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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400년을 기다린 사랑, 뤽 베송이 다시 그린 드라큘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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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드라큘라: 러브 테일>

 

영화 <드라큘라: 러브 테일> 포스터. ⓒ와이드릴리즈

 

15세기 루마니아, 블라드 드라큘라 백작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타를 두고 전쟁터에 나간다. 신의 이름으로 이슬람 대군을 물리치나 적의 궤멸을 코 앞에 두고 후퇴한다. 엘리자베타가 적의 매복으로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 급하게 달려 가나 그의 눈앞에서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신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저주에 맡겨 영원불멸한 흡혈귀가 된다.

400년 후 젊은 변호사가 그의 저택을 방문한다. 그가 소유한 대지의 거래 대리인으로 말이다. 하지만 여지없이 붙잡혀 피가 빨려 죽을 운명에 가까워진다. 변호사는 마지막 소원이니 그의 얘기를 들려 달라고 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약혼자 미나의 사진을 보여 주며 살려 달라 애원한다. 그 사진을 본 드라큘라는 엘리자베타와 빼닮은 미나에게 달려간다.

한편 드라큘라 추종자의 출현에 신부가 파견되어 사태의 진앙지를 찾으려 동분서주한다. 최근 추종자가 이상 증세를 보였던 곳에서 그녀와 친해진 이를 찾았더니 다름 아닌 미나였다. 하지만 이미 드라큘라가 그녀에게 접근했고 그녀는 기이한 데자뷔와 함께 그를 향한 알 수 없는 이끌림을 경험하는데…

드라큘라는 괴물이 아니라 사랑에 미친 남자다

영화 <드라큘라: 러브 테일>은 프랑스의 국민 감독 뤽 베송의 신작으로, 제목대로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하였으나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공포나 크리처물이 아닌 로맨스 서사로 풀었다. 뤽 베송 특유의 ‘아름다운 잔혹’의 감각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한물갔다고 평가받는 감독이지만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재미를 한껏 끌어올리는 주체는 단연 뤽 베송의 연출 감각이겠지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케일럽 랜드리 존스와 크리스토프 발츠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각각 드라큘라와 신부 역을 맡았는데,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케일럽과 중심을 단단히 잡아 주는 안정적 연기를 선보인 크리스토프의 합이 절정이다.

드라큘라는 주지했듯 몇백 년 동안 살면서 사람들의 피를 먹고사는 공포의 대상이다. 즉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괴물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그 이면이 더 잘 보인다. 한 여인을 너무나도 사랑해 신에게 맞선 것도 모자라, 스스로에게 불멸의 저주를 내려 죽지 않고 아내를 찾는 것에만 열중하는 것이다.

그의 욕망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의 피를 마셔, 죽게 하거나 흡혈귀로 변하게 하는 건 모두 수단일 뿐이다. 그가 비록 외모는 한없이 추하고 내면은 고독으로 썩어 문드러져도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이유는 오로지 영원한 사랑 엘리자베타 때문이다. 죽은 그녀가 언젠가 환생해 자신 앞에 나타날 거라는 희망 말이다.

영생이라는 축복, 사랑이 없으면 지옥이 된다

괴물 드라큘라의 내면을 꽉 채운 건 오직 ‘사랑’이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사랑의 측면에서, 그의 영생은 축복이 아닌 지옥에 가깝다. 거기에 사랑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그가 영생의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사랑이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사랑, 사랑, 사랑뿐이다.

극 중에서 드라큘라는 400살의 실력을 뽐내며 수많은 이의 피를 마시고 수많은 이를 도륙한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미나에게만은 최선을 다해 보살핀다. 그는 그녀가 엘리자베타의 현생이라고 굳게 믿으니까, 그런 사람과 400년 만에 재회했으니까. 그 간절함과 환희가 화면을 뚫고 나와 관객에게까지 가닿는 것 같다.

한편 미나로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약혼하고 곧 결혼해야 하는데, 시대적 규범으로선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선 드라큘라를 향한 슬픔 어린 끌림이 거부할 수 없게 그녀를 휘감으니, 둘은 가히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싶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알려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

<드라큘라: 러브 테일>은 실로 오랜만에 선보이는 ‘거장의 드라큘라’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명작이기에 다루길 꺼려했을 텐데, 그레타 거윅이 <작은 아씨들>을, 드니 빌뇌브가 <듄> 시리즈를, 기예르모 델 토로가 <피노키오>에 이어 <프랑켄슈타인>을 내놓았듯이 말이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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