다. 3월 15일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회랑 앞에서 14명의 귀족들에게 둘러싸였고, 그들의 칼에 맞아 죽고 만다.

 

이후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의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하게 되고 암살파들과의 내전에 돌입하여, 암살파가 모두 제거된다. 결국 카이사르의 1인 독재를 막기 위한 카이사르 암살은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됨으로써 빛이 바랬다.



암살당하는 카이사르



누군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우리나라 현대사가 낳은 비극(여러가지 의미로) 중 하나인 10·26의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1979년 10월 26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라는 노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사람들이 생각날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의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8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1인 독재로 한국을 이끌었다. 1972년 10월에는 유신체제를 선포함으로써 비민주주의적 모순이 극에 달했고 결국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그 동안의 정치·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군철수라는 카드를 이용해 한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려 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 한·미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이외에 1978년도와 1979년도는 정치적으로 무수히 많은 악재를 낳았다. 특히 1978년에 치러진 10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여당인 공화당을 앞지르게 되어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민심은 바닥을 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하는 '부마사태'가 벌어지고,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의 입장을 수용해 강경진압을 채택하자 차지철의 견제로 김재규는 퇴진위기에 몰리게 된다. 결국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의 만찬 도중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을 그 자리에서 사살하게 된다. 그는 왜 대통령을 암살해야만 했나?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



시해 현장을 재연하고 있는 김재규. ⓒ 1980 보도사진연감



다음은 김재규 최후진술 중 일부이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목적과 경과, 결과도 중요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죽었고 유신은 끝을 맺었다. 카이사르가 죽고 1인 독재는 막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 그보다 더한 황제를 낳았고, 박정희의 죽음은 또 다른 군사 독재자를 낳게 된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권력 투쟁은 곧 정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많은 사례들은 권력 투쟁인 동시에 정치 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기는 천차만별이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같은 경우엔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데 박정희의 차지철 총애에서 오는 김재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기,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미국에 의한 암살설, 우발적 행동설 등이 있다.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 사건은 권력 내 투쟁, 장쉐량의 시안 사건 같은 경우는 권력 외 투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권력 암살자들은, 권력자 암살 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권력자가 여러 한계로 인해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시기일 때도 있었다. 즉, 굳이 암살로 권력자를 끌어내지 않더라도 곧 스스로 무너질 시기였다는 것이다. 일본제국의 항복으로 대한민국이 광복될 당시, 미국에 의해 일본제국이 항복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대외적으로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는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수없이 행해진 권력 암살은 옳았던 선택일까? 아님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한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것인가? 이미 지나간 역사를 들추어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지만, 충분히 생각해 볼 일이지 않은가. 역사는 흘러가고, 결국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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