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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카프카의 편지

1904년 카프카, 평생지기 막스 보로트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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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와 그의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는 1902년 10월 2일에 처음 조우합니다. 브로트의 강연인 <쇼펜하우어 철학의 운명과 미래>에서 였죠. 독일 대학생들의 독서 및 연설 모임에서의 강연이었습니다. 브로트는 쇼펜하우어에 이어 니체를 강연했는데, 니체를 몽상가로 매도했다고 합니다. 이에 카프카가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계기로 우정이 싹텄다고 하네요. 


이후 막스 브로트는 프란츠 카프카를 외부세계로 이어주는 유일하다시피한 다리 역할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같이 해외로 여행도 떠나고, 이곳 저곳 같이 다녔으며, 여러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즉 카프카가 내면으로만 파고 들어가 폐쇄적으로 치닫는 걸 막았던 것입니다. 



왼쪽: 막스 브로트, 오른쪽: 프란츠 카프카



다음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쓴 편지입니다. 너무 긴 관계로 중략과 후략을 하였습니다. 



프라하의 막스 브로트 앞

프라하, 1904년 8월 28일 이전으로 추정


친애하는 막스, 

특히 어제 수업을 빼먹었기 때문에, 자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싶네. 왜 내가 가면무도회의 밤에 자네들과 함께 가지 않았는가를 설명하려면 말이야. 더구나 어쩌면 내가 약속까지 해놓았으니. 


용서해주게, 나도 스스로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고, 자네와 P.와 함께 하룻밤 지내고 싶었던 게야. 왜냐하면 어떤 산뜻한 대위점이 생성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 자네가 가끔 여러 사람들이 있을 때 그러하듯 - 그러면 그는 반대로 이성적인 개관으로 결정적인 것을 들이댄다는 식이지. 그는 예술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그런 개관을 지녔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생각했을 때, 나는 자네의 동아리, 자네가 속한 그 작은 동아리를 잊고 있었어. 한 이방인의 첫눈에는 그것이 자네를 긍정적으로 보이게 하지 않을 게야. 왜냐하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자네에게 의존해 있고, 부분적으로는 자네와 무관하기 때문이야. 의존적인 한, 그것은 마치 준비된 메아리를 지닌 민감한 산처럼 자네를 에워싸고 있다네. 그것은 듣는 사람을 화나게 하지. 눈이 면전에 있는 한 사물을 조용히 다루고 싶은 반면에, 그의 등은 두들겨 맞는다네. 두 사람을 위한 향유력이 사라질밖에. 특히 만일 그가 특별히 노련하지 않다면 말이야. 


그러나 그 동아리가 독립적인 한, 그들은 심지어 자네에게 한층 더 해를 기칠 거야. 왜냐하면 그들은 자네를 왜곡시키고, 그러면 자네는 그들로 인해서 제자리가 아닌 곳으로 밀리지. 자네는 듣는 사람에게 바로 자네로 인해서 반박되는 게야. 만일 자네 친구들이 시종일관이라면 좋은 기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친구들 무리는 오직 혁명에서만 유용하지. 만일 탁자 주위의 흩어진 불빛 아래 정도의 봉기일 뿐이라면, 그들은 그것을 수포로 만들어버리지. (중략)


내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만일에 자네가 내가 자네와 더불어 그 저녁을 보내지 않았던 일로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더욱 슬퍼질 것이기 때문이라네, 이 편지에 대해서 나를 용서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후략)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발췌, 솔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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